For the Mu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179)
> 음악천재를 위하여 – 179화 >
“크으―!”
김도현 피디는 순수한 감탄을 터뜨렸다. 편집실에서 마주한 다큐멘터리 촬영분은 말 그대로 로맨스 영화의 한 장면이라고해도 손색이 없었다. 강현의 외모는 일찍이 영국 왕실 공연에서 증명된 바가 있듯 깔끔 그 자체였다. 수년 전 연미복을 차려입은 어린 마에스트로
의 등장으로 대한민국이 들썩이지 않았던가.
“정말 잘 생겼다.”
꽃봉오리가 개화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 영국 왕실에서의 모습이 미소년이었다면 이제는 완연한 미청년의 모습이었다. 훌쩍 커버린 키와 더불어 널찍한 어깨, 우수에 찬 눈동자 아래 한 폭의 그림 같은 콧날은 수많은 여심을 뒤흔들어놓기에 충분했다. 괜히 클
래식계의 아이돌이라 불리는 것이 아니다.
“선배, 이 시간까지 뭐해요?”
“보면 모르냐, 편집하고 있지.”
“웬일이에요? 선배가 남아서 일을 다 하고.”
후배 피디가 놀란 눈으로 김도현을 바라봤다. 것도 그럴 것이 시사교양팀에서도 김도현의 잔머리는 알아줬다. 하물며 다큐멘터리의 특성상 예능프로그램에 비해 편집할 분량이 적기에 웬만하면 저녁시간에 맞춰 퇴근을 하는 예능국에서 몇 안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
다.
“와, 이 사람이 강현이에요? 사진으로 봤던 것보다 영상이 훨씬 잘생겼네.”
“실물은 말도 마라. 외모는 저렇게 곱상하게 생겼지만 카리스마는 장난 아니니까.”
“카리스마요?”
‘아우라’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강현을 실제로 만나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이야기하곤 했다. 외모가 잘생긴 것을 떠나 눈빛과 화술에서 느껴지는 깊이가 대단하다고. 김도현 또한 그에 동의하는 바였다. 실제로 본 강현은 훨씬 신기하고 묘한 사람이
었다.
꿀꺽.
그 순간 김도현 피디의 목울대가 크게 출렁였다. 두 눈동자는 마치 영화의 하이라이트를 시청하듯 모니터에 집중되어 있었다. 후배 피디 또한 어느새 자리를 잡고 모니터를 뚫어져라 바라본다. 조그만 화면 속에는 강현이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하물며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실수를 족집게처럼 잡아내기까지. 편집이 필요 없을 정도로 이 자체만으로 강현 그가 나오는 모든 장면이 명장면이었다.
바이올린.
감히 말하건대 악기를 집어든 남자가 이토록 멋있게 보이는 것은 처음이었다. 물 흐르듯 이어지는 자세에 두 피디의 입에서 동시에 탄성이 터져 나왔다. 뒤이어 바이올린 단원에게 단호하게 지적하는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끝없는 매력을 느끼게 했으니. 그 순간 후
배 피디는 물론이고 김도현 또한 직감했다. 방송만 타면 시청률 대박은 따 놓은 당상이라고.
*
탁!
흑돌이 바둑판 위로 경쾌한 소리와 함께 놓였다.
“욘석, 실력 다 어디 간게냐?”
오랜만에 왕회장과 바둑을 두게 된 것이었으니. 왕구렁이 영감님의 얼굴은 마치 어린 아이처럼 밝아져 있지 않은가. 아무래도 자신의 생각대로 바둑이 두어지는 모양. 그때였다.
“그럴리가요.”
백돌이 흑돌의 대마를 잡으며 단숨에 역전하지 않는가. 왕회장의 미간이 삽시간만에 좁혀졌다. 아무렴, 영민해진 소프트웨어 덕분에 바둑은 세미프로 못지않았으니. 국수에게 바둑을 지도받는 왕회장으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밥만 먹고 바둑만 두는 것도 아닐 텐데 어찌 이럴꼬.”
“타고난 덕분이죠. 할아버지도 실력이 엄청 많이 느셨는데요. 이러다가 제가 지겠어요.”
“예끼, 이놈아. 할애비를 놀리면 쓰나. 아마 조 선생하고 현이 너를 붙여놔도 꽤 재미있는 그림이 나올 것 같구나. 만약 오늘 네가 이기면 내가 한번 자리를 마련해보마.”
한국 바둑계의 일인자를 친근하게 부르는 것이었으니. 한편으로는 궁금하기도 했다. 내 바둑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하물며 전신戰神으로 불리는 정상급 기사와 수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바둑인으로서 가문의 영광이었기에.
“그럼 지금부터는 안 봐드리겠습니다.”
“뭐?”
흑돌이 바둑판 위에 놓이자마자 백돌이 기다렸다는 듯이 다음 수를 놓았다. 수읽기에는 이미 특화된 몸이 아니었던가. 왕회장은 갑작스레 빨라진 속도에 당황하는 듯 싶더니 이내 체념한 듯 흑돌에서 손을 놓았다. “욘석이 조 선생 이름이 나오니까 눈에 불을 키고 하는구나.”
“바둑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뵙고 싶은 분이잖아요.”
“고얀놈, 할애비한테 한번을 안 져 주는구먼.”
왕회장은 말을 그렇게 하면서도 엷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암, 바둑을 설렁설렁 뒀다가는 오히려 잔소리를 들을 게 뻔하다.
“요즘 김 실장이 꽤나 행복해 보이는 눈치더구나.”
“김상국 실장이요?”
“그래, 전략기획실에 있었을 때와는 사뭇 달라. 날카롭던 사람이 유해진 것은 물론이고 생각의 깊이 또한 남달라졌더구나. 이게 다 누구 덕분일꼬. 할애비도 그 방법 좀 알고 싶은데 말이다.”
과찬이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지. 제일그룹을 일으켜 세운 왕회장에 비하면 난 아직 세발의 피에 불과했으니.
“그나저나 얼마 안 있으면 유하가 한국에 들어오겠구나.”
“유하가요?”
“그래, 방학동안 미국에 있기보다는 한국에서 공부를 하고 싶어 해 내 그리 하라고 했다. 이번에 현이 네가 지휘하는 공연도 꼭 참석하고 싶다고 하고.”
유하가 한국에 들어온다는 말에 나도 모르게 심장이 뛰었다.
“왜 볼이 붉어지느냐?”
“예?”
볼이 붉어졌다니 그럴 리가. 내가 황급히 손을 뺨에 갖다 대니 왕구렁이 영감님이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아아, 당했다.
“현아, 정 판사에게 들으니 네가 법학에 대해서 꽤 박학다식하게 알고 있다고 하던데 말이다.”
정 판사?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한국대학교에서 법학 교양과목을 가르치는 교수 말이다. 그 친구랑 이 할애비가 인연이 있는 사이라 한 번씩 만나곤 한다.”
“정 교수님이요?”
“그래, 그 친구에게 이야기를 듣자니 현이 네가 웬만한 법학도들도 상대가 안될 만큼 법학 지식이 뛰어나다고 하던데. 오죽하면 그 무덤덤한 양반이 현이 너를 꼭 법조인으로 키워보고 싶다고 내게 말까지 했겠느냐.”
설마하니 법학 교양과목의 노교수와 왕회장이 아는 사이일 줄은 몰랐다. 도대체 발이 어디까지 뻗어 있는 건지, 아무리 유해보여도 역시 왕구렁이 영감님의 꼬리만큼은 숨길 수 없다. 그래도 이번 삶에서만큼은 목에 칼이 들어오는 한 이 있더라도 법조인을 할 생각은
없었다.
“할애비가 법적으로 궁금한 것이 있는데 말이다.”
법적으로 궁금한 것 있으면 제일그룹 법무팀에 문의를 하면 될 일이거늘. 그곳에는 대법관을 지낸 인물들을 비롯해 전관예우를 받는 변호사들이 무지개색 크레파스들 만큼이나 수두룩 빽빽하게 있지 않은가. 물 잔을 들어 입을 축이던 그 순간 왕회장이 전혀 의외의 질
문을 내게 해왔다.
“미성년자도 약혼식을 올릴 수 있는 게냐?”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물이 튀어나왔다.
* * *
“강현 씨와 백정훈 씨의 차이요?”
서울시립교향악단 악장의 얼굴에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설마하니 촬영팀이 이러한 질문을 해올 줄은 몰랐던 모양. 그때 김도현 피디가 한마디 거들었다.
“시청자분들께서는 강현 씨와 백정훈 씨를 실제로 대면할 일이 없잖습니까. 그들의 실제 성격과 무대 위에서의 모습이 어떠한지 무척이나 궁금할 텐데 직접 매번 얼굴을 맞대며 연주하는 단원들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원하시면 익명으로 처리해드릴 수도 있습니다. 친
구한테 이야기한다고 생각하고 편하게 말씀하시면 됩니다.”
막힘없이 말을 건네는 것이 약장수 같지 않은가. 결국 악장은 짐짓 고민하는가 싶더니 이내 운을 띄웠다.
“먼저 백정훈 씨부터 말씀드릴게요. 사실 사석에서는 형 동생 하는 사이에요. 예전부터 정훈이는 피아니스트로 이름을 날렸었고 저희 서울시립교향악단과 협연을 하는 일이 잦았거든요. 피아니스트로서의 백정훈을 평가한다면 마치 고고한 학 같았어요.”
“고고한 학이요?”
“예, 기품 있고 우아하면서 품격 있는 연주를 했거든요. 타고난 재능뿐만 아니라 노력 또한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죠. 괜히 그 어린 나이에 한국에서 차세대 거장이라고 불렸겠어요. 아직도 피아니스트 백정훈으로서의 모습을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청중들이 많죠. 반면
지휘자로서 백정훈의 모습은 예상외였어요.”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피디가 자세를 앞당겼다.
“차갑게 벼려져있다고나 해야 할까. 결코 나쁜 뜻은 아닙니다. 음악적인 성격이 바뀌었다는 말이니까요. 과거에는 부드러웠다면 지금은 냉철해졌어요. 솔직히 지휘로서 그렇게 큰 재능을 가지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한편으로는 과연 백정훈 이라는 생각도 들었
죠. 도대체 얼마나 노력을 해야 불과 몇 년 만에 저 위치까지 올라갈수 있을까 싶었으니까요. 저는 죽었다 깨어나도 정훈만큼은 해내지 못할 겁니다.”
한국에서 제일가는 교향악단의 악장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기에는 믿기 힘들 정도였다. 악장은 계속해서 다음 인물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어나갔다. “강현 씨는 사실 안지 얼마 되지 않았어요. 소문은 들어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그의 연주와 지휘를 보니 말이 턱하니 나오지 않더라고요. 아시잖아요, 강현 씨가 스무살에 불과하다는 걸. 그런데 그 노련함과 실력은 결코 재능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었어요. 하지만 어쩌
겠어요. 분명 과거 전설적인 천재들을 바라봤던 평범한 음악가들이 저와 같은 마음이었겠죠. 무대와 무대 밖의 강현 씨는 큰 차이가 없어요. 처음에는 수석 단원들도 그를 어려워했으니까요. 무대 위에서 카리스마와 집중력은 단언컨대 국내에서 그를 따라잡을 수 있는 사
람은 없을 겁니다.”
“혹 강현 씨를 한 문장으로 정의한다면요?”
“흐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를 대체할 말이 이 말 밖에는 없네요.”
악장은 강현의 얼굴을 떠올리고는 망설임 없이 말했다.
“범접할 수 없는 천재.”
*
“오늘도 촬영을 하시게요?”
설마 학교를 가는 날에도 촬영을 할 줄이야. 다행이라면 방송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커다란 촬영카메라가 아닌 6mm 카메라로 VJ가 직접 촬영을 한다는 것이다. 학교를 찾은 이유는 간단했다. 여름방학을 앞두고 마지막 시험이 있는 날이었기 때문.
“모두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기를 바라겠습니다.”
노교수의 목소리와 함께 시험지 낱장이 넘어가는 소리가 요란하다. 어쩌다보니 마지막 시험이 법학 교양과목이 되지 않았던가. 시험 수준은 듣던 대로 꽤나 높은 편이었다. 몇몇 문제는 결코 일학년 학생이 맞출 수 없는 것들이었으니.
하지만 그렇다고 내게도 적용되는 사안은 아니기에 열심히 손을 놀렸다. 논술형으로 되어있는 답안지에 빼곡하게 법리적해석이 적혀 나갈 때 쯤 이질적인 느낌이 들었다. 바로 노교수가 등 뒤에서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어째 템포를 조
금 늦춰야만 할 것 같다.
“현아, 오늘 종강날인데 동기 모임 참석 할 거지?”
“어?”
“여태까지 너만 빼고 다모였다고. 한번쯤 얼굴 비춰야하지 않겠냐. 그런데 옆에 계신 분은 누구야?”
시험이 끝나자마자 김대우가 나타난 것이었으니. 곧이어 VJ가 들고 있는 자그마한 카메라를 발견한 김대우가 눈을 크게 뜨며 ‘방송국?’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덩치만큼이나 목청이 큰 탓에 주변의 시선 또한 자연스레 모아졌다.
“혹시 강현 씨의 친구분 이신가요?”
“예, 예. 중학교 때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습니다.”
“그럼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강현 씨의 교내 인기는 어느 정도인지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VJ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김대우에게 질문을 해왔다. 김대우는 갑작스런 카메라의 등장에 잠깐 긴장한 듯 싶더니 이내 특유의 쾌활함을 선보였다.
“인기야 엄청 많죠. 제가 독일어학과 일학년 과대표인데 강현이 한번 만나보고 싶다고 다른 과는 물론이고 여대에서 과팅 제안이 얼마나 많이 들어오는데요.”
“과팅이요?”
“예, 그런데 강현이는 단 한 번도 과팅을 나가지를 않아요.”
그때 VJ가 내 눈치를 보더니 슬며시 부연했다.
“혹시 강현 씨에게 여자친구가 있나요?”
방금 전까지 말을 잘하던 김대우가 순간 입술을 다물며 나를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VJ의 카메라 또한 나를 향하는 것이었으니. 어쩌다 보니 피할 수가 없는 질문이 되었다. 무어라 말해야할까. 허나 고민은 짧지 않았다.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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