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the Mu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180)
> 음악천재를 위하여 – 180화 >
“유하―!”
미쉘이 흥분된 목소리로 손유하의 이름을 외쳤다.
“네가 일 등이야!”
게시판에는 손유하의 이름이 당당히 상석을 차지하고 있었으니. 학년의 수석을 뜻하는 것이었다.
어찌 보면 놀라운 일도 아니었지. 매번 당연하다는 듯이 손유하는 일 등을 차지했기에.
“어떻게 매번 그렇게 일 등을 안 놓치는지 몰라. 카야가 얼마나 약올라 하는지 알아? 자기는 만년 이 등이라고 신경질을 내더라니까. 교내 인기대회에서도 유하 네가 우승을 해버리면 카야도 이제 일 등 하는 걸 완전히 포기해 버릴걸.”
“아직 부족해.”
“뭐?”
손유하는 매번 자신이 아직도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아무렴, 빈곤은 상대적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강현과 비교했을 때 자신은 태양 앞에 반딧불만큼이나 한없이 작아 보였다. 이미 강현은 그 나잇대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성과를 이룩했기에.
그때였다.
“저, 잠시만!”
척 봐도 잘생긴 남학생이 손유하와 미쉘의 앞을 가로막는 것이었으니. 남학생의 손에는 장미꽃 한 송이와 편지가 들려 있지 않은가.
미쉘은 지금 상황이 무슨 상황인지 모를 수가 없었다. 여태껏 유하와 함께 다니면서 숱하게 겪었던 일이 아닌가.
“선물은 고맙지만 미안해.”
손유하의 단호한 대답에 남학생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암, 여태껏 수많은 필립스의 남학생들이 도전을 했지만 단 한 번도 손유하의 마음을 앗아간 이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이번 남학생은 결코 쉽게 물러날 기미가 아니었으니.
“넌 남자 친구도 없다고 알고 있는데 왜 그렇게 매번 매몰차게 거절하는 거지?”
“내가 남자 친구가 없다고?”
“그래, 필립스에서 유명한 이야기잖아. 손유하가 남자 친구가 없는데도 남학생들의 대시를 받지 않는다는 거 말이야.”
아무렴, 오죽했으면 손유하가 남자가 아니라 여자를 좋아한다는 소문마저 돌았겠는가. 그 탓에 후배 여학생들에게도 손편지를 몇 번이고 받은 적이 있었다.
손유하는 기가 차다는 듯이 고개를 가로저어 보이고는 남학생을 똑똑히 바라봤다.
“미안한데 나 있어.”
“어?”
“남자 친구!”
남학생이 마치 화석이 된 것마냥 자리에 얼어붙었다. 주변 학생들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으니.
여태껏 손유하가 남자 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밝힌 적이 없지 않은가. 곧이어 시장바닥처럼 복도가 시끄러워졌다.
학생들 틈바구니를 지나쳐 숨통이 트일 즈음 미쉘이 유하를 바라보며 물었다.
“유하, 이번 여름방학 때도 영국에 갈 거야?”
매번 여름방학 때면 영국으로 넘어가 제왕학과 경영학을 따로 배우지 않았던가.
“아니, 올해는 안 갈 거야.”
하지만 이번만큼은 아니었다. 함께 여름방학을 보내고픈 사람이 있었기에.
* * *
누군가 말하지 않았던가. 대학 생활의 낭만은 캠퍼스와 알콜에 있다고.
당장 내일 쌍권총(FF) 학점을 맞을지라도 친구들과 함께 소주 한 잔을 기울이다 보면 근심 또한 떨쳐지는 것이었으니.
하지만 강현은 달랐다.
지난 삶 한국대학교 법학과에 입학을 하자마자 사법고시를 준비한 그였다. 소법전을 읽을 시간도 부족한 탓에 동기들과 술 한 잔을 제대로 기울이지 않았더랬다.
대학생활을 하면서 남은 추억 또한 없었다. 오죽했으면 동기들은 물론이고 선배들조차 강현을 두고 독종이라고 불렀을까.
“현아―!”
호프집에 들어서자 김대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손을 흔들었다.
꽤나 넓은 호프집 안에는 이미 학생들로 만석이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동기들뿐만 아니라 몇몇 선배들의 얼굴 또한 보였다.
이제 강현의 등장만으로도 좌중의 시선이 집중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 되었다.
“늦지 않게 왔네. 자, 술 한 잔 받아―!”
누구였더라. 이름 모를 여선배가 다가와서는 생맥주를 건넨다. 옆에서 김대우가 입 모양으로 학회장이라고 말하는 것이었으니.
그제야 기억이 났다. 여걸이라고 불릴 만큼 평소에는 화장을 잘 하지 않는 선배였다. 헌데 오늘따라 유독 화장기가 있어서 얼굴을 못 알아본 것이었다.
“현아, 오늘 우리 과 여자 동기들하고 여선배들 전부 화장에 힘준 거 알고 있냐?”
“응?”
“봐봐, 평소에는 마스카라는커녕 립도 안 바르던 학회장 영미 선배부터 시작해서 여자 동기들까지 전부 쫙 빼 입었잖냐. 난 오늘 무슨 연말 시상식이라도 있는 줄 알았어.”
김대우의 말에 이곳저곳을 둘러보니 정말 평소에는 수더분하게 다니던 여학생들도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입었다.
“대우야, 학과 모임에 원래 드레스코드가 따로 있어?”
“드레스코드? 무슨 소리야, 이거 다 현이 너 때문에 그런 거야. 오늘 네가 종강 파티에 참석한다는 사실 듣고 과방에서 얼마나 난리가 났는지 아냐.”
“뭐?”
확실히 지난 삶과는 비교되는 삶이다. 독종이라고 불리며 사법고시를 패스했을 때보다 지금 더한 관심을 받고 있었으니.
강현의 락커에 때때로 팬레터가 있는 것은 예사였고 학과 사무실로 선물도 배달될 정도였으니 더 말해봐야 입만 아프다.
“현이 넌 아무래도 전생에 대한민국을 구한 게 틀림없어.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완벽할 수가 있겠냐. 대학 입학 수석도 모자라 동기들과 선배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다니. 크으.”
지난 삶 지하철에서 몸을 날리기는 했지만 대한민국은 구하지 않았다. 하물며 학과 생활을 하지 않으면서도 선배들이 강현을 좋아하는 이유는 의외로 단순했다.
매번 과방으로 필요한 물품들을 지원해 주는 그 덕분에 과방에서의 생활이 정말 편했다.
비록 강현의 입장에서는 소소한 선의지만 대학생들에게는 크게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자, 모두 집중―!”
학회장의 건배 제의와 함께 종강파티의 막이 올랐다. 어디에서 준비했을지 모를 노래방 기계까지 어디선가 튀어 나왔다.
어차피 호프집 전체를 학과에서 빌렸기 때문에 상관없다는 분위기다.
“선배님, 제가 한곡 뽑겠습니다!”
넉살 좋은 김대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마이크를 건네받았다. 곧이어 구수한 트로트의 전주 음이 천장을 울린다. 꽤나 기교가 자연스러운 것이 분위기를 달궜다.
여기서 가슴이 탁 트인 옷을 입고 나팔바지만 입고 있으면 나훈아 부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드는 강현이었다. 그때였다.
“현아, 이제 너도 한 곡 해!”
“어?”
“이번에는 우리 학과의 슈퍼스타인 강현 군이 제대로 한번 뽑아보겠습니다!”
김대우의 돌발 행동에 우레와 같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여학생들의 눈동자에는 이미 흥분이 차오르고 있었으니.
것도 그럴 것이 바이올리니스트인 강현이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그 누구도 보지 못했기에.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결국 강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마이크를 건네받았다.
무대에 오른 경험이야 차고 넘치니 이 정도로 떨릴까. 자연스럽게 피식 미소 짓자 주변에서 비명 아닌 비명이 터지는 것이었으니. 여학생들의 마음을 또 한 번 뒤흔들어놓는 순간이었다.
* * *
“김 피디―!”
국장의 목소리에 흥분한 기색이 역력하다. 것도 그럴 것이 강현과 백정훈에 대한 다큐멘터리 예고편이 그야말로 전국적인 화제 몰이에 성공했기 때문.
불독을 닮은 국장이 김도현 피디를 왈칵 껴안으며 감탄을 터뜨릴 정도로 시사국은 잔칫집 못지않은 분위기다.
“내 언젠가 김 피디가 제대로 한번 터뜨릴 줄 알았어! 예고편 반응이 아주 뜨겁다 못해 데일 정도야. 시사교양국으로 아침부터 다큐멘터리에 관한 문의 전화가 쇄도하고 있다는 게 상상이나 가는가!”
과장이 아니었다. 일반인들이 시사교양국에 직접 강현과 백정훈 다큐멘터리 본 방영 시각이 언제인지 문의할 정도였으니 오죽할까.
“2부로 편성할 수 있겠어?”
“국장님, 2부요?”
“그래, 지금 사장님께서도 각별히 관심을 가지고 계신단 말이야. 만약 알맹이만 확실하면 2부, 3부 편성도 상관없네.”
김도현 피디는 어안이 벙벙했다. 애초에 단발성 프로그램으로 기획한 다큐멘터리가 아닌가. 하물며 일반 다큐멘터리에 2부를 넘어서 3부까지 제작하는 경우는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분량은 충분하겠어?”
“충분합니다. 촬영 기간은 짧았지만 임팩트가 강한 장면들이 많습니다.”
편집실에 앉아 행복한 비명을 내지르지 않았던가. 정확히 말하면 장면 하나하나를 버릴 게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으니.
특히 강현의 모습은 일반인들뿐만 아니라 방송가에서 오랫동안 생활했던 김도현 피디의 눈에도 매력적으로 다가왔었다.
“그래, 이번 기회에 김 피디를 제대로 밀어줄 테니 한번 하고 싶은 건 다 해봐.”
“감사합니다, 국장님!”
때마침 시사교양팀에 구비된 TV에서 다큐멘터리 예고편이 방영되고 있었다.
강현과 백정훈의 모습이 번갈아 등장했는데 웬만한 배우 못지않은 생김새다.
특히 강현의 카리스마는 브라운관 너머에서도 극명하게 느껴질 정도로 대단했다.
어린 나이였지만 수많은 단원들을 단숨에 사로잡는 모습에서 카리스마가 넘친다.
특히 지휘를 하는 장면은 영화의 한 장면이라고 해도 믿길 만큼 고고하고 아름다웠다.
예컨대 이번 다큐멘터리가 방영되고 난다면 CF계는 물론이고 충무로에서도 강현을 섭외하고 싶어 할 것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대미를 장식할 하이라이트는 아직 남아 있었으니. 지휘를 하던 장면에서 넘어가 강현이 일상복차림으로 대학교를 향하고 있지 않은가.
일반 대학생들과 다름없이 친구와 만나 어울리며 수업을 갈 때였다.
여러 가지 질문이 쏟아지는 가운데.
-혹시 강현 씨에게 여자 친구가 있나요?
마지막 질문과 함께 당황한 강현의 모습이 클로즈업 되었다.
* * *
“진짜 있을까?”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이 아침부터 시끌벅적하다. 서울시립교향악단 단원들이 연습을 위해 자신들의 악기를 만지고 있지 않은가.
그중에서도 특히 여자 단원들은 하나같이 상기된 얼굴로 공통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너희는 아직도 방송국 사람들을 모르니? 다 시청률 높이려고 자극적이게 편집한 거잖아.”
“그래, 내 생각에도 강현 씨는 여자 친구는 없을 것 같아.”
“없는 게 확실하다니까, 있으면 매번 그렇게 밤 늦게까지 연습하겠어.”
바로 다큐멘터리 예고편 마지막 장면 때문이었다. 강현에게 여자 친구가 있냐는 질문과 함께 예고편이 끝나지 않았던가. 마치 결정적인 장면에서 TV가 정전된 것처럼 진한 아쉬움이 가득했으니 웬만한 영화 예고편 못지않았다.
그때였다.
“리허설 시작하겠습니다.”
강현이 무대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분명 나이는 가장 최연소였지만 단원들은 강현에게 알 수 없는 어려움을 느꼈다.
아무렴, 평소 까칠하기로 유명한 악장 또한 강현과 이야기를 나눌 때면 순한 양이 되고는 하니 다른 단원들은 오죽할까.
“비올라―!”
그 순간 강현은 어김없이 실수를 한 단원들 족집게처럼 잡아냈다.
단원들은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지. 처음에는 단순한 우연인 줄 알았지만 연습을 거듭할수록 강현의 예리한 청각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으니.
하물며 팀파니 연주자의 오래된 스틱 습관을 단박에 알아차렸을 때는 몇몇 단원들은 강현의 음악적 재능을 모차르트에 비교하곤 했다.
두두두둥.
지휘봉을 대신해 손끝이 날카롭게 허공을 움직이지 않는가.
박자를 되뇌이면서도 연주자들을 바라보는 것이었으니. 특히 악장의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한 현악기군 단원들에게는 일일이 신호를 주지 않는가.
스무 살의 어린 지휘자라고 하기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노련함이다. 과장을 더해 말하자면 상임지휘자와 호흡을 맞췄을 때만큼이나 안정된 호흡을 보여주는 교향악단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벌써 꽤 시간이 흘렀음에도 단원들의 얼굴에는 지친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강현과 호흡을 맞출 때면 더욱 아드레날린이 샘솟는 것 같았으니.
“내가 한번 물어볼까?”
쉬는 시간이 되자 단원들 사이에 궁금증이 일었다. 과연 강현에게 여자 친구가 정말 있을까 하는 문제였으니.
결국 용기를 낸 비올리스트가 지휘 단상에서 총보를 보고 있던 강현을 향해 물었다.
“지휘자님, 혹시 어제 다큐멘터리 예고편 보셨나요?”
“네, 봤습니다.”
“그럼 혹시 정말 여자 친구가 있으신가요?”
삽시간 만에 단원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아무렴, 남자 단원들 또한 궁금한 것이 분명했다. 시험 결과를 기다리는 학생들만큼이나 집중하고 있지 않은가.
강현이 피식 웃으며 대답을 하려는 찰나.
어?
강현의 입술이 멈췄다. 눈동자는 마치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흔들리고 있었으니. 이유는 간단했다.
“유하?”
객석의 중앙에 손유하가 앉아 있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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