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the Mu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66)
> 음악천재를 위하여 – 066화 >
프로듀서 폴에게는 장대한 꿈이 있었다. 바로 자신의 손으로 비틀즈, 롤링스톤즈, 퀸과 같은 위대한 밴드를 탄생시키는 것.
“미셸, 이 많은 곡들을 그 짧은 시간동안 완성했다고?”
폴은 수많은 악보를 보며 믿기지 않는다는 듯 혀를 내둘렀다. 오선위에는 음표가 빼곡히 그려져 있었는데 아직 결과물을 듣지는 못했지만 이게 과연 가능한 일인가 싶은 참이었다. 설마 미셸이 도와줬나 싶었지만 그럴 리는 없었다. 평소 그녀의 성정을 보자면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일이다.
“모차르트가 살아 돌아오기라도 했다는 거야?”
너스레 섞인 물음에 미셸이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폴은 허탈한 탄식이 터져 나오는 것을 애써 참아냈다. 구시가지에서 들었던 클래식은 정말 뛰어난 명곡이었다. 인생의 희로애락이 선율에 담겨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 그렇기에 어린 천재에게 작곡을 의뢰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클래식과 밴드 음악은 확연히 다른 부분이다. 분명 작곡의 기초를 배워나가는 중이라 들었는데, 머릿속에 상념이 가득 들어찰 즈음.
“1번부터 들려줄게.”
미셸이 익숙하게 신디사이저를 매만졌다.
그때였다.
탕―!
폴은 머릿속이 꿰뚫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첫 음절만 들었을 뿐인데도 머리가 얼얼하다. 작곡기기가 아무리 발달되었다고는 해도 아직 현실의 음색을 따라잡지 못한다는 것이 프로듀싱계의 지론이었다. 헌데 이 울림은 뭐란 말인가. 하물며.
‘이게 도대체.’
얼터너티브, 분명 여태껏 들어왔던 록 음악이 아니었다. 전혀 들어보지 못한 음악이 펼쳐지고 있지 않는가. 인위적인 음색이 전혀 거슬리지 않을 만큼 오선위의 음표는 아름다운 감동을 선사했다. 함께 온 신인 밴드는 이미 넋을 놓고 멜로디를 감상하고 있었다. 단 한
시도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귀가 여러 개였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 만큼 음이 다채로워 두 귀가 음을 따라가기 힘들 지경이지 않은가.
흔히 말해 작곡가는 틀을 만들고 작사가는 그 틀을 채운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곡에 생기를 불어넣는 게 바로 자신 같은 프로듀서가 할 역할이다. 그러나 작금의 곡은 그 음표만으로도 생생히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일곱 번째 곡까지 내리 완곡하고 나서야 폴은
참았던 숨을 토해냈다. 신인 밴드 아이리스 또한 마찬가지였다. 밴드로서 자신들만의 음악적 세계관이 확고한 저들마저도 황홀감에 취할 정도였으니 오죽할까.
“미셸, 이 친구 지금 어디 있나?”
폴이 다급하게 미셸을 바라봤다. 그는 이 순간 직감하고 있었다. 미국의 팝음악이 강세인 이때 다시금 밴드의 계보가 써내려질 것이리라는 것을.
*
“오빠아―!”
김포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손유하가 버선발로 뛰어왔다. 누가 보면 군대라도 기다린 고무신인 줄 알겠다. 어느새 지척까지 다가온 손유하가 요조숙녀처럼 인사를 하자 어머니가 귀엽게 바라보셨다. 유하를 특히나 귀여워하는 어머니셨다. 어째 이러다가 예정에도 없던
둘째가 탄생하는 것은 아닐런지.
“유하가 현이가 많이 보고 싶었나보구나?”
손유하가 부끄러운지 엷은 미소를 띠었다.
“참, 유하야. 이거 받아.”
때마침 샤르트르 구시가지에서 샀던 선물을 꺼냈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고마운 것도 많았고 왠지 모르게 이 정도는 해야 할 것 같아 준비한 것이었다. 여자 선물은 처음 사보는지라 한참 애를 먹었다. 결국 선택한 것은 푸른색 큐빅이 박힌 머리핀. 고르고 고른 것이라
마음에 들어야 할 텐데.
“정말 고마워, 오빠.”
다행이었다. 유하가 곧장 머리핀을 꽂는 것이 아니겠는가. 예전 같았으면 당장에라도 품에 껴 안겼을 손유하였다. 그런데 지금은 애써 참아내고 있는 모습이다. 입술을 꼭 다물며 눈물을 글썽거리는 게 그 방증이었지. 뭐랄까 조금 달라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손유하였
다.
“욘석들이 또 영화를 찍고 있구나.”
그때 할아버지와 왕회장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나타났다. 지글지글―!
진수성찬이 따로 없었다. 신선로와 명절에나 볼법한 육전까지. 가정부 아주머니가 두 팔을 걷어 부치고 준비한 것이 티가 났다. 외국에서 돌아올 때면 금의환향을 하는 것처럼 대접해주셔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번엔 아주머니의 선물까지
준비해 망정이지 안 그랬다면 숟가락을 들지도 못했을 거다. 북적거리는 이촌동 저택에는 삼촌 내외와 이모 내외까지 함께였는데 평소와는 판이하게 달랐지.
평소 같았으면 눈치 없게 자식자랑을 늘어놓았을 이모는 딸꾹질까지 하고 있었고 큰삼촌은 자칫하면 체라도 할 것같이 안색이 안 좋았으니. 이유는 간단했다. 왕회장도 함께 자리를 지키고 있었기 때문. 아무리 어른들끼리 막역한 사이라고 할지라도 왕회장이 어렵기
는 마찬가지일 터.
“현아, 할애비와 한 약속을 잊지는 않았겠지?”
일순 왕회장이 나를 바라보며 친근하게 말하자 이모와 큰삼촌의 눈이 커지는 게 느껴졌다. 할아버지는 묘한 시선으로 나와 왕회장을 번갈아 바라봤다. 아무래도 뒷말을 엄청 궁금해 하시는 눈치.
“현이 네가 보기엔 얼마나 걸릴 것 같으냐?”
동주를 화학 산업의 7위안으로 입성시키라는 약속. 수수께끼와 같은 질문이 이어질수록 식탁에 알 수 없는 긴장감이 내리깔렸다. 물론 할아버지는 이 상황을 즐기기라도 하듯 조용히 관망하고 계셨다. 난 고민을 하다 손가락 다섯 개를 펼쳐보였다. 그 모습이 어린 아이
의 장난처럼도 보였지.
“5년? 생각보다 짧구나?”
아니요, 할아버지.
난 은근슬쩍 맞은편에 앉은 아버지를 바라봤다. 아버지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셨는데 아무리 왕회장을 자주 마주했다 해도 적응이 안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으신 모양이다. 마음 같아서는 이 자리에서 아버지께 말해 드리고 싶었다. 앞으로 오 개월 뒤, 그라이핀이 개발
시험에 성공한다는 사실을.
* * *
한 달 남짓 교복을 안 입었을 뿐인데 영 어색하고 껄끄럽다. 월반을 할까도 알아봤지만 의무교육인 중학교에 그런 제도가 마련되어 있을 리 없었다. 그나저나 아직도 손이 근질근질한 것이 좀 더 곡을 쓰고 싶다. 아이리스의 곡을 작곡해주며 깨달은 바가 있었다. 내가
바이올린을 넘어서 음악 자체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그러고 보니.
‘제대로 대접 한 번을 못했네.’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미셸에게 식사대접을 하고 싶었지만 비행기 시간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 작곡을 가르쳐준 것은 물론 저작권 등록절차까지 나를 상세히 도와주지 않았던가. 아쉽지만 다음 기회를 생각하는 수밖에. 만약 프로듀서가 내가 작곡한 곡을 흡족해 한
다면 프랑스에 어차피 한 번 더 방문해야 했다.
그나저나.
‘왜 이렇게 분주해?’
차창 밖으로 보이는 제일중학교의 전경은 평소와 달랐다. 학생들이 하나같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지 않은가.
“현아, 오늘이 바로 축제날이야!”
짧은 단발머리의 반장은 내가 오늘 돌아왔다는 것을 알고는 뛸 듯이 기뻐했다. 것도 그럴 것이 내가 아니었다면 반장 본인이 꼼짝없이 축제무대에 올라야 했을 테니 십년감수한 셈이었다. 설 무대를 살펴보니 역시나 제일재단 산하의 중학교다웠다. 90년대였지만 대강
당의 설비가 웬만한 대학교를 넘어서지 않는가. 누가 보면 여기서 파티라도 열리는 줄 알겠다.
“현아 무슨 곡 연주할지 생각해둔 거라도 있어?”
“어?”
헌데 이걸 어쩐다, 작곡에 여념이 없어 축제에서 어떤 곡을 연주할지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다. 한 달 동안 무수한 일들이 많았었으니. 하지만 기대하며 눈을 빛내는 반장의 얼굴을 보니 도저히 준비하지 못했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이윽고 무대에 오르자 수많은 시선
이 나를 향했다. 교장선생님까지 목 좋은 자리를 차지해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뭘 연주해야 하나.
클래식을 아이들이 좋아할까 싶었다. 이름난 기업의 자제들이니 분명 사교적으로 클래식을 배울 테지만 축제와는 영 어울리지 않았으니. 더군다나 요즘 켰던 음악들은 하나같이 서정적인 선율을 지니고 있었기에. 한편 손에 쥔 음악실의 연습용 바이올린이 당장에라도
자신을 켜달라고 소리치는 것만 같았다.
그래,
“제가 연주할 곡은 아이리스입니다.”
밴드 아이리스에게 줬던 악보 중 그 첫 번째였다. 밴드의 음악을 다시 바이올린으로 편곡한 것이었지만 어렵지 않았지. 이미 골백번이고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던 영감이었으니. 학생들은 물론 음악 선생마저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이리스라는 클래식곡은 듣도 보
도 못했었기에. 경쾌한 선율의 시작일까, 서정적인 느낌의 울림일까. 좌중의 이목이 쏠린 가운데 난 활은 잠시 내려둔 채 손가락으로 현을 뜯기 시작했다.
스네어 드럼일까 마림바일까 바이올린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라기에는 믿기지 않은 고동소리가 천장에 닿았다. 헌데 그 손이 어찌나 빠른지 점점 격렬해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두근 두근 두근.
모두의 고동소리를 따라 심장이 춤출 때, 지잉―!
활이 강하게 현을 가로질렀다. 바이올린에서 울려 퍼지는 아이리스의 첫 음절. 흡사 국악에서 대취타가 좌중의 이목을 사로잡는 것처럼 강렬한 인상이었다. 본래라면 기타와 베이스, 드럼까지 합쳐져야 할 곡이었지만 단음악기 하나로 그 모든 것을 표현해내고 있었다.
격렬하게 몰아치는 보잉의 끝에서 내가 미소 짓자 여기저기서 환성이 터져 나왔다. 청중들은 신기원을 맞이한 이들처럼 처음 듣는 음악에 두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
아버지의 눈 밑이 거무죽죽하다. 아무래도 요 며칠 계속되는 강행군에 힘이 드시는 게 당연했다. 마음 같아서는 고지가 머지않았다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어쩌겠는가. 책상에 엎드려 주무시는 아버지의 등에 담요를 덮어주는 것으로 죄송스런 마음을 대신했다. 아침 일
찍 할아버지, 그리고 어머니와 함께 김포 공항으로 향했다. 내가 외국으로 나가는 것은 아니었다. 설마하니 요즘 그 얼음울보가 달라진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을 줄이야.
“그 어린 아이가 유학을 간다고 하니 마음이 편치 않네요.”
어머니의 말처럼 내 마음도 편치 않았다. 하지만 재벌가의 자제, 그것도 후계자가 유학을 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어려서부터 제왕학을 배우고 MBA과정을 끝마친 뒤 실무에 들어서지 않는가. 더군다나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는 국내보다는 외국이 더
공부하기 편한 환경인 것은 맞았다. 지난 삶에서도 손유하는 어려서부터 유학행을 밟았었으니 언젠가 갈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그날이 당도할 줄이야.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그래, 현이 왔구나. 유하는 잠시 화장실에 갔단다. 현이 네가 온다니까 얼굴이라도 씻으려는 모양새야.”
먼저 김포 공항에 나와 있는 왕회장에게 공손히 인사를 드렸다. 옆에는 손일선 사장과 임혜라 이사장도 함께 서있었는데 이렇게 보니 제일그룹 전체 인사들이 모여 있는 격이 아닌가. 아침 댓바람부터 김포 공항에 경찰들이 많이 돌아다니는 것을 보면 그 긴장감을 알
수 있었다.
“오빠…”
그때 누군가 내 옷소매를 잡아당겼다. 언제 나타났는지 모를 손유하였다. 유하의 머리위에서 일전에 내가 사준 머리핀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어젯밤 많이 울었던 모양. 눈가가 퉁퉁 부은 것이 어째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나 괜찮아!”
애써 쾌활하게 미소 짓는 손유하였다. 평소 같았으면 눈물을 흘리며 가기 싫다고 떼를 썼을 텐데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다. 무언가 손유하의 마음을 건드린 것일지도. 경호원들은 물론 비서까지 대동한 유학길이었다. 그렇게 내 손을 한참이나 잡고 있던 유하가 탑승
시간이 되자 티켓팅을 위해 걸음을 옮겼다. 입술을 꾹 다물고 있던 유하의 뒷모습을 아쉽게 바라봤다. 일부러 내게 정을 떼려는 것처럼도 보였으니. 어쩌면 지금 이 모습이 내가 기억하던 지난 삶 손유하의 진짜 모습이었을지도 모르지.
그때였다.
“오빠아―!”
손유하가 일순 뒤돌아서 곧장 내게로 뛰어오는 것이 아니겠는가. 와락하며 내 품에 안기는데 얼굴은 이미 눈물범벅이었다. 난 그녀의 등을 천천히 다독여주었다. 어린나이에 외국에서 공부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외로운 일인지 알기에. 그 순간 유하가 고개를 들었는데
나와 시선이 마주쳤다. 퉁퉁 부은 눈가 사이로 닭똥 같은 눈물을 쏟아내며.
“흐끅, 나 방학 마다 꼭 돌아올게―!”
“그래, 유하야.”
“꼭 오빠 보러 올 거야, 허엉.”
눈물 섞인 발음으로 한 글자 한 글자 힘주어 말하지 않는가. 난 그런 손유하의 머리맡을 사랑스럽게 쓰다듬어주었다. 왕회장과 할아버지가 그 모습을 슬픔 섞인 미소를 지으며 바라봤다. 멀어지는 손유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훗날을 떠올렸다. 분명 저 작은 등이 훗날
제일그룹의 일인자로 우뚝 설 것이리라.
기대되었다, 곧 다가올 얼음여왕의 재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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