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CEREED RAW novel - Chapter 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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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것(Fin)
“내가 갈 때가 되었다.”
“다른 차원으로요?”
존의 물음에 카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어느 날이야. 날이 무척이나 좋은 날이었지. 두 아내도 죽고, 트레젠도 죽었지. 그런데도 날은 무척 좋았어. 순간 깨달았다. 내가 오래 머물렀고, 충분히 머물렀다는 걸. 가족과 함께 행복한 삶을 살았다. 후회는 없었지. 그래서 은퇴를 결심했다. 은퇴를 하고 여행을 다녔지. 마지막 여행이었어. 내가 나고 자란 곳을 둘러보고, 내가- 지나갔던 곳을 되짚어 돌아다녔지. 내가 일군 모든 걸 내 눈으로 보고 만지고 걸었다.”
카크의 눈은 과거를 떠올리고 있었다.
200년에 가까운 삶을 살았다.
마나석만 빛나며 소리 없이 두둥실 떠 있다. 분지는 고요함으로 가득했다.
카크의 말은 계속 들려왔다.
“그렇게 하다 보니 20년이 넘게 흘렀어. 또 생각했지. 내가 많은 곳을 다녔구나. 마계도 다녀왔다. 덕분에 마계에서는 난리가 났지. 마왕과도 만나서 담소도 나누고 휘베리오와도 오랜만에 만나 화포를 풀었다. 마계에서 10년을 지내다 다시 중간계로 돌아왔다. 역시 시간은 별로 흐르지 않았더라고. 그런데 날 이끄는 게 느껴지는 거야. 난 그곳으로 갔지. 날 이끄는 게 뭔지 궁금했거든. 이끌림은 점점 강해졌고, 갑자기 눈보라가 찾아왔지. 눈보라가 막 시작될 때, 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여기서 계속 지냈지. 날 이끈 이유가 뭐지. 계속 고찰했다. 그때 지옥의 존재가 내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말하더군. 이 마나석은 나의 뜻에 의해 생성된 거라고. 내 뜻이 뭐지 하고 돌이켜봤다. 답은 금방 나왔어. 충분히 머물렀다는 생각. 그건 다시 말해 떠나야 한다는 뜻의 반증이지. 내 뜻이 서는 순간 질서가 바뀌었다. 30년에 가깝게 자연이 마나석을 만들어 이런 사태를 만들었다. 내가 떠나면 대륙의 정세는 이제 예전으로 돌아간다. 그 평화가 아닌, 대륙 전쟁 이전의 그 모습으로. 그런 삶으로 돌아간다.”
긴 이야기가 끝났다.
벨하가 물었다.
“그럼 마나석은 무슨 연관성으로 생긴 겁니까?”
“간단하다. 다른 차원으로 보내줄 열쇠지.”
“차원은……. 혼자서도 충분히 열 수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 그런데 중요한 건, 내가 가본 차원만 가능하단 거야. 내가 가본 곳이라고는 마계가 전부거든.”
“그럼 어디로 가는 차원입니까?”
디워드는 마법사답게 흥분해 있었다.
뜻이 생긴다고 자연이 거기에 응답해서 차원의 문을 여는 열쇠를 만들어주다니? 그것도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나도 열기 전까지는 모른다.”
모두 침묵했다.
그때 케이프가 말문을 열었다.
“이거 참 우린 인연이가 봅니다. 그렇지 않나요?”
다들 케이프를 쳐다봤다.
“처음…… 형님들을 만났을 때가 생각나는군요. 서로 다른 곳에 있다가 이끌리듯 카크님과 만났습니다. 전혀 뜻하지 않은 인연으로 서로 만났지요. 하하핫. 지금 보면 참 신기합니다. 그런데 100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 했고……. 마지막 시간까지 함께하고자 모였네요? 말도 안했는데 말이죠.”
케이프의 마지막 말은 작게 들렸다.
“그렇구나. 마지막이야…….”
장두백의 중얼거림은 모두의 마음에 깊게 남았다.
카크는 모두를 바라보고 웃었다.
“카크님.”
“뭐지?”
존이 카크를 쳐다본다.
“그건 일인용인가요? 같이 갈 수 없을까요?”
모두 카크를 쳐다봤다. 장두백도 마찬가지였다.
“같이 가고 싶으냐?”
“물론이죠.”
“가긴……. 난 다른 차원으로 간다.”
“허허, 그럼 당연히 우리도 가야지요. 그런 모험. 죽기 전에 해봐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럼 남은 아이들은?”
“그거야 자신들의 운명이죠.”
존은 태평했다.
그의 말이 맞다. 그러나 카크는 고개를 저었다.
“차원을 넘어본 적이 없으면 이곳은 지나갈 수 없다.”
“그럼 여기로 지나가는 경험하면 안 되나요?”
“말 그대로다. 지나갈 수 없다.”
“정말요? 그럼 지금 들어가봐도 되나요?”
존은 믿지 못하겠는지 마나석 앞으로 다가갔다. 응축된 마나가 존을 밀어낸다. 존이 밀리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사지백해로 퍼져 있는 마나를 모아서 마나석의 힘에 대항했다. 그러나 종과부적이다. 결국 존은 땀을 뻘뻘 흘리고 뒤로 밀려나고 말았다.
“헥헥! 이거 쉽지 않네요?”
“흐음.”
가만히 있던 장두백이 마나석에 다가갔다. 그는 쉽게 접근했다.
“어르신은 한 번 차원을 이동한 적이 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이건 왜 이런지 아느냐?”
“오래 머물렀다는 제 의지가 담긴 것이라…, 저를 기준으로 생성됐을 겁니다. 저도 마계로 차원이동을 한 적이 있으니까요.”
“흐음, 그럼 그렇겠구나….”
그때였다. 강력한 마나가 폭풍처럼 일었다.
무인들과는 다른 성질의 마나. 보다 근본에 가까운 마나.
디워드가 나선 것이다.
9클래스를 엿본 디워드는 존 보다 마나석에 가까이 접근했으나 그 거리는 5센티도 되지 않았다. 디워드는 괜히 힘만 뺐다고 생각했는지 입을 다물었다.
대륙 제일 마법사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너희는 남아야겠구나.”
“네. 남기 싫어도 남아야 하네요.”
존의 머릿속에는 다양한 방법이 떠올랐다. 카크에게 부탁해 마계로 차원이동을 해서 다시 여기로 돌아오면 가능하지 않을까? 이게 가장 가능성 있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까지는 하고 싶지 않았다. 주군과 함께 있고 싶었지만, 주군이 가는 길은 홀로 가야 하는 길이다. 즐거움과 흥분을 목적으로 감히 따라갈 순 없었다.
“어르신은 어찌하시겠습니까?”
카크는 그렇게 말하곤 마나석에 손을 가져갔다.
마나석이 요동친다.
진동과 함께 마나가 급속도로 응축되기 시작한다.
마나석에서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왔다. 거대한 마나가 공동 내부에서 폭발하듯 사방으로 쏟아졌다.
눈부신 빛이 가시고 시커먼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차원의 틈이다. 공간이 왜곡되고 뒤틀렸다. 빛이 곡선을 이루고 스며들고, 퍼지고, 점이 된다. 이런 변화가 무쌍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같은 시각. 대륙의 눈보라가 순식간에 그쳤다.
하늘에서 원을 그리며 돌던 와이번도 각자의 둥지로 날아갔다.
처음 보는 황홀한 현상을 잠시 감상하던 장두백이 입을 열었다.
“나도 가야지. 내 고향으로 가고 싶구나.”
장두백도 미련이 없었다. 부인이 있지만 이미 말은 끝난 상태다.
“그때 까지 죽지 마십시오.”
“내가 죽겠느냐? 껄껄껄.”
“어디로 갈지 모릅니다. 이곳과 전혀 다른 환경일수도 있습니다. 마나가 희박해 지금 실력의 반도 사용하지 못하는 곳도 있습니다.”
그 경고에 장두백이 움찔했다.
그 모습을 본 카크가 웃었다. 존이 웃는 카크에게 말했다.
“카크님은 자신만만하네요?”
“당연하지 않느냐.”
존이 궁금한 듯 되물었다.
“왜요?”
카크가 차원의 문으로 들어가기 전에 부하들을 슥 훑었다.
디워드. 케이프. 벨하. 그리고 존.
그리운 얼굴들이다. 영원히 잊지 못할 얼굴들이다.
“내가 누군지 잊었느냐?”
“알죠! 우리의 주군이지 않습니까?”
존의 활기차고 당연한 대답에 카크가 소리내어 웃었다.
“녀석. 맞다. 난 너희들의 주군이다. 그리고 너희들의 동료지.”
카크는 부하들과 눈 하나하나 마주쳤다. 동료라는 말에 부하들의 어깨가 움찔했다.
“그리고 대제국의 대황제이기도 하다.
“하하하, 맞습니다!”
존이 통쾌하게 웃으며 좋아했다.
대륙의 무지한 인간들이 권력에 빠져 전쟁을 일으켰다. 대륙의 주인이 여기에 있는 것도 모르고 말이다.
이번엔 장두백을 쳐다봤다.
“어르신의 제자이기도 하지.”
장두백이 웃었다.
카크는 고개를 들어 분지의 하늘을 봤다. 청명한 하늘이 보인다. 끝도 보이지 않은 하늘. 이제 곧 저 하늘을 넘어서 다른 세상으로 간다.
“그리고 절대자…. 포스리드다. 그래서 두렵지 않구나.”
“그래. 그래서 나도 두렵지 않다.”
장두백이 신뢰 가득한 눈으로 카크를 쳐다봤다.
“언제 볼 수 있을까요?”
돌연 케이프가 물었다. 카크는 차원의 문으로 걸어갔다.
“정확히는 모른다. 중간에 너희가 보고 싶어서 이곳으로 올 수도 있지. 그러나 그때는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지 모른다. 1000년이 될 수도… 1년이 될 수도….”
“알겠습니다! 저희는 여행 다니며 지낼게요. 대륙은 넓고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이 많거든요.”
“맞습니다.”
무슨 일인지 벨하가 존의 말을 거들고 나섰다. 카크는 그 모습에 고개를 끄덕였다.
“건강해라.”
“도저히 쉴 틈이 없구나.”
낮게 웃은 장두백이 고개를 저었다.
“잘들 있어라. 어쩌면 난 너희들과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겠구나.”
“어르신!”
케이프가 유독 슬프게 말한다.
장두백은 천천히 걸어갔다. 그러다 순간 고개를 돌려 남은 네 명의 사내를 쳐다봤다.
“즐거웠다. 잊지 못할 삶을 살았다. 이젠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구나.”
장두백이 옆에 있는 카크에게 눈짓 했다. 카크가 고개를 끄덕이고 입을 열었다.
“…다음에 보자.”
둘은 차원의 문으로 들어갔다.
카크와 장두백이 대륙에서 사라졌고, 그의 마지막 말은 대륙에 남았다.
Fin.
============================ 작품 후기 ============================
이렇게 끝났습니다.
완결의 모습은 5개 정도로 구상했습니다. 그리고 고민을 했죠. 결과적으로 이게 최종 낙찰됐습니다.
근데 여기서 올리기 전에 수정을 했습니다.
예정대로라면, 부하들도 모두 차원을 이동하는 건데.. 카크와 장두백만 가도록 수정했습니다. 새로운 곳이니 새로운 곳에 가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야겠죠?ㅎㅎ
각설하고, 오랜시간 저와 함께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완결이라는게 믿기지 않네요.
처음 03년 6월.. 아무것도 없이 그냥 하얀 메모장에 썼던 글이 이렇게 10년 넘도록 펼쳐질지 꿈에도 몰랐습니다. 당연히 중간에 말도 안되는 연중 기간도 있긴 했지만요 ㅎㅎ
주저리주저리 후기를 남기고 싶지만, 앞으로 에피소드도 있고 하니 그때 또 뵙겠습니다~
그럼 조만간 각 차원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 몇 편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