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534
533 발작(2)
와아아아아!
열기가 고조되는 무림대회. 눈이 감당하지 못할 화려하고 강력한 대결이 펼쳐졌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명승부였다.
하나, 내막을 알면 꼭 그렇지는 않았다. 특히 소림사의 철나한(鐵羅漢) 오명은 죽을 맛이었다.
구파일방의 누구도 팔강에 오르지 못한 이상, 소림의 오명은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대외 활동을 하지 않아서 명성은 부족해도, 소림의 위명에 걸맞은 무승으로 대승반야선공을 구성까지 익힌 소림이 숨겨 놓은 기재였다.
그러나 어쩌랴.
이쪽은 짜고 치고 있었다.
팔강에서 만난 당연우와의 대결로 전력의 반이 날아가 버렸다. 실상, 내려갈 때의 모습을 봐선 전력을 다한 것 같지도 않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소림의 자존심을 지킨 줄 알았다.
대환단을 복용해서 전력을 되돌리긴 했지만, 사강에서 만난 천운권의 아들과 혈전을 펼쳤다. 서로 숨 돌릴 사이도 없이 절기를 쏟아 냈다.
소림의 칠십이종 절기 중 무려 열네 개를 익힌 오명으로서도 승패를 장담하기 힘들었다. 소림의 명성을 지키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싸웠다.
-소림사 오명 승!
승패가 결정되자 태진이 호흡을 안정시키더니, 후련한 미소를 지었다.
“졌습니다. 역시나 소림은 명불허전이네요.”
“시주께선 전력이 아니었지 않습니까?”
“무림대회에서 생사결을 펼칠 순 없잖아요. 저로선 최선을 다했습니다.”
“공정하지 않습니다.”
오명에겐 달갑지 않은 승리였다. 대환단의 약력을 완벽히 흡수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그런 상태에서 재차 내외력을 소모했고, 전신은 상처투성이였다. 조금이라도 방심했다면 위험한 대치가 수두룩했다.
반면 비무대를 오르는 신검마협은 내외력이 멀쩡했다. 그런 데다, 다음 상대는 소검후였다. 그 전 상대가 남궁세가의 대연화였던 걸 상기하면 승패는 자명했다.
‘이거 너무하는 것 아니냐고!’
불도를 수행하는 승려로서 욕을 하면 안 되겠지만, 오명은 쌍욕이 나오려는 걸 억지로 참았다.
저들끼리 적당히 합을 맞추며 대결을 벌인 반면, 자신은 온전한 신검마협을 상대해야 했다. 만신창이가 된 몸과 소모된 내력을 회복하기도 힘들었다.
그렇다고 항의를 하기에는 늦었다.
소림사라도 맹의 결정에 대놓고 반기를 들기는 어려웠다. 더욱이 무림대회는 화합을 목적으로 하였다. 소림사의 이름으로 항의하는 순간, 욕심에 눈이 멀었다는 소릴 듣게 된다. 무공을 익혔다고 해도 승려의 본분을 잊어선 안 되었다.
망할 놈의 공수래공수거였다.
‘치사하구나!’
오명은 최대한 회복에 힘썼으나, 신검마협과 소검후의 비무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반 시진 후 결승 무대가 열리는 이상 승산은 희박하다. 그렇다고, 하기도 전에 포기하진 않았다.
‘이건 안 쓰려고 했는데.’
살며시 숨겨 두었던 목탁을 경건하게 꺼냈다. 본사에서도 위명을 고려해서 쓰지 말라고 했었다.
하나, 저 간악한 마구니들 사이에서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는 필연적인 선택이었다.
‘네놈들 머릿속에 마구니가 있도다!’
후일 목탁혈불(木鐸血佛)로 불릴 오명은 각오를 새겼다. 그로서도 원치 않은 자들의 피로.
“뚝배기를…… 아미타불!”
해동에서 쓰는 말이 갑자기 튀어나왔다. 외지로 탁발 수행할 때가 좋았었나?
***
결승이 열리기 전 무림맹의 주요 인사들까지도 대회장으로 모였다. 각 문파의 장로급에 달하는 이들도 자리했다. 남의 집 잔치가 되었으나 마지막에 얼굴을 비치지 않으면 속 좁음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체면과 위신을 중시하는 정파의 무인으로선 불편하더라도 참석해야 했다.
또한, 무림대회의 결승이 끝나고 검절은 다음 대 맹주에게 자리를 내어 주기로 한 상태였다. 유력한 후보로 검제와 태양신군이 거론되었고, 결정은 맹주에게 주어졌다.
맹주의 거처, 무량원.
검절과 함께 대회장으로 가기 위해 검제는 무량원에 들렀다. 현 맹주와 차기 맹주가 나란히 대회장의 상석에 앉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세대의 교체가 이루어진다.
무림대회의 대미를 장식할 대결이 이제 막 시작되고 있지만, 소림승의 승리는 누구도 점치지 않았다. 신검마협의 우승이 거의 확정되다시피 했다. 소림은 그저 구파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는 선에서 끝이 날 것이다.
검제는 신검마협을 후원했고, 우승을 차지한다면 맹주로서의 안목을 만천하에 과시할 수 있었다. 누구도 의문을 제기할 수 없는 완벽한 맹주의 탄생이었다.
‘그러면 좋겠지만.’
손, 발, 손가락, 발가락까지 잘라 놓았다. 이러고 보면 누가 악당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지경이다.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으나.
현실이 그리 녹록지는 않으니.
푸념하던 검제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응?
무량원의 초입에 들어선 검제는 심부를 울리는 위화감을 느꼈다. 외곽에서는 알아채기 힘든 변화가 무량원을 감싼다.
겉으로는 무방비에 가까운 무량원이나, 살상진이 펼쳐져 있었다. 주변을 지키는 맹주의 호위대를 고려한다면 위화감의 정체를 확신하기 힘들었다.
‘습격?’
맹주가 죽는다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무림맹의 한복판에서 이토록 대범한 짓을 벌인다? 뒤를 고려하지 않는 사생결단의 전략이었다.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더니, 곤란할 수도 있었다.
검제는 서둘러 무량원의 중심으로 나아갔다.
찌릿!
검절의 가옥에 당도한 검제는 황급히 허리를 당긴 후 검을 휘둘렀다. 위화감의 정체를 확인하기도 전 기습적인 검격이 있었다.
콰아아앙!
쇳덩어리를 찢어발기는 굉음이 토해지며 허공으로 활화산 같은 폭발이 일었다.
부르르르!
맹렬히 떨리는 검신을 뒤로하고, 검제의 미간이 좁아졌다. 익숙하지만, 전혀 다른 기세였다.
속세와 연을 끊고 조용히 살고 싶었던 검절이 살의에 물든 채 검을 겨누었다.
“이런 식이었나?”
“죽인다.”
음성에 고저가 없는 검절은 조종당하는 괴뢰처럼 보였다. 아무래도 사공에 당한 것 같았다. 뜻밖이기는 했다. 다른 이도 아니고 백 년을 견뎌 낸 검절이 사공에 당하다니. 맹주의 무공은 둘째 치고, 내공에서만큼은 따를 자가 많지 않았다.
견고한 내공과 정신력을 소유한 검절이 갑자기 돌변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했기에 더더욱 믿어지지 않았다.
하나, 의심할 여지는 없었다.
맹주를 수호하는 스무 명의 친위대도 사공에 당했는지 살의에 동조했다. 친위대는 신분이 확실한 자들로, 오랫동안 맹주를 모셨다. 저들이 미쳐서 날뛸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나. 둘 중 하나라도 이상한데, 동시에 날뛰니 답이 안 나오는 구도였다.
“안타깝지만 당해 줄 순 없소.”
당혹스러운 현실이 분명하나, 검제는 오히려 차분해졌다. 위협적인 조합이긴 해도 사공의 영향으로 본신의 전력과는 어긋나 있었다. 검절의 막강한 내력이 실린 검강도, 의지가 분열된 이상 빈껍데기에 불과했다. 어쩌면 사공이 완벽하게 작용하고 있지 않을 수도 있었다.
꽈아앙!
검제는 제왕검형을 꺼내 들었다. 남궁세가의 검을 총망라한 정수를 제왕검형에 담았다. 무림대회가 끝나기 전에 제압하여 정신을 차리게 해야 했다. 누군지는 모르나 사공을 썼다면, 심검의 영역인 제왕검형으로 끊어 낼 수 있을 것이다.
하늘에 이른 검형, 찰나에 늘어난 심검이 쇄도하는 검절과 친위대를 향해 나아갔다.
그 녀석에게 모질게 당하면서도 각고의 노력을 하였다. 제왕검형은 그 자체로 완벽하지만, 또한 불완전했다. 완성된 순간 그 위의 단계를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만상천검.
제왕검형으로 검제가 발휘하는 극의였다. 삼라만상의 흐름을 검형에 담아 하늘의 검을 완성했다.
제왕검역.
공간을 검으로 장악하여 검절과 친위대를 가두었다. 빠져나가고자 한다면 제왕검형을 파훼해야 한다.
검제의 판단은 정확했다.
무량원의 변화된 흐름이 검절에게 영향을 주고 있었다. 이 흐름과 단절한다면 검절도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절혼제검.
혼탁한 사공을 끊어 내고, 정신을 통제한다. 검절이 의식을 차리는 즉시 무량원을 벗어나면 된다. 무량원의 기진을 처리하기보다는 그편이 수월했다.
쩌어엉, 쿠아아앙!
공간을 장악했던 제왕검형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검강이라도 충격을 주기는 어려울 텐데. 제왕검형을 뚫어내거나 와해하려면 동등한 영역에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했다.
“과연 대단하군.”
예측하지 못한 방향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검제도 긴장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방향을 떠나서 이처럼 가까운 거리에서도 알아채지 못했다. 평범해 보이는 외형과 달리 불길함이 엄습한다.
“네놈이구나.”
“예측하고 있었나?”
“어느 정도는.”
“본교의 숙적답군.”
기습을 가한 사내는 정체를 숨기지 않았다. 마신교의 삼성천, 광천군임을 밝혔다.
검제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정체를 밝혔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뜻이 되었다. 방금 그 한 수만으로도 절대의 경지임을 증명했다.
“맹주를 대체 어떻게 한 거지?”
“맹주가 되기 전부터라고 하면 이상하려나.”
“허튼소리! 맹주는 사교도가 아니다!”
“검절은 그저 본교의 의도대로 맹주가 되었을 뿐이다.”
검제는 아연실색했다. 맹주는 마신교에 이용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었다. 검절이 맹주가 된 시기는 족히 반백 년 전이다. 언제부터 이토록 깊이 스며들었는지 모르기에 소름이 끼쳤다. 하나, 아들에게 독을 퍼뜨린 것을 상기하면 믿지 않을 수 없었다.
“그토록 오랜 세월을 기다렸다면서 오늘과 같은 극단적인 수를 쓰다니, 인내의 한계에 봉착했나 보군.”
“본교의 팔다리를 잘라 놓고 할 소린가. 더는 네놈의 간교한 수작을 봐줄 수가 없었다.”
“본맹의 한복판에서 이 사달을 일으키고선 무사할 거라 보는가? 결국, 맹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심판을 하든, 처단을 하든, 그딴 건 상관없다.”
광천군의 광기에 검제는 근원적인 위화감을 느꼈다. 마신교의 목적이 무림맹의 장악이라고 생각했다. 하나, 지금과 같은 극단적인 수를 쓴 이상 무림맹의 장악은 어림도 없었다.
검제는 그제야 놈들의 목적을 깨달았다.
“이런, 허를 찔렸구나.”
“조무래기들이야 어찌 되든 문제 되지 않는다. 하지만 네놈은 다르다.”
광천군의 살의는 오롯이 검제를 향해 있었다. 무림대회를 개최할 때부터 세운 계획은 무너져 버린 지 오래였다. 이대로 검제의 의도대로 흘러가도록 내버려 둘 순 없었다.
본교의 모든 계획을 어긋나게 한 장본인은 반드시 제거해야 했다. 검제만 죽인다면 차후의 일은 무마할 수 있었다.
‘이놈 때문에 화살받이를 아주 제대로 하는군.’
검제로선 광천군만 의식할 수 없었다. 검절과 맹주 친위대의 정신이 오염된 상태였다. 저들이 합공을 펼친다면 혼자서는 막아 내기 어렵다.
지금이라도 오해라고 밝히면 믿어 줄까?
검제는 고개를 저었다.
이 모든 사태의 원흉은 내가 아니라고 한들, 작심한 사이비 교도에게는 통할 리 만무했다.
어쨌든 무진의 말대로 되었다.
하긴, 사지를 잘라 내고 약을 올렸으니, 독이 바짝 오른 마신교가 곱게 물러날 리가 없지.
“검제여, 영광으로 알도록.”
“나를 죽인다고 네놈들의 뜻대로 될 성싶은가!”
“죽음을 애도할 시간이 있다면 그렇겠지.”
“대체 무슨 짓을?”
“망자는 현세의 일을 알 필요가 없다.”
“아쉽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