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ee Server by Myself RAW novel - Chapter 8
나 혼자 프리서버 008화
008
드르륵.
그녀와의 이야기는 끝났다.
배도 채웠겠다, 더 이상 이곳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었다.
나는 늘어지게 트림까지 했다.
“꺼억~! 그럼 잘 가시오.”
“잠깐만요!”
“왜 그러는데? 나를 꼬셔 보려고?”
“제가 댁 같은 아저씨를 왜 꼬셔요?!”
잠시 여관에 들러 피를 씻어 냈고, 옷도 꽤나 거금을 들여 운디네 세탁을 했다. 지금 몰골이라면 이소희보다는 내가 나을 거다.
“내가 좀 반반하잖아.”
“하, 기가 막혀.”
“왜 불렀는데요?”
“정말 독하게 사냥을 하시던데, 그 이유가 뭐죠?”
“음…… 가족 때문이라고 해 둡시다.”
거침없던 내 인생에서 유일한 브레이크는 바로 가족이었다.
희귀병에 걸려 언제 죽을지 모르는 누나였지만 그마저 없었다면 살아갈 이유를 잃어버렸을지도 몰랐다.
이소희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녀는 반쯤 먹다 남은 소주를 잔에 채웠다.
“후유.”
소주의 알싸한 향이 식도를 타고 내려갔다.
여기에 국밥 말고는 사실 다른 안주는 필요 없었다.
“가족이라…….”
이소희는 마지막에 나경철이 남긴 말을 곱씹었다.
하는 짓을 보면 영락없는 건달인데, 그가 가족을 위해 살아간다니 정말 의외였다.
머릿속으로 어떻게 기사를 써 내려가야 할지 정리했다.
그러다가 문득 나경철이 자신을 전혀 여자 취급해 주지 않았던 데 대해 생각이 미쳤다.
“와, 그나저나 화딱지 나네. 내가 뭐, 어떻다고 그러지? 내 뒤로 남자가 얼마나 줄을 섰는데.”
끝까지 자신의 몰골은 생각하지 않는 이소희였다.
***
하룻밤을 새웠지만 피곤해서 쓰러질 정도는 아니었기에 잠시 병원에 들르기로 했다.
아마 지금쯤이면 병원비가 많이 밀렸을 거다.
희귀 혈액병인 누나는 며칠에 한 번씩 투석을 받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하다. 거기에 전신 심부전까지.
지금도 누나는 서서히 죽음을 향하여 달려가는 중이다.
하지만 나는 절대 인정하지 못했다.
하나밖에 남지 않은 가족이 그렇게 세상을 뜨게 할 수는 없었다. 고작 돈 때문에 사람 목숨을 놓아야 한다니.
사실, 누나의 병이 악화되기 전에 신약을 썼다면 이렇게까지 절망스럽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나는 입술을 잘근 깨물고는 환전소에 들렀다.
젠을 원화로 환전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건 일반인도 가능했다.
요즘에는 젠이 핫한 투자처로 떠오르고 있었다. 금과 같이 취급되었고 예전과는 달리 지금은 시세가 많이 안정되어 있었다.
환전소 직원이 인사를 했다.
나는 3년 전부터 헌터업계에서 일을 했었고 월급도 젠으로 받았다. 그래서 절차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환전 좀 부탁합시다.”
“얼마나 환전하려 하시나요?”
“30만 젠.”
“알겠습니다.”
환전소를 찾는 헌터들은 꽤 많았다. 30만 젠은 그리 많은 금액이 아니었다. 이쪽 세계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는 돈이라고 할까.
환전은 간단하게 끝났다.
세금 10%를 떼고 나머지는 모두 통장에 입금된다.
그 돈이 무려 2억 7천이었다.
나는 통장에 찍혀 있는 금액을 보며 현실감을 상실했다.
“뭐냐, 이 액수는.”
말이 2억 7천이지 이걸 모으려면 얼마나 걸릴지 알 수가 없다. 그냥 숨만 쉬면서 대충 먹고 살면서 저축하면 10년 정도 걸릴까.
그렇다고 어제 번 것을 모두 환전했느냐면 그건 또 아니었다. 내 수중에는 20만 젠이 있었다. 이건 장비를 살 돈이었다.
검은 맞추었으니 이제 방어구와 액세서리를 맞춰야 한다. 현실 세계에서나 20만 젠이 큰돈이지 필드에서는 하루만에 사라질 소액이었다.
잠시 꽃집에 들러 카라를 한 다발 샀다.
누나는 흰 카라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향이 좋다나 뭐라나.
지금까지 꽃 따위는 사 본 적이 없었다. 오늘은 헌터가 된 기념이니 빵집에서 케이크도 하나 샀다.
케이크를 포장하는 동안 앞으로의 일을 잠시 생각해 봤다.
“원무과에 들러 수납하고 나서 누나를 만난 후 사표를 내야겠다.”
이제 곧 있으면 출근할 시간이다.
아프다는 핑계로 며칠 쉬었으니 오늘은 출근을 해야 했다. 그리고 사표를 낸다.
그리고 조용히 길드를 나온다…… 라는 선택지는 내게 어울리지 않았다. 고창수 그 새끼만큼은 손을 봐야겠다.
“F급 헌터라고 재고 다녔는데 오늘도 그럴 수 있을지 두고 보자.”
한국대학교 병원.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희귀병 TN 바이러스를 치료할 수 있는 곳이다.
물론 그 치료를 한다는 수준이 생명을 연장시키는 것뿐이었지만, 나는 그것만으로도 감사했다.
누나를 종종 보러 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잘 되질 않는다.
고통에 신음하며 죽어가는 누나를 보고 있노라면 내 삶에 대해서도 심각한 의문을 품게 된다.
내가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힘일진대, 그런 가족이 사그라져 간다면 나 역시도 침몰하게 될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후유.”
병원 앞에서 나는 숨을 몰아쉬었다.
오늘도 누나는 고통에 겨운 얼굴을 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내가 올 때마다 그렇지 않은 척 애쓰는 것 같았지만 그게 쉽지 않다는 걸 잘 안다.
주치의는 TN 바이러스는 환자도 힘들게 하지만 그걸 곁에서 견디고 있는 가족이 더 힘들다고 항상 말해 왔었다.
누나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만 찾아오라고 못을 박았고 나는 그 말에 따라 정해진 날에만 찾아갔다. 누나의 말을 핑계 삼아서 드문드문 찾아가는 것이 현실이었다.
우선 원무과부터 들렀다.
“나은수 환자 보호자분?”
“아, 예.”
“지금까지의 병원비 1억 2천 4백만 원이 미납되었고, 3일 안에 수납이 안 되면 더 이상의 치료는 힘들어요.”
“알고 있습니다.”
나는 굳은 얼굴로 카드를 내밀었다.
이미 예전부터 들었던 이야기다.
병원비를 대기 위해 몬스터 부산물을 처리했었다. 다른 방법으로는 도저히 유지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병원비를 대기가 힘들었다. 워낙에 미납이 잦아서 원무과에서는 내가 요주의 인물 1호였다.
“일시불로 결재할까요?”
“체크카드입니다만.”
간호사는 의아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병원비가 밀린 게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다.
이미 누나는 쫓겨나도 진즉에 쫓겨났어야 했는데, 내가 병원장에게 쳐들어가서 반쯤 협박을 하고 빌어서 겨우 기한을 연장했었다. 그 때문에 유치장에 들락거리기도 했었다.
나는 한국대학교 병원 내에서는 유명인사였다. 성질 더럽기로는 소문난 것은 물론이고 병원비 문제로 매일 난리를 쳐 댔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쿨하게 병원비를 결제하니 신기하기도 할 것이다.
“결재 완료했습니다.”
“앞으로 병원비 밀릴 일은 없을 테니까 그런 눈으로 보지 마세요.”
“험험.”
“헌터로 각성했거든.”
“정말이죠?! 축하드려요!”
원무과 직원들이 눈을 반짝이며 인사를 건넨다.
그들은 최소한 이제 돈 밀릴 일은 없겠거니 생각하는 것 같았다. 물론 그럴 것이다. 헌터로 각성하기만 하면 억대 연봉은 보장이 되어 있었으니까.
삑! 삑!
바이털 체크기 소리가 간헐적으로 이어진다.
누나는 호흡기에 의지한 채로 힘겨운 생명을 이어 가고 있다.
예전보다 더욱 몸이 안 좋아진 느낌이다. 한눈에 보아도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하아.”
나는 차마 병실로 들어가지 못하고 서성거렸다.
내가 들어가면 누나는 고통을 억지로 참으며 웃었고 그런 모습을 보는 것은 나로서도 힘든 일이었다.
그래도 누나 때문에 나는 살아갈 힘을 얻는다. 자주 찾아오지 못하는 못난 동생이었지만 말이다.
현실을 애써 외면하기보다는 이제 부딪혀 나가야 할 것이다. 돈 걱정은 덜었으니 신약이 나왔다면 적극적으로 치료에 임할 작정이었다.
헌터가 되었다고 말하면 누나도 기뻐하지 않을까.
드르륵!
“마이 시스터! 잘 있었어?”
“경철아.”
누나는 호흡기를 떼어 냈다.
숨을 쉬는 것이 매우 불편해 보였다. 하지만 억지로 호흡기를 착용하게 하지는 않았다. 누나는 그걸 매우 싫어했다.
“아이고, 우리 누님 표정이 더 좋아졌네.”
누나는 힘겹게 웃었다.
카라 한 다발을 건넸다. 케이크도 주었는데 전혀 웃지 않았다.
“…….”
나는 무슨 일이 있었음을 직감했다.
“대체 무슨 일이야?”
“그동안 고생 많았어.”
“아니, 오늘 뭘 잘못 처먹었길래 지지리 궁상이야?”
누나는 내 손을 잡았다.
힘겨운 표정이었으나 그 눈빛에서 무언가에 대한 여망이 보이고 있었다. 나는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나는 누나가 품고 있는 여망이 죽음에 관련된 것이라고 직감했다.
“네가 나 때문에 연애도 결혼도 포기한 것 알아. 지금까지 든 병원비만 해도 집 한 채는 샀겠지. 얼마나 짐이 무거웠을까…….”
누나는 희미하게 웃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개소리일까 싶었다.
“좋은 말로 할 때 개 같은 소리 그만하지 그래? 어디서 뒈진다고 지랄이야? 나 이제 돈 많이 벌어. 헌터가 됐다고! 5억 정도는 하루 만에 번다니까?”
누나는 희디흰 손으로 내 얼굴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마치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의 얼굴이라고 할까.
“누나 쉬고 싶어.”
“웃기지 마! 지금까지 버텼으면 끝까지 버텨! 왜 갑자기 그따위로 말하는 건데? 그렇게 말을 하면 내가 기뻐할 줄 알았냐?”
쾅!
나는 벽 한쪽을 주먹으로 쳤다.
벽에 주먹 자국이 움푹 파였다. 이것으로 누나도 내가 헌터가 되었음을 실감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 말도 없었다.
갑자기 주치의의 얼굴이 떠올랐다.
분명히 주치의에게 어떤 말을 들었기에 누나가 이리 반응하는 것이리라.
“이 얍삽한 새끼! 쥐새끼처럼 생겨서는,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어!”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나는 눈물을 흘리는 누나를 뒤로한 채로 주치의를 찾아가기로 했다.
두 눈으로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아마 내 눈깔은 반쯤 뒤집혔을 것이다.
건달 짓을 그만두고 철저한 사회적 약자로 살아가면서 어느 정도는 불같은 성질을 눌렀었다. 세상에 순응하기 위해서는 그럴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헌터로 각성하였고 잠재력은 무려 SSS급 이상이었다. 굳이 누가 떠들지 않아도 내 스스로 세계 최정상의 자리에 설 수 있다고 자부하였고, 이제는 ‘을’이 아니어도 되었다.
예전에는 돈 때문에라도 의사에게 설설 기었고, 주치의가 고까운 소리를 할 때도 그냥 벌벌거리기 일쑤였다. 병원장에게나 생떼를 부렸지, 누나의 목숨을 좌지우지하는 주치의에게는 한 수 접어주는 것도 있었고 말이다. 개 같이 굴면 돈을 좀 더 쓰더라도 갈아 치우면 그만이다.
나에게는 돈이 있었고 병원에서는 나와 누나를 내칠 명분이 없었다.
쾅!
나는 진료실로 쳐들어갔다.
환자를 진료하고 있던 내분비내과 교수 황성구는 황당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환자를 병원에서 내보내는 것은 담당 교수의 주요 권한이었고 진료비 수납이 되지 않으면 정정당당하게 우리를 내칠 수 있었던 것이다.
병원장까지 찾아가서 난리를 쳤어도 황성구에게만큼은 예의를 다하였다. 환자에게 의사는 신적인 존재였으니까.
그런 내가 쳐들어와서 난리를 칠 기미를 보이자 미쳤다고 여기는 것이다.
원래 나는 철저히 을이었던 몸인지라 황성구는 습관적으로 고압적인 자세를 취했다.
“지금 뭐 하는 짓입니까? 환자 진료하는 거 안 보이세요?”
“그래 이 새끼야! 네놈 덕분에 눈깔이 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