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958)
923화 re – Start (3)
나는 달린다.
새까만 암흑 속에 그어진 흰색 줄을 따라서 달리고 또 달리고 또 달리고 또 달린다.
그리고.
“!!!”
매일, 똑같은 꿈.
내 다리는 현재.
‘제기랄.’
***
2018년 7월 29일. 맨체스터 WA 15 0NJ, 잉글랜드. 헤일, 알트링엄. 16 힐 탑.
띵-동.
초인종이 울리고, 곁에 있던 아영이가 손을 뻗어 소파 테이블 위의 화면을 만졌다. 그러자 이내 대문 앞에 멈춰 선 택시 한 대가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택시 안에 탑승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았고, 그래서 문을 대문을 열어 차를 들어오게 했다.
자리에서 일어선 아영이가 내 휠체어를 끌어, 함께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현관으로 나섰다.
끼익-
택시가 멈춰 서고, 잠시 뒤 문이 열리면서 오랜만에 보는 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잔돈은 가지시죠.”
“고맙습니다.”
제법 후한 팁이었는지, 택시 기사의 표정이 환하다.
탁-
문을 닫고 돌아선 이가 나를 확인하더니, 잠시 슬픈 표정을 지어 보인다. 1초도 되지 않는 시간에 사라진 감정이긴 했지만, 내겐 분명히 보였다.
“…….”
“……Lange nicht geshen.”
오랜만이란 독일어를 건네 온 사람은 다름 아닌, 한스-빌헬름 뮐러-볼파르트 박사님이다.
모스크바에서 맨체스터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레이몬드 드보로(Raymond Devereux)라는 남자로부터 볼파르트 클리닉에서도 나를 도울 거란 이야기를 전달받았다.
무척 뜻밖의 일이라서 많이 놀랐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박사님이 직접 요청을 해 오셨다고 했다.
“영어가 편하겠군. 영어를 쓰도록 하지.”
“네. 안으로 들어오세요.”
“……그러지.”
“제 꼴이 참 멋지죠?”
“…….”
힘겹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난 아영이의 도움을 받아 다시 안으로 들어섰다. 본래 집 내부에는 계단이 조금 있었는데, 지금은 한쪽에 휠체어를 위한 장치가 만들어진 상태다.
한국 지하철에서 볼 수 있는 것과 비슷한 기구다.
위이잉-
퉁-
겨우 계단 세 칸을 오르는 것뿐인데, 남들보다 몇 배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겉으로 내색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게 나를 무척 슬프게 한다.
“통증은 괜찮나?”
“네. 지금은 시간이 많이 지났으니까요.”
“그렇군. 수술이 잘 되었다는 증거야.”
“닥터 케네디도 그런 말을 했죠.”
“아, 이번에 고용된 사람 말인가?”
“와-우. 전부 아시는군요?”
“기본적인 부분은 전달받았네. 어쨌든 나도 알고 있어야 하는 사항이니까 말일세.”
“그렇군요.”
“음.”
맨체스터 시티는 나를 위해 네 명의 특별 스태프를 1년 동안 고용해 둔 상태다.
볼파르트 클리닉이 나를 도울 거라는 사실을 알린 레이몬드 드보로는 특별 퍼스널(Special Personal)로, 나와 클럽 사이의 연락책을 맡는 한편 일정을 확인해 주고 있다.
그리고 금방 말한 오스틴 케네디(Austin Kennedy)는 인근의 유명한 스포츠 전문의 중에 하나로, 집에 머물며 쿠가트 박사님의 클리닉과 연계해 치료와 재활을 도울 예정이다.
외에도 아바짓 프라사드(Abhijit Prasad)는 피지오로서 마찬가지로 집에 상주하며, 하루 세 번 전신 마사지와 다리에 부담을 주지 않는 선에서의 간단한 운동을 알려 주는 사람이다.
마지막으론 엘시 로즈(Elsie Rose)라는 여성인데, 그녀는 스완지 대학을 졸업한 웨일즈 출신으로 나의 치료와 모든 재활 과정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스포츠 과학자다.
모두 각자의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이들인데, 시티는 이들을 고용하기 위해 많은 자금을 투자했다.
“잠은 좀 자는가?”
“네.”
“…….”
나의 대답을 들은 볼파르트 박사님의 시선은 곁에 있는 아내에게로 향했다. 그녀가 솔직히 대답할 것을 알고 있었기에, 난 애써 두 사람을 외면했다.
잠을 잘 자느냐고?
아니. 그렇지 않다.
그런데 어째서 거짓말을 했느냐면, 이것이 곧 밝혀질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혹시 꿈을 꾸나?”
“…….”
이번엔 거짓말을 하지 않을 생각이다.
“매일같이요.”
“특별한 꿈인가?”
“그냥 달리고 있어요.”
“자네가?”
“네.”
“……그냥 달리기만 하는 건가?”
“네.”
“외의 특별한 건?”
“끝이 늘 똑같다는 거죠.”
“…….”
다시 한번 볼파르트 박사님의 시선이 아영이에게로 향하고, 그녀는 우리 두 사람만을 남겨 두곤 위층으로 올라갔다.
현재 우리 집에는 평소에 머물던 사람들 외에도 몇 명이 더 있었는데, 엄마와 장모님/처제/아바짓/집안일을 위해 추가로 고용된 메이드가 머물고 있다.
그래도 방이 많이 남아서, 지금처럼 이렇게 따로 상담실을 꾸릴 수도 있었다.
딸깍-
아영이가 나가고 잠시 뒤, 볼파르트 박사님이 오래된 것으로 보이는 녹음기를 테이블 위에 두었다. 요즘 세상에 스마트폰이 아닌 녹음기로 대화를 담는 건 드문 일이다.
“난 늙었네. 옛날 사람이지.”
“하하. 네. 자주 깜빡한다니까요. 워낙 젊게 보이셔서.”
“……그래서?”
“잊지 않으셨군요.”
“꿈의 끝은 어떻게 똑같지?”
“…….”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던 나는 박사님의 시선을 회피하며 숨을 골랐다. 그리고 그런 뒤에, 천천히 꿈속에서 벌어지는 일을 상세하게 묘사했다.
꿈은 보통 잠에서 깨고 나면 잊히지만, 이번의 경우에는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벌써 보름째, 같은 꿈이기 때문이다.
그 처음은 수술에 들어섰을 때였다.
“꿈에서 깨면, 제 다리를 보게 돼요. 온몸이 땀에 젖어 있죠. 어떨 때는 비명도 질렀어요. 그래서 지금 안방이 아닌 다른 곳에서 잠을 자죠. 그게 가장 힘든 부분인 것 같아요.”
“……그렇군.”
“네. 외에는 다 괜찮아요.”
악몽을 꾼다는 것을 빼면, 놀랍게도 나는 아무렇지 않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 또 동료들과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나누거나 연락도 주고받는 중이다.
“펩하고는 어떻지?”
“한 번은 그가 집으로 찾아왔었죠. 얼마 전이었어요. 그냥 평범하게 저녁 식사를 했고요.”
펩 역시, 아무렇지 않게 나를 다했다.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러고 보니, 그게 유일한 대화였네요.”
이후로도 박사님이 질문을 던지고 내가 대답을 하는 시간이 얼마간 이어졌다. 고개를 끄덕이거나 침묵하던 박사님은 하나의 질문에 하나의 대답만을 들었다.
덕분에 대화의 주제가 휙휙 지나가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것도 특별히 나쁘지는 않았다.
“좋아.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
“에? 진짜요? 이게 끝이라고요?”
“그러하네.”
“…….”
“왜 그러나?”
심리 상담이라고 해서 더 그럴듯한 대화가 오갈 줄 알았다고 말한다면 실례인 걸까? 오늘 했던 것이라곤 일상에 대해 묻고 거기에 답하는 게 전부였다.
그렇게만 했는데도 2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어서 많이 놀랐지만, 이것이 심리 상담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내가 밀어 주지.”
“오, 감사해요.”
박사님이 직접 휠체어를 밀어 주신 덕에, 난 아영이를 아래로 부르지 않고도 밖으로 나설 수 있었다.
“그럼, 이대로 돌아가시나요?”
“아니. 잠깐 에티하드 캠퍼스에 들를 생각이네.”
“하하. 펩과 싸우는 건 아니시겠죠?”
“글쎄.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지.”
“진짜요?!?!”
깜짝 놀라서 내가 고개를 뒤로 돌리자, 나를 내려다보던 볼파르트 박사님이 뭐가 그리 웃긴 지 폭소를 터뜨리셨다.
어쩐지, 놀림을 당한 기분이 들었다.
“미리 약속됐던 부분일세.”
“네?”
“자네와의 상담이 끝나는 대로, 과르디올라와 쿠가트 박사에게 내용을 전달하기로 했지. 다만, 오늘은 조금 더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서 말이야.”
“그렇군요. 그래도 싸우지는 마세요.”
“명심하겠네.”
“택시를 불러 드릴게요.”
“고맙네.”
잠시 뒤 내렸던 위치에서 그대로 택시에 탑승한 박사님이 집을 떠나고, 배웅을 끝마치고 돌아선 내게 아영이가 무슨 대화를 주고받았는지를 물어보았다.
“그냥, 일상적인 거?”
“진짜?”
“응. 정말로 평범했어.”
“그렇구나.”
“…….”
수술을 끝마치고 마취에서 깨어나 눈을 떴을 때, 아내는 두 손을 모은 채 침대 옆에 앉아서 연신 울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자기야.”
“응?”
“고마워.”
“뭐가?”
“그냥, 전부 다. 당신이랑 만나서 결혼하게 돼서, 나는 참 다행이라고 생각해.”
“…….”
“왜 울어. 울지 마. 울라고 한 말 아니야.”
“응. 나도 알아. 미안해.”
“나 안아 주라.”
본래라면 내가 아영이를 끌어안아 주어야 했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는 관계로 손을 뻗어 포옹해 달라고 부탁했다.
곁에서 무릎을 꿇은 아내가 나를 끌어안아 왔고, 우리는 그렇게 한참을 포옹한 채로 서로의 호흡과 체온을 느꼈다. 오직 이 순간만이, 내가 유일하게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외의 시간은.
“…….”
현재 마음속에서 굴러다니고 있는 감정이 무엇인지, 나는 아직 알지 못하고 있다.
***
[커뮤니티 실드에서 리버풀을 2:0으로 제압한 맨체스터 시티. – BBC(U.K)]? 양 팀 모두 월드컵을 치른 주요 선수들이 결정한 가운데, 맨체스터 시티가 세르히오 아궤로와 베르나르두 실바의 활약 속에 리버풀을 2:0으로 꺾고 커뮤니티 실드를 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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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다온의 공백을 주앙 칸셀루로 채운 이유를 밝힌 펩 과르디올라. – 디애슬레틱(U,K)]? 펩 과르디올라, “칸셀루는 지난여름 동안 정말 열심히 했다. 그는 오른발잡이로서 왼쪽 풀백 위치에서 뛰었을 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명확히 이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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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생들의 활약 속에 커뮤니티 실드에서 승리한 맨체스터 시티 ? 맨체스터 이브닝(U.K)]? 오늘 시티의 팬들은 새롭게 팀에 합류한 선수들의 활약에 기뻐했을 것이다. 아직 호흡이 조금 맞지 않는 모습이 있긴 했지만, 선발로 출전한 리야드 마레즈와 교체로 투입된 올루프 뫼르크 모두 인상적인 데뷔전을 치렀다.
***
2018년 8월 6일. 08023 바르셀로나, 스페인. 알폰소 코민 프라자, 5. 퀴론살루드 바르셀로나 병원(Hospital Quironsalud Barcelona. Placa d’Alfonso Comin, 5, 08023 Barcelona, Spain).
총 두 차례의 심리 상담을 끝마친 이튿날, 나는 사람들과 함께 라몬 쿠가트 박사님이 있는 퀴론살루드를 찾았다.
“평범한 대화였다고?”
“네. 그냥 일상적인 내용이 전부였어요.”
“……잘하고 있는 것 같군.”
“네? 지금 뭐라고 하셨죠?”
“아니. 아무것도 아닐세. 그것은 한스의 영역이니, 내가 간섭할 것은 아닌 것 같군. 일단 여기에 누워 보게나.”
“네.”
한 달에 두 번, 나는 정해진 스케줄에 맞춰 퀴론살루드에 머물며 검사와 치료를 진행해야 한다.
이는 발목에 끊어진 것들이 제대로 붙게 될 때까지 계속되며, 발목 안의 심은 고정물을 빼낸 후에는 한두 달에 한 번만 이곳에 오면 된다.
검사가 끝난 후, 엑스레이와 MRI를 살피던 쿠가트 박사님이 묘한 표정을 지어 보이셨다.
“흐음.”
“왜 그러시죠?”
“…….”
“!”
고개를 슬쩍 돌린 박사님의 시선에, 살짝 움찔하게 된 나는 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설마, 뭔가 잘못된 걸까?
다행히도 그건 아니었다.
“보통은 유합까지 20주 정도가 걸리지.”
“유합?”
“뼈, 인대, 근육이 붙는 것을 의미하네. 어쨌든 다 큰 성인이라면 뼈가 부러졌을 때 일반적으로 20주 정도의 시간이 필요해. 하지만 육체를 단련해 온 운동선수라면, 그것을 약 20% 정도 줄일 수 있지. 최대 40%도 가능해.”
“…….”
“모스크바의 병원에 도착해 자네의 상태를 살폈을 때, 나는 하늘이 도왔다고 생각했었네.”
심각한 수준의 골절이 왔을 때, 의사가 가장 싫어하는 상황은 조각난 뼈가 근육과 인대를 헤집어 놓는 것이었다.
하지만 피부 조직까지 뜯어지게 된 나는 뼛조각이 전부 피치 위에 뿌려졌고, 인대나 근육의 늘어짐이 최소화된 상태로 완전파열이 일어났다고 한다.
덕분에 수술 과정에서 섬유와 섬유를 잇는 것이 그나마 수월했고, 뼈의 손상 정도 역시도 덜했다.
어떠한 경우에는 뼈가 가루가 되다시피 하기도 하는데, 수많은 환자를 보아 온 쿠가트 박사님은 부상의 심각도와는 별개로 긍정적인 부분을 많이 찾을 수 있었다고 하셨다.
그런데 지금.
“나는 자네가 늘 괴물 같다고 생각했지.”
“네?”
“분명 피치 위에서 부상으로 이어졌어야 할 몇 가지 장면들이 있었어. 하지만 자넨 간단한 치료를 받고 아무렇지 않게 뛰어다니더군. 부모로부터 훌륭한 육체를 물려받았다고 생각했지. 그리고 지금, 그걸 또 확인하게 되는군.”
“?!”
엑스레이와 MRI 자료들을 한쪽 벽에 쫙 붙인 쿠가트 박사님이 예상보다 훨씬 더 빨리 회복이 이뤄지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10년 전만 해도 이런 부상은 회복까지 8~15개월이 걸렸네. 실제로 에두아르도도 9개월 만에 피치로 돌아왔지. 하지만 요즘 의료기술은 이것을 6~12개월로 단축했어. 물론 자네의 경우 6개월은 힘드네. 하지만, 생각보다 더 빨리 복귀할 수도 있겠어.”
“…….”
솔직히 자료를 봐 봤자, 나는 저것을 정확히 이해할 수는 없다. 그저 박사님이 레이저포인터로 가리키는 곳을 따라 눈알을 움직이며, 그런가 보다 하는 게 전부다.
회복이 기대 이상으로 순조롭다는 말을 듣게 된 나지만, 사실 그게 좋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중요한 건,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는 거다.
“잘못이라고?”
“네. 괜히 서둘러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요. 회복이 아니라, 완벽한 상태를 원하거든요. 물론 6개월 만에 피치로 돌아갈 수 있다면 무척 기쁘겠지만…….”
“…….”
집에서 머무는 동안, 오스틴과 아바짓에게 들었던 내용도 쿠가트 박사님이 말한 것과 비슷했다.
경험으로부터 배운 것들과 새롭게 탄생한 의료기기가 더해지게 되면서, 부상을 입은 부위를 수술하고 치료하는 수준이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졌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이 딱히 좋게 느껴지진 않았다.
서두르기보다, 완벽한 것이 좋다.
“자네의 뜻은 잘 알았네.”
“에?”
“너무 서둘지 않겠다고 약속하지.”
“아, 네. 감사합니다.”
“일단 밖의 안젤리나가 자네를 병실로 데려갈걸세. 모레까지는 입원하고, 사흘 뒤에는 다시 맨체스터로 돌아가도 좋네. 새로운 예소로도 바꿔 주겠네.”
예소(Yeso)는 깁스를 의미한다.
바이에른 뮌헨에서 뛸 때, 나는 깁스(Gips)가 독일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됐었다. 이는 석고를 뜻하는데, 그게 와전이 되면서 ‘기브스’라는 단어가 되었다.
콩글리쉬는 아니고 ‘코이치(Keutsch)’랄까?
이러니 꼭 일본인 이름 같다.
딸깍-
휠체어를 끌어 밖으로 나서자, 박사님이 말한 안젤리나라는 간호사가 내게 다가왔다.
“아내분은 먼저 병실에 가 계세요.”
“네. 많이 걸리나요?”
“바로 위층이에요. 제가 모셔 드릴게요.”
“그라시아스.”
복도를 지나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두 박사님의 성격 차이 말이다.
라몬 쿠가트 박사님도 얼마든지 볼파르트 클리닉과 같은 곳을 차릴 수 있지만, 대신 박사님은 메디컬 네트워크인 퀴론살루드에 소속되는 것을 선택했다.
경영이나 운영에 신경을 쓸 시간에 한 명이라도 더 많은 환자를 수술하고, 조금이라도 더 자신의 기술을 발전시키는 데 투자하기 위해서다.
볼파르트 박사님이 약간 엘리트 느낌이라면, 쿠가트 박사님은 학구파라고나 할까?
이것도 나름대로 재미있는 부분이다.
띵-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안에 사람들이 탑승해 있는 것을 본 나는 쓰고 있던 모자를 푹 눌러쓰고 마스크의 위치를 조절했다. 괜한 소란은 되도록 피하고 싶다.
씻는 것마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지금, 나는 아영이의 수고를 덜기 위해 머리를 빡빡 민 상태다.
4간의 군사훈련을 받았을 때보다 훨씬 더 짧게 민 머리를 보고, 우리는 한참 동안 웃음을 터뜨렸었다.
‘6개월이라.’
병실로 향하는 짧은 이동길, 나는 쿠가트 박사님과의 대화를 떠올리고 있었다. 절대 반년 만에 회복할 수는 없을 거라곤 했지만, 예상보다 이를 거라는 건 확신하시는 듯했다.
정확한 기간은 알 수 없지만, 에두아르도보다는 짧지 않을까 한다.
하지만.
‘그때 돌아가고 싶지 않은걸.’
나는 수많은 축구 선수가 치명적인 부상 이후에 소리소문없이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월드컵 이후 대표팀에서 은퇴한 청용이 형만 보더라도, 그것을 잘 알 수 있다.
물론 근래의 의료기술과 당시는 비교조차 할 수 없고 잔인함을 뺀 부상 정도도 나보다 훨씬 더 심했지만, 나는 그들 중 한 사람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똑똑똑-
“들어갈게요.”
개인 병실의 문을 노크한 안젤리나가 문을 열었고, 난 안에서 침대를 정리하고 있던 아내를 보며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피치로 돌아가는 것은 내가 충분한 준비가 되고 난 뒤의 일이어야만 한다.
***
【같은 시각】 맨체스터 M11 3DU, 잉글랜드. 13 로슬리 스트리트. 에티하드 캠퍼스. 더 퍼스트 팀 센터, 감독실.
“볼파르트 박사도 같은 말을 하더군요.”
– 역시, 그런가?
“네. 첫날 상담을 진행한 직후 바로 저를 찾아왔습니다. 당신에게도 같은 자료를 보낸다고 했는데, 보지 못했습니까?”
– ……바빠서 말일세.
“하하. 여전하시군요.”
– 크흠.
머쓱한 듯 헛기침하는 라몬 쿠가트 박사를 본 펩 과르디올라가 웃음을 터뜨렸지만, 그리 오래가진 않았다.
곧, 과르디올라의 얼굴엔 씁쓸함이 묻어났다.
“저는 건강한 선수가 아니었죠. 기억하십니까?”
– 물론이지. 자네 정도의 선수가 타고난 신체까지 갖췄다면, 스페인 역사상 가장 뛰어난 선수로 남았을 걸세.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 기뻐하게나. 덕분에 지금 세계 최고의 축구 감독이 되지 않았나?
“…….”
현역 시절, 펩 과르디올라는 FC 바르셀로나의 모두가 바라는 가장 이상적인 선수였다.
네 명의 외국인과 네 명의 바스크 지방 출신으로 구성된 당시의 FC 바르셀로나 Best 11에서, 과르디올라는 유일한 카탈루냐 순혈 선수로서 팬들의 큰 사랑을 얻었다.
수비 바로 앞쪽에서 볼을 잡아 패스를 전개하며 경기를 풀어 나가는 모습은, 볼란치(Volante/키잡이)라는 단어를 그대로 빼다 박은 것만 같았었다.
하지만 커리어 내내 과르디올라는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렸고, 이는 실력에서 과소평가 받는 결정적 이유가 됐다.
“그래서 더 두렵습니다.”
– 뭐가 말인가?
“이럴 때, 저는 그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저는 늘 몸이 약했습니다. 그래서 다치지 않기 위한 플레이 스타일을 나름대로 연구했죠. 하지만 다온은 아닙니다. 그는 강철과도 같은 육체를 지녔습니다. 한데, 그 강철이 부러졌습니다. 저는 훌륭한 대장장이는 못 됩니다, 라몬. 한낱 축구 감독 나부랭이일 뿐이죠. 그런 제가 다온에게 어떠한 말을 할 수 있을까요?”
– …….
–
멍한 상태로 속사포처럼 터져 나온 펩 과르디올라의 이야기에, 라몬 쿠가트가 수화기 너머에서 침묵한다.
하지만, 그 침묵은 그리 오래가진 않는다.
– 매주 한스에게 보고를 받게나.
“네? 굳이 그럴 필요는…….”
– 아니. 그게 자네에게도 도움이 될 걸세. 그리고 직접 듣다 보면, 다온에게 할 말도 찾을 수 있을 거야. 날 믿게.
“…….”
벌써 28년째, 펩 과르디올라는 라몬 쿠가트 박사와 친분을 쌓아 가고 있다. 젊은 시절에는 인생에 관한 조언도 많이 들었고, 피치 밖에서의 멘토와도 같은 역할을 해 줬던 사람이다.
그래서 과르디올라는 쿠가트의 말을 거절할 수 없었다.
한스-빌헬름 뮐러-볼파르트와 정기적으로 만난다는 것은 내키지 않았지만, 일단 쿠가트의 말을 들어 볼 생각이었다.
그만큼, 과르디올라는 절박했다.
“후우~”
통화가 끝나고, 과르디올라가 창가에 서서 길게 한숨을 내쉰다. 이틀 전 커뮤니티 실드에서 나쁘지 않은 경기력을 보여 줬지만, 아슬아슬한 시합이었다.
운이 조금 따르지 않았다면, 결과는 반대였을 수도 있다.
“모르겠어. 정말 모르겠어.”
모르겠다는 말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과르디올라.
그는 지금 표류 중이다.
“하아~”
오전에 끼었던 짙은 안개만큼이나 짙은 한숨이, 맨체스터 시티의 감독실을 가득 채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