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218
217화 프로모션
개인리그 예선전과 프로리그 2라운드 풀리그가 동시에 시작되었다.
올도어SCC는 1경기 상대로 정진실업을 만났다.
작년에 6위로 마감했던 정진실업은 하위권 팀이긴 했지만 한 번도 강등 위기를 겪지는 않았다.
정진실업은 그저 그런 중견 기업이었는데, 사장이 워낙에 e스포츠를 좋아해서 선수들의 훈련 환경을 잘 지원해 준다고 들었다.
때문에 파격적인 연봉은 주지 못해도 팀에 충성하는 의리파 선수가 많았다.
그렇다고 해도 올도어SCC의 적수가 될 수 있는 팀은 아니었다.
차이, 존, 사나다 료, 한태화 등 개인리그 예선전을 준비해야 하는 선수는 출전시키지 않았다.
이신, 주디, 유진영이 출전했고, 박진수는 물론 2군 선수 중에서도 한 명에게 출전 기회를 주었다.
결과는 3-1.
1세트, 출전 기회를 주었던 고등학교 1학년생 김재호는 아깝게 패배했지만, 나름대로 자질은 있음을 증명했다.
2세트, 주디는 꼼꼼한 운영과 강력한 한 방이라는 자신의 확립된 스타일을 보여주었다.
인구수 제한까지 꽉 채운 병력으로 진군시켜 괴물의 맹렬한 저항을 격파하고 확장 기지 2군데를 밀어버렸다.
집중 훈련으로 강력하게 성장한 주디의 싸움 능력이 돋보이는 경기였다.
3세트, 박진수는 노련하고 지능적인 캐논 러시를 선보였다.
캐논 러시란, 상대의 진영에 몰래 캐논포를 건설하는 전략이었다.
초반에 몰래 침투한 신도 하나가 상대의 본진 안쪽 구석에 생명석과 캐논포를 건설해 버린 것!
상대가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완성된 캐논포가 레이저를 뿜고 있었다.
이는 전략팀의 성과물이었다.
같은 맵에서 상대의 플레이 패턴을 분석하여, 언제나 초반에 시야에 안 들어오는 등잔 밑을 날카롭게 찾아낸 것이었다.
4세트, 출전한 사람은 다름 아닌 이신. 말이 필요 없었다.
그렇게 3-1 승리를 거두고서 여유 있게 2라운드를 시작한 올도어SCC였다.
***
개인리그 예선전이 슬슬 마무리에 이르면서 서서히 본선 진출 멤버가 윤곽이 드러났다.
먼저 차이.
차이는 자신이 속한 예선전 D조를 그야말로 초토화시켰다.
무패.
톱클래스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세간의 평가를 압도적인 실력으로 입증했다.
쌍성전자를 상대로 올킬까지 해낸 차이이니 예선에서 탈락하는 게 더 이상했다.
사나다 료 또한 어려움 없이 무난하게 통과함으로서 올도어SCC 주전 멤버의 위엄을 보였다.
1.5군으로 와일드카드로 자주 쓰였던 한태화는 아쉽게 탈락했다.
변칙적인 빌드 오더를 주로 쓰는 기교파로서 장점만큼이나 단점도 뚜렷했던 한태화.
하지만 이번 개인리그는 보다 다채로운 전략 패턴을 준비해 야심차게 32강 본선 진출은 물론 16강까지도 노리고 있었던 터였다.
하지만 하필이면 고비에서 존을 만난 것이 불행이었다.
병영 병력 컨트롤이 이신에 견줄 정도로 탁월한 존은 전략적인 측면에서도 한태화 못잖게 변칙적이어서 괴물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천적이나 다름없었다.
“박영호나 황병철이 상대일 때는 차이보다 존을 내보내는 편이 더 승산이 높을 거야.”
라고 수석코치인 최환열이 평가했을 정도였다. 이는 차이도 순순히 인정하는 바였다.
그렇게 한태화의 개인리그 본선 진출의 꿈은 좌절되었다.
한편, 박진수는 개인리그를 포기하고 예선전에 출전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한 번 도전해 보라고 주변에서 권유도 해보았지만 박진수는 단호했다.
“선수 생활 하면서 코치도 해야 하고 전략팀까지 관리해야 하는데, 그럴 여유까지는 없어. 난 내 본분에 집중할래.”
박진수는 이미 한국 최초의 전략팀을 이끄는 일에 열정을 바치고 있었다.
단순한 포기가 아니라 본인의 열정에 의한 일이었던 만큼, 이신도 수긍했다. 사실 팀을 위해 힘쓰겠다는 박진수에게 고마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개인리그에 출전하는 올도어SCC의 멤버는 이신, 주디, 유진영, 사나다 료, 차이, 존 등 6인이었다.
작년 후반기 개인리그 16강 멤버를 포함하여 본선 32강 멤버가 확정되자, 비로소 개인리그 본선에 대한 한국 프로리그 협회의 프로모션이 시작되었다.
이신은 프로모션 영상 촬영을 위하여 가장 먼저 불려갔다.
“이번에는 무슨 콘셉트입니까?”
촬영장.
이신이 귀찮음이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자 프로모션 영상 촬영을 담당한 감독은 껄껄 웃었다.
“걱정 마십시오. 이번에는 전처럼 요란한 옷을 입고 황금 옥좌에 앉아 폼 잡을 필요가 없으니까요.”
이신은 내심 안도했다.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고 했던가.
그동안 한국 프로리그 협회는 이신의 조각 같은 외모를 부단히도 활용해 왔다.
무슨 꼴을 시켜놔도 잘 어울리는 얼굴과 기럭지의 소유자!
심지어 지난번에는 하얀 턱시도에 붉은 망토를 두르고 황금 옥좌에 앉혀놨음에도 놀라우리만치 잘 어울려서 많은 여성 팬의 호평을 받았다.
이신의 그 장면을 캡처한 이미지 파일은 아직도 전 세계 e스포츠 팬들에 의하여 짤방으로 쓰이는 중이었다.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수많은 프로게이머가 방구석에서 죽어라 게임만 하게 생겼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신의 희소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
그 탓에 이맘때쯤 되면 온갖 꼴을 하고 촬영을 해야 했던 이신이었다.
“정말 인터뷰로 충분합니까?”
이신은 의심이 들었는지 다시 한 번 물었다.
감독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인터뷰 내용은 어떤 겁니까? 콘셉트는 있을 텐데요.”
“본선에 진출한 선수들을 도발하면서 승부욕을 고취시키는 그런 인터뷰 내용이면 좋겠습니다.”
이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도발은 이신의 특기 중 하나였다.
“‘상대가 없었습니다’ 같은 유명한 인터뷰 영상을 편집해서 써도 되지만, 그런 건 이제 하도 많이 써먹어서 식상하거든요. 대본을 참고하시면 좋겠네요.”
감독이 건네준 대본에는 수많은 질문지가 담겨 있었다.
대본을 읽어본 이신은 동의했다
“좋습니다.”
그렇게 촬영이 시작되었다.
코디들이 붙어서 화장을 해주고 의상을 챙겨주었다.
그렇게 잘 꾸며진 이신이 카메라 앞에 앉아 인터뷰를 시작했다.
-지금까지 개인리그 우승을 몇 번 하셨나요?
“일일이 세어본 적 없습니다.”
-이번 개인리그도 우승할 자신이 있으신가요?
“모르겠습니다.”
이신이 말을 이었다.
“경계해야 할 만만찮은 상대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다전제에서 져 본 적도 없어서 뭐라고 말하기 애매합니다.”
-어떤 선수가 가장 위협적인가요?
“최영준, 박영호, 차이.”
-수제자인 차이 선수를 언급하셨네요?
“저를 이기는 법을 제가 직접 가르쳐 주었습니다. 가장 저를 잘 압니다.”
-최근에는 장양 선수까지 모두 네 명이나 되는 제자를 두고 계시는데 특별한 이유라고 있으신가요?
“딱히 어떤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니고, 인연이 닿아서 재능 있는 아이들이 제게로 왔습니다. 지금은 월드 SC 그랑프리 단체전 우승을 위해 꼭 필요한 핵심 전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시콜콜한 질문이 오갔다.
수많은 문답 중에 몇 가지만 추려서 편집될 예정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질문이었다.
-앞으로 우승까지 싸우게 될 선수들과 모든 팬 분들께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신은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
[19세에 스페이스 크래프트에 처음 관심을 두게 되었고, 20세에 프로게이머로 데뷔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저도 이제 프로게이머로서는 적지 않은 나이가 되었습니다.]프로모션 영상에 말끔하게 차려 입고 나온 이신이 차분히 말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발언 내용은 결코 차분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제 선수 생활을 돌이켜 보건대, 이제 제가 e스포츠 역사상 가장 강한 프로게이머였다고 말해도 될 것 같습니다.]그 오만한 발언은 이신의 입에서 나왔기에 결코 오만해 보이지 않았다.
[지금까지 수많은 적수를 만났고 위협적이라고 생각되었던 상대도 여럿 있었습니다. 하지만 고백컨대 제가 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예, 누구도 저로 하여금 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하지 못했습니다.]영상 속의 이신은 입가에 미세하게 미소가 번졌다.
[저는 지금도 여전히 강합니다. 하지만 제가 언제까지 이렇게 강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제게도 공평하게 세월이 흐르고 있고, 결국은 쇠락하는 순간도 찾아올 겁니다. 예, 은퇴를 생각해야 할 때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습니다.]그렇게 말하는 이신의 눈빛은 조금 쓸쓸해 보였다.
[물론 저는 영원히 프로게이머이고 싶습니다. 나이가 들고 들어 더 이상 손도 머리도 안 따라주고, 더 이상 응원해 주는 팬이 없다고 해도 끈질기게 프로게이머로서 살고 싶습니다. 하지만…….]이신의 말이 이어졌다.
[제 안에 또 하나의 제가 있습니다. 누구에게도 지고 싶지 않다고, 최고이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더 이상 최고일 수 없을 때, 죽기 살기로 노력해도 이길 수 없는 상대가 나타났을 때, 그때가 바로 제가 은퇴 날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승부를 사랑하지만, 이길 방법이 없는 선택지는 승부가 아니니까요.]거기까지 말하고서 이신은 잠시 회한이 젖어 말을 멈췄다.
하지만 곧 이어 말했다.
[그래서 모든 선수에게 통보합니다. 여기에 역사상 가장 강한 프로게이머가 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강하지만, 제가 건재할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습니다. 이 기회를 놓치면, 지금 이 시대를 말하는 선수는 저 하나로만 기억될 겁니다. 훗날의 팬들이 오늘날을 기억할 때, 이신과 동시대에 있었던 여러분은 전부 들러리가 되겠지요.]이신은 웃었다.
웃으며 모두를 도발했다.
[저를 이겨보십시오. 저보다 더 강한 선수라고 역사에 새겨보십시오. 이제 기회가 많지 않습니다.]어떠한 연출도 없는 그 프로모션 영상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렬한 인상을 주며 전 세계 e스포츠계에 일파만파 퍼져 나갔다.
-와우, 카이저가 놀라운 도발을 했어.
-그는 정말 위대해. 누가 저 사람을 이길 수 있을까?
-저렇게 광오하게 말해도 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지금 처음 알았어. 두 번 다시는 카이저 같은 선수가 안 나오겠지.
-제발, 제발, 제발! 은퇴하지 말아줘, 카이저. 다 늙어서 퇴물이 되어도 내가 응원해 줄게.
-난 카이저의 첫 그랑프리 때가 기억 나. 금메달을 뺏어간 한국의 얄미운 녀석이었지. 하지만 지금은 그가 없는 e스포츠를 상상할 수가 없어. 그가 없어져도 나는 계속 e스포츠를 좋아할 수 있을까?
-질도 규모도 우리 미국 프로리그가 훨씬 우월해. 그런데 왜 저런 위대한 선수는 하필 한국에서 탄생한 거야?
-정말 한국인은 게임의 민족이야.
-맙소사, 그러고 보니 카이저를 처음 본 지 벌써 6년이 다 되어가는군. 세월이 왜 이렇게 빠른 거지?
전 세계 네티즌의 반응은 뜨거웠다.
그리고 이를 본 모든 내로라하는 프로게이머들 또한 가슴 속에서 뜨거운 감정이 샘솟는 것을 느껴야 했다.
투지.
열정.
감동.
이신이라는 이름은 한국의 작은 개인리그를 뜨거운 감자로 만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