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284
283화 패배(3)
선수대기실의 분위기는 침울했다.
차이는 피로에 깊이 잠긴 표정이었고, 그 옆에서 박진수가 열심히 다음 전략을 설명했다.
“다음 맵은 6 대 4로 인류가 유리한 맵이야. 스코어도 2 대 0으로 리드하고 있으니까, 아마 박영호는 올인 전략을 시도할 수도 있어.”
“올인 안 해.”
잠자코 듣던 이신이 말했다.
“뭐?”
박진수가 의문을 표했다.
이신이 말했다.
“무조건 운영 대결이야.”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실력으로 압도하고 있는데 도박수를 쓸 필요가 없잖아.”
“…….”
이신의 돌 직구에 싸늘한 정적이 찾아왔다.
이신은 차이를 보며 말했다.
“적어도 박영호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야. 1세트도, 2세트도, 박영호는 별다른 꼼수를 쓰지 않았어.”
“맞아요.”
차이는 순순히 수긍했다.
“3세트도 운영으로 승부하려 하겠네요.”
“그래.”
박진수는 직설적으로 말하는 이신의 태도를 원망했다.
하지만 차이는 그 말에 상처받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니. 오히려 그것은 도발이 되었다.
“실력 차이로 완벽하게 졌다…….”
차이의 눈빛이 흉험하게 빛났다.
“절대로 그런 평가를 받고 끝나지 않을 거예요. 고작 그런 결말을 위해 여기까지 올라온 게 아니니까요.”
“그럼 한 번 보여 봐.”
“지켜봐주세요, 선생님.”
그리고 차이는 3세트를 향해 무대로 떠났다.
차이가 떠난 선수대기실.
이신과 박진수 둘만이 남은 채 모니터 화면으로 나오는 경기장 무대를 바라보았다.
저쪽에서도 박영호가 이미 부스에 자리 잡고서 손을 풀고 있었다.
문득 박진수가 물었다.
“3세트도 지면 완패네.”
“그렇지.”
상대의 전략에 속아 넘어가 당한 게 아니라, 장기전 운영 대결로 3-0 참패.
그것은 프로게이머로서 무엇보다 뼈아픈 고통이 될 것이다.
명백한 실력 차이였다는 평가가 내려진다.
이날의 결과가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며, 저 선수보다 한 수 아래라고 공인되어 버린다.
“많이 상처받을 텐데.”
박진수의 걱정은 당연했다.
차이는 올도어SCC의 전도유망한 에이스이며, 아직 어렸으니까.
“어쩔 수 없지. 진 건 진 거니까.”
“그렇게 냉혹하게 결론짓지 말아줄래? 넌 한 번도 겪어본 적 없잖아.”
“없지.”
“항상 승패의 기로에서 가해자의 입장에 섰던 너는 모르겠지.”
이신은 할 말이 없었다.
알 리가 없었다. 패배를 한 기분 같은 것은 말이다.
“상대보다 못한 사람이라고 낙인이 찍힌 것 같은 그 분함을 말이야. 그건 정말 끔찍해. 다시는 설욕할 수 없을 때는 특히나 더.”
“…….”
“차이처럼 프라이드가 높은 애한테는 더 큰 상처가 될 거야.”
“상처라…….”
이신은 나직이 읊조렸다.
까닭 없이, 또다시 공허함이 밀려왔다.
대체 왜 이런 이상한 피로감이 드는 건지 알 수 없었다.
***
초반.
차이는 정찰을 통해 박영호의 빌드 오더를 확인했다.
수정관 없이 본진과 앞마당에 부화실만 총 3개.
방어를 배제한 채 일벌레만 왕창 뽑아 자원 채집을 하고 있는 부유한 체제였다.
가만 둬서는 상대의 부유함을 감당할 길이 없어진다고 판단.
차이는 즉각 건설로봇 1기와 보병 2명으로 기습을 시도했다.
-굉장히 부유한 출발을 한 박영호 선수! 내리 2승을 거뒀기 때문에 배짱이 두둑합니다.
-저걸 가만둬서는 안 되죠, 차이 선수! 바로 응징하러 갑니다. 손해를 입혀서 균형을 맞춰놔야 해요.
박영호는 자신감이 있었다.
전투 병력이 없더라도, 상대의 초반 찌르기 정도는 일벌레를 싸움에 동원해 막아낼 수 있다는 확신이었다.
그런 방어 능력이 철벽괴물이라는 별명을 선사해 주었고 말이다.
하지만 차이의 응징은 뜻밖의 형태로 나타났다.
앞서 정찰을 했던 건설로봇이 앞마당에 서성이더니, 농토의 한쪽 구석의 빈 공간에 절묘하게 참호를 짓기 시작한 것이었다.
-오, 차이 선수! 아주 멋진 위치에 참호 러시를 시도합니다!
-박영호 선수도 일벌레를 대거 동원해 맞서 싸웁니다.
박영호는 빠르게 대응했다.
일벌레 2마리는 참호를 짓고 있는 건설로봇을 공격.
나머지 일벌레 다수는 이쪽으로 걸어오는 보병 2명을 마중 나갔다.
-교전이 시작됩니다!
보병 2명이 일벌레를 향해 사격을 개시했다.
보병들은 쫓아오는 일벌레들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물러서며 계속 총을 쐈다.
일벌레들이 일을 못하게 함으로서 자원 손해를 누적시키겠다는 의도였다.
짓고 있던 참호는 완성 직전에 중단하고는, 보병들로 끊임없이 공격과 후퇴를 반복하며 실랑이를 벌였다.
박영호 또한 보병의 사정거리를 넘나들며 컨트롤.
체력이 닳아 죽을 것 같은 일벌레를 적당히 빼주며 피해를 최소화했다.
깔끔한 교전.
여기서 더 피해를 입히기 위해 기교를 부리는 것은 이신의 성향.
하지만 차이는 적절히 리스크 관리를 하며 상대의 자원 손해를 입히는 데 주력했다.
그러고는 박영호에게서 바퀴가 생산되자,
-퍼어엉!
참호 건설을 취소시켜서 절반의 자원을 환불받고, 보병 2명과 건설로봇 1기를 그대로 후퇴시켰다.
추격을 당해 건설로봇이 터졌지만, 박영호가 입은 자원 손해를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전과였다.
-차이 선수도 이득을 챙겨갔고, 박영호 선수도 정말 깔끔하게 잘 막았습니다.
-예, 체력이 닳은 일벌레를 빼주면서 단 1마리도 잃지 않은 박영호 선수의 컨트롤이 대단했죠. 양 선수 모두 역시 잘합니다.
-딱 고수와 고수가 붙어서 팽팽하게 합(合)을 교환한 느낌이죠.
-하하하, 그렇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스승인 이신 선수였다면 더 끈덕지게 밀어붙여서 피해를 냈을 텐데 차이 선수는 깨끗이 빠져 버렸죠. 깔끔한 운영을 더 선호한다는 뜻입니다.
-3세트도 두 선수의 운영 승부가 기대되고 있습니다.
그 뒤로는 소규모 교전조차 없는 운영의 대결이었다.
병영을 4개까지 짓고 병력을 생산한 차이는 군대를 진군시켰다.
하지만 공격은 없었다.
그냥 압박하여 수비에 돈을 쓰게 만든 뒤에 회군했다.
박영호는 그 와중에 수비에 쓰는 돈을 최소화하며 차이의 압박을 넘기는 센스를 보였다.
차이 또한 그 뒤에 기갑정거장을 늘려짓고 병영 체제에서 기갑 체제로 매끄럽게 전환시켰다.
-양측 모두 물 흐르듯이 운영을 하네요.
-지금까지는 별다른 전투 없이 이어졌습니다만, 이제 슬슬 결전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먼저 움직인 쪽은 차이였다.
차이는 확장 기지를 추가로 가져가며 맵의 절반을 차지했다.
맵을 절반씩 나눠 갖자는 의도가 뚜렷했다.
맵의 자원을 똑같이 나누면 자원 소모량이 어마어마한 괴물이 불리한 게 당연했다.
가만히 있을 수 없는 박영호.
차이는 탄탄히 방어를 구축한 채, 한 번 와보라고 손짓한다.
박영호의 괴물 군단이 진격을 개시했다.
***
없는 집안 살림에도 컴퓨터는 1대 있었다.
친척이 버리는 오래된 컴퓨터인데, 그 컴퓨터로 할 수 있는 게임이 몇 게 없었다.
그게 낙이었다.
그때부터는 비좁고 갑갑한 집에 돌아오는 게 즐거웠다.
유일한 삶의 낙이 되니 실력이 쑥쑥 올랐다.
그런데 지나치게 잘했던 모양이었다.
프로팀에서 연습생이 되지 않겠냐고 제의를 했다.
온라인 연습생이 아닌, 숙소에서 합숙하며 훈련을 받는 진짜 연습생 말이다.
좋아하는 게임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다니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공부를 해봤자 대학에 가려면 등록금이 필요한데 집안 사정상 그럴 돈은 없을 게 분명했다.
프로게이머가 되겠다고 하니 어머니는 우셨다.
아버지는 하고 싶은 것 하라고 큰소리 치셨지만 꽤나 속이 썩으셨으리라.
격렬히 반대하는 어머니가 문제였지만 어차피 대학 등록금도 없지 않으냐고, 빨리 진로 정해서 돈벌이 하겠다고 큰 소리를 쳤다.
부모님께 상처가 되었을 게 분명했는데도, 그렇게 말하고 프로게이머의 길을 강행했다.
그리고 힘든 연습생 시절을 보내며 이 길에 대해 회의가 느껴질 때마다 그날의 일을 떠올리며 견뎠다.
나는 죄인이다.
그러니 이것조차 못해서는 안 된다.
참고 견디겠다.
끝끝내 전부 박살 내버리고 보란 듯이 성공해 보이겠다.
강한 집착이 된 승부 근성은 성공의 원동력이 되었다.
1군 선수가 되어 비로소 제대로 된 돈벌이를 할 수 있게 되자 부모님께 그나마 면이 섰다.
실력을 인정받고 연봉이 높아지자 집안의 빚을 다 갚았다.
그리고 현재.
이제는 누구도 그가 성공한 프로게이머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도 승리를 향한 집착은 멈추지 않았다.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가면서, 프로게이머로 있을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 사라질 때마다 더욱 더 이기고 싶어졌다.
그러니,
‘너랑은 간절함이 달라, 이 새끼야!’
그의 이름은 박영호.
일명 철벽괴물.
세계 최고의 괴물 플레이어였다.
-박영호 선수가 드디어 움직이나요?!
박영호는 스노우 볼을 굴리기 시작했다.
계속 굴러간 끝에 엄청나게 불어난 눈 덩이처럼, 거대한 괴물 병력을 하나의 덩어리로 이루어 다니며 차이의 진영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거대한 눈 덩이가 여기저기 굴러다니며 사방을 위협한다.
이를 따라 차이 또한 병력을 동원해 쫓아다녀야 했다.
적의 전력이 한 지점에 집중되면, 자칫 각개 격파의 원리로 타격을 입을 수 있기 때문에 지원 병력이 쫓아다내며 견제해야 했다.
그리고 마침내 박영호가 공격을 개시했다.
-펑! 퍼엉! 펑! 펑!
화려한 이펙트와 함께 흑안개가 화면을 가득 메워 버렸다.
“우와아아아아!”
“와아아!”
엄청난 속도로 펼쳐진 흑안개들.
쫓아가던 차이의 지원 병력은 흑안개 속으로 뛰어들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 박영호는 계속 흑안개를 펼치며 진격로를 열었다.
시커먼 구름으로 이루어진 다리 같았다.
흑안개로 이루어진 길을 따라, 괴물들이 물밀 듯이 차이의 확장 기지를 향해 돌격했다.
-퍼퍼퍼퍼퍼퍼펑!
확장 기지에 배치된 기동포탑들이 일제히 포격을 했다.
바퀴들이 짓뭉개지며 화면을 피의 바다로 만들어 버렸다.
하지만 계속 밀려들었다.
바퀴와 독침충과 촉수충이 계속해서 흑안개를 따라 기어가며 공격했다.
값싼 바퀴 떼가 기동포탑의 포격의 재물이 되었다.
이를 방패삼아 독침충과 촉수충이 진입하는 데 성공해 공격을 시작한다.
차이는 기동포탑으로 흑안개로 이루어진 진격로 전체를 포격케 했다.
뿐만 아니라 고속전차들이 흑안개 속으로 들어가 지뢰를 매설했다.
박영호는 끊임없이 병력을 재생산하여서 공격에 꾸역꾸역 투입했다.
괴물주술사가 계속해서 흑안개를 펼치고 피의 저주를 뿌렸다.
장대한 전투였다.
피가 끊임없이 흐르고 싸움이 멈출 줄을 몰랐다.
그리고 마침내…….
-밀었습니다!
-박영호 선수가 차이 선수의 확장 기지를 부수는 데 성공했어요!
박영호의 승리였다.
미래를 위한 자원 줄이 될 차이의 확장 기지가 밀려 버린 것이다.
-차이 선수도 정말 잘 버텼습니다만, 박영호 선수가 뿜어내는 물량이 상상을 초월했어요!
-이제 곧 모든 자원이 끊기게 됩니다. 차이 선수, 이대로 무릎 꿇을 겁니까?!
물론 그대로 포기할 차이가 아니었다.
추가 생산된 유닛을 포함한 잔존 병력을 모조리 끌고서 확장 기지 탈환에 나섰다.
-이제 자원이 다 떨어진 차이 선수입니다. 이 싸움이 마지막 기회에요!
차이는 전투를 치르는 와중에 통제사령부 건물과 건설로봇들까지 같이 데려왔다.
그리고는 박영호의 병력을 전부 쫓아버린 뒤, 곧바로 통제사령부를 앉히고 건설로봇들로 자원을 채집할 정도로 집요한 승부욕을 보였다.
하지만 자원상에서 이미 승부는 기울어진 상태였다.
박영호가 다시 병력을 끌고 와 휘몰아쳤다.
버티고 또 버텼지만, 어느 순간 차이는 더 이상 싸울 병력이 없게 되었다.
승부는 그렇게 결정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