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518
518화 후기리그(3)
중국에 진출한 한국 선수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특히나 한참 동안 무패 행진을 이어간 이신의 활약은 가공할 것이었다.
이제 와서 더 강해졌냐는 한숨이 곳곳에서 들려왔다.
그 연승 행진을 종료시킨 것은 최영준이었다.
광기신족 최영준은 그 특유의 물량을 환상적인 아바타 활용과 함께 보여주었다.
아바타를 이신의 진영에 침투시키고 소환 마법으로 아군 병력을 불러들였다.
첫 번째 소환은 실패. 이신은 이미 자기 진영 도처에 지뢰를 깔아 소환에 대비한 방어를 해둔 상태였으니까.
하지만 함께 소환된 다른 아바타가 또 소환 마법을 펼쳐 병력을 더 불러들였다.
그리고 또 함께 소환된 세 번째 아바타가 새로 생산된 병력을 또 불러들였다.
자신의 엄청난 물량을 이신의 본진 안에 연속으로 꽂아버린 ‘3단 소환’ 작전은 곧 중국에서 유행이 되었다.
저 이신을 꺾은 전략이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신족 선수들이 3단 소환 작전을 따라했고, 덕분에 경기가 더 화끈해졌다는 팬들의 평을 받았다.
최영준은 이신의 연승행진을 중단시킨 덕분에 스타가 되었고, 이후로도 후기리그가 끝날 때까지 7할이 넘는 승률을 기록했다.
신지호의 활약도 두드러졌다.
특유의 강력한 디펜스로 언제나 안정적으로 승리를 따냈고, 최영준과 비슷하게 7할이 넘는 승률로 상하이 게이밍의 명실상부한 에이스가 되었다.
그의 승률 7할 안에는 작년 그랑프리에서 붙었던 지우펑도 포함되어 있었다. 후기리그에 들어 부진을 하고 있는 지우펑을 완패시켜 멋지게 설욕한 것이다.
하지만 그 뒤로 지우펑도 부진에서 벗어나 다시 폼이 올라왔고, 다시 만난 신지호에게 설욕을 하니 라이벌 관계가 성립되었다.
어쨌거나 중국 최고의 스타인 지우펑과 라이벌이 된 덕에 신지호의 인지도는 대폭 올라갔다.
한국에서는 무명인 박이현도 다롄 소울즈의 성공적인 영입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6할에 가까운 승률로 준수한 활약을 했기 때문인데, 연봉에 비해 뛰어난 성적이었다.
이신이 공개적으로 지적했듯이 박이현의 플레이는 아직 불안정한 부분이 많았지만, 그만큼 장점도 뚜렷해서 독특한 스타일이 팬들에게 어필되었다.
온라인에서 열심히 이신을 쫓아다닌 박이현은 스트리밍 방송에서도 흥행을 했다.
이제는 이신과 박영호가 사는 집에 찾아가기까지 하는 넉살을 보였는데, 방문할 때마다 선물을 바리바리 싸들고 와서 고마움을 표현했다.
박영호도 실제로 만난 박이현을 보고는 의외로 착하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그들 중 이신에 견줄 수 있는 실력자를 꼽으라면 오직 한 사람뿐이었다.
박영호.
이번 시즌 내내 박영호는 프로리그 경기에서 2패밖에 안 했다.
단 2패.
이쯤이면 전성기 시절의 이신이나 다름없는 절대 무적의 수준이었다.
빌드 오더 상성에서 이기고 박영호가 치명적인 실수까지 하지 않는 한, 이길 도리가 없다는 뜻이었다.
실제로 중국의 모든 프로팀은 박영호를 대적 불가로 상정했다.
SC스타즈와 경기를 치르는 날은, 이신과 박영호를 포기하고 나머지 셋을 어떻게든 공략해 봐야 하는 셈이었다.
이신을 다전제 승부에서 이기는 것이 e스포츠 전체의 지상 과제가 된 가운데, 박영호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 가능성은 중국의 개인리그인 상하이 슈퍼리그에서 다시 한 번 확인되었다.
지난번 베이징 슈퍼리그에서는 지우펑에게 패배하여 4강에 머물렀던 박영호였으나, 이번 대회에서는 괴물 같은 포스를 뿜어냈다.
특히 4강전에서 만난 신지호를 3-0으로 침몰시킨 것은 충격적이었다.
중국에 진출한 첫 시즌에 대단히 좋은 성적을 거둔 신지호였다.
종족도 괴물의 천적인 인류.
플레이 스타일도 꼼꼼하고 수비적이어서 박영호가 까다로워할 상대였다.
실제로 전문가들도 박영호가 이겨도 접전이 될 거라고 예상했다.
실제로 마지막으로 두 사람이 했었던 다전제 대결에서 승리한 쪽은 신지호였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 보니 반전 그 자체였다.
박영호는 신지호의 철벽 방어를 그야말로 거침없이 뜯어버렸다.
조금의 빈틈만 보여도 거칠게 공격을 퍼부어서 승리.
실패하면 엄청난 타격을 받는 공격인데도 망설임이 없는 박영호의 플레이는 기세가 흉흉했다.
그 기세에 눌린 신지호는 결국 완패를 당하고 말았다.
결승전 상대는 역시나 이신이었다.
상하이 슈퍼리그 결승전은 스트리밍으로 중계된 방송의 트래픽이 어마어마했다.
전 세계에서 이신과 박영호의 대결을 보기 위해 접속했기 때문이었다.
이신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은 박영호가 유력하다고 다들 인정할 상황까지 왔다는 증거였다.
지난해 그랑프리 결승전에서 보여줬던 명승부를 다시 보고 싶었던 심리도 있었고 말이다.
이신도 오랜만에 즐거웠다.
대회 내내 보여주었던 박영호의 기세가 심상치 않은 까닭이었다.
훈련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서도 방에 들어가 홀로 게임을 하는 박영호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비공개 아이디를 새로 만들어서 온라인에서 연습을 했고, 그 리플레이 데이터는 팀에게도 주지 않고 비밀로 했다.
‘날 잡기 위해 무언가 준비를 하고 있구나.’
그것이 이신의 승부욕을 자극했다.
자신을 찌르기 위해 칼을 갈고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긴장감이 흘렀다.
이신은 그 긴장감이 너무 좋았다.
더 아찔하게 만들어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이신도 최선을 다해 준비했고, 그렇게 결승전이 펼쳐졌다.
경기 내용보다 더 치열한 심리전이 오갔다.
1, 2, 3세트는 인류 대 괴물의 정석적인 운영 대결이었다.
이신은 박영호의 운영을 봐가면서 맞춰 잡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박영호가 무언가 갈고 닦은 비장의 한 수가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그게 뭔지 보고 대처해 주겠다는 게 이신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박영호도 이빨을 드러내지 않고, 3세트까지 그냥 평범한 운영을 펼쳤다.
그럼에도 승부는 상당히 치열했다.
1, 2, 3세트 모두 40분이 넘는 장기전이 되었고, 거기서 먼저 한 발 앞서나간 쪽은 박영호였다.
그날따라 박영호의 컨디션은 최고조였고, 모든 유닛이 실수 없이 컨트롤되며 전투마다 손해를 보지 않았다.
스코어는 2-1.
박영호가 한 번만 더 이기면 승부를 잡을 수 있는 상황. 역시나 젊은 피의 힘인지 이신이 힘에 붙인 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신은 침착했다.
‘이제 슬슬 준비한 걸 꺼낼 때가 됐는데.’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홀로 준비하던 한 수를 이제 꺼낼 때가 됐지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4세트에서 박영호는 올인성 전략을 펼쳤다.
공격력이 업그레이드 된 쐐기충에 모든 걸 건 공격이었다.
하지만 박영호가 특별한 전략을 쓸 거라는 걸 알고 있었던 이신은 이에 대비를 한 상태였다.
이신은 공중전의 왕자인 로켓 프리깃으로 맞섰다.
보기 어지러울 정도로 화려한 컨트롤의 향연.
정말 오랫동안 갈고 닦았는지 박영호의 쐐기충 컨트롤은 속된 말로 미쳐 있었다.
심지어 쐐기충을 두 부대로 나눠서 2곳을 동시 타격하는 멀티태스킹까지 펼치는 박영호!
이에 대하여 이신도 로켓 프리깃을 두 무리로 나눠서 2곳을 동시에 커버하는 미친 플레이를 펼쳤다.
거기다가 지상에서도 양측 지상군이 전투를 벌이는 초인적인 멀티태스킹 싸움이었다.
누가 이기든 두고두고 회자될 명경기였다.
채팅창이 마비되었고, 관중들은 숨이 멎은 것처럼 조용히 경기에 집중했다.
그 인외지경의 싸움의 승자는 이신이었다.
이신이 4세트 승리를 확정 지었을 때, 경기장은 찌를 듯한 비명으로 끓어올랐다.
결국 승부가 마지막 5세트까지 이어진 까닭이었다.
‘박영호가 숨기고 있었던 한 수를 막아냈다.’
…라고 생각했으면 이신은 오늘날까지 다전제 무패 신화를 쓰지 못했으리라.
‘아냐.’
이신은 의심했다.
분명 멋진 쐐기충 컨트롤이긴 했지만, 박영호가 믿고 준비한 한 수일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건 페이크다. 네가 진짜 준비한 건 다른 거야.’
물론 이것도 상당히 준비한 것 같긴 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신을 속이기 위한 미끼로 준비한 것.
분명 다른 게 있다고 이신은 생각했다.
그런 이신의 의심은 단 한 번도 빗나간 적이 없었다.
5세트, 눈을 의심할 만한 광경이 펼쳐졌다.
맵 중심부에 이신이 병영 2채를 건설해버린 것이다.
센터 2병영 전략.
실패하면 끝장인 치즈 러시였다.
‘넌 분명 뭔가를 준비했다.’
그래서 이신이 먼저 칼을 뽑아들었다.
‘그걸 꺼내기 전에 내가 먼저 끝내주마.’
두 사람이 펼친 심리전의 내막을 알았더라면, 이신의 이 판단을 ‘신의 결단’이라 칭송했으리라.
이른 시간에 보병들이 들이닥치자 박영호는 한 대 얻어맞은 표정이 되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아껴두었던 한 수를 꺼내들지 못하게 이신이 먼저 선수 쳐버린 것!
승리가 목전이었다.
승부가 5세트까지 올 거란 걸 처음부터 예상했고, 여기까지 시나리오대로였다.
그런 박영호의 입장에서는 도미노가 완성되기 일보 직전에 쓰러져버린 기분이 들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대처해 보지만, 센터 2병영은 처음부터 눈치채지 못하면 아예 못 막는 전략이었다.
박영호는 통한의 GG를 쳤다.
이신은 벌떡 일어나 이겼다고 소리를 질렀다.
왕춘 감독과 코치들이 달려와 이신의 우승을 축하해 주었다.
숨 막히는 승부의 긴장감 끝에 얻은 승리의 전율!
이신이 프로게이머를 그만둘 수 없는 이유였다.
중독되면 잊을 수가 없는 짜릿함이었다.
작년 그랑프리 결승처럼, 이번에도 박영호는 훌륭한 도전자가 되어 주었다. 이신은 인공지능과의 대결 이후로 느껴보지 못했던 승부의 스릴을 맛볼 수 있었다.
다만 여운처럼 마음에 남는 것이 한 가지.
바로 박영호가 준비했던 한 수를 끝까지 못 본 것이었다.
하지만 박영호는 이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고, 이신도 마찬가지였다.
왜냐하면 곧 펼쳐질 그랑프리에서 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그랑프리가 기대되는군.’
박영호는 그랑프리에서 다시 만날 때까지 그 칼날을 다시 숨기고 있을 터였다.
그게 무엇인지 보기 위해서라도 이신은 곧 있을 월드 SC 그랑프리 개인전을 준비해야 했다.
그렇게 해서 2022년 전반기 시즌이 종료되었다.
후기리그까지 우승을 차지한 SC스타즈는 월드 SC 그랑프리 단체전 출장을 확정지었다.
개인전은 이신과 박영호가 출전하게 되었다.
2연속 우승자인 이신은 물론이고, 박영호도 작년 준우승자인 시허를 꺾고 출전권을 따낸 것이다.
‘이제야 쉴 수 있겠군.’
시즌이 끝나고 휴식기가 주어지자, 비로소 이신은 다시 마계로 시선을 돌릴 수 있었다.
그랑프리는 마계에 다녀와서 준비할 생각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