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65
64화 과거 현재 미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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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로 돌아온 이신은 침중하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자신의 손에 들린 검은 구슬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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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쓰든 네 자유지만, 한 번 사용하면 구슬은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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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군주 플라우로스의 말을 떠올리며, 이신은 심사가 복잡해졌다.
이제 와서는 그다지 알고 싶지 않은 비밀이었다.
이대로 넘기고 살아도 문제없다.
손목은 완쾌되었고, 전보다 더 건강해졌다.
선수로 복귀했고, 꿈에도 그리던 게임을 실컷 할 수 있게 되었다.
아무 문제없다.
하지만…….
‘그래도 알아야지.’
이신은 냉정하게 생각했다.
집착은 아니었다. 이미 과거의 아픔을 딛고 자신은 다시 도약할 준비를 하고 있다.
최영준, 박영호 등 예전보다 더 많은 강자가 라이벌이 되어 자신을 즐겁게 해줄 준비를 하고 있다.
다만, 그러한 습격 사건이 또 벌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지 알아내야 한다. 응징을 하든지 용서를 하든지, 그건 자신이 직접 판단할 것이다.
이신은 검은 구슬을 쥐었다.
‘알고 싶다.’
플라우로스가 일러준 대로 알고 싶은 것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내 손목을 습격한 사건의 전모를.’
파삭!
그러자 검은 구슬이 부서져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검은 가루는 시커먼 안개로 변하여 이신의 머리에 스며들었다.
머릿속에 여러 가지 기억들이 제멋대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화장실 세면대 앞.
복면을 쓴 괴한이 쇠파이프를 든 채 씩씩 가쁜 숨을 쉬고 있다.
그리고 자신은 오른손을 부여잡고 고통에 신음한다.
아직도 생생한 끔찍한 기억.
등에서 식은땀이 차올랐다.
기억이 점점 거꾸로 되감기기 시작했다.
자신의 시점이 아닌, 복면을 쓴 범인의 시점이었다.
복면을 쓰려고 하고 있는 청년의 모습이 보인다.
나이는 20대 초반 정도 되었을까.
짙은 갈색으로 염색한 파마머리에 오른쪽 어깨 부근에 그리 세련되어 보이지 않는 지저분한 문신이 새겨져 있다.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이었다.
이신은 다소 안도했지만, 아직 안심할 수 없었다.
저 양아치 같은 놈에게 사주한 사람이 자신의 친인일 수도 있으니까.
청년은 장민재라는 놈이었다.
장민재는 고교 졸업 후에 집에서 나와 조그마한 자취방에서 살고 있다.
혼자가 아니었다.
그 작은 자취방에는 장민재의 여자 친구도 동거하고 있었다.
조금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장민재와 그의 여자 친구가 다투는 모습이 보였다.
“이제 어떡할 거야!”
울며 히스테리를 부리는 여자 친구.
장민재는 짜증 가득한 얼굴로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문다.
“나쁜 새꺄! 넌 그 와중에 내 앞에서 담배를 피냐?”
여자 친구의 분노가 더욱 거세졌다.
“아, 씨발 진짜.”
장민재는 짜증을 내며 밖으로 나갔다. 라이터로 담배에 불을 붙이며 투덜거린다.
“대뜸 임신을 해가지고는.”
클럽에서 눈이 맞아 사귀게 된 여자였고, 얼마 되지 않아 동거까지 하게 되었다.
“누구 앤지 내가 어떻게 알아? 씨발.”
그렇게 나 몰라라 말은 하지만 장민재의 얼굴은 고뇌로 잔득 일그러져 있었다.
애를 낳든 떼든 병원에 가야 하는데 자신에게는 돈이 없었다.
지방에 계신 부모님께 손을 벌릴 수도 없었다. 이 사실을 알았다가는 아버지에게 맞아 죽는 건 물론이고, 지방으로 끌려가 함께 농사를 짓게 될지도 모른다.
재수해서 대학 가겠다고 서울로 올라간 놈이 공부는커녕 사고나 쳤다는 걸 알게 되면 엄한 아버지가 내릴 결정은 불 보듯 뻔했다.
담배를 다 핀 장민재는 자취방에 다시 들어갔다.
아직도 여자 친구는 눈물을 닦고 있었다.
“야, 그만 좀 처울어. 일단 병원 가자.”
“돈이 어디 있어!”
“어떻게든 마련하면 되잖아! 돈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넌 낳을 건지 어떻게 할 건지 생각하고 있어.”
그러면서 장민재는 행거에서 저지를 꺼내 걸쳤다.
“어디 가는데?”
여자 친구가 울먹거리며 묻는다.
“돈 빌리러!”
장민재가 짜증스럽게 대답했다.
“내 친구 중에 잘나가는 새끼 있어. 걔한테 빌리면 돼.”
기분 꿀꿀해서 여자 친구와 같이 있고 싶지도 않은 그였다.
장민재는 그대로 휙 하니 떠나 버렸다.
그리고 장민재가 향한 곳은…….
‘설마.’
한국 e스포츠 1부 리그 팀 화성전자의 선수 숙소 인근이었다.
‘아니겠지.’
이신은 믿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화성전자 소속의 가장 유명한 프로게이머는 단연 한 사람, 그도 잘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장민재가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어, 나야!”
-네가 웬일이냐?
“웬일이긴. 이 근처 지나가다가 그냥 들러 봤어.”
-이 근처라고?
“그래. 한잔하자.”
-인마, 나 다음 주에 중요한 경기 있어.
“그냥 가볍게 한잔하자고.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가라고?”
핸드폰 너머로 상대의 한숨 소리가 들렸다.
-알았어.
“참고로 나 치맥 먹고 싶다.”
-귀찮은 새끼.
장민재는 낄낄거렸다.
이윽고 숙소에서 나온 선수는 평범한 체격에 사납게 치켜 올라간 눈매를 가진 준수한 청년이었다.
‘……!’
이신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황병철이었다.
“이야, 슈퍼스타 씨! 잘나가던데?”
“잘나가긴 개뿔. 연습해야 되는데 하필 이런 때 오고 난리야.”
“아 새꺄 친구 좋다는 게 뭐냐.”
황병철은 피식 웃었다.
“친구는 무슨. 연락 한 번 없던 놈이.”
장민재의 얼굴에 잠시 짜증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말 한번 잘했다. 친구는 개뿔.’
마음에 안 드는 자식이었다.
고등학생 때는 단짝이었다. 함께 수업 떼먹고 도망쳐 나와 술 먹고 당구 치고 PC방에 갔다.
그렇게 함께 막나가던 사이였는데 어느 순간 프로게임단의 연습생이 되더니, 연습 때문에 바쁘다고 전화도 씹는 등 관계가 소원해졌다.
같이 놀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저 혼자만 마음 고쳐먹고 성실한 사람이 된 양 하는 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지금은 돈이 필요했다. 돈만 구하고 나면 더 볼 일 없는 사이였다.
치킨과 맥주를 마시면서 장민재는 함께 놀았던 과거 이야기를 마구 늘어놓았다.
하지만 황병철은 과거 얘기를 그다지 즐기는 눈치가 아니었다.
가볍게 한 잔만 하겠다고 거절하던 황병철은 결국 유혹에 못 이겨 점점 맥주를 많이 비우기 시작했다.
술기운이 오른 황병철이 말수가 많아졌다.
“그래, 내가 너랑 같이 막 놀고 그랬지.”
“그때가 좋지 않았냐? 생각 없이 존나 놀고 그랬잖아, 그땐.”
“별로…….”
“아, 새끼. 같이 잘 놀 땐 언제고 이제 와서 오리발이야.”
“그땐 그랬지. 근데 내가 화성전자 연습생으로 스카우트되었을 때, 아버지한테 얘기했거든.”
황병철은 쓸쓸하게 말했다.
“근데 아버지가 되게 좋아하시더라.”
“…….”
“늘 화만 내시던 분인데, 갑자기 잘해보라고 등 두들겨 주니까 내가 정말 잘못했구나 싶더라. 뭔가 해보겠다고 하면 이렇게 응원해 주시는 분인데, 그동안 너무 속 썩였던 거지.”
‘아, 씨발 술맛 떨어지네.’
장민재는 짜증이 났지만 내색하지 않고 참았다.
하지만 황병철의 이야기가 계속될수록 돈 빌려달라는 말을 꺼내기가 힘들어졌다.
집안이 빚에 허덕이고 아버지 장사도 잘되지 않아서 돈을 버는 족족 집안을 위해 쏟아붓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빚은 거의 다 갚았으니 올해만 지나면 사정이 나아질 거라고 희망적으로 말하는 황병철이었지만, 장민재는 지금 당장이 중요했기 때문에 안색이 안 좋아졌다.
“야, 그래도 이번에 우승하면 상금 장난 아니지 않냐? 1억이었나?”
“말도 마라, 그것 때문에 내가 아주 미치겠다.”
“왜 미쳐?”
“다음 주 결승전에 아버지도 와서 응원하실 텐데…….”
“응원해 주는데 좋지 왜?”
“이신.”
그 한마디에 장민재는 단번에 납득할 수 있었다.
“지난번에도 결승에서 만났는데 완전 처발렸잖아.”
“아…….”
“아버지 어머니 열심히 응원하시는데 어떻게 그 앞에서 3 대 0으로 개박살을 내냐. 뭔가 준비한 걸 보여줄 기회도 안 주고…… 완전 악마 같은 새끼야.”
‘뭘 해볼 기회도 안 주는 게 내가 준비한 전략이었으니까.’
이신은 덤덤히 생각했지만, 약간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작년 전반기 개인리그에서 붙었을 때는 낚시까지 해서 황병철을 바보로 만들었었다.
그냥 실력으로 찍어 누르는 것보다 그 편이 더 짜릿하기 때문이었다.
부모님이 그걸 현장에서 보고 있었다니 조금 미안하긴 했다.
‘그래도 승부는 승부지만.’
또 그 상황이 되더라도 똑같이 했을 것이다. 실제로 그다음의 후반기 개인리그 때도 비슷한 전략을 구상했었다.
“그 새끼 분명 이번에도 비슷한 전략 준비했을 텐데 벌써부터 걱정된다. 그 자식 그냥 평범하게 이기는 거 안 좋아하거든. 날 존나 병신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나봐.”
‘그래야 팬들이 좋아하니까.’
“아오, 누가 그 새끼 손모가지 안 부러뜨려 주나?”
‘……!’
그 말에 이신은 굳어버렸다.
“왜? 내가 부러뜨려 줄까?”
장민재가 무서운 눈을 띠며 반응했다.
“뭐?”
“내가 그 새끼 손목 아작 내줄게 우승상금 반 띵, 콜?”
“…….”
황병철은 그런 장민재를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술이나 마셔라 인마.”
하지만 함께 술을 마시면서 장민재의 이글거리는 눈빛은 꺼질 줄을 몰랐다.
국내 개인리그 우승상금은 1억.
그 절반은 5천.
세금 떼고 뭐 하고 해도 큰돈이었다.
전에도 돈 필요할 땐 야밤에 취객 상대로 뻑치기도 해본 장민재였다.
이미 황병철과 달리 크게 어긋나 있었던 장민재에게 그런 일을 저지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술을 다 마시고 헤어지면서, 숙소로 돌아가는 황병철의 뒷모습을 보며 장민재는 히죽 웃었다.
“네가 시킨 거다, 황병철. 난 네가 시켜서 한 거야. 그러니까 잘되면 내게 대가를 치러야 해. 안 그러면 내가 자수해서 다 실토할지도 모르잖아. 안 그래?”
그리고 다음 날, 장민재는 4강전을 가뿐하게 승리로 장식하고 결승에 진출한 이신을 습격했다.
대한민국은 난리가 났지만, 장민재는 아랑곳하지 않고 황병철을 조용히 불러 협박했다.
황병철은 미쳤냐며 화를 냈지만, 장민재는 히죽거리며 말했다.
“나 수틀리면 자수해서 무조건 네가 시켰다고 할 거야. 네가 부정하면 어쩔 건데? 사람들이 믿을 것 같아? 그땐 너도 나도 같이 훅 가는 거야, 알았냐?”
“이런 개새끼가……!”
“어이, 슈퍼스타 씨. 우리 같이 좀 살자. 나 여친 임신해서 힘들어 죽겠다니까.”
“……!”
“친구 좋다는 게 뭐냐? 응?”
황병철은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e스포츠 팬들이 분노에 휩싸여 있는 시기였다.
진실을 누가 알아줄까?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사건에 연루만 되어도 끝장이었다. 대중은 진범이 아니라 범인으로 지목된 사람을 원하고 있었다.
아마도 거기서부터 잘못된 것이리라.
결승전은 부전승으로 올라온 신지호와 치렀다.
둘 다 정신적으로 타격을 입은 탓에, 그야말로 졸전이었다.
우승 상금은 현금으로 인출해 몇 차례에 걸쳐 장민재에게 건넸다.
그렇게 끝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 뒤에도 한참 동안 잠잠하던 장민재는 수시로 찾아와 돈을 빌려달라고 했다.
갑자기 손에 들어온 거금을 감당 못하고 진탕 써버린 것이다.
황병철의 부진이 시작된 것도 그때부터였다.
파앗!
회상은 그렇게 끝났다.
“윽.”
삽시간에 밀려드는 현기증에 머리가 띵했다. 이신은 위태롭게 비틀거리다가 침대에 쓰러졌다.
아마도 과거의 비밀을 알게 된 후유증인 모양이었다. 가벼운 현기증 정도라서 다행이었다.
구역질이 날 것 같은 걸 꾹 참으면서, 이신은 피식 웃었다.
‘다행이다.’
자신의 주변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에 이신은 안도하였다. 루머와 달리 자신의 라이벌 황병철은 죄가 없었다.
장민재라는 양아치 따윈 알 바가 아니었다. 놈을 어떻게 대가를 치르게 할지는 당장 궁리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이걸로 안심하고 게임에 집중할 수 있겠군.’
이제야 과거를 완전히 털어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