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s Strategy to Conquer the Entertainment Industry RAW novel - Chapter (110)
천재 아이돌의 연예계 공략법 110화
보통 가로세로 길이가 비슷한 사물함이 있을 법한 교실 뒤쪽 공간에는 세로로 길쭉한 캐비닛이 쭉 늘어서 있었다.
그리고 세믈리에 특성의 말대로 그중 한 캐비닛에서 꺼림칙한 느낌이 났다.
나 보라는 듯 교실 중앙에 앉아 있는 여학생 귀신.
그리고 체격이 너무 크지 않은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들어가고도 남을 캐비닛.
저 안에 귀신이 들어 있다고 생각하니까 왠지 아까부터 아주 살짝씩 움직이는 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다.
나는 신발을 벗어 손에 들었다.
“신발은 왜…….”
“쉿. 제가 다 생각이 있습니다.”
벗어든 신발 두 짝을 한 손에 든 나는, 가운데에 있는 책상 앞으로 뒤꿈치를 들어 올린 채 다가가 소곤소곤 여학생 귀신을 불렀다.
“누나? 귀신님?”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친근감을 유도하기 위해 귀신님 대신 누나라는 호칭을 선택했다.
“누나, 저 안에 있는 분한테 뛰쳐나올 타이밍 같은 거… 안 알려주시면 안 돼요?”
“!”
보기 흉하게 이리저리 헤쳐진 머리카락 사이로 어떻게 알았냐는 듯한 시선이 나를 향했다.
‘찔러본 건데, 맞았네.’
겉으로 보기에 캐비닛에는 바깥을 내다볼 만한 틈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안쪽에서 뛰쳐나올 타이밍을 정확히 가늠하기 위해서는 실시간으로 내 위치를 알려주는 단서나 신호가 필요했다.
그리고 내가 봤을 때 이 방에는 그 신호를 줄 만한 요인이 여학생 귀신밖에 없었다.
아마 내가 저 캐비닛에 가까이 다가가 확실하고 효과적으로 나를 놀라게 할 수 있는 순간이 오면, 의자나 책상을 덜컹덜컹 흔들거나 읽는 척을 하던 책을 바닥에 떨어뜨리는 등 어떤 소리로 신호를 주지 않을까.
얌전하게 책만 읽다가 갑자기 이상 행동을 보이면 내 주의는 당연히 여학생 귀신 쪽으로 쏠릴 테고, 그러면 캐비닛 쪽에서 불쑥 들어오는 대미지도 자연히 극대화되겠지.
“저희 감독님이 이런 거 진짜 무서워하셔서 귀신 또 뛰쳐나오면 기절하실 수도 있단 말이에요.”
눈을 똑바로 마주치지 못하는 여학생 귀신과 끈질기게 아이 컨택을 시도하며 조곤조곤 설득한 끝에, 여학생 귀신이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협력을 얻어낸 나는 살금살금 문제의 캐비닛에 다가갔다.
내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가까이 다가가니 캐비닛 안쪽에서 인기척이 아까보다 확실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똑똑.
“안녕하세요.”
나는 그렇게 노크를 하자마자 문을 벌컥 열었다.
“…?”
예상대로 안에 숨어 있던 남학생 좀비가 어리둥절한 눈치로 캐비닛 밖으로 나왔다.
남학생 좀비는 상황 파악을 하려는 듯 얌전히 있는 여학생 귀신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아까 여학생 귀신과 내가 나눴던 대화가 캐비닛 안에서는 안 들렸나 보다.
여학생 귀신이 고개를 돌리며 남학생 좀비의 추궁하는 듯한 시선을 은근슬쩍 피했다.
두 사람의 무너진 신뢰 관계는 알아서들 재건하라 하고, 나는 내 목적에 집중했다.
“혹시 반지 보셨… 어, 갖고 계시네요. 그거 저 주시면… 앗, 감사합니다. 두 분 다 고생하세요. 감사합니다.”
캐비닛 안에 있던 남학생 좀비에게 수월하게 반지를 수거한 나는 신발을 다시 신고 겁 많은 감독님을 위해 그 뒤로 나오는 이상한 장치나 방들을 빠르게 돌파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앞에 나타난 출구에서 기다리던 스태프에게 챙겨온 반지 케이스를 보여준 후, 우리는 밖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신선한 공기가 우리를 반겼다.
“감독님, 고생하셨어요.”
“라온이 네가 더 고생했지. 생각보다 겁이 없다 너.”
“사실 감독님이 옆에서 너무 무서워하셔서 제가 무서워할 틈이 없었어요.”
카메라를 내려놓고 십 년 감수한 사람처럼 온몸에 힘을 뺀 채 앉아 있던 감독님이 멋쩍게 웃었다.
견성하는 괜찮으려나.
다른 녀석들은 딱히 걱정이 안 되는데 걔는 참 걱정이 됐다.
그래도 강지우가 같이 갔으니까 괜찮겠지?
* * *
괜찮지 않았다.
“안에 에어컨 엄청 빵빵하던데 두 사람 다 무슨 땀을 그렇게….”
온라온 다음으로 귀신의 집을 빠져나온 반요한과 서문결이 세상 멀쩡해 보였던 것에 반해, 마지막으로 들어갔던 강지우와 견성하는 땀 범벅이 되어 나왔다.
“마지막 하나가 진짜 찾아도 찾아도 안 나와서 귀신 한 분 붙잡고 노래 불러드리고 싹싹 빌어서 겨우 찾았다.”
“어쩐지 안에서 노랫소리가 들리는 것 같더라니…….”
“으, 피 냄새랑 이상하게 퀴퀴한 냄새 계속 맡았더니 토할 것 같아요.”
이번에는 강지우도 더러운 얘기 하지 말라는 소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지우와 견성하가 어느 정도 진정한 것 같자 제작진은 멤버들의 주의를 집중시켰다.
“그럼 지금부터 반지 수여식이 있겠습니다.”
멤버들이 각자 손에 들고 있던 반지 케이스를 흘긋 보았다.
열어보지 말고 갖고만 있으라는 제작진의 말에 아직 안쪽을 확인하지는 않은 상태였다.
“그동안 짧은 시간이었지만 ‘친해져요, 오르카’ 촬영을 하며 멤버들과 소중한 추억을 많이 쌓으셨을 거라고 생각되는데요. 마지막으로, 이제까지 고생한 멤버에게 격려의 말과 함께 본인이 찾아온 반지를 직접 끼워주시면 되겠습니다.”
가장 먼저 리더인 강지우가 귀신의 도움을 받아 고생 끝에 찾을 수 있었던 반지의 주인을 확인했다.
안쪽에 새겨진 ‘YH’라는 이니셜을 보아 반요한의 것이었다.
제작진의 지시대로 반요한의 두 손을 붙잡은 강지우가 진지하게 말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너랑 같이 데뷔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네가 있어서 솔직히 마음이 가벼워진 느낌이야. 오래 알고 지내서 그런가,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든든하다고 해야 하나. 그동안 많이 고마웠고 앞으로도 한 팔십 년쯤 더 잘 부탁한다.”
뒤이어 강지우가 드물게 낯간지러워하는 티를 내는 반요한의 왼손 검지에 반지를 끼워줬다.
온종일 티격태격하던 두 사람은 멤버들과 제작진의 박수갈채 속에서 어색하면서도 더없이 친밀한 포옹까지 마쳤다.
그 뒤를 이어 반요한이 양호실에서 찾아온 반지의 주인을 확인했다.
온라온의 것이었다.
“넌 괜찮다고 했지만.”
강지우가 했던 것처럼 온라온의 두 손을 잡은 반요한이 차분히 입을 열었다.
“저번에 말했던 것처럼 사람이 늘 괜찮을 수는 없는 거니까. 앞으로 힘든 일 있으면 나나 다른 애들한테 언제든지 얘기해. 이제 같은 팀이고 가족이잖아.”
예상치 못했던 말에 온라온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르카라는 그룹이 앞으로 네가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됐으면 좋겠어.”
그렇게 말하며 반요한이 반지를 온라온의 왼손 검지에 끼워줬다.
“고마워.”
두 사람이 가볍게 포옹할 때 온라온이 한 말이었다.
세 번째로 온라온이 남학생 좀비에게 받아 온 반지의 주인을 확인했다.
“우리 문결이 아니고 결이 형.”
노래하듯 명랑한 어조에 주위에서 짧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서바이벌 때부터 나 많이 도와줘서 너무 고맙고. 진짜 내가 아는 사람 중에 형이 제일 배려심 깊고 착하거든. 그래도 앞으로는 우리를 생각하는 만큼 형 생각도 많이 해줬으면 좋겠어. 근데 그러기 어렵다면 뭐 어쩌겠어…. 우리가 형 생각을 더 하는 수밖에 없지.”
장난스럽게 웃으며 반지를 끼워준 온라온이 자신과 마찬가지로 또래 사이에서 고단한 시절을 보냈던 서문결을 꽉 안아주었다.
“앞으로 더 더 더 잘해줄게.”
“나도.”
서문결이 음악실에서 찾아온 것은 견성하의 반지였다.
“옛날에 회사에 다른 멤버들은 없고 우리만 있을 때, 연습하면서 네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견성하의 두 손을 잡은 서문결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랑 잘 지내줘서 고맙고… 함께 데뷔할 수 있어서 기뻐. 그리고 네가 노력하는 걸 보면서 배울 때도 많아.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너는 훨씬 잘하고 있으니까 자신감 가지고, 앞으로 같이 잘해보자.”
첫 문장이 끝날 때부터 울컥했던 견성하의 왼손에 반지가 끼워졌다.
마지막으로, 견성하가 강지우의 두 손을 잡았다.
“저는 형이, 우리 팀에 와줘서 너무 감사하고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그 언젠가, 불도저처럼 대표실 문을 두드리던 강지우의 모습을 떠올린 견성하가 괴로울 만큼 매이는 가슴에 말을 잠시 멈췄다.
“지우 형은 제가 상상도 못 할 만큼 대단하고 용감하고 멋있는 형이에요. 우리 리더가 되어줘서 감사합니다.”
조금 짧은 말이었지만, 한 단어 한 단어에 고마운 감정이 꾹꾹 눌러 담겨 있었다.
큰 사건을 함께 겪었기 때문인가, 서로 알아온 시간들에 비해 쌓인 정이 깊고 단단했다.
그렇게 멤버들의 왼손 검지에는 똑같은 모양의 반지가 자리 잡았다.
멤버들의 언행에 서로를 소중하고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고스란히 녹아나서, 한 차례가 끝날 때마다 박수를 쳐주던 스태프 중 감수성이 풍부한 몇몇은 남몰래 눈가를 훔치고 있었다.
“아쉽게도 ‘친해져요, 오르카’ 촬영은 오늘이 마지막이지만, 여러분이 앞으로 더 오래오래 건강하게 멋진 추억들을 쌓아가기를 저희 제작진이 진심으로 응원하겠습니다.”
이후에도 개인 인터뷰 컷을 찍는 등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었지만 이렇게 밖에 나와 대대적인 촬영을 하는 것은 오늘이 마지막이었다.
멤버들이 아쉬워하는 소리를 내었지만, 끝은 끝이었다.
이후 SNS 이벤트 상품으로 나갈 폴라로이드 단체 사진도 손에 낀 반지가 잘 보이는 포즈로 몇 컷 찍고 난 뒤 이날의 촬영이 모두 마무리됐다.
* * *
의상을 입은 채 개인 인터뷰까지 모두 촬영하고 나서야 숙소로 돌아왔다.
늦은 밤이었지만 우리는 바로 잠자리에 들지 않고 거실에 모여 각자 외국어 공부를 했다.
다들 내일 아침 레슨 때까지 해 가야 하는 숙제가 있는데, 오늘 온종일 밖에서 촬영하느라 숙제를 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왼손 검지에서 반짝이는 반지를 보면 신기하다는 감상이 가장 먼저 들었다.
다섯 명이 똑같은 반지를 똑같은 손가락에 끼고 있다는 사실이 몹시도 신기했다.
돌아오는 길에 차에서 농담 아닌 농담으로 “앞으로 반지를 빼놓고 다니면 그룹에 심각한 불만이 있다는 뜻으로 간주하겠다”는 말까지 나왔으니 아마 한동안은 계속 끼고 있지 않을까 싶다.
아무래도 재미없는 외국어 교재보다는 낯선 감촉이 느껴지는 왼손 검지에 시선이 더 가고 있을 때.
늘어지는 듯한 하품과 함께 책을 덮은 강지우가 우리 눈치를 보다가 슬쩍 입을 열었다.
“반지 하니까 작년 일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