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s Strategy to Conquer the Entertainment Industry RAW novel - Chapter (154)
천재 아이돌의 연예계 공략법 154화
막판에 물에 빠져 쫄딱 젖은 온라온은 무슨 재료를 가져왔는지 주머니에서 하나하나 공을 꺼내 보이며 하는 인터뷰를 모두 마치고 덜덜 떨며 옷을 갈아입으러 갔다.
“……진짜 대단한 것 같아요.”
그렇게 2차 예선의 전초전을 끝내고 한숨 돌린 멤버들 사이에서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던 견성하가 조용히 말을 꺼냈다.
“뭐가?”
마지막에 삐끗해서 넘어지기는 했지만 꼼꼼히 확인한 끝에 다친 곳이 없음을 확인하고 마음을 약간 놓은 강지우가 되물었다.
동생들의 이야기를 듣고자 할 때 강지우가 익히 내는 온화한 목소리였다.
“그냥…… 나였으면 아까 그 상황에서 창피해서 아무것도 못 했을 텐데.”
넘어진 것을 단순한 해프닝으로 넘기지 않고 순발력 있게 또 다른 기회로 살려낸 것을 말했다.
온라온이 없는 자리라 작은 소리로라도 꺼낼 수 있는 말이었다.
1차 예선에서 이 자리에 있는 누구보다 많이 활약해 놓고 왠지 풀 죽어 있는 견성하에 형들이 약속한 것처럼 시선을 주고받았다.
견성하가 저러는 것은 사실 익숙했다.
그들의 막내와는 또 다른 의미로 손이 많이 가는 동생이지만, 저 스스로 열심히 하려는 것을 알기에 조금 성가시기는 해도 밉지 않았다.
“그게 뭐가 어때서.”
“그냥 온라온이 특이한 거야. 너 같으면 물에 빠졌는데 아, 빠졌구나, 말고 무슨 생각이 더 나겠니?”
“내가 봤을 때 그냥 쟤는 무서운 게 없는 거다.”
서문결과 반요한, 강지우가 차례로 가벼운 어조로 말했다.
“아니야. 걔 저번에 안 무서워하는 척했는데 롤러코스터 무서워했어.”
“맞아.”
“그럼 그냥 얼굴 믿고 저러는 것 같은데.”
“그거다.”
그럴 만해. 강지우가 덧붙인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런데 형들도 저 비슷하게 했을 것 같아. 성하도.”
서문결이 조용히 건넨 말에 멤버들은 입을 다물었다.
저 상황에서 서로가 취할 법한 행동들이 너무나도 잘 상상되었기 때문이다.
온라온만큼 뻔뻔하지는 못해도, 뭐라도 하면 했지 얌전히 물에 빠진 생쥐 꼴로 있을 인간들은 아니었다.
“어쨌든 성하 너는 애초에 라온이처럼 중간에 멈추지 않고 끝까지 갔잖아.”
“맞아. 넌 그럴 수 있는 능력자라고.”
“성하야, 당당해지렴. 우리는 네 덕분에 그 빡빡했던 1차 예선을 통과할 수 있었던 거야.”
형들이 이렇게 잘 받아주니 견성하는 괜한 투정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가끔 제 속내를 꺼내놓고는 했다.
견성하가 어느 정도 괜찮아진 것 같자 강지우가 반요한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근데 라온이 단독으로는 음료수 CF 들어왔었지?”
“어. 그거 말고도 많을걸. 화장품이나 카페 같은 거……. 근데 다 안 한다고 했잖아.”
작년 여름, 픽하트에서 탈락한 온라온은 특출난 비주얼과 감명 깊은 개인 서사를 통해 광고업계의 러브콜을 받았다.
순간의 화제성을 가파르게 소모해 가며 한 철 장사를 하고자 했던 것이 아니었기에 제안을 모조리 거절한 본인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도리어 주변 사람들이 시간이 꽤 흐른 지금까지도 더 아쉬워하고 있었다.
“…….”
잠깐의 침묵.
“에잇. 그냥 우리가 더 열심히 하고 밤마다 기도해서 얼른 뜨자.”
반요한이 한 말에 강지우가 고개를 끄덕이다 말고 눈썹을 찡그렸다.
“기도는 갑자기 왜 나오는데?”
“내가 봤을 때 뜨는 건 노력만으로 안 돼. 운도 터야 해. 하늘의 뜻이 좀 필요하다고.”
“너 종교 없잖아.”
“그런 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
“믿음이 그렇게 얄팍한데 효과가 있겠냐?”
“당연히 그냥 하는 말이지 왜 말꼬리를 잡아?”
막 시작하려던 둘의 입씨름은 아까 레이스 때 기운을 다 썼는지 약간 가라앉은 표정으로 안쪽에서 걸어 나오는 온라온을 발견하는 것과 동시에 멈췄다.
* * *
이후 촬영은 순탄하게 이어졌다.
중간중간 청춘 남녀를 어떻게든 엮어보려는 방송국의 시도가 있었지만, 우리와 체리스틴은 연애 감정 따위는 범접 불가능한 남매라는 관계 설정을 적극적으로 내세워 시련을 돌파해 나갔다.
그랬더니 제작진이 그럼 가족 설정이 아닌 멤버들끼리 하는 건 어떠냐고 슬쩍 운을 떼었다.
그리고 우리는 멤버들이야말로 서로에게 있어 가장 가족 같은 존재이며, 가족의 가족도 내 가족이라 그럴 수 없다는 말부터가 혼란스러운 논리를 펼쳐 수작질을 방어했다.
‘너희 같은 게 감히 우리한테 개겨?’
……따위의 말이 방송국 관계자들 사이에서 나오지 않도록.
어디까지나 예능적 재미를 추구하기 위해 이러한 설정을 한 것임을 은근슬쩍 어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솔직히 눈 가리고 아웅이었지만, 우리와 체리스틴이 뭐만 하면 웃음을 터뜨리는 촬영장 분위기로 봤을 때 그게 잘 먹혀들어 간 것 같았다.
후에 방송국의 보복을 걱정하지는 않아도 될 듯하다.
아무튼 드디어 강지우가 제 요리 솜씨를 세상에 드러낼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으, 재료에 고기가 없는 걸 보니 속이 쓰리다.
“고기 못 가져와서 미안….”
건너편에 두고 온 돼지고기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다른 걸 버려도 그건 꼭 가져왔어야 했는데.
다른 재료들은 강지우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할 만큼 알차게 챙겨왔지만 마지막에 고기를 놓친 게 영 아쉬웠다.
“아냐! 잘했어!”
자기는 고기 없이도 맛있는 음식을 하는 방법을 수십 가지는 알고 있다며 강지우가 나를 안아줬다.
저 말이 사실인지 허풍인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실내 난방이 부실해 아까 물에 빠질 때 확 식어버리고 아직도 안 돌아온 체온 때문에 약간 추웠는데 이러고 있으니까 좀 나아지는 기분이었다.
평소에는 멤버들끼리 하는 스킨십을 유난히 좋아하는 강지우가 이렇게 달라붙는 걸 달갑게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지금은 이야기가 좀 달랐다.
평균보다 약간 뜨거운 편인 강지우의 체온이 딱 적당히 따뜻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강지우가 날 안은 채로 눈짓 손짓을 하며 다른 멤버들도 부르는 바람에 우리는 별안간 아무 일도 없는데 서로 끌어안고 있는 5인이 되어버렸다.
주변에 있던 다른 아이돌들과 방송국 스태프가 우리를 신기한 동물 보듯 한 번씩 쳐다봤다.
관심 끌 짓이란 짓은 오늘 여기서 다 하고 가는군.
오늘 이후 다른 아이돌들에게 관종돌이라고 불려도 놀랍지 않을 자신이 있다.
사실 웃긴 건 강지우는 자기가 먼저 남한테 하는 건 좋아하면서 남이 자기한테 하는 건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는 거다. 내로남불이 대단한 놈이었다.
한참 뒤, 답답해진 내가 밑으로 쏙 빠져나오며 말했다.
“그래도 고기가 있다면 더 맛있었겠지.”
이 말에는 강지우도 반박하지 못했다.
고기는 언제나 옳았다.
늦은 밤이 다 되어서야 2차 예선 후반전이 시작됐다.
이대로라면 숙소에는 오늘 새벽에나 들어가겠다.
은총 스킬을 남발할 수는 없어서 사용하지 않았더니 눈이 자꾸 감겨올 때, 스태프가 참가자들을 불렀다.
“요리하는 분들은 천막으로 이동할게요!”
“다녀올게.”
“부담 갖지 말고 잘하고 와.”
“말 앞뒤가 좀 안 맞지 않냐? 지금 네가 부담을 주고 있는데?”
“그럼 부담 갖고 잘하고 와!”
“오냐.”
아까 나와 지영서가 가져온 재료 목록을 보며 함께 이것저것을 신중하게 상의하던 강지우와 이다인이 비장한 표정으로 천막 안으로 사라졌다.
저 천막 안에 요리 설비가 마련되어 있었다.
다행히 천막 내부의 상황은 여러 조의 모습을 동시에 띄워둔 전광판을 통해 볼 수 있었다.
이럴 거면 그냥 천막을 치워주면 안 되나. 조금 답답했다.
본선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음식 맛을 심사받아 상위 4조에 들어야 한다.
참고로 심사는 현직 요리사들이 와서 할 예정이었다.
– 그럼 지금부터 2차 예선 후반전을…….
– 시작하겠습니다!
낮과 비교해 부쩍 피곤해진 게 보이는 한기준이 시작을 알리자 구색 맞추기용으로 앞치마를 착용한 아이돌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작하자마자 가스 불을 켜 프라이팬을 예열하기 시작한 조도 있었고, 쓸 만한 재료가 몇 없어 곤란해하는 조도 있었다.
어쨌든 그룹별로 한 명씩은 요리할 줄 아는 사람이 있는 듯했다.
그리고 강지우와 이다인은 말 한마디 없이 현란하게 칼질을 하고 냄비에 물을 촤라락 붓고 있었다.
시간이 점차 흐를수록 실제로 그럴듯한 음식의 형태가 잡히며 한기준이 강지우와 이다인을 향해 프로 같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다른 조를 살펴봐도 저 둘이 단연 수위에 꼽혔다.
– 강지우는 부모님이 실제로 식당 일을 하시고 본인도 한때 요리사가 꿈이었다고 하네요.
한기준이 강지우의 집안 내력을 설명하는 것과 동시에, 강지우가 화려한 불 쇼를 펼쳤다.
강지우도 견성하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배우상인데, 저러고 있으니, 마치 청춘을 불태우는 요리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꺅 함성을 지르는 에어리 역시 해가 떠 있을 때와 비교해 기운이 확연히 빠진 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피곤하겠지.
하루종일 우리 얼굴은 볼 만큼 봤으니 그들도 나처럼 이제 그만 집에 가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유하나가 천막 안으로 들어가 중간중간 요리하는 이들을 짤막하게 인터뷰했고 한쪽에 자리한 심사위원들도 그들이 요리하는 모습을 보며 때때로 코멘트 했다.
“지금 몇 개를 동시에 하는 거야?”
“각자 두 개씩 하는 것 같은데.”
“와, 그게 돼?”
이다인도 정신없이 움직였지만, 강지우는 정말로 손발을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분주하게 움직였다.
거의 무슨 쿠킹머신이었다.
심사위원들도 급해 보이는데도 실수하거나 흐트러지는 게 없다고 감탄했다.
– 이유현 심사위원님, 지금 강지우 실력이 어떻습니까?
– 칼질부터 마음에 듭니다. 제 제자로 받고 싶네요.
– 아, 극찬 나왔습니다! 저는 오르카가 수치를 모르는 그룹인 줄 알았는데 다들 숨겨둔 한 방이 있네요.
수치를 모르는 아이돌, 일명 수모돌이 우리 별명으로 추가되는 순간이었다. 한기준 개자식.
– 아, 다들 슬슬 마무리해 주셔야 합니다.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 네! 여기까지!
– 다들 조리대에서 떨어지시고요.
– 더 하시면 실격입니다.
종이 울리자마자 뒤로 한발 물러나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소매로 슥 닦은 강지우가 오른편에 있는 카메라를 똑바로 보더니 언제 불 같은 눈으로 음식을 노려봤냐는 것처럼 상냥하게 웃었다.
상견례 프리패스상이라는 게 저런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