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s Strategy to Conquer the Entertainment Industry RAW novel - Chapter (220)
천재 아이돌의 연예계 공략법 220화
1층 주민에게 사인을 해주고 사진까지 함께 찍은 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내내 머릿속에서는 온갖 상념이 휘몰아쳤다.
아니, 대체 이걸 어떻게 해야 저 위에서 떨어뜨려?
아니면 실수로 떨어뜨린 게 아니라 일부러 버렸나?
……그래도 생각은 있는 녀석이니까 버리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그런데 진짜 어쩌다가 떨어뜨린 건지 너무 궁금해서 당장 물어보고 싶다.
이 와중에 강지우한테 솔직하게 말했는데, 정작 강지우는 안 믿어주고 가차 없이 녀석을 매도했다는 점이 어이없었다.
‘곱게 돌려주기는 싫은데.’
말아쥔 손 안에 있는 반지의 촉감을 느끼며 생각했다.
그런 일이 있었는데 이걸 얌전히 가져다 바치면 그 자식이 날 호구라 생각하지 달리 뭐라고 생각하겠는가?
절대 그런 꼴은 못 봤다.
띵,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숙소 문을 열고 들어가자 거실에서 TV를 보던 견성하가 나를 맞았다.
“왔냐?”
“왔다. 집에 요한이 형 있어?”
“있는데.”
“어디?”
“저기.”
견성하가 약간 불안해 하는 눈으로 베란다를 흘긋 보았다.
반요한의 뒷모습이 보였다.
날도 더운데 에어컨도 없는 베란다에서 왜 저러고 있는지.
‘밑에 떨어진 반지 찾냐?’
하, 하는 웃음이 입술 새로 가늘게 새어 나왔다.
내가 곧장 베란다 쪽으로 몸을 틀자, 견성하가 나를 붙잡고 당부했다.
“싸우지 마. 알았지?”
“안 싸워.”
그 길로 베란다에 들어가 문을 닫았다.
현관문 닫히는 소리가 진작 났을 텐데도 그제서야 반요한이 사뭇 냉정한 낯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왜. 이제 미안하다고 할 마음이 들었어?”
여전히 반요한의 손에는 반지가 없었지만, 녀석은 반지를 잃어버린 일이 없는 것처럼 내게 태연히 물었다.
그야 설마 돌고 돌아 이 반지가 내 손에 들어왔다는 건 녀석은 까맣게 모르겠지.
“…….”
그나저나 큰일이다.
이 반지 때문에 다른 생각이 싹 날아가서 내가 뭘 잘못했는지 생각하는 걸 깜빡했다.
며칠 동안 생각해 보기도 했지만, 이거라고 오는 게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잘못의 양은 막 깨어난 사람한테 고압적인 태도로 자기 할 말을 지껄인 데다 팀 반지까지 잃어버린 저 녀석이 더 많은 셈이었다.
“형 먼저 말해.”
나는 당당하게 요구했다.
“그래. 내가 힘든 일 겪은 너한테 말을 함부로 한 거 미안해. 화가 나더라도 조금 더 부드럽게 표현했어야 하는데. 내 실수였어. 미안해.”
냉랭함이 조금 가셔 온순해진 얼굴로 순순히 흘러나오는 사과에 나는 순간 손에 있던 반지를 놓쳐 다시 밑으로 떨어뜨릴 뻔했다.
‘이, 이게 아닌데?’
유유한 말 자체는 내 손에 반지를 끼워주던 날처럼 진솔하게 다가와서 대충 끝내버리자는 식의 사과라고 볼 수도 없었다.
반요한은 재수 없는 여유가 흘러넘치는 태도로 이어 말했다.
“이제 네 차례야.”
“어…….”
반요한은 쉽사리 답하지 못하는 내게 충분한 시간을 주었다.
그러고 나서도 내가 답하지 못하자.
“잘 모르겠지?”
“…….”
“너는 아마 일 년 내내 고민해도 모를 거야. 거기다가 쓸데없는 고집 부리느라 뭔가를 확실히 알아내기 전에 나한테 먼저 오지도 않았겠지. 그러는 동안 너 혼자 힘들 게 분명한데도. 방금 한 말에 동의하니?”
이 자식이 또 상냥한 말씨로 막말을 지껄이는 것 같은데 내 착각인가.
“……형 말이 맞아.”
하지만 사실이었다.
갑자기 얻은 이 반지만 아니었어도, 내가 대화할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이 녀석을 먼저 찾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지지부진한 상태가 얼마나 오래갔을지는 잘 모르겠다.
“강지우는 너 혼자 생각해 보라는 식으로 충고했겠지만, 나는 답답한 거 별로 안 좋아하거든. 기다리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하고.”
“……그래서?”
뭐야. 이제 내 사과 같은 걸 받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거야?
내 얼굴을 본 반요한이 짧게 웃었다.
“내가 알려주면 들을 거니?”
“들어는…… 볼게.”
갸름한 낯에 얇게 내려앉았던 서늘함을 집어치우고 어쩔 수 없다는 듯한 미소를 머금은 반요한이 조곤조곤 말했다.
“너는 너한테도, 네 주변 사람들한테도 너무 매정해.”
“뭔 소리야?”
내가 매정하다고? 아닌데?
나한테 매정하다는 말은 또 뭐야.
내가 호구라는 거냐?
“나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너를 걱정하고, 신경 쓴단 말이야.”
낯 간지럽게 대체 뭐라는 거야, 이 인간이?
“뭐어, 네가 너한테 함부로 하는 것에 대해 나한테 무조건 화낼 자격이 있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화가 나더라.”
내 표정을 잠시 살핀 반요한이 다시 한번 느슨하게 웃었다.
“물론 이런 말을 한들 네가 갑자기 엄청난 깨달음을 얻을 거라는 기대는 전혀 안 해.”
다소 모욕적이었지만, 그 말대로 이 녀석이 지금 무슨 의도로 이런 말을 하는 건지 전혀 모르겠다.
“한 번 봐준다고 했지? 이걸로 봐줄 테니까 오늘 한 말 앞으로 더 생각하고 노력해 봐.”
반요한은 이렇게 금방이라도 대화를 끝내려는 태세였다.
마음이 급해졌다.
이대로면 내가 진 것 같은 분위기로 끝나고 만다.
자존심상 그럴 수는 없어서 나는 반지를 쥔 손에 조금 더 힘을 주며 반요한에게 따지듯 물었다.
“반지는?”
“반지?”
묘한 표정을 지은 반요한이 제 손을 한 번 보더니 대수롭지 않은 척 말했다.
“회사에 두고 왔어. 내일 찾으러 가려고.”
그새 새로 주문한 거 내일 오냐?
어처구니가 없어진 나는 그대로 녀석의 왼손을 홱 잡아채서 내내 손에 쥐고 있느라 따끈따끈해진 반지를 있어야 할 곳에 끼워주었다.
반요한은 생각보다는 침착한 투로 물었다.
“이게 왜…….”
“왜겠냐? 하…. 반지를 회사에 두고 오기는! 어떻게 이 중요한 반지를 저 밑에 떨어뜨려서…….”
내 핀잔에 반요한이 작게 웃었다.
“하하. 중요하다는 걸 알기는 아는구나.”
반응이 왜 이래.
반성은 못 할지언정 웃어?
지금 웃음이 나와?
“지금 웃음이 나오냐? 견성하나 지우 형이면 이 타이밍에 감동해서 무조건 울었을 거야.”
“감동은 했어.”
“그렇지.”
“내 배려심과 인품에.”
“사람이 덜 됐군.”
조금 뒤, 다시 내놓으라 외치며 팔을 잡아당기는 내 손을 피해 반요한이 어디 한번 뺏어보라며 왼손을 높이 치켜들었다.
그러는 동안 오랜만에 들어보는 반요한의 산뜻한 웃음소리가 베란다에 낭랑히 울렸다.
* * *
이틀 전.
반요한은 손에 케이크 하나를 들고 103호 주민을 찾아갔다.
딩동거리는 초인종 소리가 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인터폰에서 중년 여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누구세요?
“안녕하세요. 저 1803호인데요. 잠깐 드릴 얘기가 있어서요. 혹시 조금만 시간 내 주실 수 있으세요?”
– 1803호면…… 아, 그 아이돌 사는 집 맞죠?
아파트 주민 사이에서 1803호에 오르카가 산다는 소문이 퍼진 건 오래된 일이었다.
“네. 맞습니다.”
– 네. 잠시만요.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열렸다.
“안녕하세요. 1803호 사는 오르카 반요한이라고 합니다. 이거는, 저 앞에 있는 아보 베이커리에서 사 온 건데 케이크 싫어하지 않으시면 가족분들이랑 나눠 드세요.”
“뭐 이런 걸 다…. 괜찮은데.”
“아니에요. 받아주세요. 어디 갈 때는 빈손으로 가는 거 아니라고 배우기도 했고, 또 저희가 늘 폐를 끼치는 것도 너무 죄송해서요.”
“그럼…… 고맙게 잘 먹을게요.”
“뭘요.”
“할 얘기 더 있으면 일단 들어와서 얘기할래요?”
반반하게 잘생긴 청년의 예의 바른 태도에 처음에는 조금 경계하는 기색이던 1층 주민은 금세 반요한을 집안에 들였다.
“사생 문제는 정말 죄송합니다. 많이 불편하시죠. 회사도 강력히 대응하려고 노력은 하는데 아무래도 현행법상 쉽지 않아서…….”
“괜찮아요. 우리 큰 딸이 비밀로 하랬는데, 사실 오르카 팬이거든요.”
좋아하는 아이돌이 같은 동에 산다는 걸 처음 알고 심장이 멎는 것 같은 경험을 했던 103호 에어리의 프라이버시가 자식 얘기하기 좋아하는 어머니에 의해 마구 침해되고 있었다.
“맨날 자기 애들이 더 힘들 거라고 나보고는 참으라 하는데 별수 있나.”
타박하는 듯한 목소리에 가벼운 웃음기가 어려 딸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일이 잘 풀려간다는 것을 느낀 반요한이 산뜻하게 미소했다.
“따님도 어머님도 너무 감사해요.”
반요한은 능숙하게 화제를 전환해 가며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었다.
특히 103호 주민은 자식 얘기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었고 반요한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아, 아드님이 지금 고3이에요?”
“네. 학원은 잡다하게 방해만 된다고 지금 독서실 다니면서 혼자 하고 있거든요. 열심히는 하는데 컨디션 때문에 한두 개 틀릴 때마다 등급이 오락가락해서 내가 다 속상해 죽겠어, 아주.”
“그럼 혹시 6월 모평 등급이 어느 정도…?”
반요한이 수능 만점자라는 걸 딸에게 질리도록 들어 알고 있던 주민이 혹시 묘안이 나오지 않을까 싶어 아들의 성적을 말하자 반요한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소리 없는 박수를 쳤다.
“혼자 해서 그 등급이면 너무 훌륭한 건데요.”
빈말이라도 듣기 싫을 리 없는 자식 칭찬에 주민의 입꼬리가 흐뭇하게 올라갔다.
“그렇죠? 내가 봐도 공부 머리가 아예 없는 건 아니라 국어만 좀 어떻게 안정적으로 나오면 그래도 걱정이 없겠는데…….”
“아드님이 학원은 아예 싫다는 거예요?”
“내가 다니라면 다니기는 할 텐데 영 맘에 차는 곳이 없어서.”
“그래도 그 등급이면 상위권이고 최상위권까지는 진짜 조금만 더하면 제 생각에는 될 것 같거든요.”
“그렇지?”
“네. 저도 사실 학원은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어서 거의 안 다니기는 했는데, 그래도 실력 괜찮으신 강사님 강의는 방학 때 두 개 정도 들었거든요. 이제 여름방학이니까 아드님도 한번 들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그리고 작년 국어가 쉬운 편이어서 올해는 좀 어려울 거라고 생각하고 대비하는 게 심적으로도 좋고요.”
현역에서 물러난 지는 꽤 됐지만, 여전히 또박또박 신뢰 가는 목소리로 설명하는 반요한에게서는 문과 입시 전문가의 포스가 느껴졌다.
“솔직히 나도 생각이 없는 건 아닌데, 알아보니까 괜찮은 선생님은 자리가 다 찼더라고요.”
“그러면 혹시, 강남 청수 학원 김재진 원장님 특강 관심 있으시면 제가 자리 하나 정도는 어떻게 얻을 수 있을 것 같기는 한데…….”
학원 원장과 부모님 사이에 친분이 있기도 했고.
그 학원에서 특강 한 번 들었다고 수능 만점 받았을 때, 제 얼굴을 온갖 전단과 연습장, 광고 등에 박아 서울 전역에 배포하던 걸 떠올리면 도의적으로 그 정도는 해주는 게 맞았다.
반요한의 제안에 주민이 반색하며 되물었다.
“그래도 돼요?”
“당연하죠.”
“이걸 고마워서 어쩌나.”
“그 대신이라고 하기는 뭐한데… 부탁 하나만 들어주실 수 있으세요?”
“말만 해. 밖에 있는 애들 쫓아줄까?”
주민의 너스레에 반요한이 부드럽게 웃었다.
“그런 건 아니에요. 제가 사실 얼마 전에 동생이랑 싸웠거든요.”
“어머, 요한 씨도 동생이랑 싸우는구나.”
“하하… 많이 싸워요.”
“그런데 아까 집에서 막내라고 안 했나?”
“아, 친동생은 아니고 같은 멤버 동생이랑요. 화해하고 싶은데 그게 서로 힘든 상황이라… 부탁을 좀 드려도 될까요? 그런데 이게 사실 좀 귀찮으실 수도 있어서…….”
“이웃끼리 귀찮기는. 오늘 나랑 아들한테 해준 말들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됐는데. 뭐든 말만 해요.”
“감사합니다. 그러면…….”
잠시 뒤, 주민은 반요한이 직접 빼 내민 반지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받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