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s Strategy to Conquer the Entertainment Industry RAW novel - Chapter (348)
천재 아이돌의 연예계 공략법 348화
제로한테 끌려갔던 여파인가.
아니면 깨어나기 전 본 광경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나.
머리가 아프고 속이 울렁거리니 기분 또한 영 고약했다.
어쨌거나 거래 조건이었던 편지를 무사히 돌려받았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것도 잠시.
온라온은 안색을 굳혔다.
“그게 왜 형한테 있어?”
곤두선 신경은 경위를 묻는 어조나 혹시 반요한이 지금이라도 내용을 펼쳐볼까 봐 편지를 다급히 잡아채는 손길 등을 절로 날카롭게 했다.
그 유별난 반응으로부터 온라온이 이 편지를 의미 있게 여긴다는 것을 알아내기는 어렵지 않았다.
편지를 순순히 내어준 반요한은 대수롭지 않은 목소리로 답했다.
“상현이 형이 아침에 숙소 들러서 주고 간 내 팬레터에 그게 섞여 있었는데, 보니까 너한테 온 것 같아서.”
“팬레터에 섞여 있었다고?”
“어.”
반요한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이제 보니 맞은편 온라온의 책상 위에도 팬레터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얼어붙었던 온라온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
돌려줄 거면 곱게 돌려줄 것이지.
하필 이 녀석 손을 거치게 할 것은 또 뭐냐.
‘아니면 나 엿 먹이려고 일부러 그랬나?’
온라온으로서는 지금은 온하제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을 소년의 다정한 마음이 오롯이 담겨 있어 꼭 찾고 싶은 편지였다.
하지만 그 편지는 온라온과 온하제의 복잡한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편지 작성자를 정신에 이상 있는 사람으로 취급해도 할 말 없는 내용을 담고 있기도 했다.
생각은 제로가 일부러 그랬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게다가 어째서인지 겉면에 ‘온하제에게’라고 적혀 있던 편지 봉투는 보이지도 않았다.
반요한이 가져온 것은 봉투 안에 들었던 내용물뿐이었다.
“설마 읽었어?”
도로 날카롭게 긴장한 온라온의 물음에 반요한은 자신이 읽은 편지의 내용을 천천히 떠올렸다.
편지는 영어로 쓰여 있었지만, 반요한에게는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았다.
[아득히 먼 곳의 나에게만약 이 편지가 무사히 주인을 찾아갔다면, 다른 모든 말에 앞서 나는 미안하다는 말부터 해야 할 거야. 미안해. 정말 미안해]
일반적인 팬레터가 아님을 곧바로 알아채게 했던 인상적인 도입부.
[맙소사. 인사도 소개도 건너뛰고 대뜸 사과라니. 편지 예절을 예전에 배운 것 같은데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 않아. 글씨는 또 왜 이렇게 난잡한 거지? 나라는 사람은 정말 구제 불능이야….이 모든 불찰을 네가 너그럽게 이해해 줬으면 좋겠어. 요즘 정말로 정신이 없어서 그래.]
도대체 멤버 중 누구에게 보낸 건지 절로 궁금해질 만큼 사뭇 친근하고 살가우면서도 해묵은 피로가 옅게 묻어나는 말투.
편지를 보낸 자는 그때까지도 여전히 영문 모를 소리를 천연스럽게 늘어놓고 있었지만.
반요한은 알 수 없는 믿음이 확고하게 어린 그 대목에서 불시에 깨달았다.
이건 모두 온라온을 향한 말이라고.
그동안 반요한이 금방 이해할 수 없던 것은 보통 온라온과 관련한 것이었을뿐더러 편지글에서 느껴지는 발랄하면서도 어딘가 위축된 성격은 온라온과 조금 닮아 있었다.
반요한의 이번 추론은 보통 때와 달리 객관적인 논리와 주관적인 직감의 영역에 애매하게 걸쳐 있었으나 결론만은 항상 그랬듯이 명료했다.
반요한은 눈앞의 온라온을 바라보았다.
본인은 늘 그랬듯 괜찮다고 했어도 견성하의 말대로 간밤의 꿈자리가 여간 사나운 게 아니었는지 오래 잠들었다 일어난 온라온의 안색은 파리했다.
잠시 뒤 침착한 목소리로 흘러나온 반요한의 대답은 깔끔했다.
“읽었어.”
괜히 성을 내는 것도 싫을 만큼 피곤해서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
온라온은 섣불리 화내지 않았다.
“그걸 형이 왜 읽어?”
다만 가라앉은 목소리로 다시금 물었다.
“말했잖아. 나한테 온 편지인 줄 알았다니까.”
온라온은 잠자코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가 화내야 할 때 화낼 줄 모르는 호구라서가 아니다.
“그렇지만 이게 너한테 온 편지라는 걸 알게 된 뒤로는 더 읽지 않았어.”
작년에 실컷 싸웠던 이후, 어쩌면 그 이전부터 자신을 배려하려는 모습을 꾸준히 보여줘 왔던 반요한을 애써 믿으려 하며 이런 말을 기다렸던 것이다.
온라온은 믿음이 헛된 게 아니라는 사실에 속으로 조금 기뻐하면서도.
마음을 완전히 놓지 않고 조심스럽게 반요한이 알게 된 것을 마저 확인했다.
“구체적으로 어디까지 읽었는데?”
“너라면 내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부분까지.”
온라온은 눈으로 제 손안에 있는 편지를 빠르게 훑어 내려갔다.
다행히도 반요한이 읽은 것은 무언가 이상함을 느낄 수는 있어도 중요한 얘기는 하나도 나오지 않은 부분이었다.
그러나 반요한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는 항상 네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걸 알았어.”
“…….”
“그 편지를 마저 읽었다면, 아마 네가 숨기는 걸 거의 다 알게 됐겠지. 잘은 모르겠지만 그런 느낌이 들어.”
멈춘 곳에서 서너 줄만 더 읽었다면 이전부터 반요한이 온라온에게 느끼던 비현실적인 의구심은 어느 정도 해소되었을 것이다.
종이 몇 장에 적혀 있는 진정으로 비현실적인 사실을 그가 믿고 안 믿고는 둘째치고.
“나는 그렇게 편지를 끝까지 읽은 다음 나한테 온 편지인 줄 알았다고 끝까지 변명할 수 있었어. 아니면 아예 보지 않은 척 네 편지 사이에 슬쩍 끼워놓고 시치미를 뗄 수도 있었고. 이게 그래도 상관없는 문제였다면 그렇게 했겠지.”
온라온이 알고 있는 반요한은 자기가 궁금해하는 걸 좀처럼 참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내 호기심과 흥미를 해소하는 것보다는 너와 사이좋게 지내는 편이 더 좋겠다고 생각했어.”
반가을 대표가 지금 반요한의 행동을 알았다면 “네가 드디어 철이 들었구나!” 하면서 반요한에게 철없는 조카를 놀리는 듯한 박수를 보냈을 것이다.
온라온은 반요한이 당연한 일을 굳이 재수 없게 말하는 재주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에게는 당연한 일이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 않은 일이 될 수 있다.
당연하지 않은 일을 실행하는 것에는 노력이 필요하다.
반요한은 노력하고 있었다.
온라온이 조금 전 그런 것처럼.
그걸 아는데도 반발심이 든 온라온은 편지를 반요한의 앞에 들이밀었다.
“지금이라도 보는 게 어때?”
반요한은 난감하게 웃는 얼굴로 온라온의 손을 밀어냈다.
“안 본다니까.”
“왜? 내가 보게 해준다는데?”
“일단 이게 네가 원하는 일이 아닌 것 같고 이왕이면 너한테 직접 듣고 싶거든.”
“누가 말해준대?”
“지금 당장은 아니어도 너는 우리를 좋아하고, 믿고, 의지하니까.”
“…….”
“언젠가는 모든 걸 말해줄 거야.”
온라온은 반요한의 말을 반박하지 못했다.
멤버들에게 사실을 말하는 장면을 어렴풋이 상상해 버린 탓이다.
“아, 벌써 기분 좋네.”
그렇게 말하며 반요한은 한껏 유쾌하게 웃어 보였다.
고개를 돌린 온라온의 입매에도 스스로는 의식하지 못했지만, 희미한 미소가 어려 있었다.
* * *
편지를 되찾은 다음 날 이영민이 돌아왔다.
나는 회사에서 이영민을 보자마자 사람 없는 회의실로 끌고 갔다.
“내가 놀라운 걸 봤는데.”
“제가 힘들게 알아 온 것과 관련이 있을 것 같은데, 일단 추적향은 잘 사용하셨습니까?”
이영민의 이름으로 휴가를 받았다고 관리자로서까지 휴가를 받은 것은 아닌 듯했다.
“우선 추적향을 사용하는 건 성공했어.”
‘추적향’은 범죄자를 감시하기 위해 관리국에서 사용하는 아이템으로 대상에게 사용한 뒤 일정 시간이 지나면 특수한 향이 피어올라 먼 곳에서도 기척을 감지할 수 있게 했다.
물론 감지하는 것은 나처럼 평범한 인간이 아닌 관리자의 몫이다.
제로가 곧 찾아올 것이라 경고한 날 기회를 엿보아 사용하라고 내게 추적향을 건네주었고.
제로의 가면을 벗겨낼 때 그것을 사용했다.
제로의 얼굴에 손을 뻗은 것은 추적향의 사용을 눈치채지 못하게 하기 위험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알게 된 것은 어떻게 보면 가장 중요한 사실이었다.
“고객님은 이번에 사용한 추적향이나 예전에 드렸던 진실의 입 같은 아이템이 어디서 났는지 생각해 본 적 없으십니까?”
“딱히 없는데.”
안 그래도 스킬이나 스텟 등 이상한 게 많은 현실에 아이템 몇 가지 늘어난다고 새삼 의문을 가질 이유는 없었다.
“저희 쪽 정보에 따르면 제로는 고객님이 지금 살아가는 21세기 지구와는 환경도 문화도 서려 있는 힘도 상이한 세계 출신입니다. 지난번에 드렸던 ‘진실의 입’ 같은 물건들이나 치유 능력 같은 게 전혀 이질적이지 않은 곳이죠.”
‘진실의 입’ 아이템을 사용하고 래리의 불쇼를 눈앞에서 지켜보고, 은총을 비롯한 여러 가지 말도 안 되는 스킬과 가장 말이 안 되는 일인 차원 이동까지 몸소 겪어본 당사자로서.
나는 내가 모르는 어딘가에 판타지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였다.
“저희는 그곳을 원시 세계라고 부르는데, 제로는 그곳에서 자신을 섬기던 신도들에게 배신당해 그대로 미쳐 버린 우상 숭배의 대상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