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s Strategy to Conquer the Entertainment Industry RAW novel - Chapter (349)
천재 아이돌의 연예계 공략법 349화
방금 어딘가에 판타지스러운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였다고 여긴 게 무색하게 나는 크게 당황하고 말았다.
생각보다 거창하고 본격적인 이야기가 깜빡이도 없이 튀어나온 탓이다.
전혀 예상도 못 했던 말에 입을 작게 벌렸던 나는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게 뭔데? 제로도 아이돌이었다고?”
“고객님…… 혹시 우상 숭배가 뭔지 모르십니까?”
이영민이 이렇게나 상식 없는 사람을 봤냐는 듯 애잔한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제로가 아이돌이라니. 스스로 생각해도 참 바보 같은 소리였지만 나도 할 말이야 있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아이돌이 원래 우상이라는 뜻이잖아. 그런 생각 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없습니다.”
“오냐. 네 똥 굵다.”
이영민은 내 말에 대놓고 싫은 표정을 지었다.
관리자는 화장실도 안 가나.
‘생각해 보니까 가는 걸 본 적이 없다. 밥 먹는 것도 그렇고.’
“이상한 생각 그만하시고요.”
“네, 선생님.”
“이상한 소리도 그만하시죠. 다시 말씀드리자면, 제로는 마치 신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믿던 이들에게 배신당하며 신성을 대부분 잃었어도 신은 신이라, 저희가 쉽게 잡지 못하는 겁니다. 상당히 골치 아픈 경우죠.”
특정 종교에서 우상 숭배를 금지하는 이유가 있다.
우상 숭배 같은 사특한 짓을 하니까 제로 같은 놈이 튀어나오는 거 아니냐.
“아니. 근데 관리자한테도 출신이라는 게 있다고?”
“그럼 고객님은 저희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갑자기 생기는 줄 아셨습니까?”
“막말하자면 관리자는 공장에서 코어 하나씩 심어서 대량생산되는 줄 알았는데.”
“정말 끔찍한 막말이군요!”
저 새끼가 그동안 내게 했던 막말이 더 많았으므로 나는 래리가 발끈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너는 그럼 어디 출신인데?”
“그건 지금 별로 중요하지 않은 부분입니다.”
별로 알리기 싫은 것 같았다.
“그건 그렇고 저에게 하고 싶으신 이야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만.”
그 말에 인상적일 만큼 새하얀 인물을 곧바로 떠올린 나는 미간을 찡그렸다.
“제로는 나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어.”
“그렇군요.”
“안 놀라는 걸 보니 너도 알고 있었나 보지? 색조는 좀 달랐지만……. 내 얼굴 모양이었던 것 확실해. 그때 반응이나 내가 느낀 걸 생각하면 나를 교란하기 위한 눈속임 같지는 않았고. 이게 우연일까?”
“저도 이번에 조사하며 알게 된 사실입니다만, 고객님 역시 이제는 정답을 알고 계시죠.”
“정답은 몰라도 이 끝내주게 잘생긴 얼굴이 우연으로는 두 번 나오기 힘든 완벽한 조형이라는 건 잘 아는데.”
“맞습니다. 우연이 아닙니다.”
역시나.
“온라온 고객님과 온하제 고객님이 그런 것처럼, 제로 또한 무량한 평행 세계 속에서 살아갔던 또 다른 고객님이라고 할 수 있겠죠.”
충격적이군.
내가 나랑 내 팔자를 꼬아놓은 것도 모자라 이제는 나를 죽이려고 하다니.
내가 말하면서도 혼란이 온다.
“태어난 세계가 달라도 같은 운과 명을 타고난 존재끼리는 삶이 비슷한 궤적을 그리는 경향이 있으니 원시 세계에서는 만인에게 숭배받던 이가 현대 세계에 와 아이돌을 하는 것도 아예 무관하지는 않은 일입니다. 아이돌이 천직이시네요.”
“그건 그렇고 좀 말이 안 되는 것 같은데…….”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나는 이렇게 멀쩡히 살아있는데 나랑 같은 사람이라는 그 새끼는 너한테 선배 소리 들을 만큼 관리국에 오래 있었다는 게 가능해?”
“고객님께는 너무 어려운 이야기가 될까 봐 걱정스럽습니다만.”
“그런 거 걱정하지 마라.”
“넵. 간단히 얘기하자면 각 차원 사이에는 시차가 존재합니다. 마치 온하제 고객님의 세계보다 온라온 고객님의 세계가 5년 정도 늦었던 것처럼요.”
“왜 그런 일이 생기지?”
“이는 먼저 태어난 세계가 있고, 뒤늦게 태어난 세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첫 번째로 태어난 세계와 두 번째로 태어난 세계의 시차는 0.1초도 되지 않습니다만, 첫 번째로 태어난 세계와 오십억 번째로 태어난 세계의 시차는 꽤 나게 되죠.”
“오…….”
“참고로 원시 세계, 즉 먼저 태어난 세계일수록 신비와 이적에 더 가까이 맞닿아 있고 뒤늦게 태어난 세계일수록 이성과 과학에 기초해 발전해 나갑니다.”
대충 알겠다.
반요한이 관심 있게 들을 이야기로군.
이쯤에서 현대 판타지 연예계물이라는 내 인생 장르를 지켜야 할 것 같은데 이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못 들을 얘기 같으니 조금만 더 참고 들어보기로 했다.
“하지만 제로와 고객님이 완전히 동일한 존재라고는 볼 수 없습니다. 일단 그다지 시차가 나지 않는 세계 출신인 온라온 고객님과 온하제 고객님 두 분만 봐도 작게는 서로 이름이 다르고, 홍채 색이 다르고, 적을 둔 나라가 다르고,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고, 또 성격이, 잘하는 것이, 가족 관계가, 살아온 삶이 다릅니다. 고객님도 그렇게 여기고 계시고요.”
“맞아.”
“같은 논리로 제로와 고객님도 엄연히 다른 존재입니다. 그 정도의 시차가 있다면 개념적으로는 동일 인물이라 하더라도 실질적으로 같은 존재라고는 보기 어렵게 되죠.”
“그렇게까지 안 말해줘도 돼. 제로가 다른 세계의 나든 뭐든 그런 짓을 벌인 대가는 반드시 치르게 할 생각이니까.”
“그렇군요.”
“그럼 제로는 왜 배신당했는데?”
바로 그 부분에 내게 악의를 가진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내 얼굴을 보며 잠시 침묵했던 이영민은 순순히 답변을 내놓았다.
“완벽해 보였던 우상은 흐르는 시간 속에서 서서히 익숙해지고 종내 보잘것없어지죠. 그러면서 맹목적이고 순수하던 감정이 변질하는 것에 무슨 논리적 이유가 있겠습니까. 그것이 최후에 신에 대한 도전으로 이어지게 된다는 것만큼 한편으로 인간다운 일은 없죠.”
“그러니까 지금 아무 이유가 없다는 거야? 단지 사람들의 마음이 변했을 뿐이라고?”
“일단은, 네. 그렇습니다. 기껏 다른 세계로 보내 놓았더니 제 처지를 비관해 죽지도 않고 돌아와 하필이면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는 꿈을 축복 속에서 이뤄나가는 고객님 모습이 그자 입장에서는 얼마나 치 떨리는 일일지.”
순간 마주친 걸로도 온몸에 소름이 끼치던 핏빛 눈에서 낙조처럼 넘실거리던 악의가 무엇으로부터 기인하였는지 깨달았다.
즉, 자기혐오였다.
* * *
제로에 대한 기묘한 정보를 접한 지도 며칠이 지났다.
미국으로 출국하기 전 국내에서 수행하는 마지막 스케줄은 매년 부산에서 열리는 케이팝 콘서트였다.
“피곤하다…….”
목적지에 도착해 차에서 내린 멤버들은 저마다 찌뿌둥한 몸을 쭉 폈다.
스케줄을 하며 전국 각지를 다녀봤지만, 이렇게 부산까지 오는 것은 처음이었다.
“스케줄 시간까지 아직 몇 시간 남았으니까 각자 자유롭게 쉬다가 여기서 모이면 돼. 돌아다니는 건 좋은데 단독 행동은 하지 말고. 최소 둘씩 뭉쳐 다녀.”
“전 쉴래요…….”
“저도요.”
평소에는 돌아다니는 걸 제일 좋아하는 강지우와 견성하가 웬일로 휴식을 선언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곽상현을 불렀다.
“상현이 형, 저 잠깐 어디 좀 갔다 와도 돼요?”
“어디?”
“저 어렸을 때 살던 집이 이 근처인데, 모처럼 부산까지 왔으니까 한번 다녀오고 싶어서요.”
이왕 평소에 따로 시간 내서 오기는 힘든 부산까지 온 만큼 예전에 발견했던 고등학교 학생증 뒷면에 적혀 있던 주소로 찾아가 볼 셈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도 벌써 몇 년이나 지났으니 이미 다른 사람이 이사 와서 살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고 가서 특별한 걸 얻을 거라고 기대하는 건 아니지만.
혹여라도 그 애의 또 다른 흔적을 찾을 수도 있으니 한 번쯤은 찾아가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아, 진짜?”
“네.”
“그래도 혼자 보내기는 좀 그런데…….”
“영민이 형이랑 같이 갔다 올게요.”
뭐, 같이 출발하는 척해놓고 이영민은 중간에 아무데나 떼어놓고 가면 되겠지.
“그래. 그럼 다녀와. 늦어도 3시까지는 돌아와야 하는 거 알지?”
곽상현의 말에 시계를 봤다.
시간이 약간 촉박하기는 했지만, 택시를 타고 서두르면 맞추기 어려울 정도는 아니었다.
“알았어요.”
* * *
30분 뒤.
“우욱.”
‘다시는 부산에서 택시 안 타야지.’
시간이 조금 촉박하다는 말을 듣고 갑자기 눈빛이 변하더니 대한민국에서 갑자기 매드 ×스를 찍었던 한 노령의 택시 운전사를 떠올린 나는 몸을 떨었다.
어쨌거나 그 덕분에 생각했던 것보다 빠르게 학생증 뒷면에 적힌 주소가 가리키는 아파트 단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난감하게도 공용현관의 문은 외부인이 함부로 드나들 수 없고 방문객은 방문하려는 집 주인이 승인해 줘야 열리는 구조였다.
‘이거 아무도 없으면 허탕인데…….’
누구든 있기를 바라며 매뉴얼에 맞추어 집주인을 호출했다.
잠시 뒤,
– 누구세요?
들려온 것은 낯선 여자의 목소리였다.
“안녕하세요. 혹시 여기 온라온 집 아닌가요?”
만약 아니라는 답이 돌아오면 실망하지 않고 바로 돌아설 준비를 했다.
– ……누구신데요?
‘어?’
왠지 잘 풀릴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인터폰에 부착된 카메라에 얼굴이 잘 보이게 고개를 숙인 나는 쓰고 있던 마스크를 슬쩍 내렸다.
“저…… 온라온인데요.”
저 너머에서 ‘헉’하고 놀라는 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