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s Strategy to Conquer the Entertainment Industry RAW novel - Chapter (56)
천재 아이돌의 연예계 공략법 56화
이유를 파악하고 나니 갑자기 밑도 끝도 없이 가라앉던 기분이 좀 괜찮아졌다.
‘달래줄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닌데 알아서 괜찮아져야지.’
그렇게 혼자 다짐한 것에 가까웠지만, 실제로 기분이 나아진 것도 맞았다.
내가 당장 해결할 수 없는 문제 때문에 온종일 죽상을 짓고 있을 수도 없지 않은가.
‘설× 대신 이거라도 먹자.’
나는 오늘이 생일이었던 징샤오의 얼굴에 덕지덕지 묻은 생크림을 포크로 살짝씩 걷어 먹었다.
안타깝게도 나머지 케이크는 촛불이 꺼지자마자 징샤오의 얼굴에 맞고 바닥에 떨어져 먹을 만한 상태가 아니었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데이의 짓이었다.
어쨌든 피에 당분이 흐르니 기분이 더 나아지는 것 같았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징샤오가 세차게 고갯짓하자, 얼굴에 붙어 있던 큼지막한 케이크 부스러기 몇 개가 떨어졌다. 아깝다.
녀석은 생크림을 음미하는 나를 잠깐 어이없어하는 눈으로 보더니 이내 원흉인 데이를 보며 외쳤다.
“너 죽을래?!”
얼마나 열을 받았는지 형이라는 호칭도 저 멀리 날려버린 상태다.
“아학하하! 완전 웃겨! 하하하!”
먹을 걸로 장난치면 천벌 받는다는 말이 태국에는 없나?
형도 당해보라며 떨어진 케이크를 양손에 한 움큼씩 쥔 징샤오가 데이에게 달려들었다.
신난 모습을 보니 진짜 불화로 번질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어휴… 어린놈들…….”
나는 고개를 살래살래 저으면서도 이 와중에 빵 위에서 떨어지지 않고 용케 살아남은 딸기를 포크로 찍어 입에 넣었다.
맛있었다.
더 먹을 만한 부분이 없나 아래를 살필 때.
못 볼 걸 본 것처럼 입을 쩍 벌린 나가세 리츠가 더는 못 먹게 하려는 듯 내 팔을 세게 잡았다.
“[바닥에 떨어진 걸 왜 먹어!]”
“[바닥에 안 떨어졌어.]”
“[저건 떨어진 거야.]”
“[내가 먹은 부분은 안 떨어진 건데?]”
나와 나가세 리츠가 저건 떨어진 거다, 안 떨어진 거다, 치열한 논쟁을 펼치는 동안.
레슨 시간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연습실을 엉망으로 만든 데이와 그걸 더 엉망으로 만든 징샤오는 제작진에게 혼났다.
그래도 깜짝 카메라가 반쯤 망한 와중에 살릴 만한 장면을 건져서 그런지 아주 심하게 야단을 맞지는 않았다.
징샤오와 데이는 케이크로 엉망이 된 얼굴을 씻으러 가고, 그사이 남은 조원들은 바닥을 치웠다.
멀쩡한 상태였을 때도, 멀쩡하지 못한 상태였을 때도 한결같이 먹음직스러워 보이던 케이크는 반의반도 못 먹고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아깝다.”
내 혼잣말을 들었는지 나가세 리츠가 말했다.
“[나중에 내가 사줄게.]”
“[고맙…이 아니라, 한국어였는데 내가 아깝다고 한 거 어떻게 알았어?]”
“[목소리랑 표정이 너무 슬퍼서.]”
찍어봤는데 맞았네. 나가세 리츠가 웃었다. 말싸움에서 자기가 이기더니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내가 그렇게까지 슬픈 표정이었나.’
그 표정 덕분에 케이크 한 판을 얻었으니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뒤이어 징샤오와 데이가 말끔해진 얼굴로 돌아왔다. 티격태격하는 건 여전했다.
우리는 레슨을 봐줄 멘토가 오기 전에 서둘러 몸과 목을 풀었다.
얼추 연습을 시작할 준비가 되자마자 스태프가 들어와 연습실에 두 사람이 앉을 만한 간이 의자와 책상을 가져다 놓았다.
“곧 레슨 시작이니까 준비들 해요.”
“네!”
그 말대로 조금 뒤에 한지희와 주안이 나란히 연습실 안으로 들어왔다.
저 두 사람한테 레슨을 받는 건 처음이었다. 내심 묵혜성이길 바랐는데.
멘토들이 오기를 미리 기다리고 있던 우리는 연습실 문이 열리자마자 허리를 꾸벅 숙이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그래. 안녕.”
한지희와 주안이 자리에 앉고 조원들은 그 앞에 일렬로 쭉 늘어섰다.
편안한 복장이면서도 머리를 하나로 올려 묶어서 그런지, 어딘지 우아한 무용수처럼 느껴지는 한지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여기가 그거라며. 보컬이랑 퍼포먼스랑 랩 다하는 조.”
“네.”
“세 배로 고생이겠네. 어디 보자….”
연습생들의 면면을 한 번 훑은 한지희와 주안이 책상 위에 있는 서류를 읽었다.
조원은 누구이고, 리더는 누구이고, 또 곡은 무엇인지, 파트 분배는 어떻게 했는지 등을 우리가 어제 직접 적어서 낸 서류였다.
잠시 뒤 시선을 다시 서 있는 연습생들에게 돌린 주안이 묘한 어조로 말했다.
“그런데 리더에, 센터에, 메인 래퍼. 문결이가 너무 다 가져간 거 아니야?”
가짜라고는 해도 관련 문제로 아침에 싸웠던 카일이 움찔 어깨를 떨었다.
그 옆에 서 있던 나는 제작진의 치밀한 설계에 감탄했다.
이래서 깜짝 카메라를 오늘, 그것도 레슨 바로 직전에 시켰구나.
연기라고는 해도 동일한 주제로 싸웠던 카일은 저 말에 작게라도 반응할 수밖에 없을 테고, 주안은 제작진에게 미리 대본을 받았겠지.
말하는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는 말이 나올 만큼 분량이 없는데도 서문결의 순위가 높으니, 아예 안 좋은 방향으로 편집해서 이미지를 깎아내리려고 작정한 모양이었다.
“저… 쌤.”
내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왜, 라온아. 파트 관련해서 하고 싶은 얘기 있으면 지금 해.”
친절하게 판을 깔아주는 말에서는 어떠한 의도가 다분하게 느껴졌다.
“그게 아니라.”
“아니면?”
“그, 저희가 그거 이름 적을 때 일부러 성이랑 이름을 띄어 썼거든요.”
갑자기 생뚱맞게 무슨 말이냐는 듯 주안과 한지희가 나를 빤히 바라봤다.
“보시면 온이랑 라온 떨어져 있는 것처럼 서문이랑 결이 떨어져 있는데.”
비슷한 상황을 한 번 겪어본 조원들의 뺨이 씰룩이는 걸 보니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뒤늦게 눈치챈 것 같았다.
내 말에 서문결을 문결이라고 부른 주안이 서서히 입을 벌리더니 나와 서문결을 번갈아 바라보며 물었다.
“설마 이름이 문결이 아니라 결이야? 성이 서문이고?”
정확히 내가 예상한 그대로의 반응이었다.
대답한 것은 서문결이었다.
“네.”
똑같은 실수를 세 번째 보고, 똑같은 말을 세 번 하고, 똑같은 반응이 세 번 돌아오니.
그냥 ‘서 문결’로 살아온 서문결의 심정을 조금 이해할 것 같았다.
겨우 세 번 겪고도 이렇게 지겨운데, 나 같아도 그냥 문결이라고 불리면서 살았다.
처음에는 서문결의 이름이 참 있어 보였지만 이제는 이름이 멋있다고 장땡이라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았다.
아니, 그보다 조인수 피디가 저번에 대본 잘못된 거 수정한다고 하지 않았나.
일 똑바로 해라. 아니면 일부러 이러나?
어쨌든 나는 이 장면이 방송에 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 내가 서문결의 이름을 정정하는 일이 더는 없을 테니까.
그냥 내가 안 그러면 되는 일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막상 이런 상황이 되면 서문결이 어떤 사람인지 알면서도 가만히 있기가 어렵다.
옛날의 그 일이 나를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은 참지 않는 사람으로 만들기라도 했나.
맨 처음 하트 어택을 연습할 때 서문결의 멘토이기도 했었던 주안이 이제까지 서문결을 문결이라고 불러온 것을 사과하는 사이.
옆에 서 있던 징샤오가 내게만 들릴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대단하다.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도 저 말 할 수 있어?”
“저번에는 피디님한테도 했는데, 뭐.”
징샤오가 머릿속으로 피디와 주안을 비교해 보았는지, 조금 뒤 그건 그렇다며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생뚱맞게 이름 이야기를 꺼냄으로써 착한 호구 서문결을 음해하려는 시도는 흐지부지 끝난 것 같았다.
“그럼 이제 얼마나 했는지 좀 볼까.”
입에는 연한 미소를 머금었으면서도 주안의 묘한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처럼 언뜻 차가운 눈으로 서류를 꼼꼼히 읽던 한지희가 우리를 보며 스태프에게 말했다.
“이 친구들 준비되면 음악 틀어주세요.”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긴장한 조원들이 연습실 중앙에 시작하는 대형대로 섰다.
그 상태로 몇 초쯤 있었을까, 음악이 흘러나왔다.
“오.”
한지희가 전주를 듣고 흥미로운 듯 한쪽 눈썹을 가볍게 까딱였다.
3분 뒤.
딱 맞는 발소리와 함께 노래가 끝나자 아까보다 확연히 산뜻해진 얼굴로 한지희가 평했다.
“너희 열심히 준비했구나.”
엔딩 포즈 그대로 숨을 몰아쉬던 조원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여전히 가슴과 어깨를 들썩이며 우리가 제자리로 돌아갔다.
“이거 안무랑 동선 누가 짰니?”
“제가 짰습니다.”
한지희의 시선이 차분히 숨을 고르는 서문결에게 향했다.
“애들을 너무 배려했네. 전체적으로 안무 난이도도 그렇고, 결이 네가 더 훨씬 돋보일 수 있는 부분에서도 그러지 않았다는 게 느껴져.”
“리더로서는 백 점이지만, 개인으로서도 그게 옳은 선택일지는 잘 판단해야 하거든.”
결국은 각자 생존하는 거 아니겠냐고. 주안이 어딘지 쓸쓸하게 느껴지는 어조로 덧붙였다.
“그래도 결이가 그래 준 덕분에 전체적인 그림이 살아난 것 맞아. 잘못하면 욕심내다가 과한 느낌이 들 수도 있는데 그런 것도 없고. 다들 연습도 성실히 한 거 같고. 준비 상태는 내가 봤던 조 중에 제일 좋아. 결이가 리더랑 센터랑 메인 래퍼 셋 다 할 만하네.”
은근한 뼈가 있는 한지희의 마지막 말에 주안이 머쓱한 듯 하하, 작게 웃음을 흘렸다.
“결 형이 센터에 있으면 저희 마음도 편해요.”
포지션 분배 당시 내심 센터를 욕심냈던 징샤오가 다부지게 말했다.
아까 주안이 했던 말이 오히려 좋은 방향으로 팀워크가 발휘될 수 있게 만든 모양이었다.
“너희가 불만 없으면 된 거지.”
사실 주안이라고 그런 말을 하고 싶었겠나.
본인도 당장 이미지가 중요한 연예인이고, 나중에 무슨 말이 나올지도 모르는데.
다만 데뷔를 바라는 연습생에게든 이미 데뷔한 아이돌에게든 PD의 말이 절대적이었을 뿐이다.
화기애애해진 분위기 속에서 개별 레슨이 이어졌다.
“결이는 다 좋은데 다른 거에 비해 표정이 좀 아쉬워. 전에 [call on me> 때처럼 카리스마 있고 멋있는 건 정말 잘하는데, 이런 무대처럼 힘을 빼는 연습은 조금 더 해야겠다. 널 보는 사람도 신날 수 있게. 알겠지?”
“샤오, 스타트 잘 끊었고 발음 많이 노력한 티 나. 앞으로 더 연습해야 하는 거 알지? 그래도 보면서 괜히 내가 다 흐뭇해질 만큼 잘했다.”
“[리츠는 비음 조금만 더 없애보자. 처음 멘토 평가 때보다 훨씬 나아졌으니까 자신감 가지고. 이거를 네가 재밌어하는 게 나는 눈에 보여서 좋았어.]”
“라온이. 개인적으로는 제일 재미있어서 관심이 가는 연습생인데 나중에 생각해 보면 존재감이 은근히 없었거든?”
한지희의 말을 들은 조원들의 표정이 마치 ‘얘가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이상하게 변했다.
나처럼 타고나길 조용하고 내성적이고, 여하튼 존재감 없이 사는 사람도 드물 텐데 왜 저런 반응들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처음 하트 어택 등급 평가할 때 비해서 지금은 진짜 많이 나아. 이제는 기억에 남을 것 같아. 아직 완성되었다고 할 만큼 나아진 건 아니라서 뭐가 나아졌다고 확실히 말해주고 싶은데 이게 말로 표현이 안 되는 그런 거라….”
아쉽다는 듯 눈살을 찡그리던 한지희가 이후로도 나한테 동작할 때 다른 애들에 비해 힘이 좀 부족해 보인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한창 하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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