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Mythic creator is a regressed player RAW novel - Chapter 122
검후를 원합니다.
시기심에 불타는 집법당주와 달리 교주 측근 중에는 내게 호의적인 사람도 제법 있었다.
그 중 대표적인 이가 다름 아닌 마교의 군사, 풍광기자 곽정유였다.
“근래 자네의 활약이 참으로 놀랍네.”
“감사합니다, 군사.”
“이제 와서 하는 말이네만 특히 추국장에서 자네가 보여준 모습은 굉장히 인상 깊었네.”
“군사님처럼 지략이 하늘에 닿은 분 앞에선 한낱 잔재주일 뿐이지요.”
“하하! 집법당주가 하도 자네 욕을 하기에 편견이 있었네만, 이제 보니 아주 겸손한 친구구만!”
그 쪼잔한 아저씨가 이제는 뒷담화까지 하고 다니는구나.
그러나 상대가 찌질하다고 해서 나까지 찌질하게 굴 필요는 없는 법.
“집법당주님께서 절 그리 탐탁지 않게 여기시는 것은 사실입니다. 허나 저도 제 잘난 맛에 사는 놈이라 굽힐 줄 모르니 서로 도토리 키 재기지요. 다른 당원들만 고생입니다.”
“젊은이에게 어느 정도 치기가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일세. 빼어난 능력을 지닌 이가 겸손하기까지 하면 그게 사람이겠나! 헌데… 듣자하니 부교주의 딸과 제법 친하게 지낸다지?”
“부교주의 가장 큰 약점 아니겠습니까.”
난 훅 들어온 질문에도 막힘없이 답했다.
누군가 떠보면 이렇게 답하기로 이미 부교주와 논의가 끝난 문제이니.
한 점 거리낌 없는 대답에, 곽정유 역시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잘하고 있네. 교주님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선에서 부교주와 끈을 남겨두게. 언젠가는 쓸모가 있을 테니.”
“조언에 따르겠습니다.”
난 제법 긴 시간 곽정유와 대화를 이어갔다.
똑똑한 사람들과 친해지는 방법은 소꿉친구인 우희를 통해서 충분히 익혔으니까.
오튜브 영상을 틀어둔 채 툭툭 내뱉는 퀴즈나 현대의 토막 상식에, 예상대로 곽정유는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호오, 고래가 사실은 물고기가 아니라고?”
“그렇습니다. 흔히 물고기는 알을 낳지만, 고래는 새끼를 낳지요.”
“흠…. 내 바다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어 고래는 본 적이 없으나, 어릴 적 개울에서 우연히 새끼를 낳는 물고기를 본 적이 있네. 그렇다면 그것도 물고기가 아니었단 말인가?”
“그것은 물고기가 맞을 겁니다. 난태생이라 하여 배에서 알을 까고 나오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허… 그런 것인가? 심오하구만.”
그렇게 정해진 주제 없이 이어지던 우리의 대화는 어느덧 현재 중원에서 대유행 중인 기문 탈출실에 이르렀다.
난 중원을 순찰하며 확인한 기문탈출실의 내부를 곽정유에게 낱낱이 고했다.
어차피 내가 아니어도 마교 군사에게 이 정도 정보를 얻는 일은 식은 죽 먹기일 테니.
중요한 것은 별 것 아닌 정보를 대가로 무엇을 얻어내느냐이다.
“진정 자네가 말한 본교의 진법들이 전부 그 안에 있었단 말인가?”
“제 눈으로 직접 확인한 사실입니다. 뿐만 아니라 혈교의 시, 시….”
“시혈분독진 말인가?”
“아, 맞습니다. 그거였습니다.”
대답을 들은 곽정유의 얼굴에 경각심이 어렸다.
“중원 놈들, 단단히 이를 갈았군. 그런 절진까지 외부로 공개하다니.”
“그만큼 놈들이 본교의 힘을 경계한다는 뜻이겠지요. 다만, 상대의 대비가 그리 철저하니, 추후 놈들과의 전쟁에서 본교의 무사들이 곤란을 겪지 않을지 우려됩니다.”
“흠…. 너무 걱정 말게. 몰랐다면 모를까, 중원과의 전쟁 이후 제법 긴 시간이 흐르는 동안 우리도 새로운 절진들을 여럿 개발했으니 말일세.”
“역시. 어떤 진들이 있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대표적으로는 강마열진이나 용문고보진, 경소십이혈로….”
난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들을 카메라에 주워 담으며 열심히 맞장구를 쳤다.
“음, 음, 그렇군요. 이름만 들어도 위력이 느껴집니다.”
“관심이 있다면 나중에 시연할 일이 있을 때 한 번 부름세.”
“영광입니다.”
잘 녹화해뒀다가 나중에 무림맹으로 튀면 다 유출해야징?
그렇게 온갖 주제로 담소를 나눈 지 얼마나 지났을까, 수염을 한 차례 쓸어내린 그가 지나가는 말투로 내게 물었다.
“헌데 듣기로는 최근 간자 색출에 난항을 겪고 있다고 하던데.”
“쥐새끼들이 오죽 꽁꽁 숨어있어야지요. 하… 교주님께서 명하신 무림맹의 간자를 어찌 찾아내야 할 지 막막할 따름입니다.”
“음…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것도 있어야지. 오늘 천 대주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으니 내 작은 도움을 줌세.”
“도움 말씀이십니까?”
이게 웬 떡이냐.
무려 명교의 군사가 꺼낸 말에, 난 얼른 허리까지 앞으로 숙이며 경청할 자세가 되었음을 보였다.
“부디 가르침을 주십시오.”
“가르침이랄 것 까지야. 그저 예전부터 세작을 찾기 위해 몇 가지 수를 써두었지.”
“수라 하시면….”
“본교의 조직마다 조금씩 다른 정보를 몇 가지 흘렸네. 그리하면 어느 조직에서 나온 정보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 수 있지.”
잠시 차를 들이켠 그가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설명을 이어갔다.
“물론 세작들도 머리가 있으니 제법 시간이 걸렸네만.”
“결국 성공하셨군요.”
“반쪽짜리 성공일세. 몇 년에 걸쳐 정보를 수집했건만, 어느 조직에 어떤 세력의 간자가 있는지 정도밖에 알아내지 못했네. 하나의 조직에 소속된 인원들만 해도 기백에 이르니 어떤 자가 세작인지는 나도 모르지. 그래도 듣길 원하는가?”
“물론입니다. 헌데 그렇게 고생하셔서 모은 정보를 제게 알려주셔도 될 지.”
“하하!”
내 물음에 그가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비록 중원에서는 풍광기자라는 흉흉한 별호로 불리는 곽정유지만, 웃는 모습만큼은 고고한 선비가 따로 없었다.
“난 집법당주처럼 꽉 막힌 사람이 아닐세. 벼락출세한 자네를 질투하는 것은 이해하나, 사람은 모두 쓰임새가 다른 법. 교주께서 자네를 아낀다 하여 내 역할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데, 어찌 어리석게 척을 진단 말인가?”
“옳은 말씀이십니다.”
“이렇게 서로 내어줄 건 내어주고 받을 건 받으면서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면, 훗날 자네와 내 입장이 역전되더라도 얼굴 붉힐 일이 없을 것이 아닌가.”
“과연 현명하십니다. 저도 무슨 일이 있거든 군사께 우선적으로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바로 그걸세.”
군사와의 만남은 여러 의미에서 유익했다.
그가 알려준 정보는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나 다름없던 무림맹 간자 수색에 큰 보탬이 됐고, 난 보름이 지나기 전에 그토록 원하던 단서를 찾을 수 있었다.
이제부터는 덫을 놓을 시간이다.
***
“다, 당신들 뭐요!”
“집법당의 행사다. 잠자코 따르라.”
“왜, 왜들 이러시오! 이러지들 마시오!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네놈 처소에서 정파와 나눈 서신들이 다수 발견되었거늘, 어디서 발뺌을 하느냐!”
“헉! 억울하오. 교주님, 교주님을 뵙게 해주시오!”
“그 교주께서 명하신 일이다.”
병기부 소속 장상철은 집법당 무사들에게 끌려가는 상관, 만종걸을 보며 오들오들 떨었다.
금안룡 천서원이 집법당에 든 이후 교에 피바람이 멎는 날이 없었으니, 일각에서는 그를 두고 ‘금안사신’이라 부르며 두려워했다.
몇몇 여인들은 옥면신마라 부르며 따르는 듯했지만, 장상철과는 관계없는 일이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그러게 말일세. 십 년 넘게 보아온 만 부주께서 정파 세작이었다니!”
동료들의 속삭임에 장상철 또한 놀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는 그것이 불가능한 일임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마교에서 8년 동안 활동 중인 진짜 정파의 세작은 다름아닌….
-장상철. 네 정체를 알고 있다.
“헉!”
갑작스런 전음에 소스라치게 놀란 그는 주위를 두리번거렸으나, 눈에 들어오는 것은 의아한 표정의 동료들뿐이었다.
“상철이 자네, 왜 그러나?”
“아…무것도 아니네.”
-눈치가 좋군. 그대로 듣기만 하라.
“헙….”
장상철은 다시 들어도 기괴한 목소리에 헛숨을 들이켰다.
가래가 잔뜩 낀 듯한 목소리는 정말 상대가 사람인지조차 의심스러울 만큼 섬뜩하고 불쾌했다.
‘마치 유부를 떠도는 망자의 속삭임 같지 아니한가….’
허나 그보다 두려운 것은 전음의 내용이었다.
-장상철, 무림맹의 세작.
“……!”
-조용한 곳으로 가지. 만 부주의 집무실이 좋겠군.
상대방의 위치를 모르는 장상철은 수상한 전음에 아무런 대꾸조차 하지 못한 채, 그저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자, 잠시 변소에 좀 다녀오겠네.”
“그러게.”
동료들은 창밖으로 끌려가는 만종걸의 모습을 구경하느라 그에게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잠시 뒤, 창백한 안색으로 목적지에 도착한 장상철에게 다시금 목소리가 들려왔다.
-말을 잘 듣는군. 하하하하.
“으으-.”
끔찍한 웃음소리에 진저리를 친 장상철이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누구요! 누구기에 이런 일을 벌이는 거요!”
-은인에게 말버릇이 나쁘구나.
“은인? 그게 무슨…?”
-네 처소에서 발견된 간자의 증거를 만종걸의 처소로 옮겨둔 게 누구라고 생각하지?
“헉-.”
잡아떼도 소용없다는 것을 깨달은 장상철은 겁에 질린 얼굴로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워, 원하는 게 무엇이오.”
-얌전히 때를 기다려라. 필요한 순간 너를 다시 찾으리니… 하하하하하!
“이, 이보시오. 이보시오!”
장상철은 멀어지는 목소리를 향해 다급히 외쳤지만, 조금 전까지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던 불길한 기운은 이미 씻은 듯 사라진지 오래였다.
그는 지독한 악몽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
“중원무림의 끄나풀인 병기부 만종걸을 단전을 폐한 뒤 무저갱에 가둔다.”
“이건 누명이오! 난 아무 죄가 없소! 금안룡! 네놈 소행이더냐! 내게 무슨 원한이 있어 이런 모함을 하느냐! 교주님! 저는 죄가 없습니다! 교주니임—!”
끼이이익, 쿵-!
만종걸의 모습이 철문 너머로 사라지자 추국장에는 고요한 침묵이 맴돌았다.
그 정도로 조금 전 끌려 나간 사내의 외침에는 억울함이 가득했다.
오죽했으면 이번 색출에 동원된 집법당 무사들조차 혹여 놓친 것이 없는지 다시 한 번 자료들을 살폈을까.
‘누가 보면 진짜 아무 죄도 없는 줄 알겠네.’
허나 그의 처소에서 나온 물건들은 그 자체로 움직일 수 없는 증거였다.
“천서원, 또다시 공을 세웠군.”
“모두 교주님의 전폭적인 지지와 동료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특히 군사께서 정말 큰 도움을 주셨습니다.”
난 겸손한 자세로 다른 이들에게 공을 돌렸다.
집법당주를 통해 충분히 확인하지 않았는가.
너무 빠른 출세는 윗사람들의 경각심과 주변인들의 시기 질투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이 일로 본교의 안보는 보다 견고해졌다. 허나 중윈 놈들이 심어 놓은 세작이 고작 하나일 리 없으니, 집법당은 앞으로도 색출 작업을 게을리 하지 말도록.”
“존명!”
“집법당 전원에게 영약과 원하는 비급 하나씩을 하사하노라.”
“망극하옵니다!”
집법당 전원이 깊게 머리를 숙였으나, 교주의 공치사는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천서원에게는 따로 포상을 내리지. 이번에는 열 명이면 되겠나?”
“열…명? 아!”
난 뒤늦게 그것이 지난 번 하사 받은 여인들을 의미함을 깨달았다.
“교주님의 은혜는 감사하오나….”
“열 명으로 부족하더냐?”
“그것이 아니오라.”
“계집이 싫다면 다른 소원이 있느냐?”
아니, 시녀 15명을 어디에 쓰라고.
애들 재울 데도 없겠다.
그렇다고 진짜로 음양일원대법을 익힐 수도 없고, 거절하자니 의심을 살 게 분명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눈치만 보던 그 때,
“교주님 잠시!”
“무슨 일이지?”
외부에서 날아든 급보에 나와 교주의 대화는 잠시 소강을 맞이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의 입에서 나온 한 마디는, 내 머릿속을 백지장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천서원, 네게 손님이 찾아왔군.”
“손님 말씀이십니까?”
“검후.”
“검….”
생각지도 못한 단어에 뇌정지가 온 사이, 교주의 말이 이어졌다.
“검후가 신군을 내놓으라며 신강의 경계에서 소란을 벌이고 있다는 군. 벌써 본교 무사들이 제법 여럿 상했다던데….”
“…….”
“자네 스승이 타계했다는 걸 아직 모르는 모양이지? 하하!”
교주가 재밌다는 듯 껄껄거렸으나, 머릿속이 엉망진창인 난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벽려군이 여기까지 왔다고? 원수를 갚으러? 학관은 어떻게 하고?
난 어떻게 해야….
허나, 난 더 이상 생각을 깊게 이어나갈 수 없었다.
“누가 그 계집을 죽이겠느냐.”
교주의 한 마디에 추국장에 있던 기라성 같은 고수들이 앞 다투어 나서기 시작했다.
“제가 그 건방진 년의 목을 교주께 바치겠습니다!”
“부디 이 적도원에게 공을 세울 기회를 주십쇼!”
“겁도 없이 본교를 침입한 자에게 본보기를 보이겠나이다!”
교주에게 눈도장을 찍으려는 이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허나 그들 중 누구도 나만큼 절박하지는 않았다.
정신을 차린 순간, 난 어느새 그들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천 대주?”
“…….”
“천 대주! 이게 무슨 짓이오.”
“날 찾아온 손님이오.”
나직이 읊조리며 금안마공을 운용한 순간, 나와 눈이 마주친 이들이 흠칫하며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밖으로 흘러넘치는 마기를 다시 몸 안에 거둔 나는, 몸을 돌려 교주 앞에 무릎을 꿇었다.
“교주님, 감히 제 소원을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말하라.”
“저 천서원은….”
난 추국장의 모든 이가 들을 수 있도록 목소리에 기운을 담아 선언했다.
“검후를 원합니다.”
오래도록 멈춰 있던 나와 벽려군 사이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