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of living again RAW novel - Chapter 129
129. 스포르찬도 (Sforzando, 한 음을 갑자기 세게) -2
[결선 진출자]– 박의범
그래. 여기까지는 예상했던 바였다.
그의, 가히 환상적이라 칭해도 부족함이 없을 만큼의 대단한 연주는 내가 이 눈과 귀로 체험하지 않았던가.
작은 거인은 그 누구보다 본선 무대에 진지했다.
그에 반해 나는 민호네 기사 아저씨에게 연락도 하고, 부족한 연습 시간에도 머리를 쥐어짜 전생의 기억을 되새김질하기 바빴지.
거기에 더해 이번 본선에서 나는 오케스트라의 화합이 주 평가대상이라는 걸 알면서도 다른 것에 집중했다.
그래서 떨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애초에 고등학생 1학년의 나이로 세계무대를 노린다니···.
정석 선배가 나를 과대평가했다는 생각도 매번 하고 있던 나였다.
그런데,
결과가 증명했다.
[결선 진출자]-박의범
-김민호
-최지은
-이성현
“…!”
한차례 시원하게 비명을 내지른 뒤에 다시 쳐다보게 된 화려하게 치장된 홈페이지.
‘백건오 한국 종합 콩쿠르’ 결과 발표 화면에는 아직도 조금 전에 내가 봤던 그 명단이 그대로 띄워져 있었다.
타이밍 좋게 리프만 오케스트라를 다녀온 민호는 물론이고 지은이와 나까지 말이다.
최윤설 선생님은 아쉽게도 떨어졌지만, 난 나와 지은이가 붙었다는 사실 자체로 너무 놀라워 말이 나오질 않았다.
뭐라고 말하면 좋을지.
어떻게 반응하면 좋을지.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목표한 바를 이루어냈다는 성취감?
떨어지지 않았다는 안도감?
선생님이 떨어졌다는 아쉬움?
다른 이도 아니고 바로 내가, 그 환상적이었던 박의범과 동급의 연주자라 인정을 받았다는 비현실감?
한 마디로는 정의할 수 없는 복합적인 감각이 내 전신에서 조용히 요동쳤다.
그렇게 멍하니 있기를 수 분,
지이이잉-
띠링!
띵-
나는 단숨에 불을 내뿜기 시작한 내 스마트폰 소음으로 인해 정신을 차렸다.
가장 먼저 보이는 액정에는 ‘김백찬 기자님’이라는 글씨가 보였다.
거기에 조금만 더 있으면 스마트폰의 기본 어플이나 다름없이 여겨질 노란 메신저, 예린이를 따라 일단 깔아두었던 두 종류의 SNS까지.
지금도 현재진행형으로 일사불란하게 울려 퍼지는 수십 개의 알림음이 이렇게 말해주는 듯했다.
나, 아니 우리가 정말로 큰 일을 냈다고.
***
-클래식 협회의 곽재윤, 소송에 휘말려.
-곽재윤 심사위원직에서 물러나
-클래십 협회의 관계자는 큰 오해를 받았다고 주장!
-베테랑 피아니스트 백중철, 양심 고백.
곽재윤 혹은 클래식 협회를 검색창에 검색하면 가장 먼저 보이는 기사들의 제목이었다.
처음에는 아무리 그래도 날 백 퍼센트 신뢰하지는 않는 것 같았던 민호네 기사님.
허나, 정작 백중철이 건네준 짐을 살펴보고 암호화까지 걸려있던 문서들을 열자 그의 태도는 완전히 변했다.
기사님은 이번 일을 민호의 아버지이시자 금천문화재단의 이사장이신 김동혁씨에게 보고한 것이다.
솔직히 나도 정신없는 본선 진출자의 입장이었기에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는데···.
그렇지 않아도 클래식과 공연 전반에 있어 ‘금천문화재단’과 쌍벽을 이루던 게 ‘클래식 협회’였다.
그런데 문화산업을 장려하고, 신인을 이끌어도 모자를 ‘클래식 협회’ 내부에서 신인들을 괴롭히던 세력이 있다?
게다가 그 음침하고 더러운 일을 지시하던 사람이 그 협회, 협회장의 아들이다?
김 이사장님은 이번 일을 중대사안으로 받아들였고, 아예 ‘재단’ 차원에서 이 일을 문제시하고 공론화시키기 시작했다.
이는 내가 알고 있던 전생의 흐름과는 사뭇 달랐다.
전생에는 ‘신인 죽이기’ 자체가 이렇게 많이 언급된 적도 없을뿐더러, 반성할 줄을 모르는 협회는 반년마다 곽재윤을 다시 복직시키려는 움직임까지 보였었다.
그 역겹고 치졸한 행각에 치를 떨면서도 재판에 임하는 피해자들도 고생이란 고생은 다 했었는데···.
이번에는 구렁이 담 넘어가듯 조용히 일을 끝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진 것이다.
-금천문화재단, 클래식 협회는 문화산업을 어지럽히는 사회의 종양 같은 존재라 선언!
그래.
이런 식으로 굵직굵직한 기사가 체 마를 틈도 없이 계속해서 쏟아져나오게 된 것이다.
‘새로 고침’을 할 때마다 있던 기사가 사라지거나,
없던 기사가 새로 올라오는 등 참 끝도 없는 언론 공방이 실시간으로 내 눈앞에 보일 정도로 격렬한 상황.
이 상황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았다.
“X됐네. 곽재윤.”
적어도 강산이 바뀐다는 10년간, 곽재윤은 앞으로 그 어떤 곳에도 볼 일이 없으리라.
그런데,
사실 ‘금천문화재단’이니 ‘클래식 협회’니 굵직굵직한 단체들이 참전을 선언한 재판보다 최근 세간을 뜨겁게 달구는 주제가 따로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협회, 재단, 소송, 고소, 재판’
이토록 강렬하고 위협적인 단어들이 수시로 오가는 인터넷 기사들보다 더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은 키워드는 다름 아닌.
‘천재’였다.
-사상 초유의 사태. 진짜 천재들이 나타났다!
-세 천재, 나란히 정상에 오른다!
-프로 중 프로를 가리는 콩쿠르의 결선 진출자가 미성년자?!
당장 업로드된 지 30분도 채 지나지 않은 기사들만 잠시 훑어봐도 눈에 밟히는 기사들이 이렇게나 많았다.
‘천재’
최근에는 다소 가볍게 언급되기 시작하던 호칭이었다.
항상 기자들은 화제성이 짙은 어휘를 사용하기도 했고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그를 ‘천재’라 칭하기 바쁘니 그야 사람들 사이에서 그 단어가 무뎌질 수밖에 없겠지.
허나, 그렇게 천재라 불린 사람들은 대부분 잠깐 반짝하고선 소식이 끊어지기 일쑤였고.
점점 천재라는 호칭은 그저 진부한 명칭으로 굳어갈 뿐이었다.
정말로, 일반적인 상식의 범주를 초월한 업적을 이토록 단기간에, 몇 번이고 이루어내기 전에는 말이다!
대서특필.
말은 많이 들어봤지만, 클래식과 같이 대중의 관심이 점점 식어가는 분야에서는 결코 일어나기 쉽지 않은 일이었다.
허나,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난 것이다.
지금까지와는 그 사이즈 자체가 다른, 3대 신문사가 나, 지은이, 민호를 대서특필했다.
지금껏 아무리 유명해져도 케이블 방송사 말고는 누구도 큰 관심을 두지 않던 클래식 관련 소식에 방송 3사마저 단번에 움직인 것은 정말 유례가 없는 대사건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일들의 중심에 있는 존재가 나라는 걸 인지한 순간···.
나는 뭐라 말하기 힘든 짜릿한 희열을 맛볼 수 있었다.
예전에는 농담 차원에서 말했던 ‘9시 뉴스’에 내가 출현한 것이다.
전생에 그토록 고뇌하고 갈망했던 경지에 지금 내가 올라와 있다.
그 사실은 정말, 내 뇌를 마비시키는 어떤, 형언할 수 없는 감각을 내게 선사해주고 있었다.
그 모든 일들의 신호탄이 되어준 결선 진출자 명단이 발표된 지 정확히 5일.
5일의 시간이 지난 뒤에야, 드디어 집 밖으로 나와 밖을 거닐 수 있었다.
-뭐? 지금 나가겠다고? 음···. 성현아 나라면 일단 3일간은 집에 박혀있을 것 같은데.
첫날,
그 누구보다 먼저 내게 전화를 주었던 김백찬 기자님이 했던 말이다.
나는 당시, 너무 기쁜 나머지 그의 경고를 깔끔히 무시하고 미향예고 기숙사를 나갔는데···.
카메라 플래시가 수도 없이 터지고, 내 머리보다 큰 렌즈를 들이미는 사람들과 정면으로 만나고 말았다.
그들은 천지지변처럼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다가.
이런 상황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나를 마중 나와준 민호네 기사님이 없었다면 그대로 원치도 않았던 영상과 사진을 온종일 찍힐 뻔했다.
“무슨 폭풍우도 아니고···.”
그러니 식겁한 내가 조용히 본가로 돌아와 5일을 조용히 보낸 것은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
이른 새벽,
얼굴에는 검정색 마스크를 뒤집어쓰고, 어울리지도 않게 큰 선글라스를 쓴 사람이 새벽의 어스름을 틈타 아파트 단지를 벗어났다.
그렇지 않아도 수상쩍은 몰골이었음에도 거기에 캡모자까지 꾹 눌러쓰고 있으니 하, 이건 정말 수상하기 짝이 없는 사람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 수상한 사람은 바로, 나였다.
“하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이 새벽까지 아파트 주차장에 몰래 들어와 자리를 잡은 기자들의 차를 피해 주거단지를 벗어나자 내 입은 자연스럽게 그런 한숨을 토해냈다.
안 들켰다는 안도부터 내가 이런 모습으로 몰래 다녀야 한다는 처지까지.
참 가관이었던 터라 나온 한숨이었다.
복장은 예전에 공항에 조용히 나타난 정석 선배를 참고한 것이었는데···.
진짜, 한 번이라도 봐두길 잘했다.
삑-!
인적이 드문 버스에 올라 조용히 맨 뒷자리에 앉았다.
이 새벽, 이렇게 몰래 나온 이유는 간단했다.
약속을 했던 것이다.
대서특필이 되고, 방송에 출연하고 난리가 난 우리.
그런 우리는 정작 본선을 준비하기 시작하던 날부터 제대로 얼굴 한번 보질 못했거든.
나와 민호, 지은이는 지명된 오케스트라가 다르니 당연하고, 정작 함께 ‘KDS고향 악단’에 지명된 지은이와 민호도 빡빡하게 일정을 잡아주는 마에스트로가 계속 다른 시간을 잡아줘서 얼굴도 못 봤다고 들었다.
그 때문에 기자들을 피해 숨어 지내던 3일 차.
우리는 주로 예린이를 통해 건너, 건너 서로의 소식을 간신히 접했고 약속을 나눴다.
2010년 11월 4일.
M스튜디오의 그 장소에서 만나자고 말이다.
그런 이야기를 몰래 주고받던 중.
나는 어느새 시간이 벌써 11월이 되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확실히, 요새는 날짜 감각을 잊어버리고 지냈다.
‘한국 종합 콩쿠르’에 참가하다 보니 매일 매일은 2차 예선 3일 전, 본선 일주일 전으로 불러왔던 것이다.
“어느새 11월이라니···.”
퍽 감회가 새로웠다.
11월 4일이라.
분명 지금으로부터 딱 1년만 시간을 되돌리면, 오늘은 딱 내가 정석 선배의 인도에 따라 처음으로 M스튜디오에 방문했던 그 날이었다.
그리고 그 말은 즉, 내가 다시 생을 살기 시작한 지가 이제 1년 되었다는 말이기도 했다.
“1년이구나.”
형편없던 몸은 완전히 변했다.
1학년 하반기부터 찾아올 거라 계속 학수고대하던 성장기는 이미 찾아왔다.
167cm였던 키는 179cm가 되었다.
얇고 힘없던 손가락은 전생보다 일찍 연주를 시작한 덕분인지 길쭉길쭉해졌다.
일반인의 시선에서는 별 차이 없어 보이겠지만, 피아노를 치는 사람으로서는 유의미한 변화라 볼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입지는 말할 것도 없다.
지금 이렇게 숨어다녀야 할 정도가 되지 않았는가···.
“하아,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구나.”
전생의 나였다면 듣고도 이해하지 못했을 수준 높은 레슨을 좋은 기회를 통해 수 없이 듣다 보니, 실력도 전생의 나와 현생의 나를 같은 놈이라 말해도 믿지 못할 만큼 일취월장했다.
정석 선배, 김기택 선생님, 마주혁 원장님, 모리스 슈만, 김순이 할머님까지.
그러고 보면 전생에는 혼자서 피아노를 피하기 바쁘던 그 시간을 참 알차게도 보낸 것 같다.
“하···. 시원하네.”
아무래도 이 시간에 M스튜디오에 와 있을 거라고는 기자들도 생각지 못했는지 스튜디오 앞은 텅 비어있었다.
해가 떠오른다.
볕이 들자, 얼마 전에 봤던 단풍이 이젠 완전히 붉게 물든 모습이 보였다.
누가 잘못 보면 나무에 불길이라도 붙은 거라고 착각할 만큼.
어느새 계절은 완전한 가을이 되어 있었고, 불어오는 바람도 시원함을 넘어 서늘한 한기를 머금고 있었다.
이젠 M스튜디오 곳곳에 내 추억이 서려 있다는 사실이 괜히 즐거워 작은 미소가 흘러나왔다.
“성현아!”
그렇게 조용히 M스튜디오의 사방에 심어진 새빨간 가을을 감상하고 있었는데, 그런 내 등 뒤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완벽한 변장을 어떻게 알아···.
아니, 이런 헛소리는 관두고.
“지은아!”
나는 저 멀리 버스 정류장에서부터 달려오는 내 어여쁜 여자친구를 보자마자 마찬가지로 나도 그녀를 향해 달렸다.
아무리 콩쿠르 일정 때문이라고 해도, 지은이와 나는 무려 스무 번이나 해가 뜨고 지기를 반복하는 동안 제대로 된 대화도 못 했었다.
나도, 지은이도 가장 피곤한 시기에 서로 짧은 애정표현을 못 하고 있었으니 얼마나 답답했었는지···.
나는 그간 답답했던 마음을 고스란히 담아 목청 높여 지은이를 불렀다.
“지은아아!”
“으, 헛···!?”
이에 놀라 달려오던 걸음을 늦추는 지은이를 덥석 껴안으니 아까 날 부르던 기세는 어디로 간 건지, 눈을 동그랗게 뜬 지은이가 숨을 빠르게 들이쉬는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참 오랜만에 지은이를 놀려주고 장난도 치고 있다 보니, 그간 내 안에서 텅 비어가던 부분에 뜨뜻미지근한 무언가가 차오르는 느낌이 났다.
그렇게 한참,
이제야 한번 큰 산을 넘어 잠시 숨을 돌리고 있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
셋이서 이른 아침에 모이자고는 했지만, 실은 나와 지은이는 따로 약속 시간을 1시간 앞당겨 잡았었다.
그래서 해가 뜨지도 않은 이른 새벽 5시에 집을 나왔던 거고 말이다.
약 한 달,
지은이와 데이트를 못 갔더니 그녀는 가고 싶은 곳, 해보고 싶은 것이 많이 쌓여 있었다.
특히 저번에 SNS를 통해 알게 된 고양이 카페에 갔던 것이 특별히 기억에 남았는지, 나와 이른 시간 M스튜디오 응접실에서 찰싹 달라붙어 있던 그녀는 그곳에 다시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렇게 그간 풀지 못했던 갑갑한 마음을 풀고 정말 가만히 있어도 미소가 지어질 만큼 만족스럽게 지은이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어느새 약속 시간이 되었다.
삐비빅- 삐비빅-
혹시 몰라서 내가 미리 잡아놨던 알람이 울리지 않았다면 또 민호가 질색하는 표정을 보게 될 뻔했다.
“휴.”
“흐으으으음.”
이에 내가 안심하는 한편, 지은이는 원망스럽다는 듯 그런 소리를 내며 내 스마트폰을 노려봤는데, 그 모습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던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잠시 세수를 하고 오겠다며 복도로 뛰어나갔다.
음, 귀엽다.
고등학생 맞나 사실은 더 어린 거 아냐?
아무튼, 지은이는 오늘도 아주 귀여웠다.
크흠!
시간이 약 10분 정도 지나자 민호가 기사님과 함께 M스튜디오에 나타났다.
아무래도 ‘금천문화재단’이 재단의 레벨에서 이번 사태에 대응하기로 했기 때문인지 김 이사장님은 물론 민호까지 곽재윤과 백중철 그리고 나에 대해 듣게 된 모양이었다.
“이제는 설명해줄 수 있어?”
민호는 아무런 말도 없이 혼자 일을 진행한 내게 가장 먼저 불평이나 고마움이 아닌 침착한 질문을 던져왔다.
역시 머리가 좋고 침착한 민호답게 전후 사정을 모두 파악한 뒤에 그에 알맞은 대답을 들려줄 심산인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어떻게 ‘곽재윤’에 존재까지 미리 알고 있었는지를 설명할 수가 없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정석 선배에게 언질을 받았다는 변명과 함께 내가 알고 있던 ‘신인 죽이기’에 대해 털어놓았다.
이를 차분히 듣던 민호는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짓더니,
“내가 폐를 끼친 것 같네. 정말 고맙고, 미안해.”
그렇게 어른스러운 말투로 조곤조곤하게 말을 해주었다.
그동안은 민호가 독일 유학을 다녀왔다는 걸 크게 실감할 기회가 없었는데, 이전과는 다른 이런 대응을 보다 보니 새삼 그가 전생보다 더 빨리 정신적으로도 성숙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흐으음으으으음···!”
그리고 마찬가지로 이를 놀란 얼굴로 들어주던 지은이는 그런 앓는 소리를 내다가, 왜 진작 자신에게 상담해주지 않았느냐며 서운함을 표했다.
그녀는 상당히 불만스러운 눈치였지만, 나는 오히려 거기서 그녀가 나를 걱정해준 마음을 느낄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어찌 됐건 그렇게,
‘한국 종합 콩쿠르’ 본선과 결선 사이의 중간 휴식 기간인 일주일 동안 그간 못했던 대화를 나눌 수 있어, 군더더기 하나 없는 깨끗한 심정으로 결선에 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문제가 하나 남았어 성현아.”
문득, 이제 근황에 관한 얘기를 모두 마치고 민호네 기사님이 들고 온 초호화 도시락을 먹으려던 찰나, 민호가 말했다.
문제?
아직도 뭐가 남았던가.
내 머릿속에서는 분명 콩쿠르도, 신인 죽이기도 잘 해결되었다고 결론이 났었는데 말이다.
“무슨 문제?”
혹시 내가 뭔가를 놓치고 있던 건 아닐지.
불안한 목소리로 그리 묻자.
민호는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다름이 아니라···. 너랑 관계가 있다고 했던 그 최윤설씨에 대한 건데.”
최, 최윤설?
선생님은 분명, 높은 인지도에 탁월한 실력을 널리 알려 이젠 탄탄대로를 걷는 일만 남은 상황 아니었나?
인기가 워낙 좋아서 걱정조차 안 하고 있었는데, 설마 선생님께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서, 선생님이 왜···?”
난, 너무도 갑작스러운 민호의 발언에 말을 더듬어가며 그렇게 되물었고, 민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너무 의외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