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Of the Unique Lineage RAW novel - Chapter 63
61. 선택보다 중요한 건 그 일을 하는 이유다.
“저는요?”
나도 외부 보안 3팀이다.
“팀장의 마지막 배려다. 입 다물고 숨만 쉬면서 버텨.”
“별일 없이 넘어갈 수도 있습니까?”
“글쎄다. 솔직히 중봉이가 선을 넘긴 많이 넘었으니까.”
더 이상 나눌 얘기는 없었다.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믹스커피를 휴지통 옆에 올려두고 자리로 돌아왔다.
휑했다.
자리에 앉으니, 메신저가 반짝거렸다.
그중의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본부장이다.
아니, 이런 시발 새끼를 보았나.
분명 본부장 승인 비공식 작전인데.
여기서 발을 뺀다고?
염병할 새끼네. 쌍욕을 박아 주고 싶었지만, 그럴 순 없는 노릇이다.
하, 이게 뭔 일이야.
울컥.
갑자기 짜증이 치솟았다.
임포스터가 있다고 생각했고 밝히려 했는데.
이 일이 이렇게 된다고?
왜? 지랄 맞았다. 몹시도 지랄 맞는 일이다.
원망만 한다고 변하는 건 없었다. 그러니까 생각하자.
지금은 누굴 욕하는 것보다 머리를 굴릴 때다.
아버지는 머리에 총구가 닿아도 피할 방법이 쉰 개는 있다고 했었다.
어떤 일이든 탈출구는 있다.
난 승강기에서 내린 직후부터 지금까지 시간을 되새겼고.
한마디 말이 뇌리를 스쳤다.
“숙제나 하고 있어. 신삥.”
숙제? 무슨 숙제.
우리 목표는 애초에 지점 두 개를 타격하는 거고.
이건 최단기간에 끝냈다.
근데 무슨 숙제가 있어.
팀장이 한 말에 의미를 두면 안 되는 걸까.
아니야, 의미가 있다.
끌려가는 순간에 나한테 흰소리를 뱉을 인간이 아니다.
6개월 동안 본 팀장은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다. 내 왼 손목을 걸 수도 있었다.
결론은.
나한테 숙제가 하나 남았다는 거다.
그리고 여기서 숙제라면.
‘본점.’
지점을 넘어 본점을 치는 걸 말할 것이다.
하지만 비공식 작전을 승인해 줄 새끼가 오리발을 내민다.
지원을 받을 수 없다는 말이다.
내가 조른다고 해 줄까?
안 해 준다. 본부장은 이미 발을 빼기로 작정했다.
이런 말을 꺼내는 순간, 방해하면 했지, 절대 돕지 않는다.
난 본부장을 모른다. 모르는 사람을 설득할 순 없다. 그건 도박이다.
도박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동전을 던져서 앞과 뒤 중 하나를 맞춰서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건, 최악의 수단이다.
머리에 총구가 닿아도 해결할 방법은 쉰 개라 했다.
발상을 전환하자.
난 멍한 시선으로 허공을 바라보며 머리를 굴렸다.
평소에 모두가 멍청해 보인다는 그 표정이다.
작전 승인에 본부장 사인이 꼭 필요한가?
아니지. 그건 아닐 것이다.
어벤져스.
내가 처음, 이 사무실에 발을 들였을 때 팬더 대리가 한 말이다.
내가 바로 남명진 사장 어벤져스라고.
앞과 뒤가 막힌 상황이라 생각했다.
아니다. 길이 있다. 샛길이.
그것도 가장 빠른 길이.
메신저에 뭘 쓰는 대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곧장 승강기로 향했다.
“어디 가냐?”
옆 팀 대리가 물었다.
“잠깐 머리 좀 식히고 오겠습니다.”
다들 날 멍청하게 본다면, 내가 뭘 할 거로 기대하지도 않겠지.
초고속 승진에 테스트에서 압도적 실력을 보였지만, 난 신입, 그 신입이 얼마나 대단한 사고를 치겠나.
다들 그리 볼 것이다.
그래서다. 날 붙잡거나 말리는 사람은 없었다. 뭘 하러 가는지 꼬치꼬치 캐묻는 사람도 없었고.
띵.
꾹 하고 승강기 버튼을 눌렀다.
9층.
사장 사무실이 있는 곳이었다.
* * *
“혐의가 한둘이 아닌 건 인정합니까?”
감사팀 직원이 물었다.
눈썹이 얇고 예쁘장한, 여장해도 잘 어울릴 중성미가 넘치는 미남이었다.
“무슨 말인지.”
중봉은 눈을 깜빡이며 답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모르겠다는 그런 표정이다.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정말 억울한 사람을 데려온 줄 알 것 같았다.
‘보통이 아닌 건 알았지.’
직원은 생각하며 서류를 꺼냈다.
취조실에 가까운 곳이었다.
그나마 백열등이 아니라 LED등이라 다행인 수준의 어둡고 좁은 방이다.
노란색의 LED등이 테이블 중앙을 비춘다. 대체로 취조실은 비슷한 분위기를 풍겼다.
어둡고 혼자인 기분이 들게 해, 정신적 압박을 가한다. 물론 이런 분위기, 압박이 안 먹히는 인간도 있기 마련이었다.
그런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인가.
팩트, 사실이다.
사실로 공격하고 현실에서 상대해야 한다.
탁.
직원이 서류를 테이블 위로 던졌다.
“여기에 적힌 것 중 반만 진짜라고 해도 최소 십 년입니다.”
“오호.”
서류를 본 중봉이 눈을 반짝였다.
신난 얼굴이다. 그걸 본 직원은 미간을 찌푸렸다.
“어렵게 돌아가지 마시죠. 일부 협의를 인정하면 나머지는 합의를 진행해서…….”
“이 혐의의 출처는?”
“……뭐요?”
“누구 오더로 감사가 시작됐을까?”
“이봐요, 이중봉 팀장님.”
“사장님도 모를 일을 적어 놨네. 그러므로 정황 증거로 적은 것도 많다는 거고. 맞지?”
탕!
직원이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쳤다.
충격으로 불빛이 흔들렸다.
까딱거리는 불빛 덕에 그림자가 일렁였다.
그 불빛 밑으로 얼굴을 들이민 직원이 입을 열었다.
“취조는 제가 합니다. 지금 나한테 질문한 겁니까?”
“혼잣말인데.”
중봉이 멀뚱히 그를 보다가 답했다.
보통 놈이 아니다. 직원은 생각했다.
“당신, 이렇게 나오면 절대 쉽게 못 넘어가. 알잖아.”
“처음부터 그냥 넘어갈 생각도 없었잖아.”
“내부 재판을 받게 될 겁니다.”
“언제?”
“이틀 뒤에 합니다.”
중봉은 생각했다.
시간이 꽤 촉박하다고.
그리고 자신에게 남은 패는 하나뿐이었다.
* * *
물끄러미 날 바라보는 눈빛이 참 따갑다.
사장에게 가는 길이 이리 험한 가시밭길인 줄은 몰랐다.
아니, 예상해야 했는데 다른 생각에 빠져서 무작정 찾아왔다.
“무슨 일?”
비서가 물었다.
이전에 봤던 무서운 무테안경 아저씨다.
저기에 대머리면 더 살벌하겠지만, 이분은 풍성했다.
어지간한 아이덴티티가 아니고서야 굳이 대머리를 고집하는 사람은 흔치 않겠지.
“잠깐 뵐 수 있을까요?”
“누굴?”
“사장님이요.”
뚝.
비서가 고개를 모로 꺾었다.
목이 90도로 꺾였다.
보는 사람에게 공포를 주는 묘기다.
그래, 만나고 싶다고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아닌 건 알겠다고.
일반 직원에게 사장이란 존재는 팝스타 같은 거다.
사진으로 볼 수 있고, 노력하면 멀리서 볼 수도 있고, 운이 따르면 만날 수도 있지만.
어지간하면 실물을 보기 힘든 그런 존재.
“안 됩니까?”
“될 것 같습니까?”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래, 이건 아니다.
다른 방법이 있겠지. 있을 거야.
돌아서려 했다.
그런 내 눈에 벽과 문이 보였다.
아무리 봐도 방음 시설은 아니다.
하도 회사 내에서 방음재를 많이 봐서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었다.
거기에 이 빌딩이 조형 예술로 만든 건축물도 아니고.
각 층의 구조는 비슷할 거다.
그러므로 여기서 사장의 사무실까지 방음재가 없다면.
지금 나와 비서의 대화가 사장의 귀에 들릴 것이다.
뚝.
돌리려던 몸을 멈췄다.
“뭐 하나 물어봐도 됩니까?”
“그냥 가시죠.”
비서는 여전히 얼음장같이 차갑고 살벌했지만.
그걸 제하고 이제까지 보인 사장의 태도에 집중했다.
오티 때부터 지금까지.
따로 불러서 얘기하고 돈도 줬다.
잘한다고 칭찬도 했지.
“저 찍었죠?”
“……?”
비서가 눈으로 되묻기에 말했다.
“사장님이 무슨 의도로 절 찍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속으로 심호흡 좀 하고.
머릿속으로는 말을 정리했다.
난 사장의 도움이 필요하다. 절실하다.
여기까지 올라오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팀장과 팬더, 사수가 한 번에 잡혀가서 전부 감방 이웃사촌이 될 위기에 처해 있다.
이런 경우가 흔할까?
아니다. 그럼 이런 일이 왜 생겼는가.
‘지점을 털었으니까.’
두더지와 프로메테우스의 관계가 아주 긴밀하다는 의미다.
이런 상황에서 팀장은 나한테 숙제를 하라고 했다.
그 숙제가 이 일에 영향을 준다는 의미겠지.
고로 난 이걸, 숙제를 해야 한다. 그럼 사장을 만나야 하고.
“찍었으면 이유가 있겠죠. 그 이유를 증명하고 싶습니다.”
“소설가가 꿈이면 사직서를 내는 게 어떻습니까? 2급 사원 유광익 씨.”
비서 아저씨 엄청 까칠하네.
이미 뽑은 칼이다. 난 무라도 썰어야겠다.
“소설가가 꿈인 직원이 필요하십니까? 그건 아닌 것 같은데요. 제 능력 평가를 보셨을 거고, 원하는 게 있으니 절 그곳에 두셨을 겁니다. 그럼.”
비서와 눈을 마주했다.
난 지금 비서에게 얘기하는 게 아니었다.
“원하는 걸 얻도록 해 드리겠습니다. 그럴 기회를 달라는 겁니다.”
솔직히 말하지.
나도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그냥 땡깡이었다.
나 지금 큰일 났고, 당신은 나한테 관심 있으니까 일단 얘기나 좀 들어 달라고.
안 먹히나? 그럼 다른 방법을 써야겠지.
그건 최악인데, 어지간하면 피하고 싶다.
살벌한 무테안경 비서 아저씨와 눈싸움을 한 지 5초쯤 됐을 때다.
체감하기로는 한 5분쯤 됐고.
“들여보내.”
사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가시죠.”
비서가 옆으로 비켜섰다.
이 사람, 진짜 이상하게 무섭단 말이다.
그래도 어머니보다는 안 무섭다. 괄약근에 힘 빡 주고 문을 열었다.
넓은 사무실이 보였고, 소파에 앉은 남명진 사장도 보였다.
“나 소설 좋아하는데 둘이서 소설 자체를 까는 것 같아서, 몹시 불쾌해서 불러봤다.”
여전히 사장은 헛소리를 잘했다.
이 양반 페이스에 빠지면 답도 없기에 짧고 굵게 말했다.
“저 믿고 일 하나 하시죠.”
“일?”
사장은 미소 한 점 없는 얼굴로 되물었다.
“네.”
“무슨 일?”
“은행 하나 털 겁니다. 턴 돈의 반을 드리겠습니다.”
응. 개소리다.
하지만 그 내면의 의미를 모르면 사장이란 직함 내려놔야지.
지금 회사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를 리 없잖아.
침묵이 오갔다.
어떠한 살기도, 위협도 없지만,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반이 아니라 전부를 줘야지.”
“너무 하시네요. 전 뭐 먹고 살라고.”
“돈이 아니라면 다른 걸 주든지.”
다리를 꼰 채로 앉은 사장을 눈을 직시한 채, 내가 말했다.
“원하시는 게 있다면 뭐든.”
“상자에 숨은 썩은 과일 찾아서 가져와.”
……차라리 이 말을 알아들을 머리가 없었으면 좋겠다.
“제가요?”
“그 정도는 해 줘야 비공식 작전 승인에 직인을 찍어 주겠지.”
……놀라라. 이 양반 어디까지 내 의도를 아는 건가.
“가능한가, 불가능한가.”
사장이 물었다.
사장이 하는 말은 첩자를 찾아서 눈앞에 대령하란 말이다.
그래, 나도 시작은 그랬다.
두더지를 잡겠다고 시작했는데.
현실적으로 보안 3팀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봐라, 쿡 찌르기만 했는데 다 잡혀갔다.
만약 이 일이 잘못된다면?
본부장이 떠올랐다. 그의 오리발을 봤다.
화림 내에는 사장과 임원의 알력이 존재했다.
문제가 생기면 사장은 이미 쏜 총알이 자신의 것이라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실패하면 난 버린 칼이 되겠지.
운 좋으면 감옥, 운 나쁘면 죽으려나.
보통 일이 아니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데.
“이틀 뒤에 내부 재판이 있다. 피고가 누구인지 말 안 해도 알겠지?”
시이발.
생각할 시간 따위 없네.
자, 유광익, 생각하자.
저거 가능하냐? 불가능한가?
상식적으로 성공보다 실패 확률이 높긴 한데.
생각의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순간, 아버지와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아들, 선택의 순간에 필요한 게 뭔 줄 알아?”
“듣고 싶지 않습니다.”
“이 아버지는 아들의 주머니가 비어 버리는 걸 보고 싶지 않아서 그러는 거지.”
설날에 포커 치며 나눴던 대화다.
“뭔데요?”
“중요한 건, 선택이 아니라 왜 그 상황에 왔는지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요.”
패에 집중하느라 아버지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이것과 저것, 선택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걸 해야만 하는 이유가 더 중요하다는 거지.”
“그래서 나보고 죽어라?”
“레이스를 달리면 이 아빠가 아들의 세뱃돈을 다 뺏게 될 것 같은걸?”
그 나이에 귀여운 척이라니.
근데 잘생겨서 은근히 잘 어울린다. 그걸 알면서 하니 가끔 재수가 없긴 했다.
결국, 졌다.
죽었어야 했는데 레이스를 달렸다.
난 킹 스트레이트.
아버지는 풀 하우스.
상념에서 빠져나와 사장의 눈을 바라봤다.
가능과 불가능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걸 다 할 뿐.
내가 이걸 안 하면 시발 팀장과 팬더 대리, 얼음 사수는 끝이다.
선택은 중요하지 않다. 이유가 중요하다. 그 이유, 내가 이곳에 온 이유.
가능과 불가능의 문제가 아니다.
해야 한다.
“가능합니다. 제가 대령하죠.”
난 말했다.
거래는 거래였다.
사장은 시원하게 직인을 찍어 줬다.
그렇게 난 다시 한번 비공식 작전 승인 인가를 받았고, 전과 다른 점이라면 이번에는 혼자라는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