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11
“……와우.”
3초 분량의 짧은 동영상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보통 일이 아니다.
메마른 하늘을 찢고 시퍼런 번개가 내리찍히면서 지표면을 불태우는 광경은 쉬이 구경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할말을 잃고 영상을 돌려보던 제니가 헛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그러니까, 이게 아까 그놈이 한 일이라는거지?”
“본인 입으로 전격계열 마법사라 하지 않았느냐. 거의 확실하다고 봐야겠지.”
실제로 마법을 다루지는 못하더라도, 마법에 대한 지식을 갖추는것은 이 바닥에서 당연한 일이다.
두 사람은 마른 하늘에 벼락을 떨어뜨린다는것이 실제로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원소마법 계열의 고유마법은 특정한 매개체를 중심으로 마법을 사용하지 않고 순수한 의념과 마력을 다루는 만큼 그 난이도가 상당하기로 유명하다.
사용자의 편의성을 중심으로 개량된 현대마법 보다는, 아주 오래전부터 사용하던 정통마법에 가까워서 실전성을 가지기까지는 아주 오랜시간이 걸린다고.
자신을 중심으로 특정 원소를 구현하는것도 오랜 시간이 필요한데,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중심으로 마력을 전개하고 의지를 끌어들여서 현상을 구현하는일은 얼마나 많은 시간과 재능을 필요로 하는것일까.
제니는 영상을 계속 돌려보면서 중얼거렸다.
“아무리 낮게 잡아도 레벨 4정도는 되는 것 같은데.”
레벨 4 정위 마법 사용자. 마법을 배우고 쓰는 수준을 넘어 완전한 이해를 통해 숙달된 사용에 도달한 마법사들을 일컫는다.
이 계급의 마법사들은 현대 화력전에서 밀리지 않고 제 역할을 하는것이 가능하며 마법사로서 1인분을 하는 단계를 넘어서 한명의 연구자로서 인정받는다.
스스로 배우고 익힌 마법체계를 연구하여 성장할 가능성을 얻을 수 있는 최소한의 위계였다.
발칸 시청의 관리하에 있는 레벨 4 이상의 마법사들은 원한다면 언제든지 도시의 연금을 타먹을 수 있으며 스스로의 연구성과를 제출하는것만으로 성과금을 받는다.
“레벨 5 이상일지도 모르지.”
“말도 안돼. 그런 천재가 왜 여기서 일하려고 현상금을 버는데? 그냥 아무데나 가서 마법한번 보여주면 바로 한자리 내줄텐데.”
제니의 말에 조든이 고개를 저었다.
“다른 계열이라면 몰라도, 전격계열 학파중에서는 짐작가는 곳이 있지.”
“……그 샌님같은 놈이 ‘토르번’ 학파 소속이라고?”
그녀는 그렇게 부정하면서도 레녹이 흘리듯이 중얼거렸던 말을 떠올렸다. 분명 도시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하지 않았던가.
“혹시 모르지. 하지만 그가 정말로 그 전쟁사업가들의 일원이라면…. 아주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을거다.”
조든은 그렇게 말하면서 테일러 에반스의 시체를 자루에 돌려놓고 어깨에 들쳐멨다.
지하에 있는 소각장으로 향하는 그의 눈빛은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
레녹은 곧장 제니의 술집을 나와서 그녀가 알려준 과수원으로 향했다.
그 과정에서 그녀가 들려준 이야기는 레녹의 흥미를 자극하는 부분이 있었다.
거대도시 발칸에는 수십개가 넘는 에이리어들이 존재하지만 도시가 확장됨에 따라 구역이 만들어진 순서에 따라서 그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다고 한다.
도시의 핵심적인 운영과 경제를 책임지는 행정지구가 위치하는 0-9번대 구역.
공룡기업들을 비롯한 다양한 사업체들의 건물로 빌딩의 숲을 이루는 10번대 구역.
발칸에서 살아가는 시민들이 일하고 생활하는 대부분의 번화가가 위치한 20번대 구역.
놀이공원이나 항만처럼 큰 면적을 필요로 하는 도시의 시설들이 모인 30번대 구역.
새롭게 개발이 이뤄지면서 어수선한 틈을 타 비인가조직들이 자리한 40번대 구역과, 부랑자와 온갖 범죄자들이 떠도는 미개발지구가 널린 50번대 구역.
그중에서도 제니가 말한 과수원은 31구역에 위치하고 있다.
발칸에서 가장 거대한 규모로 운영되고 있는 플럼버의 식물원.
30번대 구역중에서도 낮은 숫자를 가진 에이리어에는 가족단위의 시민들이 자주 방문하는 시설들이 위치해 있는데, 식물원도 그런 방식으로 31구역에 배치된 시설들 중 하나다.
거대한 스타디움처럼 지어진 식물원의 매표서에서 티켓을 끊고 안으로 들어간다.
티켓값으로 1만셀이 빠져나갔지만 방금 현상금을 받고 주머니가 두둑한 상황이라 부담되지는 않았다.
식물원 안으로 들어가자 내리쬐는 인공태양 아래 오직 식물들로만 이뤄진 거대한 밀림이 형성되어 있었다.
사람 너댓명을 능히 거둘만한 거대한 봉우리를 가진 식물이나 수백가지 색채를 동시에 품고있는 꽃은 레녹도 잠시 걸음을 멈추고 감상하게 만들만큼 특이하고 아름다웠다.
살아있는 동물처럼 벌판을 걸어다니는 나무나, 얇은 피막을 펼치고 허공에 둥둥 떠다니는 우산을 닮은 꽃씨도 눈길을 끈다.
하지만 레녹은 빠르게 정신을 차리고 제니가 알려준 방향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좀 오래 걸었더니 벌써부터 진한 피로감이 온몸을 무겁게 내리누르고 있었다.
거대한 식물원을 한바퀴 돌고 나가는 길에 위치한 기념품 가게.
아이들을 위한 인형이나 열쇠고리, 행운을 의미하는 꽃잎을 보존한 유리수정등을 파는 거대한 샵.
온갖 식물 모형이 진열된 장식장 뒤쪽에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 써진 작은 쪽문을 열고 긴 계단을 건너 아래층으로 향하면, 샵에서 나던 향기와는 다른 자극적인 냄새가 코를 찌르기 시작한다.
계단을 끝까지 내려가 고개를 돌리자 희미한 보랏빛 연기가 사방을 메우고 있는것이 눈에 들어왔다.
레녹은 연기 너머를 헤치고 그 너머로 걸어가는 대신, 계단 바로 앞에 서서 입을 열었다.
“제니의 소개로 왔습니다.”
“제니?”
대답이 들려오고, 빠르게 연기가 걷히면서 너머의 모습이 드러났다.
큰 방의 한쪽 벽면을 빼곡히 메운 나무서랍. 서랍의 개수는 족히 수천개는 넘어보인다.
그 거대한 서랍을 등진 채 노인 한명이 곰방대를 문채로 그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설마 49구역에서 술장사를 하고 있는 년을 말하는거냐?”
레녹이 고개를 끄덕이자 노인이 얼굴을 와락 찌푸렸다.
“그 어린것에게 손님을 추천할 자격을 준 기억은 없는데.”
“…….”
뭐라 대꾸하기 힘든 반응에 레녹이 멈칫한 사이, 노인이 씩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뭐, 됐다. 난 손님을 가려받을만큼 부자는 아니라서 말이다. 물건을 원하는 놈들에게 돈을 받기만 하면 그뿐이지. 그래서, 내 과수원에서 찾는게 뭐냐?”
순간 레녹은 존대를 해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지만, 그대로 밀고 나가기로 했다.
“…..왜 식물원 안에 과수원이 있는겁니까?”
파는 것들은 온갖 마약종에 가까우면서 정작 상점의 이름은 과수원이라니, 심지어 그게 도시 최대규모의 식물원 안에 있다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레녹의 말에 노인은 누런 이를 드러내면서 웃었다.
“그 식물들을 요리해서 맺히는 과실이 바로 여기 있잖냐. 우리를 천국으로 보내줄 열매들이지.”
아무래도 상관없는 질문과, 그에 걸맞는 대답이었다.
레녹은 곧바로 품안에서 남은 연초들을 전부 꺼내 노인의 앞에 내려놓았다.
“이것과 비슷한 효과를 지닌 물건들을 찾고 있죠. 이곳에서 구할 수 있을까요?”
“어디 보자….”
“조금 비싸더라도 부작용이 덜했으면 좋겠는데.”
노인은 주섬주섬 돋보기 안경을 꺼내쓰고는 레녹이 내놓은 연초를 살피기 시작했다.
“연기를 흡입하는 방식이야. 알약으로 섭취하는것보다는 빠르고, 주사를 놓는것보다는 효과가 느리게 다가오지. 하지만 제일 무난하고, 또 그 맛이 있어서 쉽게 끊을수가 없단 말이야.”
그는 그렇게 혼자 중얼중얼거리면서 나이프를 하나 꺼내어 연초를 세로로 쭉 잘라버렸다.
포장재가 벗겨지고 안의 내용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노인은 집게를 들고 육안으로 그것을 확인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흠…. 누가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완전히 쓰레기같은 물건이군.”
“……”
“안에 들어있는 재료부터, 정제, 건조, 포장까지 마음에 드는게 하나도 없어. 도대체 이딴걸 왜 피우고 있던거냐?”
제니와 노인에게 똑같은 말을 들은 레녹이 시무룩하게 대꾸했다.
“…피치못할 사정이 있어서.”
“가격을 낮추기 위해서 일부러 불순물을 섞고 중독성만을 높인 불량제품이야. 그나마 항정신성 효과는 쓸만해보이지만, 그건 약빨이 잘받는다는 착각을 심어주기 위해서지. 장기적으로 권할만한 제품은 절대 아니군.”
노인은 그렇게 말하더니 잘게잘게 해체한 연초를 곧바로 옆에 있는 쓰레기통에 집어던졌다.
“비용이 조금 들어도 부작용이 적은 물건을 원한다고 했지. 가격은 어디까지 생각하고 있지?”
레녹은 잠시 고민했다.
지금 그가 구입하는 약은 앞으로의 계획을 위한 최소한의 투자비용같은 것이다.
이 약한 몸을 정상인처럼 움직이기 위해서는, 적어도 일을 하는 동안에는 고통이나 피로를 확실하게 잊게 만들어줄 약이 필요했으니까.
하지만 그런 물건을 사용하면서도 부작용을 줄이는 것은 레녹에게 상당히 중요한 일이었다.
약을 사용할때마다 격렬한 부작용이 동반된다면 그의 몸은 결코 오래버틸 수 없다.
돈을 아낄때가 아니었다.
“….200만 셀.”
현상금으로 받은 270만 셀. 생활비로 사용할 금액만 남기고 모두 여기에 투자한다.
“음.”
노인은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뒤쪽의 선반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밀봉된 팩 여러개를 손에 들고 온 그가 팩을 열자 안에서 길쭉한 뭔가가 쏟아졌다.
레녹이 피우던 것보다는 조금 두껍고 긴 연초 형태를 띄고 있었다.
그는 그것을 하나하나 저울에 매달면서 말했다.
“단순히 마약을 원하는거였다면 그런 푼돈으로는 택도 없을거다.”
“……”
“하지만 네가 원하는 건 마약보다는 의약품을 펌핑한 물건인 것 같군. 그런 물건이라면 아슬아슬하게 기호품의 범주 안쪽에서 찾을 수 있지.”
노인은 저울에 올려놓은 서른 개 정도의 연초를 그대로 집어 레녹의 앞에 내려놓았다.
“캐쉬번-C107. 6시간 정도의 강력한 진통과 도핑, 각성효과. 약간의 정신적 고양. 복용직후 통증마비와 어지럼증. 약효가 끝난 뒤에는 두통, 경련, 구토. 낮은 확률의 각혈 정도의 부작용. 굉장히 깔끔한 물건이지.”
레녹이 생각하기에는 결코 깔끔해보이지 않는 부작용이지만, 노인은 설명을 멈추지 않았다.
“독성이 약한편은 아니지만, 중독성이 적고 장기적으로 몸에 농축되는 양도 많지 않다. 의약품을 적당한 선에서 개조한 물건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
“그게 작은 부작용입니까?”
“네가 가진 돈으로 살 수 있는 최소한의 부작용이지.”
노인의 단언했다.
“약의 반동을 줄일때마다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이것보다 좋은 물건을 구하려면 그 돈으로는 스무 개피도 사기 힘들테고, 한가지 알아둬야 하는 건 난 10개입 이하로는 절대 안팔아.”
바꿔 말하자면 한 개피에 수십만에서 수백만을 오가는 물건들이 따로 존재한다는 말이다.
레녹은 복잡한 심정으로 고개를 젓고는 그가 넘긴 캐쉬번이라는 연초를 집어들었다.
단순계산으로 한 개피에 7만 셀이 조금 안되는 물건. 가격으로만 따지면 이것 역시 만만치 않다.
지구에서도 담배 한갑 직접 사본적이 없는 레녹에게는 절로 손이 떨려오는 가격이 분명했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이건 결국 앞으로도 돈을 벌기 위해서 감행해야 할 투자였다.
결국 레녹은 돈을 지불하고 노인이 넘겨준 연초를 챙겨들었다.
“또 오라고. 내 과수원을 이용한 놈들은 다 그렇게 되겠지만 말이다.”
삐딱하게 앉아서 고개를 주억거리는 노인의 모습이 연기에 감싸여 빠르게 사라진다.
레녹은 곧바로 식물원을 빠져나와 그가 머무는 호텔로 향했다.
200만 셀을 내주고 얻은 서른 개피의 연초.
효과를 직접 실험해보지 않고 실전에서 사용할수는 없는 일이었다.
휴식
“흠…..”
호텔로 돌아온 레녹은 침대 한가운데 앉아서 말없이 연초를 피우는데 집중했다.
노인이 말한것처럼 연기를 흡입하는 방식은 주사보다는 약효가 떨어지는게 당연하다.
약물을 직접 혈관에 주입하는것보다 효율이 강한 방법은 없을테니.
하지만 일을 나갈때마다 일회용 주사기를 챙겨다니기도 힘들고, 연초는 입에 물고 있어도 그리 눈에 띄지 않는다.
게다가 연기를 들이마시는 이 감각이 그리 나쁘게 느껴지지 않는것도 사실이었다.
“확실히….. 좀 다른데.”
공장에서 훔쳐왔던 기존의 연초가 머리 뒤쪽을 둔중하게 두들기며 몸을 각성시키는 식이었다면, 새로 구입한 물건은 피로감 없이 전신에 활력을 돋구는 효과가 강했다.
정신적 쾌감보다는 허약한 몸의 피로감을 덜어내야 하는 레녹에게 훨씬 필요한 효능이었다.
예전보다 훨씬 몸이 기운이 흘러넘치고 힘이 솟는다.
실제로 힘이 난다기보다는 몸을 억지로 고양시킨것에 불과하지만, 이 정도라면 약효가 도는동안 움직이는데 크게 무리는 없을것 같았다.
레녹은 이미 스스로가 꽤 괜찮은 마법사의 수준까지 올라왔다는것을 알고 있었지만, 실전에서 직접 전투를 벌이는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테일러 에반스를 잡을때처럼 갑자기 총격을 마주하게 되었을때 약한 몸과 체력이 발목을 잡는 일은 없어야 했다.
약효에 어느정도 만족한 레녹은 그대로 침대에 누워 연기를 내뿜으면서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총알을 보충해야겠군.’
감독관에게서 훔쳐온 총에 대해 아직까지 불만은 없었지만, 남은 총알은 고작 네발 뿐이다.
마법을 각성한 이후로 레녹은 스스로의 마법능력에 대해 의심한적은 없으나, 그와는 별개로 물리적인 무장 역시 소홀히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막강한 재능과는 달리 그의 몸은 툭 치면 부러질 만큼 연약하고, 위태롭다.
돈을 벌기위해서 49구역에서 일을 시작한것까지는 어쩔 수 없지만 닥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위험에 대비하는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어느정도 돈을 벌고 나면 위조 신분증을 만드는 일도 생각해봐야겠어. 마냥 신분없는 야인으로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니….’
손에 쥔 연초를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바라보던 레녹은 힘겹게 그것을 재떨이에 비벼껐다.
한 개피에 7만 셀. 가격으로만 따지자면 이 연초 한개가 그가 머무는 호텔 방값보다 비싼 셈이다.
마음같아서는 필터까지 모조리 씹어먹어도 모자라지만, 지금은 일단 눈을 붙여야 한다.
레녹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침대 머리맡에 있는 수면제를 털어넣고 자리에 누웠다.
그러고보니 공용마법을 연구하던 일주일동안 내리 수면제를 복용한 탓에 이쪽도 재고가 다 떨어지고 있었다.
남은 70만 셀을 어디에 써야 할지는 이미 정해진 듯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레녹은 그대로 정신없이 곯아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