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133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야. 누구도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네.”
“그래서, 라울 당신이 저를 도와주기라도 하겠다는 겁니까?”
“그래.”
순간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기울어진 노을이 낡은 창문틈을 뚫고 기어들어와 마른 무릎에 내려앉았다.
“아티팩트가 필요하다면 내게 찾아오게. 큰 도움이 되지는 못하더라도, 한이 닿는 데까지는 필요한 물건들을 지원해주지. 자네의 실력을 생각하면 기껏해야 소모품 정도를 챙겨주는 것에 불과하겠지만.”
크로켄 아실러스가 사업상의 목적으로 그들의 안위를 보호해줄 만큼 뛰어난 부여계파 흑마법사의 협조선언.
그들이 만들어내는 부적이나, 폭탄, 혹은 저주물품을 자유롭게 보급받을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레녹에게 큰 힘이 되겠지.
하지만 레녹은 그 대가없는 호의에 무턱대고 기뻐하지 않았다.
단순히 그런 말을 믿기에 라울이 그간 보여준 모습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으니.
“재밌군요.”
레녹이 피식 웃었다.
“뒤늦게 죄책감이 들기라도 했습니까?”
“아니.”
라울이 천천히 눈을 감으며 대답했다.
“그 친구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서.”
“………”
상원의원 레이센의 탐욕에 휘말려서 스스로의 목표마저 망가진 채 좌절해버린 크레이그 틸리언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났다.
하지만 그와 같은 일이 이 도시에서 얼마나 많았을 것이고, 또 앞으로도 얼마나 많아질까.
세상의 불합리함을 울부짖던 그 외침을 들었던 것은 레녹 하나뿐이었지만, 라울의 마음에도 그 들리지 않는 외침이 닿았던 모양이다.
레녹은 깊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
언제나 중요한 것은 하나뿐이라고, 항상 그렇게 되뇌였으니까.
하지만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라울의 그 말은, 쉽게 가슴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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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링, 띠링!
쉴 새 없이 울리는 핸드폰을 못마땅한 표정으로 쳐다보던 레녹은 결국 알람을 꺼버렸다.
평소에는 듣기도 힘들었던 알람소리가 집 안을 가득 메우는데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마침내 그간의 작전에 대한 보수와 성과급이 정산되어 계좌로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레녹 혼자만의 몸값도 몸값이지만, 작전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다른 이들의 몫까지 도맡아서 일을 성공시킨 경험이 도대체 몇번째인가.
주위에 믿을 놈 하나 없다는 소외감을 이겨내고 이렇게 살아남은 대가는, 레녹이 위로 올라갈 수록 기하급수적으로 폭증되어 그의 계좌로 들어온다.
“일, 십, 백, 천, 만, 십만…..”
억, 그리고 십억.
다이크 기업에게서 주기적으로 들어오는 갱단의 금고 정산금. 에이전트에게서 받은 그간의 작전 성공보수.
그 사이 계속해서 천장을 뚫고 올라가는 몸값.
모두 합쳐서 십억 하고도 팔억 셀.
약 18억 셀에 달하는 거금이 레녹의 계좌에 모여있었다.
막연히 상상만 해왔지만, 그럼에도 통장에 꽃힌다는것이 실감이 나지 않는 금액.
지구에서도 만져볼 수 없었던 돈을 레녹은 불과 1년만에 오로지 현금으로만 손에 쥐게 된 것이다.
열자리수를 돌파한 계좌의 숫자를 바라보던 레녹이 멍하니 핸드폰을 침대에 던지고 드러누웠다.
그동안 소비했던 연초와 영약, 영양제와 식비, 그리고 이 집에 들어간 비용을 생각하면 거의 20억 셀에 달하는 돈을 혼자서 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
단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달려온 모든 고난에 대한 보상이 여기 들어있었다.
아마 이 돈을 잘 아껴서 가지고 살면 죽을때까지 편안하게 여생을 보내는것도 가능하겠지.
“………”
하지만 레녹은 핸드폰의 화면을 끄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책상 앞에 앉았다.
줄어드는 시간. 약해빠진 몸뚱아리. 그 모든 페널티를 짊어지고 끌어올린 재능.
스스로를 옭아매는 굴레를 벗어던진다는 목표를 위해 달린 이후로, 단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던 문제가 생기고 말았으니.
‘멸목 아크로트리니어. 크레이그는 그것을 외해에서 다가오는 종말이라고 불렀어.’
천견, 마드레아 팔시어가 관측하고 경계하던 세상 밖의 괴물들.
그녀가 사망하는 것과 동시에 그 괴물들과의 접촉이 수월해졌다고 크레이그는 말했었지.
종말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그리고 이 사실을 레녹에게 알려준 것은 이벨린도, 아리스도, 라울도 아니었다.
복마전의 고위 흑마법사.
그에게 처음 브로치를 넘겨주고 그 흔적을 쫓으라고 말했던 장본인.
‘판데모니엄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있다. 아니면ㅡ’
그들이 지금 일어나는 모든 일의 주동자일수도 있겠지.
그러나 한가지는 분명하다.
만약 이 세상에 정말로 메인스트림이라고 불리는 흐름이 존재하고 있다면.
레녹이 그 흐름을 피해 도망치는 것은 불가능했다.
“빌어먹을……”
어두컴컴한 연구실.
레녹은 양 손으로 눈가를 덮고 나직하게 욕을 내뱉었다.
살아남아 미래를 기약한다는 단순한 소망조차 이루기 어렵다.
종말의 파편과 메인스트림. 닫힌 세계라는 말.
이 모든 사실을 그에게 암시했던 복마전은 적인가, 아니면 아군인가.
천견이 마지막에 남겼던 ‘알카이드’라는 말은 외해를 침범한 괴물들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가만히 관망할 생각은 없었지만, 혼자 적극적으로 나서기에는 정보가 너무나도 부족하지 않은가.
“고민만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야…. 일단 해야 할 일을 하자.”
단순히 금전적인 보수뿐만이 아니다.
크레이그와 흑마법사들을 상대하는 과정에서, 레녹의 초월적인 오성으로 받아들인 지식들은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고 고스란히 그의 기억 속에 남아있었다.
아니, 오히려 머릿속에 보존된 지식들은 갈수록 논리정연하게 정돈되어 차곡차곡 더 위로 올라가기 위한 양분이 되어간다.
6레벨 이상의 마법사. 그 중 극히 일부만이 사용할 수 있다는 ‘자성영역’.
그리고 계속해서 강령술사들과 싸우면서 깨달은 강령술의 묘리.
‘영역은 일단 제쳐둔다.’
크레이그와의 대결에서 레녹은 영역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한번에 감을 잡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는지는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아리스와의 대담에서도 레녹이 갈피를 잡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면, 고위 마법사들 사이에서도 굉장히 비밀스럽게 내려오는 지식이라고 봐도 무방하겠지.
지금으로서는 단지 영역이 술사의 한계를 뛰어넘는 술식을 사용하게 해준다는 사실만을 인지하고 있을 뿐이다.
나중에 그녀를 찾아가서 은근슬쩍 영역에 대한 정보나 논문에 대한 자료를 받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강령술에 관해서는 생각해둔 바가 있어.’
준비물은 모두 세가지.
이벨린에게서 받아온 크레이그의 인공지능 데이터 모듈과, 다론의 시체에서 빼내왔던 엔진.
그리고 레녹이 새롭게 깨달은 강령술식의 묘리.
크레이그는 감당할 수 없는 괴물을 불러내 거대도시에 반기를 들려 했지만, 레녹은 그 발상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인공지능의 알고리즘을 통해 강령술식을 통제한다는 방식은 실제로도 어느정도 성공을 거두었으니.
흑마법사의 술식이라고 무시할 것이 아니라, 장점이 있다면 남김없이 흡수해야만 한다.
아니, 흡수하는 것에서 그칠 수 없다.
놈이 추구했던 이상을 뿌리끝까지 빨아먹고, 그 너머의 경지로 나아간다.
레녹은 그렇게 다짐하면서 몸 속 깊은 곳에서부터 마력을 끌어올렸다.
우우우우우우우웅!!!
거대한 마력의 역류. 레녹 스스로도 움찔할 말큼 압도적이다.
목숨을 걸고 사선을 넘을때마다.
더 높은 수준의 경지를 엿볼때마다.
레녹의 마력은 폭발적으로 상승하고, 또 지평을 넓혀간다.
온 몸을 가득 채우고 넘실거리는 마력. 그러나 제어는 완벽하다.
양 손을 느릿하게 인공지능 데이터 모듈에 가져다 댄 레녹이 흐르는 마력을 그대로 전격으로 변환시켰다.
쯔즈즈즈즈즈즈!!!
새가 지저귀는 듯한 소음이 만갈래로 겹쳐들린다면 이러할까.
연구실의 방음설비로도 막을 수 없는 처절한 소음과 함께 새하얗게 변한 전류가 모듈 안쪽으로 흘러들어갔다.
그 열량을 생각한다면 눈 깜짝할 사이에 모듈이 잿더미로 변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양 손 아래서 떨어져내리는 전류를 받아낸 모듈은 움찔거리기만 할 뿐, 단 한개의 부품도 손상되는 일 없이 광채를 더해간다.
‘6레벨에 도달한 마법사가 사용하는 마력의 성질변화. 그 진가는 단순히 마법의 위력을 높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일시적이지만 완전히 다른 계열의 술식을 접목할 수 있도록 고안된 능력.
하나의 계통만을 다룰 수밖에 없도록 설계된 고유마법체계에서, 또 다른 가능성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초석의 역할을 해주는 것이다.
바로, 이렇게.
[전격마법 성질변화 : 강령.]파아아아앗!!!
눈이 부실만큼 새하얗게 빛나는 전격의 폭류속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리며 태동하기 시작한다.
태동 (2)
눈이 부실만큼 새하얗게 빛나는 전격의 폭류속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리며 태동하기 시작한다.
본디 존재하지 않는 혼을 부여받은 ‘그것’은 레녹이 인도해놓은 길을 따라서 모듈 안쪽으로 흘러들어가고.
인공지능의 알고리즘에 따라서 논리정연한 지성을 부여받았다.
우우우우웅!!
‘여기서 멈추면 안돼. 빠르게 동력원을 이어야 한다.’
그동안의 사투를 통해 성장한 레녹의 마력이 지금 이 작업으로 뭉텅이처럼 빠져나가고 있다.
레녹은 벌벌 떨리는 손을 들어서 다론의 엔진을 움켜쥐고, 그대로 모듈에 접합시켰다.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준비해두었던 커넥터가 그 정보량을 이기지 못하고 녹아내리지만,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연결되었다는 ‘개념’ 그 자체.
한번 동력원을 인식한 생명은 자연스럽게 스스로의 심장을 끌어당기며 눈을 떴다.
태어난다.
그 어디에서도 강령되지 않은 혼이, 살아 움직이지 않는 심장을 부여받아,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는 지성을 움켜쥐고.
하지만 그 모순된 세가지 개념을 모아쥔 그것은, 삼위일체의 법칙 아래 온전히 새로운 생명으로 화한다.
인공지능 모듈과, 다론의 엔진이 녹아서 책상에 눌러붙었다.
생명을 지탱하는 실체가 사라졌지만 개념만은 남아있다.
“…..하하.”
온 몸에서 땀을 줄줄 흘리면서 레녹이 헛웃음을 내뱉었다.
책상위에 내려앉은 새하얀 마력의 형태는,
작은 여우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FALMERS VER 2.997 Artificial Intelligence 기동제어 확인]여우에게서 흘러나오는 인위적인 기계음.
[AI 컨트롤러를 인식하고 현 시간부로 활동에 돌입합니다. 동력원과의 연결이 끊어진 현재 남은 가동시간은ㅡ 측정불가.]여우는 사무적인 말투로 시스템 음성을 내뱉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동력구조패턴이 근본부터 무너진 것을 확인. 가동원리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인공지능의 사고로만 생각하려고 하니까 그렇겠지.”
레녹이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넌 단순한 인공지능이 아니야. 그렇다고 제대로 된 강령술식으로 불려나온 영혼도 아니지. 인공지능의 지성과, 강령술식의 혼을 대여하는 원리를 합쳐져서 새롭게 만들어진 생명이다.”
의자에 축 늘어진 레녹이 여우의 시선에 맞춰 고개를 기울이고 중얼거렸다.
“그래…… 만약 전뇌정령을 실제로 만든다면, 이런 느낌일까.”
[………]“시스템의 음성을 고집할 필요는 없어. 너 스스로도 인공지능의 한계를 넘어선 사고를 하고 있다는 걸 자각하고 있을텐데?”
레녹의 말이 정곡을 찌른 것일까, 아니면 그제서야 스스로의 정체를 바르게 인식하기 시작한 것일까.
여우는 레녹의 말을 듣고 한참동안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크레이그를 죽이기 위해 강령술식을 연구하면서 술식의 핵심은 혼을 불러내는게 아니라, 불러낸 혼을 ‘부여’하는데 있다는 것을 깨달았지.”
레녹이 강령술식의 원리를 연구하고, 히나의 몸에 전격을 부여해서 버프를 걸어줄 수 있었던 것 역시 그것때문이었다.
이미 그때부터 레녹은 인공지능과 동력원을 손에 넣는다면, 단순히 살아 움직이는 AI 그 이상의 것을 만들어낼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확신을 가지고 움직여 왔다.
“아무것도 모른 채 휩쓸리기만 할 수는 없어….. 문제를 찾았다면, 이제는 답을 구하기 위해 움직여야 한다.”
본래는 레녹의 전투를 보다 수월하게 도와줄 든든한 전위를 만들고 싶었지만, 그렇게 마력을 쏟아붓고도 이것이 한계였다면 미련은 없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사고할 줄 아는 영체를 직접 만들어내었다는 그 사실 하나 뿐.
인공지능의 강력한 계산능력과 웅혼한 생명력. 그리고 강력한 전격의 속성을 지닌채로 태어난 이 여우는.
크레이그가 그토록 원하고 갈망했던 정령사역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 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