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272
약먹는 천재마법사 272화
시작은 화려하게(3)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후유증이 남지 않는 한계선을 가늠하는 데 성공했다면 그 뒤는 어렵지 않다.
레녹이 상정하는 이상적인 움직임과 첸이 가능한 동작 사이의 간극을 조금씩 좁혀나가면, 선택할 수 있는 분기점은 무수히 늘어나기 마련.
그 모든 판단과 직관의 결과를 자색의 마안으로 기록하고 체크하면서 철저하게 위험도를 분산시키는 방향으로 호저를 제압해 나간다.
파바바바박!!
레녹의 손가락에서 뻗어나오는 마력사의 움직임에서 빠르게 군더더기가 사라진다.
동시에 호저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할 때는 난잡했던 첸의 움직임이 간결해지지만, 반대로 쏘아지는 곡도의 예기는 다채로움을 더해간다.
첸을 조작하면서, 호저의 움직임을 보고 다음 동작을 예측. 패턴화해서 시간 차로 준비된 동작을 차례대로 입력.
마치 커맨드 조작을 하듯이 뻗어 나온 첸의 곡도가 거침없이 호저의 지근거리 사이를 쏘다닌다.
터터터텅!!
마력의 성질변화를 일으켜 강력한 기예를 사용하려는 순간마다 속내를 읽힌 것처럼 절묘하게 호흡을 끊고 타이밍을 방해한다.
그제야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호저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리기 시작했다.
“이, 이건……!!”
자신보다 한참이나 수준이 낮다고 생각했던 상대의 공방을 읽어낼 수 없다.
그 사실에 당황하고 곤봉의 속도가 느려진 호저와는 달리, 첸의 시선은 그 깊이를 더해간다.
이 모든 수싸움이 자신이 낼 수 있는 운동능력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단순히 공수의 패턴을 정교하게 구성하는 것으로 실력 차이가 나는 상대와도 무기를 맞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마법사의 전투논리.
말로만 들으면 터무니없는 탁상공론을 현실로 옮길 수 있다고 주장하는 망상으로 들리기 쉽지만, 첸의 몸을 직접 꼭두각시처럼 조작하는 레녹의 전투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양손으로 곡도를 쥐고 눈앞에서 휘둘러지는 묵직한 곤봉을 피해내는 그 순간에도 첸은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전투의 주도권을 결코 빼앗기지 않는 것.
전장을 스스로 완전히 장악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의 수싸움을 선택할 기회는 절대로 놓지 않는 것이 논지다.
그 논리를 실현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뒤로 물러서는 순간을 극도로 줄인다는 전제 하나뿐.
사실상 끊임없이 앞으로 내달리면서 호저라는 저 두꺼운 벽을 무너뜨릴 때까지 기어오르는 처절함이 담겨있었다.
그것을 인지한 순간부터, 첸은 깔끔하게 자존심을 버리고 자신의 몸을 휘두르는 마력사에 감각을 맡겼다.
대신 그의 몸을 움직여 실현되는 공방을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하면서, 그의 전투논리를 배우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이 바닥에 들어온 지 3년 차가 되어가는 프리랜서. 그것도 전면전과는 연이 없던 마법사에게 자신보다 더 날카롭고 예민한 전사의 재능이 잠들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어깨 위로 내려 찍히는 곤봉의 충격파를 피하기는커녕 앞으로 내달렸다.
콰악!
마당의 흙바닥을 왼손에 든 곡도로 찍고 그대로 팔을 끌어당기며 몸을 앞으로 굴린다.
섬전처럼 호저의 왼쪽 다리 옆으로 빠져나온 첸이 튕기듯이 몸을 뒤집으며 그대로 오른손에 든 곡도를 던졌다.
“……!!”
카가각!!
곤봉의 손잡이를 비틀어 날아오는 곡도의 칼날을 쳐낸 순간, 남은 한 자루로 호저의 무릎 뒤쪽을 베어 들어간다.
“거기까지!!”
하지만 곡도를 던진 순간 이어지는 후속타가 어떤 형태일지는 정해졌을 터.
호저 역시 자연스럽게 그다음 동작을 예상하고 거침없이 발을 내뻗어 첸을 걷어찼다.
퉁!
“……!!”
호저의 발끝에 걸린 것은 기대했던 것과는 턱없이 다른 무거움.
지금까지 경험했던 첸의 근력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반발력에 호저의 얼굴이 싹 굳었다.
찰나의 순간 이 정도로 전투능력이 변질되는 사례는 그리 많지 않다.
호저가 지닌 전사로서의 경험에 비추어본다면, 그 가능성은 오직 하나뿐.
“……네놈, 설마?”
발길질을 버텨내고 일어나는 첸의 곡도에는, 연녹색의 마력광이 은은하게 맺혀 빛나고 있었다.
마력의 기본적인 색은 옅은 푸른 빛.
인간의 영혼을 비춘다는 그 투명한 청색이 변질되기 시작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군의의 경지에 이르러 발생하는 성질변화.
전설 속에 나오는 전사들처럼 끝없는 전투 속에서 자신의 경지를 끌어올리기라도 한 것일까.
“…….”
첸은 묵묵히 땅에 떨어진 다른 곡도 한 자루를 쥐어 들고, 두 곡도를 모두 역수로 고쳐잡았다.
천천히 몸을 숙이는 그의 두 눈에는 이제 더 이상 어떤 망설임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 뒤에서 마력사를 꼼지락거리던 레녹이 곤란한 표정으로 뺨을 긁적였을 뿐.
‘너무 흥을 냈군. 첸이 실망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첸의 전신을 직접 조작해서 전위로 써먹겠다는 발상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효과가 좋다 보니 레녹도 지나치게 몰두한 감이 있다.
지금 첸이 사용하는 마력의 성질변화는 온전히 그의 성취가 아니다.
그의 수싸움과 직관이 자신을 한참 뛰어넘는다는 것을 깨달은 첸이 망설임 없이 조작에 협력한 뒤로.
레녹은 지나치게 흥을 내다가 그만 첸의 마력에까지 직접 간섭을 하고 말았던 것이다.
지금 첸이 사용하는 마력의 성질변화는 본신의 성장이라기보다는, 레녹이 움직이는 대로 마력까지 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성질변화가 따라온 것에 가깝다.
레녹의 조작이 끝난 뒤에는 저 연녹색의 마력 역시 자취를 감출 터.
‘위험할 수도 있다. 멈춰야 하나?’
타인의 마력에 직접 간섭해서 그 흐름과 용도를 조작하는 행위. 레녹에게는 좋은 경험이 될 테지만, 첸의 안전을 장담하는 건 불가능하다.
레녹이 휘두르는 마력의 감각은 다른 마법사들과는 그 궤를 달리하는바.
첸이 지닌 조작능력의 한계를 생각하지 않고 그 마력을 멋대로 조작하다가는 첸의 몸이 터져버릴 수도 있었다.
“반.”
하지만 첸 역시 그것을 알고 있다는 듯 조용하게 레녹을 불러 세웠다.
“계속해 줘.”
“…….”
“아직 할 수 있어.”
필사적인 표정. 레녹은 결국 그를 뒤로 물리는 대신, 계속 마력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첸 역시 지금 그가 얻은 경지가 우연과 기연이 겹친 찰나의 기적에 가깝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금 그의 손에 들린 이 기적과도 같은 감각을 잊지 않기 위해, 두려움과 불안을 불사하고 그대로 호저에게 달려들고 있는 것이다.
“훗!”
멍한 표정으로 첸을 바라보던 호저가 웃었다.
“좋다. 어디 한번 끝까지 해보자꾸나!!”
쿵!
곤봉을 강하게 움켜쥐는 것과 동시에 호저의 마력이 묵직한 금속을 둘러싸고 회전하며 그 색을 달리한다.
지금까지는 레녹의 정교하기 그지없는 견제로 제대로 끌어내지도 못했던 둔기의 진짜 위력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철퇴를 둘러싸고 웅장하게 회전하는 마력의 격류는 묵직한 갈색.
마력의 성질변화를 각성한 두 전사가 서로를 마주 보고 망설임 없이 달려든다.
승부의 기로에 섰다는 것을 직감한 호저 역시 날 선 고함을 지르며 전의를 불태우고.
“우오오오오!!”
어느새 첸 역시 잔뜩 벌개진 얼굴로 거친 고함을 내지르고 있었다.
쏘아지는 첸의 신형과 제자리에서 하늘을 향해 곤봉을 휘두르는 호저의 동작이 겹쳐지는 한순간.
쿠우웅!!
묵직한 굉음이 한발 늦게 지축을 울렸다.
하지만 쓰러진 것은 호저의 거체가 아니었다.
방금 전까지 그가 쥐고 있던 묵직한 곤봉의 손잡이가 잘려나가며, 그대로 머리부분이 떨어져 내렸던 것이다.
“…….”
전사로서의 수싸움뿐만이 아니라, 정면 대결에서 완전히 패배했다는 것을 깨달은 호저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지고.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팔둔의 가주가 고함을 내질렀다.
“모두 한꺼번에 덤벼라!!”
“흐아아아압!!”
그 순간 세 사람을 둘러싼 채 험악한 시선을 보내고 있던 팔둔의 전사들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세 사람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카아아아앙!!!
[이럴 줄 알았다, 이 비겁한 새끼들아!!]부랴부랴 검을 뽑아 든 맨슨이 레녹의 앞을 막아서며 온갖 쌍욕을 내뱉기 시작했다.
그 뒤에서 레녹이 가주를 올려다보며 차가운 조소를 보냈다.
“결국 이런 식인가? 하긴, 고작 이 정도에 겁을 먹었다면 진작 멸문하고도 남았겠지.”
“가문을 대표하는 권한을 이리 허무하게 내줄 것 같으냐……!!”
수염을 부들부들 떨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가주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상대는 마법사다!! 놈이 술식을 쓰기 전에만 처리하면 없던 일로 만들 수 있겠지!”
상대적으로 승산이 높아 보였던 결투에서 호저의 패색이 짙어지자마자 개입한 것을 보면 그 저의는 뻔하다.
애초에 처음부터 곧이곧대로 대리인 자격을 내줄 생각은 없었던 것이다.
맨슨이 빠르게 검을 휘두르며 공간을 확보하고 레녹에게 시간을 벌어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슬금슬금 레녹의 지척까지 다가온 다른 전사들이 손쉽게 맨슨이 커버할 수 있는 범위를 뚫고 레녹에게 손을 내밀기 시작한 것이다.
단면적이 넒은 둔기류.
한번 휘두르면 손쉽게 면적을 차지하고 빠져나갈 공간을 줄여버리는 무기가 사방에서 쇄도하며 그대로 퇴로를 좁혀온다.
쿠구구구구궁!!!
연달아 두들기며 터져 나오는 타격.
흙먼지와 돌개바람이 연이어 피어오르며 마당을 희뿌연 먼지로 뒤덮지만, 그사이에 뜨거운 핏물의 흔적은 없다.
레녹은 열 손가락을 마력사에 연결해놓은 상태로도 몸에 덮은 다섯 겹의 실드를 분할 전개, 사방에서 그 타격을 그대로 비틀어 근처 땅에 메다꽂아 버렸던 것이다.
호저와 같은 전사를 상대로 첸의 움직임을 유도하면서도 본신을 상처 하나 없이 지켜내는 분할사고능력.
다른 전사들이 그 절묘하기 그지없는 힘의 배분에 감탄하기도 전에, 왼손의 마력사를 끊어버린 레녹이 코트 소매를 가볍게 털어냈다.
철컥!!
그 직후 레녹의 왼손에 푸르스름한 광택을 뽐내는 금속체가 튀어나와 창백한 섬광을 내뿜었다.
총구가 두 개 달린 더블배럴 샷건. 그것도 방아쇠 부근부터 마력을 충전해서 총구로 밀어젖히는 충전식.
키이이이잉……!!!
내부에서 무언가 격렬하게 회전하는 듯한 소음과 함께, 샷건의 옆면에 나 있는 수정이 강렬한 청색으로 물들었다.
총구에서 새어 나오는 막대한 압력으로 인해, 역으로 희미한 인력이 생기는 듯한 기분까지 든다.
한낱 충기류라고 무시하기에는 지나치게 농도 짙은 마력의 향기.
기겁한 표정을 지은 전사들이 황급히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레녹이 방아쇠를 당기는 것이 훨씬 더 빨랐다.
삐이이-
소리는 없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귀가 먹먹하게 변했을 뿐.
극한까지 압축된 레녹의 마력이 두 개의 총구에서 힘차게 탄환을 밀어 올린다.
그러고도 남은 출력이 그대로 허공에서 비틀려 터져 나오면서 정확하게 반대 방향으로 회전하는 다른 마력과 공명하고.
샷건의 탄환을 중심으로 거대한 폭풍을 토해냈다.
푸르스름한 마력이 바람이 한데 뭉쳐서 역방향으로 회전, 그대로 팔둔의 저택 안뜰에 꽂혀 들어간다.
초조한 표정으로 어그러진 싸움판을 바라보고 있던 가주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그 순간.
콰아아아아앙!!
마치 거대한 짐승에게 먹히기라도 한 것처럼 저택의 마루가 통째로 짓눌려 터져버렸다.
“으아아아아악!!”
“꺼어억……!!”
레녹을 향해 달려들던 덩치 좋은 전사들이 터져나간 저택의 잔해 아래서 고통스레 신음했다.
격렬한 마력의 충격파를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저택의 벽면에 날아가 목재 건축물을 아작 내는 여분의 탄환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
“이건, 무슨……. 화약병기가 어떻게 이만한 위력을!”
“아직까지도 이만한 여력을 남겨놓고 있었단 말인가……!!”
누군가 망연하게 중얼거린 그 말처럼, 제아무리 더블배럴 샷건이라고 하더라도 이만한 위력을 뿜어내는 것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레녹에게 이 샷건을 선물로 주었던 마우저 역시 이만한 위력을 기대하지는 않았을 터.
단순히 화력을 증폭시키기만 한다고 가능한 일이 아니다.
충전식 샷건이라고 하더라도 충전가능한 허용치가 존재하고, 그 임계점을 넘으면 샷건의 구조 자체가 버틸 수 없을 테니.
하지만 레녹은 사격보조마법을 통해서 그런 한계치를 무시하고 수시로 마력을 충전하면서 샷건을 예열시켜 놓았다.
지속적인 자극과 예열을 통해 오랫동안 마력을 압축, 충전시키고 그 화력을 사격보조마법으로 철저하게 보호해낸 결과였다.
방금 그 사격에 소모된 마력량은 레녹의 총 마력량을 아주 약간 웃도는 정도.
이만한 위력의 충전사격을 연달아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미리 마력을 따로 빼놓았다가 실재하는 물리력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메리트가 어느 정도인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모두가 얼이 빠져버린 그 찰나의 순간. 레녹이 그 간극을 놓치지 않고 빠르게 소리쳤다.
“맨슨!!”
[알고 있어!!]충전사격 한방으로 다른 전사들을 묶어두고 있던 맨슨의 손이 자유로워지고, 레녹의 말을 알아들은 그가 지체 없이 가주를 향해 내달렸다.
박살 나는 목재 더미 사이에서 맨슨의 추적을 눈치챈 가주가 그 손길을 피하기 위해 발악했지만, 이미 그를 도와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하물며 맨슨은 발칸에서도 최상급의 대우를 받는 프리랜서.
[짜증 나는 노친네. 이리 와!!]“어억!!”
결판이 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이 비겁한 놈들!! 아버지를 놔 줘라!!!”
얼굴이 새빨개진 호저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만, 그 말에 호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서걱!!
첸이 쪼개진 곤봉 사이를 미끄러지듯 돌파하며 호저의 허벅다리를 깊숙하게 베어낸다.
선혈을 흘리면서 무릎을 꿇은 호저의 모습을 확인한 레녹이 곧바로 코트 안쪽에서 대천사의 연민을 꺼내 들고 전이술식을 발동,
호저의 쩍 벌려진 입에 점등하는 수류탄이 틀어박혔다.
“아가가가가가가!!”
파지지지직!!!
입에 수류탄이 물린 채로 발광하던 호저의 몸이 새파랗게 번쩍이고.
두 눈을 까뒤집은 호저가 그대로 땅에 머리를 처박고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