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284
약먹는 천재마법사 284화
사도강림(1)
7레벨의 성위능력자.
전사로서의 힘과 술사로서의 가문의 비술을 양립시켜 올라선 경지.
비록 그 두 가지 측면에서 온전히 하나의 분야에서 위계를 완성시킨 다른 초인들에 비견되기는 어려울지라도, 이본가주의 반응속도가 얼마나 기민할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른쪽 팔뚝에 염주가 채워질 때까지 반응하지 못했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레녹이 대천사의 연민을 발동시키는 숙련도. 호흡과 인지의 간극을 파고 들어가는 날카로운 직관이 이미 이본의 수준을 아득하게 뛰어넘었다는 증거.
하지만 이본가주에게 그런 내막을 추리해낼 여유 따위는 주어지지 않았다.
“……!”
“잠깐, 이 느낌은……!!”
손목에 채워진 염주가 레녹의 마력을 동력으로 삼아 그대로 회전하며 발동.
염주가 채워진 손목을 시작으로 그대로 공간째로 동결시키기 시작한다.
손목을 타고 올라와 팔꿈치를 굳히고, 어깨를 잠식하기까지 한순간.
“꺄아아아아아악!!”
평범한 아티팩트가 아니다. 무려 승천자로 올라서기 직전까지 천견이 애용하던 아홉 가지 도구들 중 하나.
전력을 다해서 저항하더라도 염주의 구속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본이 끔찍한 비명을 내질렀다.
이대로 가다가는 순식간에 온몸이 공간째로 동결돼도 이상하지 않다.
이성적인 판단이 아니라, 목숨의 위기를 느낀 육체가 이본의 판단보다 먼저 움직였다.
서걱!!
팔찌가 채워지는 것과 거의 동시에 왼손을 들어 올린 그녀가 자신의 팔을 통째로 잘라버린 것이다.
그 과격하기 짝이 없는 대처에 레녹을 제외한 이 자리의 모든 사람이 눈을 크게 뜨고.
팔을 통째로 잘라낸 이본이 물러서는 것과 동시에 첸이 오렌의 몸을 받아 레녹 쪽으로 내달렸다.
“으으으으윽……!!!”
제아무리 뛰어난 술사이자, 강력한 전사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팔을 통째로 잘라내는 고통이 없을 리 없다.
단순히 육신뿐만 아니라, 공간동결을 피하기 위해 팔에 존재하는 마력흐름까지 그대로 절단한 것이다.
고통에 절규하던 이본가주의 얼굴이 흉악하게 일그러지고.
그사이 수련과 맨슨의 포위망 사이에서 빠져나온 윌터가 그녀를 부축했다.
“……너!!”
“후퇴합시다. 말했을 텐데요?”
윌터가 여유롭게 대답했다.
“아직 우리에게는 기회가 남아 있습니다. 마지막까지 미뤄놓기는 했지만, 이런 때를 위해 일원가주를 살려둔 거잖아요?”
“그건 네가 결정할 일이 아니야.”
빠르게 법구를 회수한 레녹이 한발 앞으로 걸어 나왔다.
정토신해진언을 예열하기 위해 상당한 마력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이본가주의 팔 한 짝을 잘라냈다면 나쁘지 않은 결과다.
다른 사람들은 오렌을 쓰러뜨린 이본과 윌터의 전력에 압박을 받은 모양이지만, 레녹은 윌터가 전투능력을 오래 유지할 수 없을 거란 사실을 짐작하고 있었다.
이미 죽은 시체에 생기를 불어넣는 일이 얼마나 효율이 나쁠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이대로 시간을 끌면서 두 사람의 발을 붙잡아놓는다면 윌터의 전투능력은 알아서 소실되고, 팔 한 짝이 잘려나간 이본가주만을 상대하면 될 터.
여기서 두 사람을 보내줄 이유는 없다.
철컥!!
하지만 윌터는 더블배럴 샷건을 들어 올리는 레녹의 모습을 보고도 여유롭게 웃었다.
“공간동결…… 처음 보았을 때는 놀랐지만, 그만한 아티팩트를 연달아 사용할 수 있을 리는 없겠죠.”
“…….”
“이미 준비는 끝났습니다. 이본가주가 동의하면 끝이에요.”
“잠깐, 그 말은…….”
하늘을 향해 슬쩍 시선을 던진 윌터의 말에, 그 의도를 알아차린 레녹이 곧바로 마력을 끌어올렸지만, 한발 늦었다.
입술을 깨문 이본가주가 손을 들어올리는 것과 동시에, 그녀의 수행원들이 들고 있던 장병기를 일제히 자신의 목에 찔러 넣었던 것이다.
“……!!!!!!”
오렌을 습격하려던 이본가의 수행원 상당수가 전사하기는 했지만, 아직도 족히 수십은 살아남아 있었다.
그 전력을 모조리 희생시켜서 다시 발동시킬 술식이 무엇인지는 뻔한 일이다.
수십에 달하는 생명을 집어삼킨 암리타의 저울이 다시 발동하고, 하늘에 열린 균열이 섬전과도 같은 속도로 윌터와 이본 두 사람을 빨아들였다.
두 사람은 처음부터 일이 수틀릴 경우, 다른 이들의 생명을 모조리 바쳐서라도 이곳을 탈출할 작정이었던 것이다.
아그작!!
살점이 씹어 먹히는 소리.
“당신의 실수가 아닙니다. 너무 실망하지 마시길.”
빠르게 닫혀가는 균열의 사이에 걸터앉은 윌터가 레녹을 내려다보며 웃었다.
“이것은 교단의 사도를 통해 직접 지상에 현신한 의지로 짜여진 기적입니다. 일반적인 교단의 술식과는 달리, 공양한 생명의 숫자에 따라 위계 자체를 변화시키죠.”
“…….”
“암리타 님께서 내려주신 기적을 물리는 것은 불가능한 일. 오늘은 정말 된통 당했군요. 머지않은 시기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단순히 동일한 양의 생명을 바쳐 공간을 이동하는 것을 넘어, 바친 생명의 숫자에 따라 술식의 위계 자체가 변화한다는 말인가.
윌터가 말한 ‘사도’라는 단어와 연관지어 생각하면, 암리타라는 사도가 직접 종말의 의지를 받아 현신시킨 술식이 바로 저 공간이동의 균열이라는 의미겠지.
하지만 레녹은 눈앞에서 빠르게 닫혀가는 균열을 바라보면서도 손을 들어 올렸다.
“광신도가 지껄이는 말에는 별로 신뢰가 가지 않는데.”
어떻게든 도망칠 구석을 준비해 놓았다는 것은 이해했다.
이미 대가를 바치고 발동에 들어간 이동술식. 그것도 족히 수십에 달하는 생명을 통째로 공양시켜 체급을 불린 케이스다.
아무리 레녹이라고 하더라도 이 정도의 술식을 즉석에서 해석하고 취소시키는 건 불가능하지만.
훼방을 놓는 것 정도는 얼마든지 가능했다.
손위로 뻗어 나간 수십 갈래 마력사가 빠르게 닫혀가는 균열 사이를 붙잡고 파고 든다.
뿌드드드득!!!
공간의 저편.
생명을 바치는 것을 대가로 좌표를 지정하고 물리적인 형체를 이동시키는 술식의 작동원리를 마력사를 통해 남김없이 해석하고 받아들이며,
동시에 방해했다.
균열 너머에서 그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던 윌터의 얼굴에 일그러졌다.
“끝까지……!!”
“곱게 보내줄 수는 없지.”
순식간에 피로해진 표정으로 균열을 올려다보며 레녹이 웃었다.
마력사를 통해 암리타의 저울이라는 술식이 가진 작동원리를 해석하는 것과 동시에, 마력을 전방위로 때려 박아 힘으로 균열을 때려 부순다.
압도적인 마력감응력과 조작능력을 통한 우위로 이미 완성되어가는 술식에 과부하를 일으키는 것.
균열 안쪽의 공간이 기이할 정도의 열기를 띠고 달아오르며, 윌터와 이본의 살갗을 태워 먹기 시작하고.
“아아아아아!!”
외마디 비명과 함께 그대로 균열이 닫히면서 두 사람의 모습이 사라졌다.
나선으로 비틀리면서 공간 사이에 흐릿한 아지랑이를 남기고 사라진 그 모습을, 장원의 모든 사람이 멍한 얼굴로 올려다보았다.
“도, 도망쳐버렸나…….”
수련이 침통한 안색으로 중얼거렸다.
첸이 한숨을 내쉬며 주저앉았다.
“결국 이 자리에서 결착을 짓지 못했어.”
대리전의 끝에서 이본가주의 속내를 밝히고 명분을 가져오는 것과 동시에, 귀도 교단의 주교와 이본가주를 처벌한다는 계획이 무산되었다.
서로 의중을 숨기고 준비했던 계획의 치밀함에서 이쪽이 밀려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이쪽이 입은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치명적이었다.
성채 주민들의 안전을 지켜내는 데는 성공했으나, 일원가주를 빼앗겼고 오렌은 빈사상태에 빠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녹은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손을 놓고 있던 건 아니야. 멀쩡한 몸으로 도착하지는 못했을 거다.”
발동 자체를 막지는 못했지만, 마지막 순간에 틀림없이 술식을 과부하시키는 데는 성공했다.
공간 사이를 도약하는 술식에 문제가 생겼다면 최악의 경우 신체 일부가 영구적으로 손실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터.
도주하기 직전 윌터의 마지막 단말마는 그것을 직감한 분노의 표출이었을 것이다.
“거기에 놈들의 목적지도 알아냈어. 그 정도라면 충분해.”
팔굉성채 중심부. 성채의 뿌리로서 정보를 긁어모으던 이본가의 본영.
성채 밖으로 도망치는 대신, 오히려 이본의 가장 깊숙한 심처 안쪽으로 도망치기를 선택한 그 저의가 무엇인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터.
“반의…… 반의 말이 틀리지 않다.”
첸의 부축을 받아 힘겹게 몸을 일으켜 세운 오렌이 중얼거렸다.
“가주님!!”
성채 주민들을 대피시키고 뒤늦게 합류했던 삼영의 수행원들이 황급히 그의 몸을 받아들었다.
오렌은 그런 주위의 반응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른 이들에게 말했다.
“일이…… 쿨럭! 꼬여버렸지만, 채주의 권한을 가져오는데……. 성공했다. 대리전에서, 승리했기…….”
“그래. 중요한 건 그거지.”
레녹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리전의 시스템을 통해서 성채 외곽 결계는 물론이고, 내부의 모든 시설을 가감 없이 관리해낼 수 있는 채주의 권한.
레녹은 마지막 대장전에서 윌터 마르티네스를 상대로 승리함으로써 채주를 지명할 수 있는 자격을 손에 넣게 되었던 것이다.
이본가주와 윌터가 마지막에 성채 주민들을 제물로 바쳐서 해내려던 그 일은, 아마 그렇게 선정되는 채주 지명의 자격 대상자를 바꾸기 위한 시도였겠지.
“채, 채주는……. 쿨럭!!”
피가 섞인 기침을 터트리면서 몸을 숙이는 오렌의 모습에 삼영가의 전사들이 빠르게 오렌을 부축하고 걸음을 옮겼다.
“더 이상 말하시면 안 됩니다!!”
“당장 의사를 불러와라. 뭣들 하는거냐!”
오렌의 상태가 어찌나 심각한지, 수행원들은 멀리까지 가지도 못했다.
장원 근처의 이름 모를 저택에서 기절한 오렌을 눕혀놓고 치료를 시작한 그 모습을 일행이 묵묵히 바라보았다.
[계획이 엉켰군.]레녹의 옆에 다가온 맨슨이 중얼거렸다.
슬쩍 그의 모습을 응시하던 레녹이 물었다.
“팔은 괜찮나?”
[아? 뭐……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두 가주의 생명력을 흡수한 윌터를 억누르는 과정에서 피해가 있었는지, 왼쪽 팔꿈치 아래가 피로 물들어 있다.
맨슨은 슬쩍 자신의 팔을 내려다보다가, 아무렇지 않은 어조로 대꾸했다.
[멀쩡하지 않은 건 저 여자도 마찬가지일 거다.]“…….”
어깨를 매만지며 희미하게 표정을 찌푸린 수련.
그리고 해쓱한 안색으로 제자리에 주저앉은 첸과 아스이까지.
레녹이 말없이 주위를 둘러보고 있는 사이, 다른 사람들이 머뭇거리면서 그를 향해 다가와 물었다.
“반이라고……. 했었나.”
대리전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본의 편을 들고 있던 다른 가주들.
이들 역시 방금 벌어진 사건의 내막을 모두 알지는 못했지만, 지금 어느 쪽의 편을 들어야 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육령의 가주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삼영가주가 쓰러진 지금, 이 사태를 온전히 이해하고 있는 것이 자네뿐이라는 건 알고 있네.”
“…….”
“이본가주의 꾐에 넘어가기는 했지만, 교단과 손을 잡을 생각은 결코 없었어. 지금부터는 자네에게 전적으로 협력하지.”
“이쪽도 마찬가지다.”
떨떠름한 표정으로 팔둔의 가주가 말했다.
“광신도를 끌어들이는 것도 모자라 우리 모두를 산제물로 삼으려 하다니…… 이본가주는 미쳤어. 가문에 피해가 미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협력하겠네.”
“피해가 미치지 않는 선이라.”
레녹이 웃었다.
“지금 사정이 급한 게 어디인지 착각하는 것 같은데.”
“뭐, 뭐라고?”
“이대로 이본에게 잡아먹히는 건 내가 아니라 당신들이다. 책임을 떠넘기고 뒤에서 피해를 최소화할 생각이라면, 나도 그쪽을 신경 써줄 이유는 없지.”
“그건…….”
이쪽이 이본의 수행원들과 치열한 공방을 벌일 때도 뒤에서 우왕좌왕하며 사태를 관망하던 이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저쪽의 편의를 봐줄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오렌이 의식을 차린 뒤에도 멀쩡하게 살아남고 싶다면,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따라야 할 거야.”
서늘한 레녹의 말에 다른 가주들이 한마디도 대꾸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레녹은 그런 가주들을 날카롭게 응시하면서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오렌이 의식을 잃고 쓰러진 지금, 누군가는 뿔뿔이 흩어진 성채 주민들을 수습해서 외곽 지역으로 대피시켜야 한다.
인도적인 차원의 문제도 있지만, 그런 것을 넘어 주민들의 목숨이 윌터의 무기로 사용되는 것을 막아야 할 테니까.
레녹은 가주들에게 그 골치 아픈 일을 떠넘길 생각이었다. 그걸 생각한다면 지금부터 미리 주도권을 잡고 있어야겠지.
“괜찮을까?”
허둥지둥 가문의 수행원들을 데리고 멀어지는 가주들을 보며 첸이 물었다.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닐 텐데.”
8가문의 가주들은 대부분 선량하지도, 또 그렇게 유능하지도 않다.
성채 주민들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가주들이 쓸데없는 욕심을 부릴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레녹은 연초를 문 채로 고개를 내저었다.
“수작을 부릴 시간도 없을 거다. 어떤 식으로든 하루 안에 결론을 낼 생각이니까.”
삼두령이라 칭하기 힘들 만큼 약화된 성채의 위상이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었던 것은, 바깥과의 소통을 거부하고 폐쇄적인 사회를 유지하며 정보를 통제했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그 헛된 영욕도 오늘로 모두 끝이다.
예상치 못한 대답에 첸이 두 눈을 크게 떴다.
“……하루라고?”
“여력이 모자라 몸을 뺀 게 아니야. 일원가주를 미리 회수한 것을 확인한 뒤에야 이본의 본가로 도망쳤어. 다른 비책을 준비해두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지.”
지금까지 두 사람이 해왔던 일을 생각하면, 아마 굉장히 높은 확률로 일원가주의 육신을 사용해서 무언가를 벌이려는 속셈이겠지.
아버지의 소생을 위해 수천 명의 목숨을 제물로 던져버리려던 태오의 안위에는 큰 관심이 없다.
하지만 놈들이 의식을 진행할 생각이라면, 그 틈을 노려 재차 선공에 나서는 것이 가장 효과적 일터.
교단의 진정한 목적을 바로 옆에서 지켜볼 수 있는 최적의 기회나 다름없었다.
폐허가 된 장원을 내려다보는 레녹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일이 이렇게까지 끌렸으니 저쪽도 멀쩡하지는 못할 거야. 마력이 회복되는 대로 움직인다.”
* * *
어둠 속에 갇힌 어느 으슥한 공동.
생명의 흔적이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는 사늘한 침묵을 뚫고, 공간을 찢듯이 나타난 균열이 입을 쩍 벌린다.
균열 안쪽에서 튀어나온 두 개의 신형이 마치 내던져지듯이 땅에 쓰러졌다.
쿠우우우웅!!
“크으으으!!!”
온 몸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윌터가 몸을 비틀며 바닥을 굴렀다.
“빌, 어먹을……!! 으으윽……!!”
치이이익!!
대규모 이동술식 암리타의 저울.
바친 생명의 숫자와 동일한 양의 생명을 전이시키는 강력하기 그지없는 이동술식.
술식을 발동시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마지막 순간에 레녹의 간섭으로 인해 술식 자체에 과부하가 걸리는 것을 피할 수는 없었다.
사도가 직접 외해의 의지를 받아 하사한 술식에 손을 대기 위해서는 도대체 어느 정도의 마력조작과 감응력을 지니고 있어야 할까.
서로 다른 공간을 잇는 문에 오류가 생긴다면, 문을 이용하는 당사자에게까지 그 폐해가 미치는 것은 당연한 일.
공간을 건드리는 섬세한 작업이다. 맨정신으로 눈을 뜬 것을 오히려 다행이라 해야 할까.
윌터의 그런 생각은 바로 옆에 쓰러진 이본가주를 보자마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캬아아아아아악!!”
인간의 것이 아닌 괴성을 내지르면서 울부짖는 이본가주.
젊은 여성의 얼굴과 노인의 얼굴이 뒤죽박죽 섞인 그 모습이, 그녀가 얼마나 큰 고통을 겪고 있는지를 설명한다.
오른쪽 어깨 상반신을 포함한 옆구리 인근이 완전히 잘려나간 그 모습.
공간전이의 부작용 중에서도 최악의 경우에 해당하는 신체소실을 겪고 만 것이다.
“가, 가주님……!!”
“이건……!!”
“하아아아아악!!”
이본의 비명을 듣고 서둘러 달려온 수행원들이 눈 깜짝할 사이에 피를 흩뿌리며 절명한다.
고통에 눈이 돌아간 이본가주가 아직 숨이 끊어지지도 않은 그 시체들을 탐욕스럽게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더, 더 가져와!! 빨리이이!!”
이성을 잃고 사람을 먹는 짐승에 가까워진 그 모습에 윌터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뭐, 어쩔 수 없나…….”
공간전이로 인한 절단면에서 발생하는 화상은 평범한 종류의 고통으로 설명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전이과정에서 일시적으로 무시되었어야 할 물리적인 실체가 관측되면서, 공간 전이가 이뤄진 거리만큼의 마찰이 그대로 절단면에 구현되며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
다친 상처 부위를 아스팔트에 전속력으로 갈아버리는 고통이나 마찬가지다.
이본가주의 몸이 이미 반쯤 인간을 벗어난 게 아니라면, 진작에 쇼크사해도 이상하지 않으리라.
가문의 수행원조차 알아보지 못하고, 닥치는 대로 인육을 탐하는 그 모습을 구경하던 윌터가 몸을 일으켜 세웠다.
“일원가주를 데려오세요.”
“하, 하지만 가주님께서…….”
“몇 명을 더 잡아먹고 나면 대충 정신을 차릴 겁니다. 당장 재생은 몰라도, 지혈은 어렵지 않을 거예요. 그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윌터가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힘겹게 일어선 그의 시선이 닿는 작은 정원.
식물의 이파리 위에 맺힌 물방울이, 느릿하게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계획과는 다르지만, 여기서 사도강림의 의식을 시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