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285
약먹는 천재마법사 285화
사도강림(2)
채주 결정전이 끝난 다음 날.
장원에서 일어난 소란으로 인해 온 성채가 초상집으로 변했다.
자신들이 산 제물이 될 뻔했다는 것을 깨달은 성채 주민들의 충격은 엄청났다.
성채 주민들은 스스로가 삼두령의 일원임을 자각하고 있지만, 그 대부분은 성채 안에서 일상을 영위하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 범인이 일원과 이본 일부임을 인지하고 있기에 망정이지, 삼영의 존재가 아니었다면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이 퍼져나갔을 것이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대리전을 이겨서 정말 다행이군.”
방금 전까지 성채 주민들을 상대로 사정 설명에 힘쓰던 수련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본가주에게 채주 직위가 넘어갔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상상도 하기 싫다.”
성채의 질서가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는 것은, 새롭게 채주 직위를 차지한 것이 삼영가주 오렌임을 공표했기 때문이다.
불리함을 무릅쓰고 자신들을 구해준 삼영가주가 채주 직위를 이어받는다면, 이본가주를 처벌하는 것으로 성채는 계속 존속될 수 있다.
가문의 가주들과 그 식솔들은 성채 주민들에게 그 사실을 납득시키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하고 있었다.
하지만 레녹은 그런 수련의 말에도 불구하고 느릿하게 고개를 저었다.
“어떤 식이든 성채는 변하게 될거다.”
“무슨 뜻이지?”
“팔굉성채가 지금의 위상을 유지할 수 있던 건 폐쇄적인 사회를 통해 약해진 힘을 감춰왔기 때문이지. 이번 사태로 가주들의 무능함과 힘의 부재가 여실히 드러났으니, 바깥으로 소문이 퍼지는 것도 순식간일 거다.”
“…….”
“삼두령의 직위에서 내려오는 건 물론이고, 이런 식의 존속을 허락했던 시의회도 간섭해 오겠지. 적지 않은 변화를 감내해야 할 거야.”
성채가 삼두령의 일원으로서 음지의 거두로 군림할 수 있었던 것은, 어디까지나 8가문 가주들의 막강한 전력과 시의회의 인가가 양립된 결과.
하지만 이번 일로 성채 고위인사들 중에서도 시의회의 방침에 불만이 있다는 사실이 직접 드러나고 말았으니, 지금과 같은 폐쇄적인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일 터.
올리비에라라는 절대적인 리더를 보유한 카르텔과는 달리, 새롭게 채주가 된 삼영가주 오렌은 그 정도로 인세를 초월한 강자는 아니다.
음지의 다른 조직들은 물론이고, 시의회의 간섭이 들어오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군……. 무슨 말인지 이해했다. 어쩌면 전대 채주가 죽은 뒤부터 이렇게 될 운명이었는지도 모르지.”
수련이 복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8가문이라는 거창한 위명을 달고 있지만, 사실은 외부와의 소통을 막고 닫힌 사회에서 귀족 노릇을 하고 있었을 뿐이야.”
그녀는 복잡한 시선으로 저택 밖의 풍경을 내다보며 말했다.
“굳이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우리 모두가 저 거리 밖으로 쫓겨날 순간이 찾아왔겠지.”
“그렇게까지 생각할 필요가 있나?”
레녹이 헛웃음을 지으며 몸을 일으켜세웠다.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졌고, 변하는 것뿐이야. 그 과정에서 어디에 설 것인지를 결정했다면 변화를 두려워할 이유도 없지.”
“…….”
“오렌은 나쁘지 않은 지도자가 될 거다. 성채를 더 이상 안전하게 지킬 수는 없어도, 그들의 비호 아래 살아온 주민들 정도는 책임질 수 있을 거야.”
그 다음부터는 레녹이 간섭할 영역이 아니다.
성채 내부의 사정과 미래에 대해서는 레녹이 간섭할 자격도, 또 관심도 없는 영역이었으니.
걸음을 옮기는 레녹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수련이 물었다.
“어딜 가려는거지?”
“못다 한 일을 끝내러 가야지.”
품 안에서 연초를 꺼내든 레녹이 대꾸했다.
“기왕이면 오렌이 의식을 차릴 때까지는 기다려주고 싶었지만……. 시간이 많지 않아.”
“그건…….”
“굳이 이본가주의 본영으로 도망친 데는 틀림없이 이유가 있을 거다. 놈들이 먼저 수를 쓰기 전에 이쪽에서 먼저 움직이는게 효과적이겠지.”
“……어째서, 우리를 그렇게까지 도와주는 거지?”
수련이 복잡한 표정으로 물었다.
“네가 해야 할 일은 전부 끝났다. 나와 첸에게 약속한 것처럼, 대리전을 승리하고 오렌을 채주로 만들었어. 네가 원했던 보상만 받고 떠난다고 해도, 아무도 네게 뭐라 하지 않을 텐데…….”
“…….”
그건 레녹이 다른 사람들과는 완전히 다른 측면에서 이번 일의 본질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겠지.
판데모니엄의 수장이 언급했던 귀도 교단의 정체.
시공간 계열의 마법을 찾는다면 교단의 비처를 찾으라는 말에서 시작된 조사였지만, 지금은 좀 더 많은 것을 보고 있다.
선교자 윌터가 이렇게 오랜 시간 공을 들여서 성채의 내부 시설 열람권한을 노리는 이유.
그것은 아마 오렌이 보여주었던 성채 내부 시공간이 괴리된 유적지를 손에 넣기 위함이 틀림없었으니까.
그리고 그 유적지들은 높은 확률로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구세계와 관련되어 있을 터.
구세계의 유물을 찾는 복마전과 구세계의 시공을 찾는 교단.
두 조직이 각기 바라보는 목적지가 어디인지, 레녹은 기회가 닿는 순간에 모두 확인하고 기억해야 했다.
레녹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로 치부하고 외면하기에는 이미 너무 멀리 와 버리고 말았으니.
세상의 끝이 다가오기 전에 진실을 확인하고 대답을 내놓는 것.
그것은 궁극적으로는 레녹 자신의 굴레를 벗어던지기 위한 여정과도 맥락을 함께하고 있었다.
“글쎄.”
하지만 레녹은 그런 사정을 일일히 수련에게 들려주는 대신 웃어넘겼다.
“네가 내 회사에 들어올 생각이라면, 그때 말해줄 수도 있겠군.”
“뭐?”
멍한 표정으로 되묻는 수련을 남기고, 레녹이 곧바로 등을 돌렸다.
이번 일을 마무리 짓기 위해서는 몇 가지 준비가 필요했다.
* * *
이본의 본가로 향하는 거리.
원래라면 온갖 다양한 사람들도 붐비고 있어야 할 번화가에는 싸늘한 침묵만이 가득했다.
“……”
이번 사태의 범인이 누구인지 알아차린 주민들이 성채 중심에서 최대한 멀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연기를 줄줄 흘리면서 천천히 걷던 레녹이 문득 고개를 돌렸다.
골목 한쪽 구석에서 첸과 맨슨이 천천히 걸어나오고 있었다.
“오렌은?”
“밤사이 고비를 넘기고 지금은 잠에 들었다더군. 복부 쪽 장기 손상이 심각해서 몇 달간은 철저하게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한다.”
[의사 말로는 배를 반쯤 뜯어먹힌 뒤로도 한참을 싸우다가 기절했다던데? 고약한 할아범이야.]맨슨은 그렇게 떠들고는 로봇 머리를 까딱거리면서 레녹에게 물었다.
[……그런데 진짜 혼자 가려고?]“부상당한 놈들을 데리고는 방해만 될 뿐이야.”
레녹이 웃었다.
“발목 잡지 말고 얌전히 구경이나 하고 있어라.”
첸과 맨슨, 수련과 삼영의 수행원들 전원이 참전해 싸웠던 대리전의 후폭풍이 끝난지 24시간도 지나지 않았다.
레녹만 한 마력회복력을 갖추지 않고서야 전선에 투입될 만한 이들은 많지 않다.
소모된 마력도 마력이지만, 그 과정에서 입은 부상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수준.
지금같은 상황에서는 오히려 방해만 될 확률이 높았다.
맨슨이 팔짱을 끼며 고개를 주억거리고, 첸이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실력으로는 부상을 입든 말든 7레벨 초인들의 전투에서 도움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다.
“……오렌이 의식을 차리고 성채의 외부 결계를 해제하면 내 친구들을 불러오는 것도 가능할 거다. 그때까지 조금 더 기다린다면…….”
“그럼 시의회의 간섭도 같이 시작되겠지.”
“…….”
“저쪽에서 끼어들기 전에 일을 처리해야 하지 못하면, 우리도 공범으로 엮여셔 일이 귀찮아질 거다.”
[그 노친네들의 성질을 생각한다면 틀림없겠지.]자꾸 추임새를 넣는 맨슨을 한번 쳐다봐 입을 다물게 만든 레녹이 말했다.
“교단의 존재가 확인된다면 무혐의로 끝날 가능성은 낮아. 시의회의 개입을 피하기 위해서라면 일을 빠르게 마무리 짓고 결과만 던져주는 게 최선이다.”
“그 결론이 너 혼자서 이본의 본가에 쳐들어가는 일인가?”
첸이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고위 마법사들의 생각은 이해할 수가 없군…….”
[반대야, 멍청아. 저딴 식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니까 위계를 완성시킬 수 있는 거라고.]맨슨이 딱딱한 금속 턱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나도 앞으로는 좀 더 미친 짓거리를 해보도록 노력해야겠군.]“…….”
헛소리를 지껄이는 맨슨의 모습에 레녹이 한숨을 내쉬었다.
“상황이 어렵다면 저쪽의 전력을 가늠해 보는 선에서 끝낼 테니, 쓸데없는 짓거리 하지 말고 내가 말한 장소에서 기다려,”
“그건…….”
“성채의 일을 마무리 지은 뒤에도 수습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레녹이 웃었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
“……좋아.”
첸이 어렵사리 고개를 끄덕였다.
“나 몰래 우리 누님한테 스카우트를 넣은 일은 나중에 묻도록 하지.”
“…….”
첸의 눈에 띄지 않게 몰래몰래 손을 썼다고 생각했는데, 그새 들킨 건가.
수련 정도의 실력자라면 첸 역시 자기 사업에 끌어들이려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첸은 그런 레녹의 얼굴을 보다가 피식 웃고는 등을 돌렸다.
맨슨이 그런 첸의 어깨를 붙잡고 손을 흔들며 사라졌다.
레녹은 그 두 사람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걸음을 옮겼다.
한적한 거리 사이를 걷던 레녹이 느닷없이 입을 열었다.
“너도 이쯤에서 돌아가는게 좋을텐데.”
“…….”
“말했지만 방해만 될 뿐이다. 그리고, 네겐 전투능력이 없어.”
“……알고 있습니다.”
골목길 사이, 그림자속에서 걸어나온 것은 레녹보다도 호리한 체격을 지닌 청년이었다.
“저번 대리전에서 저를 살려주신 것도 아마 반 님이셨겠죠.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파리한 안색에 후들거리는 손발.
한눈에 보아도 겁먹은 것이 보이는 유약한 성정.
하지만 그림자를 다루는 솜씨 하나만큼은 진짜다.
오렌의 조카이자 삼영가 내부에서도 그림자 술사로는 가주 다음가는 실력자이자, 이번 대리전에도 참전했던 아스이가 그곳에 서 있었다.
레녹이 무심한 눈길로 그의 몸을 훑었다.
“그럼 어째서 고집을 부리는거지?”
“……저는 전투에는 소질이 없지만, 그림자를 다루는 일에는 자신이 있습니다.”
그 말과 함께 아스이의 등 뒤에서 큼지막한 그림자 장막이 일어나 주위를 뒤덮었다.
“숙부님만큼의 재주는 없지만…….”
아스이는 침을 꿀꺽 삼키고 말을 이었다.
“마법사님이 하시려는 일을 외부의 시선에서 감춰드릴 수는 있을 겁니다.”
“…….”
아스이가 내뱉은 말의 의미는 분명하다.
지금부터 레녹이 무슨 일을 하려고 하는지, 아스이는 대충이나마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성영역을 사용하실 생각이시겠죠…… 그리고 아마 틀림없이 외부에는 공개할 수 없는 종류의 재해일 겁니다.”
레녹이 흘리는 날카로운 기세에 아스이가 달달 떨면서도 말했다.
“그, 그러지 않고서야…… 이렇게 무리를 하실 이유가…….”
“그걸 알면서도 굳이 날 찾아와서 제안을 하다니.”
레녹이 웃었다.
“내가 널 죽여서 입막음을 할거라고는 생각 못한건가?”
“그, 그럴 생각이셨다면…… 대리전에서 이미 저는 눈을 뜨지 못했겠죠……”
아스이가 땀을 줄줄 흘리면서 말했다.
“저는 장막을 칠 뿐이지, 그 안을 엿볼 수는 없습니다. 제 영역 안에서 가능한 일이라고는 고작…….”
“……영역?”
레녹이 되물었다.
“영역을 사용할 줄 아는 건가?”
“……네.”
아스이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얼굴이 긴장으로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아직 제대로 심상을 각인시키지는 못했지만, 조금이라면…….”
* * *
“빨리, 시작해.”
“말이야 쉽지, 실제로 그렇게 뚝딱 해결되는 일이 아닙니다. 섬세한 조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백이면 백 실패만…….”
“오래 버틸 수가 없다. 빨리……!”
말을 끊은 채 격렬하게 어깨를 부여잡고 긁어대기 시작한 이본의 모습에 윌터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틀려먹었군요…….”
이본가주를 젊게 만들어준 교단의 은혜. 그 부작용이 생각보다 빨리 찾아오고 있었다.
원래라면 오랫동안 안정을 취하면서 천천히 몸을 인외의 것으로 만들어나갔어야 했을 터.
하지만 대리전에서 도망치는 사이 입은 부상으로 인해, 체내 마력의 균형이 무너지며 육체의 붕괴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교단의 기술이 아직 7레벨의 초인을 완벽하게 개조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증거.
하지만 윌터는 그런 소감을 입 밖으로 내뱉는 대신, 고개를 들고 빙긋 웃었다.
그 시선의 끝에는, 수십 갈래에 달하는 핏줄기에 묶인 일원가주 태오의 몸이 매달려 있었다.
“그렇게 됐으니 우리끼리라도 잘해봅시다. 일원가주.”
“약속을 어겼어……!!”
허공에 매달린 채로 발버둥 치던 태오가 악을 쓰며 소리를 질렀다.
“분명히 협조하면 아버지를 살려준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
“그래서, 그래서 가문의 혈족들을 바쳐가면서까지 기다렸는데……. 어떻게 나를 속일 수 있습니까, 이본가주!!”
태오가 단순히 입바른 거짓말에 속아넘어간 것은 아니다.
살해당한 전대 채주. 그 몸을 부활시켜줄 수 있다는 이본가주의 설득이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모든것을 바쳐가면서 그녀에게 협조했던 것이 아닌가.
교단의 도움을 받아 젊음을 되찾은 그녀라면, 틀림없이 아버지를 살려낼 방법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는데.
설마 아버지를 살려내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의 육신까지 이용하려 들 줄이야.
윌터가 여유롭게 턱을 쓰다듬으며 웃었다.
“사실 약속을 어긴 것은 아닙니다. 보시는 대로 일원가주가 애타게 바라는 아버지의 육신은, 여기 멀쩡하게 움직이고 있잖아요?”
“닥쳐라!! 이제 그만 아버지를 편하게 만들어줘!!”
태오의 울부짖음에도 불구하고 윌터는 곤란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쉬운 일이 하나도 없군요. 계산대로라면 전대 채주의 육신을 손에 넣은 시점에서 일이 끝났어야 했는데……”
시공이 괴리된 유적지를 감싼 결계를 열어제끼기 위해 이리도 먼 길을 돌아온 것이 아니었나.
전대 채주의 육신에 남겨진 보안코드를 사용하면 결계가 열릴 거라 생각했지만, 승천자가 마지막으로 남겼다는 결계의 시스템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건 아마 이 결계 자체가, 성채의 안위가 아니라 시의회의 중개를 받아 만들어진 작품이기 때문일 터.
그만큼 이 유적지의 존재를 시의회가 눈여겨보고 있었다는 증거다.
결국 대리전을 열어서 정당하게 그 자격을 손에 넣으려고 했건만, 고작 마법사 한 명의 존재 때문에 모든 것이 어그러지고 말았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윌터가 그렇게 말하면서 태오의 몸에 천천히 손을 뻗었다.
“다음 채주로 지명된 삼영가주가 의식을 잃은 지금이라면, 이 채주의 육신에 대량의 혈액을 공급해서 일시적으로 채주의 자격을 살려낼 수 있겠지요.”
얼굴이 창백해진 태오가 미친 듯이 몸을 비틀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이런 방식을 사용하면 육신이 완전히 망가져 버릴 테니 자제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물불을 가릴 때가 아니군요.”
순식간에 태오의 복부에 자그마한 구멍이 뚫리고, 엄청난 흡입력이 온 몸의 피를 가득 빨아들이기 시작한다.
“으아, 아아아아!!”
공포에 질린 일원가주가 형용할 수 없는 울음을 토해냈지만, 윌터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를 달래주었다.
“너무 그렇게 겁먹지 마세요. 일원의 다른 혈족들도 다들 그렇게 떠나보내지 않았습니까?”
태오의 고함 소리가 빠르게 가라앉는다. 순식간에 생기를 잃고 부릅뜬 눈동자 위로 윌터의 나직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아버지를 살리겠다고 가문의 일원을 모조리 바친 건 당신이었잖아요.”
그 순간.
우우우우웅!!
저택을 통째로 뒤흔드는 강렬한 마력의 충격파가 내리꽂혔다.
직접 타격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근방의 거리 자체를 대놓고 짓누르는 무력행사.
상대가 누구인지는 분명했다.
“……!!”
“놈……이군.”
이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허공을 노려보았다.
순식간에 그녀의 눈이 벽 너머를 꿰뚫고 날아 저택의 대문 아래쪽을 내다보기 시작했다.
전신에서 새하얀 마력의 증기를 줄줄 흘리는 남자가 하나.
코트를 입은 마법사가, 두 눈 사이로 새파란 안광을 번뜩이며 그녀를 올려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