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310
약먹는 천재마법사 310화
톱니바퀴(3)
쾅!!
전조조차 없다. 허공에서 흐릿한 섬광이 몇 번 번뜩이고, 직후 레녹의 앞에서 나타난 룬델의 몸이 그 자리에서 춤을 췄다.
두두두두두두!!!
두 눈으로 포착하기 힘들 만큼 빠른 공격속도.
룬델의 움직임이 끊어지듯이 회전하며 건물 사이에 처박힌 레녹의 신형을 격렬하게 지반 아래쪽으로 짓누른다.
곧바로 마력사로 균형을 붙들고 머리 위쪽으로 전광을 때려 박았지만, 그 반격이 허무할 정도로 쉽게 근처의 땅이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
서로 붙잡고 휘두르는 마력의 기세에서 밀린다거나, 상대의 수준이 엄청나게 높다는 문제가 아니다.
룬델과 레녹이 휘두르는 마력이 사방으로 터져나갈 때마다 레녹이 디딘 근처의 땅이 그대로 무너지며 끝없이 아래로 떨어져 내리고 있는 것이다.
[이쪽 거리 지하 아래 버려진 탄광이 하나 있다는 거, 알고 있어?]그런 레녹의 위에서 룬델이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이 도시가 아직 세워지기도 존재하기 전에 사용되던 시설이라더군. 네가 오기를 기다리며 한나절 동안 잠깐 손을 봤지.]전신을 격렬하게 움직이면서도, 호흡의 영향을 받지 않는 기계음이 여유롭게 터져 나왔다.
[같이 즐기기에는 나쁘지 않을 거야.]“준비를 했다는 게, 그런 의미였군…….!”
콰앙!!
쉴 새 없이 무너져내리던 지반이 어느 순간 경계점을 돌파하며 거대한 구덩이를 그리고, 그 아래 만들어진 널찍한 지하 탄광 사이로 두 사람이 떨어져 내렸다.
한 치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어둠.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마력감지의 힘을 빌려서도 제대로 측정이 불가능할 정도로 광활한 지하공간 그 자체다.
[알파 라이트]두 눈이 멀 정도로 눈부신 광원을 손위로 피워올린 레녹이 곧바로 그것을 탄광 위로 던져올렸다.
파아앗!!
작지만 강렬하게 빛나는 광원이 허공에서 느릿하게 떨어지며 사방에 빛을 뿌리고, 그제야 주위의 모습이 제대로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원기둥 형태의 거대한 지하공동. 그 벽면으로 잘게 나 있는 나선형의 계단.
지극히 단순하고 원시적이 형태의 이동수단을 생각하면, 룬델의 말이 마냥 거짓이 아님은 확실해 보인다.
다만 심중에 걸리는 것은, 이렇게까지 환한 빛을 밝혔는데도 바닥이 보이지 않는 탄광의 깊이 그 자체.
아래쪽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고 떨어져 줄 생각은 없었다.
파악!
레녹의 소매에서 튀어나온 길쭉한 창 한 자루가 그대로 탄광 벽면에 틀어박혔다.
바르디슈 형제단과의 전리품으로 가져온 창대. 아티팩트로 효력은 잃었지만, 그 내구성은 상당해 레녹이 잠시 보관해두고 있었다.
창대를 벽면에 박아넣고, 코트에 부유마법을 걸어 몸을 띄운 뒤 창대에 매달린다.
쐐애액!!
그 직후 빠른 속도로 떨어져 내린 룬델의 몸이 마찬가지로 벽면에 거미처럼 달라붙어 레녹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탄광의 양쪽 벽면에 매달린 두 사람이 동시에 서로를 보며 마력을 가다듬었다.
다른 한 손으로 입에 문 연초를 고쳐 물며 레녹이 중얼거렸다.
“무식하게 온몸을 기계로 대체하기만 하는 건 아니었군. 마도공학을 연구하고 있다는 것이 그런 의미였나?”
근처 벽면의 비좁은 계단 사이로 발을 내디딘다.
“술식을 해석하기 위한 육체의 개량. 더불어 마력원을 남겨두기 위한 인체와의 공존인가.”
[발칸의 음지에서 가장 재능있는 술사라더니, 틀린 말이 아니었군.]벽에 팔다리를 박아 넣은 룬델이 살짝 놀란 어조로 물었다.
[그 와중에 내가 사용하는 술식의 정체를 알아차린 건가? ]“일어나지 않았어야 할 일이 일어났다면, 그 원인을 다른 곳에서 찾을 필요는 없지.”
연기를 깊게 들이마신 레녹이 대답했다.
“공간계열……. 그 술식에 손을 대는데 성공했다니. 그게 너희들이 추구하는 마도공학의 정수인가?”
[흐…….]룬델이 단순히 기묘한 술식을 사용하는 수준을 넘어, 공간에 손을 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은 전투가 시작된 직후였다.
그가 걷어찬 레녹의 실드가 박살 나는 대신 그대로 뒤로 날아가며 의도한 탄광 위치 위로 도착했던 순간.
그동안 레녹의 실드는 한도를 넘는 충격을 만나면 그 자리에서 부서졌지, 밀려나는 일은 없었다.
꾸준히 개량을 거듭해 온 실드가 몸을 둘러싸는 수준을 넘어서, 어떤 충격을 받아도 시전자의 몸에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조정되어 있었기 때문.
하지만 룬델은 방금 그런 조정을 모조리 무시하고 실드째로 레녹을 걷어차 날려버렸다.
단순히 술식에 간섭하는 수준을 넘어서, 실드가 존재하는 공간 자체에 간섭을 걸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
[정확하게 말하자면 공간에 직접 손을 대는건 아니야. 미리 개량해둔 술식인자를 활성화시켜, 허수차원의 모습을 대충이나마 구현하는 거지. 재현율은 대략 5% 정도.]“…….”
[그렇게 간이공간을 만들어내면, 물리적으로나마 공간을 ‘밀어낼’ 수 있는거야. 어때?]룬델이 물었다.
[공간계열의 술식 없이 이뤄낸 성과치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대단하지 않나?]“대단하군.”
레녹이 동의했다.
룬델이 설명한 내용은 난해했지만, 공간에 손을 대기 시작한 레녹이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았으니까.
허수차원을 직접 연구, 그 결과로서 간이공간이라는 존재하지 않는 공간을 구현.
그렇게 만들어낸 간이공간은 제대로 된 공간으로 기능하지는 않더라도, 다른 공간을 밀어내는 것은 가능하다.
룬델은 직접 공간을 조작하지는 못하더라도, 한없이 진짜에 가까운 간이공간을 만들어, 다른 공간을 밀어내는 식으로 사용해 오고 있던 것이다.
그것은 마치 물속에 풍선을 집어넣어 다른 물들을 밀어내는 것과 같다.
실제 공간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정도로 다르고 단순한 무언가지만, 그럼에도 그 존재의 여파로서 실재하는 공간을 밀어낼 수는 있던 것이다.
지금까지 그가 보여주었던 기이한 움직임과 레녹의 실드를 통째로 날려버린 선공 역시 그 일환이었겠지.
[이 방식을 사용하면 네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물리법칙을 뒤틀고 네 목을 따버릴 수 있겠지.]손바닥 사이로 다시 블레이드를 뽑아 든 룬델이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마치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처럼, 벽에 직각으로 발을 디디고 선 그가 팔을 활짝 벌리며 말했다.
[그러니 죽고 싶지 않다면 이제 네 전력을 보여줘. 언제까지 숨기고만 있을 생각이야?]“뭔가 착각을 하는 모양이군. 방금 그쪽이 보여준 건 날 죽일 수 있는 무기가 아니라 신기한 잡기술 같은데.”
바닥의 어둠 사이로 다 타버린 연초를 던진 레녹이 날카롭게 웃었다.
“내 데이터를 뽑아내고 싶다면 이것보다 훨씬 더 노력해야 할 거야.”
[7레벨에 도달한 성위마법사가 이렇게까지 말귀를 못 알아들어서야…….]툭!
벽에 서 있던 룬델의 몸이 그대로 탄광의 어둠 속으로 떨어져 내린다.
그 순간, 탄광 지하 어둠 속에서 새빨간 광채 수십 개가 일제히 떠올라 레녹을 비추고.
[내가 준비를 해놨다고 했잖아.]직후 쏘아진 레이저가 수십 개의 적색 광선으로 변해 탄광을 휘저었다.
지지지지지지징!!!
탄광 지하에서 거꾸로 솟아오르는 검붉은 레이저 광선 수십 개가 어지러이 회전하며 탄광 내부 벽면을 무차별적으로 폭격했다.
직접 닿지 않아도 피부로 선명하게 다가오는 열기.
막대한 열량과 충격에 순식간에 탄광 벽면에 조각된 계단이 박살 나고 무수한 암반더비가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지만.
그 모든 파괴의 흔적은 탄광 바닥에 도달하기도 전에 사방에서 쏘아지는 레이저의 난무에 휩쓸려 소멸한다.
눈 부신 레이저의 광채 사이로, 레녹은 그제야 탄광 지하에 존재하는 무언가의 정체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마치 뱀처럼 길게 휘어진 굵직한 기계촉수 수십 가닥.
그 굵기는 어지간한 자동차를 집어삼킬 만큼 두터웠다.
탄광 바닥에서 기이하게 꿈틀거리며 발작하다, 이윽고 머리 끝으로 강렬한 레이저를 토해낸다.
그런 촉수를 지탱하는 바닥에는 수백 수천 가닥의 전선이 연결되어 탄광 바닥 어딘가로 흐르고 있었다.
탁!
거기까지 확인한 레녹은 곧바로 쥐고 있던 창대를 놓았다.
동시에 부유마법까지 해제하고 거꾸로 탄광 지하로 몸을 던졌다.
기다렸다는 듯 사방에서 일제히 구부러지며 달려드는 수십 가닥의 레이저.
하지만 레녹은 이번에 실드에 손을 대는 대신, 양손을 겹쳐 순식간에 소환술식의 수인을 맺기 시작했다.
아리스와의 연구를 통해 어느 정도 조예가 생긴 소환마법.
그 본질대로 소환수를 불러내는 것은 당장 무리지만, 레녹이 지니고 있는 물건을 이 자리에 소환해내는 정도는 충분하다.
까가가각!!!
양쪽 팔을 교차시킨 레녹의 몸 주위로, 마치 공간이 어그러지는 듯한 아지랑이와 함께 형태를 알 수 없는 갑각더미가 레녹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레이저의 폭격이 갑주를 가열차게 두드리지만, 이제까지 느껴졌던 그 파괴력이 어색할 만큼 허무할 정도로 갑각을 뚫어내지 못한 채 사그라들고.
허공에서 떨어져 내린 갑각뭉치가 그대로 탄광 지하에 떨어져 내렸다.
쿠우우우웅!!!
탄광 전체를 흔들리게 할 만큼 거대한 진동.
그 낙하 충격에 레녹을 향해 쏘아내던 기계 촉수 일부가 그대로 망가지고, 일부는 갑각을 뚫어내려다 다른 촉수들을 공격하며 제 살을 깎아 먹기 시작한다.
그제야 일이 뭔가 잘못 돌아간다는 것을 깨달은 룬델이 촉수의 레이저를 중단시켰다.
쩌저적……!!
갑각더미가 쩍 벌어지며 그 사이로 천천히 레녹이 걸어 나왔다.
전선이 가득한 바닥을 밟은 레녹의 입에는 이미 새로운 연초 한대가 더 물려 있었다.
수십 다발의 촉수들을 등지고 있던 룬델이 시큰둥한 목소리로 말했다.
[재미없는 물건을 가지고 있군. 덕분에 기껏 마련한 무대가 허사가 됐잖아.]틀린 말이 아니다.
준비한 시간은 고작 한나절이지만, 룬델이 이번 일을 위해 투자한 자본은 실로 엄청난 규모였으니.
지금 룬델이 사용하는 기계촉수의 정식명칭은 ‘쥬네스의 뱀’.
겉으로는 기괴하고 단순해 보이는 외형이지만, 실제로는 자율의사를 지니고 적을 인식하여 자동사격하는 기생형 마도공학 포대 중 하나다.
대지의 지력과 근방의 전력을 동력으로 삼아, 분열에너지를 생성. 레이저로 삼아 쏘아내는 것이 특징.
레이저를 쏘아내는 도중에도 촉수가 자유롭게 움직이며 레이저의 방향을 자유롭게 바꿀 수 있으며, 그 위력은 어지간한 군위급 육체능력자도 버티기 힘들 만큼 강력하다.
하나를 설치하는 것만으로 진지를 구축하기에 충분하다 평가받는 중대형 포대 공학품을 수십 대. 그것도 작정하고 한 곳으로 공간을 압축하고 레이저를 공명시켰으니 그 위력이 어떠할까.
그런 레이저의 포격을 멀쩡히 버텨낸 저 갑각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물건인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었다.
[전투 데이터가 얼마나 잘 모이지 않았는지 알겠군. 이런 방패가 존재한다는 정보조차 데이터베이스에 기록되어 있지 않다니……. 이거 돌아가면 완전히 플랜을 다시 검토해야겠어.]“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거다.”
후욱!!
갑각뭉치를 역소환하면서 레녹이 말했다.
“너희가 이걸 조사한다고 알아낼 수 있는 사실은 많지 않을테니까.”
방금 레녹이 꺼낸 물건은, 무려 자성영역의 불길에서도 태워지지 않았던 사도, 윌터의 육신에서 습득한 갑주 일부.
레녹은 한없이 단단하고 무겁기만 한 그 물건을 어떻게 사용할지 고민하다, 소환마법에 조예가 깊어진 뒤로는 아예 소환진을 새겨놓고 이런 식으로 사용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실전에서 꺼내는 것은 처음이었지만, 그 효과는 보란 듯이 굉장하기 그지없었다.
갑각뭉치가 떨어져 내린 충격으로 이미 탄광 지하 일대가 비틀리듯 아작 나 있었으니.
하지만 그런 레녹의 말에도 룬델은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 그렇게 말하는 것 치고는 꽤 많이 힘들어 보이는데?]“…….”
연초를 입에 문 레녹이 이마 사이로 땀방울이 흘러 떨어진다.
공용마법을 통해 근처 온도를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조절해 왔음에도 이 정도.
그만큼 일대 공기가 비정상적으로 달아올라 타오르고 있다는 의미나 마찬가지였다.
탄광 안쪽에서 쉴 새 없이 쏟아진 레이저 다발. 그 여파로 쏟아진 막대한 열량의 존재.
다소 폐쇄적으로 만들어진 공간 사이로 달아오르는 열기가 천장에 난 비좁은 틈으로 빠져나가지 못한 채 안에서 순환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시간을 오래 끌다가는 짙어지는 열기와 옅어지는 산소에 그대로 질식해도 이상하지 않을 터.
룬델의 용의주도함을 생각하면, 아마 여기까지 노리고 이 탄광을 자신의 무대로 골라 세웠던 것이겠지.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룬델이 놀리듯이 읊조렸다.
[지하 900m 탄광. 벽면의 계단은 모조리 무너졌고 네가 탈출할 루트는 어디에도 없지. 구명의 수단을 가지고 있어도, 날 죽이기 전까지는 손도 댈 수 없을 거야.]손바닥 사이로 뽑아 든 블레이드를 말아쥐며 룬델이 경쾌하게 걷기 시작했다.
[남은 건 네가 죽을 때까지 내뱉는 발악을 고스란히 내 메모리에 기록하는 일뿐이군.]“계속 생각하지만, 머리를 기계로 바꾼 놈들은 다 그렇게 말이 많나?”
파지직!!
손가락 사이로 길쭉한 전류 가닥을 뽑아 쥔 레녹이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왔다.
새파란 전광이 레녹의 얼굴을 아래쪽에서 비춰 올렸다.
“말을 많이 하고 싶어 혓바닥을 스피커로 바꿨다면 이해가 가겠는데.”
[그래, 이래야지.]룬델 역시 딱딱한 웃음을 터트렸다.
[우리 마법사님이 죽기 전 추는 마지막 춤이군. 기꺼이 같이 어울려드리지!!!]콰과과광!!
기이하게 휘어진 기계장치의 향연. 수십 갈래 촉수들이 내려다보는 전선다발 사이에서 두 갈래 섬광이 공동을 양분하고 번쩍였다.
공간 사이를 자유자재로 드나드는 것처럼 허공에서 수십 번씩 공세를 바꿔 내달리는 룬델과, 전격 수십 줄기를 사방에 내리꽂으며 받아치는 레녹의 형상.
연초를 문 마법사를 중심으로 날카로운 칼날과 포탄이 쉴 새 없이 번뜩이고 터져 나오며 공동 안에 뜨거운 폭풍을 형성한다.
타타타타타탕!!
단 한순간도 쉬지 않고 위치를 바꿔 가는 룬델과 선 자리에서 쏟아지는 공방을 모조리 받아치는 레녹의 모습.
그 두 사람의 등 뒤로 정제되지 않은 마력이 거침없이 터져 나오며 어두운 탄광을 쉴 새 없이 태워 올렸다.
카가가강!!
하늘 위에서 비처럼 쏟아지는 흙더미와 뜨거운 열풍의 잔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자욱하게 퍼져나가는 돌먼지도 아랑곳하지 않고 쉴새 없이 손을 휘저었다.
[하하하핫!! 정말 어처구니가 없군!]잔영처럼 여러 개로 나뉘어 쏟아지는 룬델의 몸이 일제히 소리쳤다.
[이렇게까지 해도 데이터가 거의 모이지 않잖아! 술식구조를 도대체 어디까지 개량했기에 보이지도 않는건지 모르겠군!!]룬델이 오늘 이 자리까지 나선 것은 술식 편향 분석으로도 해석하지 못하는 레녹의 데이터를 직접 추출해 내기 위함.
하지만 이렇게까지 몰아붙이고 격렬하게 공방을 주고 받는 와중에도, 놈이 사용해내는 술식에 대해서 아무것도 읽어낼 수 없다.
한없이 복잡하게 꼬여 들어가는 마력패턴. 그 패턴을 인지하고 해석하려 파고들수록, 내부에서 끊임없이 꼬여가며 복잡한 혼돈의 무리를 그린다.
아무런 질서조차 담겨 있지 않은 무질서함을 실로 자아낸 것처럼 기묘하기만 하다.
버릇이나 선호하는 패턴, 호흡도 없이 전격과 빙결계열 술식을 선호한다는, 어린아이도 알 법한 간단한 사실만이 룬델의 데이터베이스에 흘러들어올 뿐.
이렇게 복잡하게 꼬여 들어간 상대를 눈앞에 두고 싸우면서도, 정작 읽어낼 수 있는 것은 티끌만 한 파편뿐.
콰앙!!
간이공간을 형성, 레녹을 한 번 더 걷어차 탄광 구석으로 날려버린 룬델이 말했다.
[자꾸 재미없게 나오면 나도 어쩔 수 없어.]차르르르륵!!
동시에 발밑에서 일어난 수십 갈래 기계촉수가 검붉은 광채를 빛내며 룬델의 등 뒤에서 일렁였다.
[분해광선으로 사지를 꿰어낸 뒤, 살아 있는 채로 육편을 떠서 세포 단위로 분석에 들어갈 수밖에.]“…….”
“그렇군.”
어둠에 잠긴 탄광 구석에서 레녹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건 나도 같은 생각이다.”
그 순간, 방금 전까지 룬델의 등 뒤에서 흔들거리던 기계촉수들이 일제히 비틀거리다 어느 한 곳을 향해 그대로 머리를 들이박기 시작했다.
촉수의 방향이 향하는 곳은 바로 룬델이 서 있던 그 자리.
차르르르르륵!!
[……!!!!!]경악한 룬델이 공간을 밀어내며 그대로 기계촉수들을 피해 나왔지만, 이미 늦었다.
마치 한순간에 주인이 바뀌기라도 한 것인 양 순식간에 위치를 바꿔 룬델과 거리를 벌리는 촉수들. 그 무수한 전선더미 위로 레녹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제야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깨달은 룬델의 억눌린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빌어먹을, 설마……!!]“쥬네스의 뱀이라고 했었나?”
코트를 털어낸 레녹이 이마 위로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말했다.
“탄광의 존재를 미리 인지하고 날 말려 죽이겠다는 발상은 좋았다.”
[도대체 어떻게!!]“하지만 그럼 이놈들의 보안에도 신경을 썼어야지. 생각보다 훨씬 허술하더군.”
[제어권 해킹을 시도했다고 해도, 고작 5분도 되지 않는 시간이었어……!! 술사의 연산능력을 가정해도, 이런 단시간에는 불가능했을 텐데!!]“기계를 잘 다루는 게 꼭 너희들에게만 가능한 일은 아니지.”
마도공학 연구집단, 기어사이드. 그 기술력과 강력한 화력, 철저한 준비능력과 높은 지성 모두가 더할 나위 없이 위협적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
하지만 레녹과 함께하는 전뇌정령의 존재는 그 모든 장벽들을 아무런 의미 없는 것처럼 만들고, 기어사이드의 의표를 찌를 충분한 역량을 지니고 있었다.
위이이이잉!!
촉수 끝에서 빛나는 레이저 집탄이 일제히 룬델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예열되기 시작하고.
조금씩 뒷걸음질 치는 룬델을 보며 레녹이 웃었다.
“그럼 이젠 내 차례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