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360
약먹는 천재마법사 360화
미궁 레이스(3)
“블록을 허투루 밟으면 위로 올라가는 것도 어렵군.”
“크기와 높이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건가…… 의외로 연관성을 찾기 어려운데.”
평범한 방식으로는 블록을 오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이들이 서로를 끌어내리기 위해 다툼을 벌이기 시작했다.
“저쪽 술사가 길을 찾았다!”
“건너는 방식이 정해져 있었군, 거기서 꺼져!!”
“X까, 이 새끼들아. 내가 왜!!”
콰아아앙!!
먼저 높은 블록을 밟은 사람에게 시선이 쏠리고, 지상뿐만 아니라 블록 사이에서 수십 명이 넘는 초인들이 격돌했다.
레녹과 이벨린이 수십미터 아래쪽에서 벌어지는 난전을 보며 빠르게 피아를 구분하는 사이.
“두 사람. 내 얼굴 기억하나?”
귀에 익은 부드러운 목소리가 근처에서 울려 퍼졌다.
카바힘 기사단의 수장, 데인. 레녹과 이벨린이 있는 블록까지 성큼 뛰어오른 그가 물었다.
“이 공동에 놓인 블록들. 정해진 순서대로 밟지 않으면 관문에 도달하는 걸 막고 있는 것 같은데.”
“…….”
“혹시 그 순서를 알고 있다면 우리에게도 알려줬으면 좋겠군. 내 관문을 통과한 뒤에 톡톡히 사례하도록 하지.”
“그걸 알면 우리가 진작에 이 관문을 통과했겠지.”
레녹이 무심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래도 여기까지 올라온 길은 알고 있을 것 아닌가?”
“아무 블록이나 밟으면서 위로 올라오다 보니 여기여서 말이야. 우리도 길이 막힌 터라 고민하고 있었다.”
“그래?”
데인의 눈동자가 섬뜩하게 빛났다.
“7레벨의 성위마법사가, 방금 전에 지나온 길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그거 무척이나 설득력있군.”
“…….”
“내 생각에는 자네들이 길을 잃어버린 게 아니라, 일부러 그 블록을 점유하고 있는 것 같단 말이야. 거길 지나가지 않으면 관문을 통과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지.”
스르릉!!
날카로운 검명.
소리를 눈치챈 순간 데인의 왼손에서 은빛의 칼날이 휘청였다.
공동을 스쳐지나가는 번뜩이는 섬광. 직후 레녹과 이벨린이 올라탄 블록이 절반으로 뚝 갈라졌다.
“그러니까 일단 거기서 내려와서 이야기하지.”
동시에 10초의 시간이 지난 데인의 몸이 지상으로 전이. 그는 작정하고 두 사람을 끌어내리기 위해서 순서를 무시하고 그들이 있는 블록으로 올라왔던 것이다.
쿠우우웅!!
상당한 부피를 차지하던 블록이 박살 나는 것과 동시에 레녹과 이벨린 두 사람이 같이 휘청거렸지만, 어느 누구도 블록에서 떨어지는 일은 없었다.
마이야와는 달리 두 사람은 이 공간에서 발생하는 강제전이에 저항할 방법이 없다.
데인이 오해를 하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이 블록 위에서 다비가 계산을 끝내거나 마안이 작동할 때까지 버티고 있어야 했다.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나도 손을 쓸수밖에 없어.”
빠르게 수복되어가는 블록 위에서 레녹이 다시 라이플을 고쳐잡으며 대꾸했다.
“저번에 검을 뽑지 않았던 당신의 배려는 고맙게 생각하지만, 조금만 더 이성적으로 생각해 볼 수는 없나?”
“미안하지만 그럴 수는 없네.”
저 아래쪽에서 다시 자세를 잡은 데인이 날카롭게 웃었다.
“이 미궁에 들어온 기사단원들 중 벌써 절반이 죽었어. 그 친구들을 위해서라도 나는 반드시 목적을 이뤄야 해.”
“……”
레녹은 그 말에 노골적인 피로가 섞여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어차피 언젠가 승천자의 유물을 두고 다퉈야 할 경쟁자라면, 오래 고민하지 않겠네……!!”
그 말과 동시에 데인의 몸이 수십 미터 허공을 돌파해 레녹을 향해 질주했다.
허공에서 부유하는 블록들을 가볍게 즈려밟고 거침없이 위로 떠오르는 그 모습에는 일말의 주저함도 없다.
이 공동에서 몸을 띄워올리는데 허락된 10초의 시간. 그 사이에 레녹을 제압하기 위해 전력을 다할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군.”
라이플을 재차 매만진 레녹이 웃었다.
“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타아아앙!!
라이플의 길쭉한 총구를 타고 흘러나온 화염이 순식간에 탄환을 초음속의 속도로 밀어낸다.
그 직후 탄환이 사방팔방으로 쪼개지면서 그 안에서 수백 가닥이 넘는 마력사를 펼쳤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촘촘하고 희미한 마력사의 그물이 정확하게 데인의 신형을 노리고 쏘아지는 그 순간.
파앗!!
시계방향으로 회전하며 번뜩인 은빛의 섬광이 대번에 그 그물을 잘라내고 기사의 신형을 위로 퍼 올렸다.
레녹의 육안으로는 제대로 인지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무형의 검기.
단순히 그를 가두려 드는 그물을 잘라내는 것도 모자라, 허공에 떠오른 데인의 몸을 한 번 더 가속시키려면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검을 휘둘러야 할까.
고민할 시간은 없었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오는 데인의 내면에서 마치 칼날이 저미는 것 같은 싸늘한 소음이 울려 퍼지고 있었으니까.
내면세계 소우주 전개. 물리법칙의 왜곡.
마치 자신이 한 말을 지키기라도 할 것처럼, 그는 정말 전력을 다해 레녹과 이벨린을 끌어내릴 생각으로 힘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태회검련(殆回劍鍊)] [8식 광위(廣圍)] [군월(群鉞)]콰아아아앙!!
데인을 중심으로 회전한 은빛의 검명이 사방의 모든 블록들을 가루로 만들어 버린다.
‘발판을 통채로 파괴해서 억지로 블록에서 떨어뜨릴 속셈인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서슴없이 레녹의 명치를 노려오는 데인의 칼날.
그 눈에 담긴 싸늘한 살의가 데인의 말이 허세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윽……!!”
이벨린이 곧바로 레녹의 앞을 가로막고 손을 쓰려 했지만, 앞서 마이야와 벌인 전투의 여파가 가시지 않은 듯 침음성을 흘렸다.
그 모습을 확인한 레녹이 일단 데인의 검식을 막아내기 위해 마력을 끌어올린 그 순간.
바로 옆에서 나타난 갈색머리의 여성이 그대로 데인의 옆구리를 걷어차 날려 버렸다.
콰아아앙!!
수더분한 갈색머리. 어딘가 나른한 표정. 어깨에 걸친 간소한 장검 한 자루.
대번에 그 얼굴을 알아본 이벨린이 환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지엘!!”
“이 병신 새끼는 또 뭐야? 왜 니들한테 시비를 걸고 있는 거지?”
7레벨에 이른 고위 주시자들 중 하나.
일전에 회의장에서 한번 얼굴을 본 적 있던 청의 눈 소속 성위능력자, 지엘이 시큰둥하게 중얼거렸다.
그녀는 힐끗 두 사람을 돌아보더니 의뭉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아무래도 좋아. 저놈은 내가 상대해 줄 테니까, 이걸로 빚은 갚은 셈으로 치자.”
“빚이라고?”
“첫 번째 관문에서 내 사제들 몇 명을 도와줬다면서. 덕분에 근처에서 쓸만한 유물 몇 개를 챙기고 빠진 모양이더라.”
레녹과 이벨린이 관문의 비밀통로를 지나면서 한손을 거들었던 일을 그녀가 알고 있었을 줄이야.
지엘은 그런 두 사람을 무시하고 아래쪽을 가리키며 씩 웃었다.
“여기는 나랑 저 개새끼가 같이 정리하고 있을 테니까, 나가기 전에 대충 길만 알려줘. 콜?”
“아우우우우우!!!”
거대한 신전기둥을 짊어진 개머리거인, 래퍼드가 등허리에 거대한 영체를 강령시킨 채 울부짖고 있었다.
“다른 주시자들도 하나둘씩 모여들고 있는 모양이군…….”
“모두가 관문을 통과할 수는 없으니까, 깔끔하게 서로 해야 할 일만 하……엥?”
팟!
그 사이 10초가 훌쩍 지났는지, 지엘은 느긋하게 말하다 말고 지상으로 전이되어 버렸다.
계획을 짜기는커녕 래퍼드와 같이 다른 경쟁자들의 발을 붙잡기 시작한 검사의 모습에 레녹이 할 말을 잃었다.
“에반. 오래는 못 버텨.”
그런 레녹을 옆에서 바라보며, 살짝 표정을 찡그린 이벨린이 빠르게 말했다.
“데인 때문에 아래쪽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놈들이 이쪽을 인식하기 시작했어. 전진하든 후퇴하든, 빨리 결정해야 해.”
“……괜찮아. 이제 이쪽도 준비됐으니까.”
“뭐?”
레녹은 이벨린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왼쪽 눈동자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손끝에 맺힌 마력으로 눈동자를 건드리는 것과 동시에 레녹의 동공이 자색으로 회전하기 시작한 것이다.
“마안이 돌아왔다.”
* * *
붉은 색은 위험의 영역. 푸른 색은 기회의 영역.
레녹은 여태껏 마안으로 보이는 이 두 가지 색감이, 각기 대비되는 성향을 가진 가능성을 시각화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다뤄왔다.
마안의 능력에 의존하는 것을 의식적으로 피해오기는 했지만, 적어도 가능성의 시각화를 완전히 무시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쉴 새 없이 변하는 미로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마안이 비추는 광경과 남자의 환영이 가리키는 방향이 종종 달라지는 것을 확인하게 된 이후로.
위기와 기회가 다른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리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쉴 새 없이 뒤바뀌는 이 붉고 푸른 시야의 향연에서, 마냥 푸른 빛이 안전하지만 않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면.
붉게 빛나는 영역 속에서 홀로 외로이 푸르게 빛나는 블록이 있다면.
오히려 그것을 의심해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거기였군.”
파지지직!!!
순식간에 마력을 끌어올린 레녹의 왼손에 강렬하기 그지없는 전광이 맺힌다.
[항뢰(恒雷)]손아귀 사이로 번뜩이는 뇌전의 원형의 파동을 그리면서 질주, 그대로 공동 벽 근처에서 부유하는 블록을 향해 때려 박혔다.
콰아아앙!!!
산산조각 나 부서지는 블록 너머를 노려보면서 레녹이 말했다.
“언제까지 숨어 있을 심산이지?”
“……알고 있었다면 진작 말을 해주지 그랬어, 친구.”
블록의 파편 사이, 벽면의 그림자가 일그러지면서 그 안에서 로브를 뒤집어쓴 청년이 모습을 드러낸다.
“자운 오디스…….”
이벨린이 그제서야 자운의 정체를 인지하고 희미하게 미간을 찌푸렸다.
광활한 공동 벽면에 숨겨진 비밀공간.
블록의 그림자에 절묘하게 가려진 그 사이에 사람 하나가 간신히 숨어 있을법한 비좁은 틈새가 존재하고 있다.
자운은 그 공간을 이용해서 지금까지 이 공동에서 벌어진 경쟁을 모두 관찰하고 있었던 것이다.
“설마 내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을 줄이야. 감이 지나치게 좋은데.”
히죽 웃으며 레녹을 올려다본 자운 오디스가 레녹의 눈동자를 정확하게 바라보며 물었다.
“그건 역시 네 눈이 가진 힘이겠지?”
“…….”
“아무런 특징도 없어 보였는데, 현궁이 널 데리고 다니는 이유가 있었군.”
“협력이니 뭐니 지껄이더니 역시 개소리였네.”
싸늘한 시선으로 자운을 노려본 이벨린이 대답했다.
“테러리스트답게 실상은 이 미궁에서 다른 놈들을 다 뒤통수 때릴 생각밖에 없었지?”
“마르시아, 너무 그렇게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마.”
어깨를 으쓱이며 웃어제낀 자운이 자세를 낮췄다.
“꼭 이 미궁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잖아?”
타아앙!!
그 순간, 자운의 신형이 순식간에 허공을 격해 두 사람에게 쏘아졌다.
두 사람을 스쳐 지나가는 것과 동시에 그의 손가락 사이에 끼워져 있던 보석 두 개가 사라지고.
블록 사이에서 나뒹구는 보석이 빛을 발하며 그대로 폭발.
레녹과 이벨린이 딛고 있던 블록을 완전히 박살 내버렸다.
콰아아앙!!
“난 아까 그 둔해빠진 기사놈과는 달라.”
지상을 향해 떨어져 내리면서 히죽 웃은 자운이 손가락을 튕긴다.
그 직후 보석이 터져 나간 자리에서 알 수 없는 역장이 발생하며 블록이 수복되는 것을 방해하기 시작했다.
“10초. 슬슬 그만 버티고 지상으로 내려가서 아웅다웅하라고. 그동안 난 먼저 올라가 있을 테니까.”
[나쁘지 않은 성과군요.]자운의 품안에서 목소리가 만족스러운 기색으로 동의했다.
공동 근처 벽면에 숨어서 지금까지 미궁 진입자들을 관찰한 결과, 관문을 통과하는 데 있어 실질적인 경쟁자가 될 만한 인물을 파악했다.
저 아래서 당장 블록 위로 올라서기보다 싸우는데 집중하는 이들의 성향과 능력.
관문의 퍼즐을 푸는데 집중하던 탐험가들의 판단력과 안목까지.
힘은 있으나 미궁을 돌파하는 일에 적극적이지 않은 소수의 실력자들을 제외하고, 지금 이 자리에서 가장 먼저 떨어뜨려야 하는 것은 바로 저 두 사람.
한번 지상으로 떨어지고 나면 다시 여기까지 올라오는 데는 한참 시간이 걸릴 터.
아직까지 이 공동에 대한 비밀을 모두 풀지도 못한 것 같으니, 사실상 자운이 세 번째 관문에 도달할 동안 유일한 경쟁자는 미궁에 들어오기 전에 마주쳤던 그 여자뿐이다.
자운이 그렇게 생각하며 레녹과 이벨린이 다시 지상으로 전이되는 순간을 지켜보려던 그 순간.
“아니.”
레녹이 손가락 사이로 마력사를 뻗어 그대로 움켜쥐었다.
허공을 주파한 가느다란 마력사줄기가 향하는 방향을 확인한 자운의 안색이 확 달라지고.
자운이 숨어 있던 바로 그 공동의 벽면에 마력사를 부착시킨 레녹이 그대로 자신과 이벨린의 몸을 그쪽으로 잡아당겼다.
파아앗!!
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공동 벽면에 발을 내디디는 것과 동시에, 벽면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블록의 모습.
“……!!”
“블록을 파괴할 수 있다는 건, 강제로 그 위치를 옮겨서 숨겨놓을 수도 있다는 의미지.”
레녹이 자운의 당황한 표정을 내려다보면서 웃었다.
“설마 네가 아직도 이 공동에 숨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탓에, 그 가능성을 의심해 보지 못했지만……. 이제는 이야기가 다르다.”
자운은 단순히 공동의 벽면 그림자에 숨어 있던 것이 아니다.
그가 숨어 있던 비밀공간 자체가, 공동에 부유하던 블록들 중 하나를 임의적으로 벽에 부착시켜 숨겨놓은 것이었던 것이다.
다비의 마력전이를 이용한 방향계산이 막혔던 것은 자운이 자신의 보석술식으로 블록의 존재 자체를 꼼꼼히 숨겨놓았기 때문.
퍼즐 조각이 통째로 사라졌다면 그 순서를 계산해내는 일이 가능할 리가 없다.
자운의 얼굴이 당황에서 분노로 물드는 것을 확인하며 레녹이 손을 흔들었다.
“그러니 우리 대신 내려가서 시간을 좀 끌어달라고. 마침 너를 그토록 쫓아다니던 사람도 아래서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데.”
“……X발.”
그 말에 시선을 돌린 자운이, 저 아래서 이쪽을 노려보는 데인의 모습을 확인하고 헛웃음을 내뱉었다.
레녹도 그 모습을 보며 같이 웃었다.
“먼저 가지. 세 번째로 마주치는 일은 없도록 하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