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4
문이 열리고 들어온것은 잔뜩 지친 기색으로 보이는 두명의 감독관이었다.
둘 다 생소한 얼굴인걸로 보아 레녹이 있던 부품실 근처를 담당하는 감독관은 아닌 모양.
오른쪽에 서 있던 감독관은 코를 킁킁거리더니 씩 웃으며 옆에 있는 동료에게 말했다.
“이거 냄새를 보니까 우리말고도 몇놈이 몰래 왔다간 모양인데?”
레녹이 휴게실에서 피운 연초 냄새를 맡고 오해한 듯 했다. 말하는 투로 보아하니 평소에도 휴게실에서 종종 연초를 피운걸로 보였다.
그 말을 이해한 다른 감독관도 피식 웃으면서 소파에 걸터앉았다.
“하긴, 우리도 몰래 빠져나온건데 다른 놈들이라고 그러지말란 법은 없지.”
“일단 한대 빨고 얘기하자고.”
그 뒤로 말없이 불을 당기고 연기를 내뿜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레녹은 숨도 참아가면서 소파 뒤에 숨어서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아…. 살것같네. 저 새끼들 제품 수량 채워질때까지는 안돌아가겠지?”
“말하는 꼬라지 보면 모르겠냐? 아무래도 오늘 공장 돌려서 수량 맞춰줘야할것 같은데.”
“하, 씨발…. 미치겠구만.”
둘은 그렇게 대화를 나누고는 말없이 담배를 피우는데 집중했다. 어지간히 지금 상황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듯 했다.
“결정했다.”
“뭘?”
감독관은 굳은 표정으로 맞은편에 앉은 동료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이거 피고 주차장으로 째자.”
“…..그럴까?”
“너 이번에 새로 차 뽑았잖아. 거기 안에 숨어있으면 아무도 모를걸.”
나중에 총감한테 걸리면 흠씬 두드려맞아도 이상하지 않겠지만 그게 대수인가. 지금의 골치아픈 상황을 피할수만 있다면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다.
감독관들은 서로를 마주보고 씩 웃었다.
“차키는?”
“아, 여기 있을걸. 어제 술먹다가 대충 던져둔것 같은데.”
“일단 뒤져보자고.”
덩치 큰 두 남자 둘이 바닥을 주섬거리며 옷가지를 뒤적이는 모습을 지켜보던 레녹은 조용히 마음의 준비를 했다.
“……..”
아직 마력이 부족해서 인간을 상대로 유효한 공격마법은 제대로 사용할 수 없는 상황.
하지만 고작 그정도의 마법으로도 할 수 있는 일은 얼마든지 있었다.
품안에서 권총을 꺼낸 레녹은 마력을 끌어올린 손을 천천히 총구 근처에 가져다댔다.
‘사일런스’
무형의 막이 총구를 감싸고 덮으며 푸른 빛으로 빛나더니 사라진다.
레녹은 슬라이드를 당겨 장전을 마치고 권총을 양손으로 쥔 채 때를 기다렸다.
바닥을 쓸다시피 옷가지를 뒤지면서 차키를 찾던 감독관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서로를 마주보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없어.”
“그러고 보니 아까 문이 열려있었는데…”
“제기랄, 설마?”
단순히 차키만 없어졌다면 모를까, 레녹이 이 근처에 있던 열쇠를 싸그리 쓸어간 상황에 이상함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상황에서까지 심각성을 느끼지 못할만큼 멍청하지는 않았는지, 둘은 곧바로 행동에 나서기 시작했다.
“넌 곧바로 주차장으로 내려가봐.”
“넌 어쩌려고?”
“일단 총감한테 보고해야지. 누가 우리 열쇠들을 들고 튀었다고 말이라도 해놔야 나중에 책임전가를 안 당한다고.”
그 말이 일리가 있다 여겼는지 감독관 중 한명이 곧바로 휴게실 문쪽으로 움직였다.
레녹은 더 이상 망설여서는 안된다는 것을 직감하고 곧바로 총을 치켜들었다.
잠깐의 떨림이 있었지만, 레녹의 손가락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방아쇠를 당겼다.
통!
총격음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나도 가벼운 음색이 들리고, 막 문고리를 잡으려던 감독관이 피를 흩뿌리며 쓰러졌다.
잠깐의 시차를 두고 다른 감독관이 고함을 내질렀다.
“애드으으!!”
“아가리 닥쳐!”
곧바로 소파 뒤쪽에서 뛰쳐나온 레녹이 그에게 총구를 겨누면서 소리쳤다.
레녹의 얼굴을 확인한 감독관은 죽일듯이 그를 노려보았지만, 그가 들고있는 총을 본 순간 입을 꾹 다물었다.
천천히 거리를 좁히면서 레녹은 총에 맞고 쓰러진 감독관을 힐끗 내려다보았다.
뒤통수를 내보인채 쓰러진 그는 조금씩 꿈틀거리는 것 말고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즉사였다.
처음으로 사람을 죽인것을 깨달았지만 레녹은 식은땀을 줄줄 흘린것 이외에는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그가 설정했던 강인한 정신력, 침착성과 이성이 죄책감과 두려움, 혐오감을 억누르며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극한까지 내몰린 상황에서 오히려 더욱 강하게 발휘되는 냉정함. 틀림없는 마법사의 재능이었다.
레녹은 빗나가지는 않을만큼 가까이, 하지만 기습당하지는 않을만큼 적당히 거리를 벌렸다.
그의 빈약한 육체로 기습을 허용했다가는 순식간에 총을 빼앗기고 죽을것이 뻔했으니까.
감독관은 그런 레녹의 얼굴을 보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 살려줘.”
“…….”
“아무한테도 이 일을 얘기하지 않을게. 그러니 제발…”
레녹은 그때가 되서야 벌벌 떨고 있는 감독관의 얼굴을 처음으로 제대로 마주보았다.
피곤에 찌들어 충혈된 눈과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듬성듬성자란 수염, 벌벌 떨리는 입술과 턱.
하루 온종일 노동자들을 부려먹으면서 학대하기만을 반복하지만, 막상 감독관들도 그리 대단한 사람은 아니다.
그들 역시 공장의 일원으로서 이 지긋지긋한 작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죽음의 위험앞에서는 두려움을 느끼는 평범한 사람들인것이다.
어쩌면 이 자리에서 살려보내준다고 해도 별다른 위험이 되지 않을수도 있다. 평생 입을 열지 않고 레녹에 대해서 모른척 살아갈 수도 있겠지.
공장을 탈출하기 직전에 작은 자비를 남겨놓는것도 그리 나쁜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레녹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천천히 방아쇠를 당겼다.
통!
소음마법이 발광하는것과 동시에, 벌벌 떨고 있던 감독관이 천천히 뒤로 쓰러졌다.
죽는 그 순간까지도 스스로의 최후를 실감하지 못한 경악한 표정을 레녹은 똑바로 두 눈에 담았다.
후회는 없다.
그의 마음과는 달리, 냉철한 마법사의 이성은 이미 모든것을 결정한 뒤였으니까.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 자리에서 후환을 남기는 일은 없다.
침실에서 기절시킨 감독관과 달리, 지금 여기서 마주친 감독관들을 살려보낼수는 없었다.
이 자들은 차키가 없어진걸 알고 있는데다 주차장에 문제가 생겼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가지고 있었다.
혹시나 레녹이 공장을 탈출하기 전에 이들이 깨어나서 주차장을 뒤지기 시작한다면 곤란한 일이 될 터였다.
레녹은 쓰러진 두 시체의 품속에서 지갑을 꺼내 안의 내용물을 확인했다.
지폐와 동전, 그리고 연원을 알 수 없는 카드 몇장과 신분증이 들어있지만, 그중에서 레녹의 눈에 익숙한 모양은 단 하나도 없다.
“……..”
이곳이 지구가 아니라는 사실은 이미 어느정도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에 놀랍지는 않았다.
하지만 게임 속 세상도, 지구도 아니라면 도대체 여긴 어디라는 말인가. 혼란스럽지만 오래 고민할 시간은 없었다.
지갑에서 돈으로 보이는것들을 대충 챙기고 나머지는 소파 아래쪽에 던져놓았다.
시체를 치우려다가 포기하고 손을 뗐다. 이미 바닥에 피가 흥건하다. 시체를 치우고 바닥을 청소해서 흔적을 지우려면 시간이 너무 오래걸릴것이다.
어차피 이제 남은 일은 한가지뿐이었다.
레녹은 곧바로 휴게실을 나와 문을 단단히 잠그고, 근처에 있던 계단을 통해 곧바로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다.
먼지가 흩날리는 어두컴컴한 주차장에는 조합원들이 세워놓은 여러대의 트럭과, 공장 직원들이 이용하는 차량이 이러저리 난잡하게 주차되어 있었다.
레녹은 허리를 숙이고 차들 사이를 은밀하게 돌아다니면서 차키의 일련번호와 일치하는 차량을 찾아다녔다.
하나의 일련번호를 공유하는 두개의 차량이 있었는데 하나는 낡은 회색 밴이었고, 다른 하나는 매끈한 광택을 자랑하는 2인승 자동차였다.
2인승 자동차에는 온갖 용도를 알수없는 기계장치들이 튜닝되어있어 그 원형을 쉽게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눈에 띄지 않는 회색밴이 열리기를 기도하면서 두 차 모두 시도해보았지만, 유감스럽게도 차키가 꽃히는것은 2인승 자동차였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키를 꽃고 문을 열어 가죽 냄새가 물씬 풍기는 시트에 자리를 잡았다.
외관도 외관이지만 내부는 더 가관이다. 온갖 기계장치와 버튼들이 차량 전면에 가득하고, 운전대는 아예 완전한 직사각형을 이루고 있다.
운전대 아래쪽에 차키를 꽃아넣고 시동을 넣자 곧바로 계기판에 불이 들어오면서 차가 은은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왼쪽 페달을 밟고 기어에 힘을 주자 손잡이가 돌아가기 시작한다. 여기서도 브레이크는 왼쪽 페달에 달려있는 모양이다.
기어를 바꾸고 페달을 밟은 발을 떼자 차가 천천히 앞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아무리 레녹이 냉정하고 침착한 정신력을 손에 넣었다고 해도 이 순간만큼은 심장이 미친듯이 두근거리는것을 막을수 없었다.
드디어 이 공장을 탈출한다. 이 세상에 온 이후로 처음으로 그 낡은 골방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미지의 세상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 두려움과 기대감이 레녹의 마음을 휘저으며 온몸을 떨리게 만들었다.
느릿하게 지하 주차장을 빠져나가 지상으로 올라가던 레녹의 눈에, 주차장 입구 앞에 서 있는 사람의 인영이 눈에 들어왔다.
한쪽 다리를 절고 있는 껄렁한 모습과 익숙한 근무복. 주차장을 담당하는 감독관의 모습을 확인한 그의 눈이 절로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다가오는 차량을 발견한 감독관이 이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한다.
이미 두명을 죽였는데 세명이라고 다를게 무엇일까. 레녹은 곧바로 조수석에 던져놓았던 권총을 집어들었지만 이내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것을 깨달았다.
레녹의 체내에 더 이상 소음마법을 사용할 마력이 남아있지 않았던 것이다.
아침에 꾀병을 부리는데 한번. 전격으로 감독관을 기절시키는데 한번. 총격의 소음을 줄이는데 두번.
갓 마력을 각성한 마법사가 하루 하나의 마법도 사용하기 벅차다는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용량이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레녹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곧바로 깨달았다.
‘연초를 챙기는 바람에 일어난 일이군.’
마법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면 하루 네번의 마법으로 이 낡은 공장을 탈출하는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 되었어야 했다.
만약 그가 감독관을 기절시키는데 전격마법 ‘볼트’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마력이 부족해지지는 않았을 터.
이제와서 후회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면 마법 한번 정도는 사용할 수 있을만큼 마력이 회복되겠지만…. 지금 그 시간을 기다릴 여유는 없었다.
감독관은 이 차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는지 능글거리는 표정으로 다가오면서 말했다.
“애드, 정신 나갔냐? 지금 이런 상황에 어딜 나가려고 그래. 아무리 째고 싶어도 조합원이 온 날에는 자제해야지.”
그는 차의 보넷을 탕탕 두드리면서 운전석쪽으로 다가왔다.
“새차 자랑은 이번 주말에 하라고. 클럽에 가려면 나도 같이….. 너 누구야?”
차량에 앉은 레녹의 얼굴을 본 감독관이 안색이 싹 달라졌다.
황급하게 허리춤을 더듬는 그가 무언가를 꺼내기 전에 먼저 레녹이 총구를 그의 가슴팍에 들이밀었다.
“허억….!”
“총 버려.”
기겁한 감독관이 재빨리 등 뒤로 쥐고 있던 권총 손잡이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레녹은 슬쩍 그가 버린 총을 내려다보고 피식 웃었다.
어쩐지 순순히 포기한다 싶었더니 제대로 장전도 되어있지 않은 총이었다. 저항해봤자 한발도 쏘지못했을것이다.
겁먹은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는 감독관을 보면서 레녹이 말했다.
“이 앞에 주차 차단기가 있나?”
“이, 있습니다…”
“치워.”
감독관은 벌벌 떨면서 뒤돌아 주차장 입구 근처에 설치된 초소에 들어가 뭔가를 조작했다.
땀을 줄줄 흘리던 감독관이 레녹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를 간절히 바라는 듯한 얼굴. 레녹은 그게 무슨 뜻인지 어렵지 않게 알아보았다.
생을 강하게 갈구하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다.
레녹 역시 강한 정신력과 냉정한 이성으로 덮어두고 있을 뿐, 그 누구보다 살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여지를 남겨서는 안되는 것이다.
타앙!!
고막을 거칠게 뒤흔드는 총소리가 주차장을 타고 강맹하게 울려퍼진다.
마치 그 소리가 신호탄이라도 되는마냥 레녹은 밟고 있던 브레이크를 확 놓아버렸다.
운전대를 움켜쥐고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쓰러지는 감독관을 지나치며 악셀을 강하게 밟았다.
부아아앙!!
이 세상에서 처음으로 듣는 발포음에 안그래도 두근거리던 레녹의 심장이 더욱 거칠게 뛰기 시작했다.
주차장의 경사가 위쪽으로 가파라지면서 몸이 뒤쪽으로 쏠린다.
시야가 환하게 밝아지면서 눈부신 햇살이 두 눈을 찌르기 시작하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한순간 주변이 새하얗게 점멸하는가 싶더니, 차체가 붕 뜨면서 몸이 원래대로 돌아온다.
두꺼운 차체 유리 너머로 널찍하게 펼쳐진 공장의 앞마당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주저하지 않고 앞으로 직진한다. 두꺼운 담벼락 사이 외부로 향하는 유일한 통로가 보였다.
통로의 정중앙을 가로막고 있어야 할 차단기가 여전히 닫혀있다. 그놈이 레녹을 속인것이다.
하지만 레녹은 씩 웃으면서 그대로 발에 힘을 꽉 주었다.
콰아앙!!
달려오던 속도를 이용해 단숨에 차단기를 박살낸 레녹이 그대로 속도를 올려서 빠르게 공장을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