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41
파지지직!!
“……..”
밀라는 아까의 기억이 떠올랐는지 미간을 찌푸렸지만 아무런 말없이 지게차를 몰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오염체 한마리가 혀를 빼물고 꿈틀거리면서 경련하고 있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레녹이 내려서 오염체의 눈알을 채취하고 다시 지게차에 올라타면서 물었다.
“그래서, 정확히 어디로 가는거지?”
“그쪽은 모르겠지만, 오염체들은 보통 생명반응을 쫓아다니는 경우가 대부분이거든.”
“안다.”
“…..어쨌든, 그럼 오염체들이 가장 많이 몰릴만한 장소가 어디있겠어?”
밀라는 딱히 레녹의 대답을 기대하지 않은듯 했지만, 레녹은 금세 그 말에서 정답을 찾아냈다.
거대도시 발칸 밖에서 대규모의 생명반응이 있을법한 지역. 어렵지는 않은 문제다.
“부랑자들이 모여사는 주거지역이 근방에 존재하는 모양이군.”
“어? 이것도 알고 있던거야?”
“아니. 하지만 대충 짐작은 간다.”
레녹이 부랑자들의 존재를 몰라서 그들을 찾아가지 않았던것이 아니다.
생명체를 쫓아다니는 오염체의 특성이라면, 미개발지구를 유랑하는 부랑자들에게 향하는 피해가 가장 막심할테니까.
실제로 시정부가 용병들에게 비싼 돈을 주고 토벌의뢰를 맡기는 것도 이러한 부랑자들의 과도한 사망을 막아보기 위한 의도도 섞여있기도 하고.
그러나 정확하게 위치도 알지 못하는 부랑자들의 거주지역을 찾아다니는 것 자체가 시간낭비에 가까웠고, 결정적으로….
“다른 용병들도 비슷할거란 생각은 안해봤나?”
너무 뻔한 생각이라서 다른 용병들 역시 비슷한 동선을 짜고 있을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는것이 문제였다.
레녹 혼자서 오염체들이 몰리는 구역을 찾아갔다가 괜히 다른 용병무리와 아웅다웅하느니, 그냥 그의 광활한 마력감지능력으로 오염체를 찾아다니는것이 낫겠다는 계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별다른 계획이 없다면 슬슬 내려줘. 나 혼자서라도 대충 할당량을 채우고 돌아가고 싶으니.”
“야, 야. 잠깐 기다려. 마법사라는게 뭐 이렇게 참을성이 없어?”
밀라는 몸을 일으키려는 레녹의 옷자락을 꽉 붙잡고 씩 웃었다.
“난 바보가 아니야. 그런 뻔한 사실따위는 다 꿰고 있다고. 당연히 남들이 모르는 비밀 하나쯤은 준비해뒀지.”
“……..”
레녹이 보기에 밀라는 바보 비스무리한 무언가로 보이기는 했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허언이라고 해도 들어주지 않을 이유는 없다.
“우리 보스가 부랑자들한테 관심이 많단 말이야.”
“안타레스가 말인가?”
산전수전 다 겪었을 용병이 부랑자들에게 관심이 많다니, 의외다.
뭔가 특별한 사정이라도 있는것일까.
“그래. 그래서 가끔 보스때문에 사무소끼리 모여서 저가의뢰….를 가장한 무료봉사를 하러 나간단 말이지.”
“무료봉사라….”
놀랍다.
안타레스 정도 되는 용병이 부랑자들을 신경쓰는 것보다는, 그를 따르는 용병들이 군말없이 그 지시에 따른다는 사실이.
심지어 밀라 그녀도 그 사실 자체에 대해서 별다른 불만은 없어보인다.
가진건 돈과 깡밖에 없는 용병들이 그의 지침에 고분고분하게 순응하고 있는것이다.
그만큼 안타레스라는 남자가 자신의 사무소를 꽉 휘어잡고 있다는 뜻이겠지.
과연 그는 그만큼 휘하 용병들을 잘 대해주는 인격자일까, 아니면 사소한 불만까지도 능력으로 짓누르는 초인일까.
“어쨌든, 그래서 최근에 우리가 어느 부랑자들이 거주지역을 옮기는 일을 도와줬거든. 그리고 그 위치는 아직까지 우리만 알고 있지. 어때, 이 정도면 꽤 솔깃한 정보 아니야?”
“……..”
확실히, 다른 용병들과 동선이 겹치지 않을 수 있다면 부랑자들의 거주지역 근처를 돌면서 다가오는 오염체를 토벌하는것도 나쁘지 않아보인다.
다만 지금까지 들은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밀라는 단순히 목돈이 필요한것뿐만 아니라….
“주기적으로 부랑자들의 안부를 확인하러 사람을 보내는 모양이군. 안타레스라는 남자가 그렇게까지 그들에게 신경을 쓰는 이유가 있나?”
“아하하, 너무 눈치가 빠른거 아니야?”
밀라는 난처한 표정으로 뺨을 긁었지만, 더이상 대답하지 않고 말없이 지게차를 몰았다.
레녹은 그런 그녀의 옆모습을 보면서 말없이 생각을 정리했다.
아마 안타레스가 부랑자들을 도와주는것은 단순한 연민이나 동정심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레녹이 경험했던 부랑자들은 불가항력적인 약자라기보다는, 현실을 피해 도망쳐나왔거나 발칸의 느슨한 규율 아래서도 살 수 없을 법한 범죄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일체의 동정심을 가질 자격도 없는 낙오자들.
그런 그들이 미개발지구에서 목숨을 연명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는 것은, 아마 겉으로 보이는 것 이상의 이유가 숨겨져 있을 터.
시정부든, 안타레스든 무언가 남들이 알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있는것은 분명해보였다.
“슬슬 다 와가는군. 이쪽이야.”
이리저리 쓰러진 철근 사이를 지나 어딘지 알기 힘들만큼 복잡하게 널브러진 폐허 사이.
하지만 레녹은 밀라가 말한 지역을 보는 순간 이곳이 인위적으로 외부의 침입을 막기위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었다.
뻥 뚫려있는것처럼 보이면서도 널브러진 온갖 기물들로 인해서 쉽게 건너편의 평야로 넘어가기 힘든 구조.
군데군데 엄폐물로 막혀있지 않은 공터에는 깊숙한 구덩이가 퍼져있어 철저하게 접근을 차단하고 있다.
그리 철저하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또 그렇다고 마냥 허술하지만은 않은 부랑자들의 거주지역을 보면서 레녹이 마력을 넓게 퍼트렸다.
저 폐허속에 숨어있는 기척만 대략 백여명.
적지는 않은 숫자다.
밀라는 지게차를 몰고 폐허 주변을 느릿하게 한바퀴 돌면서 사방을 살폈다.
“오염체 놈들이 아직까지 여기를 발견하지 못했을것 같지는 않고…. 부랑자놈들이 알아서 다가오는 오염체 정도는 처리하고 있나봐. 하긴, 이렇게 으리으리한 집을 만들어줬는데 그 정도는 알아서 해야지.”
“안으로 들어가보지는 않는건가?”
“내가 왜? 보스만 아니었으면 근처에도 다가가기 싫은 놈들이야. 차라리 스캐빈저랑 어울리고 말지.”
역시 밀라도 부랑자들이 좋아서 안타레스를 따라 거주지역을 옮기는 일을 도운것은 아니었나.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도 폐허 사이사이에서 끊임없이 두 사람을 훔쳐보는 음침한 눈길을 좋게 봐주기는 어려웠으니까.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지게차를 멈추더니 운전대를 놓고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좋아. 여기서 일단 기다려보자고. 지금은 코빼기도 안보이지만, 이 근처를 지나다니는 오염체들이라면 무조건 이쪽으로 침을 질질 흘릴수밖에…..음?”
말을 마치기도 전에 밀라가 갑자기 고개를 홱 돌렸다.
레녹 역시 감각권에 들어오는 다량의 생명반응을 감지하고 시선을 옮겼다.
거친 모랫바람이 불어오는 지평선 너머에서 누군가가 무리를 지어 다가오고 있었다.
“으음….. 열 명 조금 넘는것 같은데, 너무 멀어서 잘 모르겠어.”
“열 여덟. 모조리 용병이다.”
“………”
레녹은 시큰둥하게 대꾸하고는 좌석에서 몸을 일으켰다.
밀라 역시 한숨을 푹 내쉬고는 지게차에서 내려왔다.
“내가 이런 짓거리 하기 싫어서 일부러 여기까지 내려온건데….”
“마력을 어느정도 다룰 줄 아는 용병들이라면 근처를 지나가다 우연히 발견하기도 쉬웠겠지. 너무 쉽게 봤다.”
그렇게 말하면서 마력을 끌어올리는 레녹을 보며 밀라가 눈썹을 치켜세웠다.
“뭐야, 한판 뜨려고? 그냥 우리가 먼저 왔으니까 꺼지라고 하면 될걸.”
“그렇게 끝나면 좋겠지만…. 저쪽에 아는 사람이 있어서 말이야.”
“지인이야? 그럼 잘됐네. 적당히 좋게 말해서 돌려보내자.”
“아니. 그렇게 잘 아는 사이는 아니고….”
레녹은 그렇게 말하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헤어진지 얼마 되지도 않았던 세 개의 기척이 점점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윽고 저쪽에서 다가온 용병들이 천천히 모래바람을 뚫고 모습을 드러낸다.
그 사이에서 레녹의 눈에도 낯익은 얼굴들이 정확하게 보인다.
미구엘, 에릭센, 클라리아.
다른 용병들과 합류해서 토벌의뢰를 진행하고 있던 세 사람이 하필 이곳에서 레녹과 마주친 것이다.
건너편에서 그의 모습을 확인한 세 사람의 얼굴에서도 비슷한 당혹감이 스쳐지나간다.
“……..”
아주 잠깐의 소강상태가 흐르고.
서로 멀뚱멀뚱 쳐다보던 시간이 지나 먼저 움직인것은 미구엘 쪽이었다.
일행에서 떨어져나와 먼저 레녹에게 다가온 그가 멋쩍은 인사를 건넸다.
“반 씨. 이렇게 또 보게 되는군요. 미개발지구가 참 좁은 듯 합니다.”
“그렇군요.”
레녹의 심드렁한 대답에 미구엘은 움찔했지만, 그에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말을 이었다.
“옆의 여성분은 원래 일행이셨는지…..”
“오다가다 우연히 만났습니다.”
“그, 그렇습니까. 다행이네요. 혼자 다니기에는 좀 위험한 곳이지 않습니까.”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애초에 서로 안부인사를 물을만큼 가까운 사이도 아니다.
단도직입적인 레녹의 말에 미구엘이 작은 한숨을 내쉬면서 일행을 슬쩍 돌아보았다.
다른 용병들 역시 모두 그들을 향해서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어렵사리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 이 자리는 저희쪽에서 먼저 눈여겨보았던 곳이라서 말입니다.”
“자리라니요? 여기 자리가 어디있습니까?”
물론 오염체가 알아서 찾아오는 적당한 장소를 말하는 것일테지만 레녹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모른척을 했다.
미구엘을 비롯한 다른 용병들의 심보가 대놓고 보이는데 굳이 그 말을 잘 들어줄 이유가 없었다.
레녹의 대답에 미구엘 역시 살짝 열이 뻗친걸까, 대답이 살짝 느려졌다.
“……불편하시지 않다면 다른 곳으로 옮겨주실 수 있으실지.”
“야, 너 미쳤냐?”
그리고 그 옆에서 가만히 그 말을 듣고 있던 밀라가 기가 막히다는 얼굴로 끼어들었다.
진가
“이게 가만히 듣고있으니까 뭔 개소리를 지껄이고 있어. 주인없는 땅에서 니 자리네 내 자리네 하면서 지랄을 떠는거야.”
“그쪽 여성분께서 잘 모르시는 모양인데, 원래 오염체 토벌하는 용병들끼리 한번 자리를 정하면…..”
“여기가 너희 집이냐? 아니 씨발, 그리고 여기 사는 놈들 집을 만들어준건 애초에 우리쪽이었다고. 눈여겨보기만 하면 다냐?”
“밀라.”
물론 레녹은 그녀를 말릴 생각 따위는 조금도 없었다.
적당히 그녀를 만류하는 척 하면서 역으로 그녀의 화를 더 돋구었을 뿐.
원래 말리는 사람이 나타나면 더 열이 뻗치는것이 사람의 본능인 법이다.
“말리지 마. 아니, 우리보다 늦게 도착한 새끼들이 주인도 없는 땅 점유권을 주장하고 나서는데 열이 안뻗치냐고.”
철컥!
자기가 말하면서도 분을 참지못한 밀라가 샷건을 꺼내들고 총신을 꺾자 미구엘의 안색이 시퍼렇게 변했다.
설마 이 자리에서 다짜고짜 무력행사를 할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것일까.
하지만 미구엘 역시 가만히 두고보지만은 않았다.
“적당히 하시죠. 저희가 손이 없어서 말로 하자는게 아니지 않습니까…!!”
이러니저러니해도 저쪽은 고작 둘이고, 이쪽은 거의 스물에 가까운 인원이 모여있다.
숫자로 찍어눌러서 해보지 못할건 없어보였다.
당장이라도 충돌할것만 같은 일촉즉발의 상황.
레녹은 빠르게 미구엘의 뒤쪽에 서 있는 다른 용병들의 기척을 훑었다.
총기류를 비롯한 장비를 착용한 십수명과, 마력을 비롯한 일체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 작은 눈의 청년이 하나.
전투에 돌입한다면 가장 먼저 제압해야하는건 누구인가?
머릿속에서 빠르게 우선순위를 정하는 사이, 미구엘의 뒤쪽에서 나타난 누군가가 그의 어깨를 짚었다.
“거기까지만 하죠.”
“……마오렌.”
방금 레녹이 확인했던 작은 눈의 청년이 밀라를 보면서 씩 웃었다.
“안타레스 사무소 소속 용병분을 여기서 보게 될 줄은 몰랐군요. 이거 반갑습니다.”
“뭐?”
“플라톤의 마오렌입니다. 오늘 송구스럽게도 여기 용병분들을 안내해드리고 있죠.”
청년, 마오렌의 말을 들은 밀라의 얼굴이 사정없이 찡그려진다.
놀라운 일은 아니다. 플라톤 용병사무소. 레녹 역시 제니에게서 그 이름을 들어본적이 있었으니까.
최근 이쪽 바닥에서 안타레스와 함께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용병 사무소.
소수정예로 움직이는 안타레스와는 달리 출처를 알 수 없는 막강한 자본금을 바탕으로 재능있는 용병들을 스카우트 하고 있는것으로 유명했다.
마오렌은 싱글싱글 웃는 얼굴을 유지하면서 말을 이었다.
“안타레스 님께서 미개발지구에 관심이 많다는 사실은 유명하죠. 여기 만들어진 부랑자들의 거주지역도 그 일환이라고 생각하면 될까요?”
밀라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지만, 마오렌은 그것이 대답이 되었다는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