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429
약먹는 천재마법사 429화
달라진 것들에 대해(4)
학장 사이올러스가 실제로 레녹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와는 별개로.
레녹이 제안했던 두 번째 논문에 대한 거래조건이 그에게 상당히 매력적으로 보였던 것은 사실인 듯했다.
실제로 하루가 채 지나기도 전에 아리스의 연구실에 막대한 연구활동 지원비가 들어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어쨌든 레녹이 이번 일을 알아서 처리할 수 있다면 최선.
그게 아니더라도 눈에 띄고 싶어 하지 않는 에반의 성향을 확인했다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생각보다는 훨씬 적극적이군. 기술관리국에 이 상황을 보고하기 싫다는 것만큼은 확실해 보여.”
연구실 컴퓨터 전자장부에 쌓인 금액의 숫자를 확인한 레녹이 턱을 매만졌다.
“아니면, 학교 내부에서 일어난 일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다는 인상을 주기 싫어하는 걸까?”
“……다비?”
대답없는 정령을 향해 레녹이 시선을 돌렸다.
책상 한쪽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있던 다비가 슬쩍 레녹의 눈치를 보고 고개를 돌렸다.
[……부우으.]“……?”
느닷없이 대화를 거부하는 다비를 바라보던 레녹이 정령의 몸을 번쩍 들어 무릎 위에 앉혔다.
[……!]레녹은 귀가 쫑긋 솟아오른 전뇌정령의 양쪽 볼을 매만지면서 생각에 잠겼다.
“두 번째 논문이라…….”
처음 논문을 쓸 때만 하더라도 이런 식의 파장이 일어날 줄은 전혀 몰랐다.
조교수로서의 업무를 성실하게 하고 있다는 핑곗거리로 생각한 논문이 마도공학의 업계 전체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크게 유명해질지 누가 알았을까.
그렇기 때문에 그때는 오히려 논문의 가치와 유명세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감이 있었다.
레녹은 이번에는 철저하게 논문의 가치를 가늠하고 그 여파를 온전히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조절할 생각이었다.
‘에반의 이름을 내걸고 논문을 낼 생각이라면, 확실하게 해야 한다. 지금처럼 어정쩡한 조교수 직으로 남아 있을 수는 없겠지.’
물론 그 모든 가정은 레녹이 저술할 두 번째 논문이 그만한 반응과 파장을 불러일으켜야 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었지만, 레녹은 그리 불안해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모든 사물을 남들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재능이 있었고, 그것을 직접 이론화시킬 수 있을 정도의 깊은 이해도도 갖추고 있었으니까.
목숨이 오가는 전투 사이에서만 손에 넣을 수 있었던 영감이나 발상을 전할 수만 있다면, 아마 그 결과물이 실망스럽게 나오는 일은 없겠지.
레녹이 그렇게 생각하며 다비를 끌어안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시간이 됐군. 학장이 약속했던 지원자가 올 거다. 이번 일이 대충 어떻게 흘러간 건지는 알았으니 빨리 처리하자.”
[부우우.]“……오늘 먹은 배터리가 별로 맛이 없었니?”
[……?]이게 아니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다비를 코트 안에 집어넣고 걸음을 옮겼다.
* * *
“그래서, 하필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네가 날 도와주러 왔다 이 말인가?”
“……할 말이 없군……요. 대학에 돌아오자마자 첫 번째로 맡은 일이 이것이었을 뿐……입니다.”
레녹의 말에 슬쩍 시선을 피하는 청년의 모습.
머리를 한쪽으로 쓸어넘긴 청년의 어깨에는 석좌교수 직속 연구원임을 알리는 가벼운 견장이 매달려 있었다.
파블렌 아치우드.
레녹이 대학에 들어올 시점에는 4학년 졸업반에 위치한 명문가의 귀족이었고, 시간이 흐른 이제는 정식으로 교수가 되기 위한 과정을 밟고 있는 마법사다.
한때는 아리스와 알고 지내는 레녹을 폐인으로 만들려 한 적도 있었지만, 그가 지닌 마력의 절반을 걸고 긴밀한 대화를 나눈 이후 문제는 말끔하게 사라진 상황.
이후 아치우드는 두 번 다시 레녹에게 먼저 접근하려 하지 않았고, 레녹 역시 학교 내부 정황에 관련된 일이 아니라면 접촉한 적은 없다.
“위험한 사건현장을 조사하러 가는 일에, 동행할 사람이 필요하시다고 하더군요. 학장님의 부탁이라 거절하기 어려웠다……습니다.”
“말 놔.”
레녹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하자, 아치우드가 움찔거렸다.
“파블렌 아치우드가 일개 조교수에게 그렇게 굴면 오히려 수상해 보이겠지.”
“흠흠, 방해할 생각은 없으니 걱정하지 마라. 네…… 그, 실력에 대해서는 잊지 않았으니까. 조용히 입만 다물고 있으면 되는 거겠지?”
헛기침을 하며 필사적으로 시선을 피하는 아치우드. 태연한 척하려 하지만 목소리가 떨려 나오는 것까지 막지는 못했다.
그는 레녹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레녹이 얼마나 강력한 마법사인지는 대충 짐작하고 있다.
아무리 학장의 부탁이 있다 하더라도 이번 일에 그가 동행할 마음을 먹었다는 것 자체가, 레녹의 실력을 그만큼 믿고 있기 때문일 터.
그리고 그런 식으로 생색을 내며 학장의 부탁을 들어주면 언젠가는 도움이 될 거라는 계산도 있었겠지.
하지만 레녹은 그 말에 대답하는 대신 한참 동안 아치우드를 응시하다 툭 말했다.
“……마력이 돌아왔군.”
아리스를 따라 학회로 갔던 평원에서 그의 마력 절반을 직접 꺾어 없애버리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제 와서 그의 내면을 살짝 들여다보니, 그때 없애버렸던 마력의 절반이 말끔하게 수복되어 있었다.
레녹 본인이 사라진 마력을 돌려준 기억은 없고, 그때 증발시킨 마력을 되돌릴 방법도 마땅치 않을 터.
턱!
“히익……!”
어깨를 짚자마자 목이 졸리는 듯한 소리를 내는 아치우드의 눈을 바라보며 레녹이 물었다.
“따로 조치를 취한 기억은 없는데. 어떻게 된 일이지?”
레녹의 마력장악능력은 단순한 위계나 경지의 틀 안에서 재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초월적인 재능과 직관이 허락하는 마력간섭의 정수.
다른 마법사의 체내에 직접 접촉해서 마력의 뿌리를 끊어버리는 손속은 위계를 완성하기 전부터 자유롭게 다루던 기예들 중 하나.
단순히 봉인시켜놓은 것이 아니라 없애버린 마력을 수복시켰다면 필시 엄청난 실력의 술사나 의료사의 손을 빌렸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런 실력의 의료사를 아치우드가 연결해 줄 수 있다면, 지금 당장-
“회, 회복한 게 아닙니다……!!”
덜덜 떨면서 아치우드가 힘겹게 말을 쥐어 짜냈다.
“가문의 지, 지원을 받아서 마력량 자체를 계속 늘려왔을 뿐이에요…… 제발……! 원래대로 돌아온 지는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
레녹이 없애버린 절반의 마력량을 되찾은 것이 아니라, 아예 마력량의 그릇을 키워서 안에 담기는 마력을 늘렸다는 말인가.
인간이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최대마력량을 늘려주는 영약이나 아티팩트가 얼마나 희귀한지 알고 있는 레녹으로서는 예상하지 못했던 일.
레녹 역시 근래 마력량 자체에 손을 댈 수 있었던 것은 항하사미궁의 잔여마력을 받아 챙긴 기연 정도에 불과하지 않았던가.
아치우드 정도의 명문 귀족가문이라면 자제를 위해서 귀한 영약을 물 쓰듯이 소비할 수도 있겠지.
눈을 거의 감을 듯이 가늘게 뜨고 덜덜 떨고 있는 아치우드의 모습을 바라보던 레녹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가지.”
“믿어주는 건가……?”
“진위를 확인할 시간은 없다. 거짓말이면 나중에 손을 쓰면 될 일이고……. 학장이 그래도 꽤 괜찮은 인선을 했군.”
“그, 그래?”
레녹을 예전에 폐인으로 만들려 했던 아치우드가 동행이라면 딱히 죄책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상황이 여의치 않다 싶으면 적당한 선에서 고기방패로 써먹고 갖다 버려도 상관없을 터.
그런 점에서 아치우드 같은 사람은 레녹에게 있어서 편한 상대나 다름없었다.
그것을 모르는 아치우드는 레녹의 발언에 마치 인정을 받은 것처럼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해가 지기 전에 출발하지. 학장이 전해준 주소로 보면 38구역 쪽이다.”
“으음, 40번대 구역 근처로는 가본적이 많지 않다만…….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
“……아, 알았다. 군말하지 않도록 하지.”
입을 굳게 다문채 땀을 줄줄 흘리는 아치우드와 함께 외곽구역 쪽으로 향했다.
학장이 논문의 악용사례를 보고받은 것은 지금으로부터 대략 일주일 전의 일.
단순히 논문의 결과를 로열티 없이 사용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사전에 대학과 제휴하고 있는 사업체의 항의가 들어오면서 인지하게 된 사실이다.
38구역 언저리에 존재하는 낡은 작업장.
그 사이에서 자신들과 비슷한 제품을 모방해 만드는 사업체의 존재를 확인했다는 증언이 있었던 것.
소문을 들은 학장은 대학 직원들을 통해 사실관계를 파악하려 했고, 그 뒤로 생존자는 아무도 없었다.
당연하지만 한 차례 대대적인 경찰 조사가 있었고, 수색과정에서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 상황.
일주일이 지난 지금은 사건현장에 노란 폴리스 테이프만이 붙어 있을 뿐, 아무도 출입하지 않고 있었다.
이것도 대학 학부처에서 나름대로 손을 써서 현장을 보존시킨 결과겠지.
철컥!
테이프 사이를 지나쳐 그대로 학장이 전해준 주소의 작은 작업장을 찾았다.
안쪽에 한차례 크게 흥건하게 번져 있던 혈흔은 이미 진득하게 눌어붙은 채 사방을 장식하고 있을 뿐.
시체가 죽어서 눌어붙은 흔적을 경찰의 방식대로 표시해놓은 형체만이 눈에 띈다.
“윽…… 피냄새가…….”
뒤에서 코를 움켜쥐고 들어온 아치우드가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레녹은 그런 아치우드를 돌아보며 웃었다.
“비위는 좋군. 바로 토해 버릴 줄 알았는데.”
“가문의 전통으로 인해 경험이 없는 건 아니다. 익숙하지 않을 뿐이지…….”
하긴 그러지 않고서야 레녹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그를 죽여버릴 생각을 하지는 않았겠지.
“그래서, 여기서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지?”
피와 살점이 눌러붙어 썩은 내에 생각보다 빠르게 익숙해진 아치우드가 물었다.
“경찰조사가 끝난 지 일주일이 넘었다. 주요 증거품은 물론이고, 관련된 사건기록부나 증인들 역시 싹 다 관할경찰서에 보관되어 있을 텐데.”
“사건기록부는 이미 확인했고, 증인들의 알리바이 역시 확인했다.”
피로 물든 공장의 생산시설을 쭉 둘러보면서 레녹이 말했다.
“경찰서에 보관되어 있는 주요 증거품 역시 지금 이곳으로 오고 있는 중이지.”
“……뭐?”
쓸데없이 범인을 찾겠다고 오랫동안 추리를 할 생각은 없다.
이미 여기 오기 전부터 어느정도 대답을 내려놓았고, 마지막으로 퍼즐을 끼워맞춰 확인만 하면 되는 상황.
레녹이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공장의 문이 벌컥 열리고 누군가 빠르게 걸어들어왔다.
“에반, 여기 부탁했던 물건 가져왔어요.”
“고생했어요, 카시아.”
“……카시아? 카시아 루베닐?”
작은 랩에 싸인 물건을 레녹에게 건넨 카시아가 아치우드를 보며 살짝 어색하게 웃었다.
“아, 네……. 에반의 부탁으로 잠깐 일을 도와주러 왔거든요. 이번 일에 대해 알고 있는 관계자가 많지는 않은지라.”
“칼라일 연구소의 차석연구원을 직접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러지 않아도 최근 진행하고 계시는 프로젝트가 세간에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정말 대단한 성과군요. 축하드립니다.”
“네……?”
바로 그 연구소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레녹의 논문을 기반으로 하는 일이거늘, 정작 레녹은 옆에 두고 그녀를 칭찬하는 아치우드의 태도.
카시아의 표정이 살짝 어색하게 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레녹 역시 살짝 흥미로운 얼굴로 아치우드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내가 에반의 이름으로 논문을 제출했다는 사실을 아직 모르는군.’
그걸 모르면서도 학장의 부탁과 레녹의 정체를 생각하며 이번 일에 합류한 것인가.
이걸 멍청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어리숙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이제 와서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다.
레녹은 그렇게 생각하며 카시아가 가져온 물건의 랩을 걷어내고 내용물을 치켜들었다.
손가락 안에 들어갈 법한 작은 랩에 싸인 물건은 작은 목걸이.
알 수 없는 장식으로 점칠되어 있는 목걸이가 공장의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노을을 받아 청명하게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