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470
약먹는 천재마법사 470화
마담(3)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온 단정한 인상의 여성.
스스로를 클레비아라 소개한 그녀는 고개를 살짝 숙인 자세 그대로 미동조차 하지 않고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레녹은 그런 클레비아를 가만히 내려다보다, 그대로 마력을 잠재웠다.
후욱……!!
로비 전체를 가득 채우던 마력이 한순간에 레녹의 손안으로 수렴하는 기이한 정경.
곳곳에서 숨이 트인 프리랜서들의 탄식이 터져나오는 것을 들으며 레녹이 말했다.
“내가 오는 걸 알고 있었나?”
은빛의 지팡이 끝에 비치는 마법사의 시선이 날카롭게 빛났다.
“죄송합니다. 반 님께 드릴 선물을 준비하느라 잠깐 시간이 걸렸습니다.”
클레비아는 조심스럽게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 레녹에게 내밀었다.
붉은 가루를 뭉쳐서 만들어낸 알 수 없는 알약들이 든 케이스.
“이건?”
“체내 신진대사를 촉진하고 식욕을 늘려주는 물건이죠. 흡혈충동을 줄여주기에 저희들 사이에서는 억제제로 불리고 있습니다.”
클레비아는 그렇게 말하며 희미하게 웃었다. 그녀의 입술 사이로 날카로운 송곳니가 엿보였다.
“인간에서 흡혈귀로 전향하신 분들이 많이 찾죠. 뒤쪽에 계시는 분에게 필요할 겁니다.”
“…….”
마담과 같은 흡혈종. 이미 돌아가는 상황을 전부 알고 있는 건가.
그렇다면 굳이 가타부타 쓸데없는 말을 할 필요는 없었다.
레녹은 가만히 그것을 받아서 라얀에게 던져주고 그대로 엘리베이터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클레비아가 엘리베이터 문 앞에서 레녹을 정중하게 안내하는 모습에, 프리랜서들이 안색을 굳혔다.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것처럼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성의 로비. 멀쩡하게 작동하는 기기라곤 하나도 남지 않았다.
“X발, 결국 본전도 못 찾았잖아…….”
“애초에 크게 다친 건 맞는 거냐? 다친 몸으로 저딴 짓거리를 하는 게 말이 돼?”
“아니, 크게 다쳤다는 건 틀림없는 것 같군.”
팔짱을 낀 채 상황을 관조하던 장년 남성의 눈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일부러 마력을 오래 유지하지 않고 단판에 승부를 보려고 했다. 오래 시간을 끌 수 없는 건 확실해.”
“어처구니없는 건, 부상을 입은 몸으로 저런 출력을 낼 수 있는 견뢰의 저력 그 자체지.”
누군가 중얼거린 말에 로비의 분위기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저게 다친 상태로 하는 짓거리라면, 멀쩡한 몸일 때는…….”
“……마드리치 오니온이랑 도대체 무슨 싸움을 하고 온 거지?”
“8레벨에 올랐을지도 모른다는 말이 헛소문이 아니었잖아…….”
“중요한 건 견뢰가 정말로 큰 부상을 입고, 건강에 위독하다는 정보 그 자체다.”
프리랜서들의 눈동자가 차갑게 빛났다.
“생명유지장치를 들고 나타난 것 자체가 굳이 숨길 생각이 없다는 거겠지.”
“좀 있으면 온 거리에 소문이 퍼질거다. 귀한 정보로 속여서 팔려면 빨리 움직여야겠어.”
“마담한테는 나중에 보고하고, 일단 움직이자. 용돈이라고 벌어야지.”
귓가로 들려오는 프리랜서들의 대화를 들으며 레녹이 헛웃음을 내뱉었다.
아프다는 알리바이를 만든 것은 성공적이었지만, 그 정보를 바닥까지 싹싹 긁어 팔아먹으려 들 줄은 몰랐다.
일단 원하는 대로 견뢰가 당분간 도시에서 활동하지 않아도 될 알리바이를 만든 것에 만족해야겠지.
레녹이 그렇게 생각하며 고민에 잠긴 사이, 엘리베이터에 마지막으로 올라탄 클레비아가 손을 치켜들었다.
우웅!!
그 순간, 거대한 수정을 깎아 만든 엘리베이터가 통째로 움직여 위로 상승하기 시작했다.
네 사람을 태우고도 일체의 흔들림이 없는 안정적인 움직임. 그 동력의 정체를 알아차린 레녹의 눈이 빛났다.
“염동력자였군. 그것도 상당한 수준이야.”
“별 볼 일 없는 재주지요.”
“이 정도 초능력자가 아직 음지에 남아 있었을 줄은 몰랐는데. 발칸이 넓긴 넓군.”
클레비아 본인이 레녹을 뛰어넘는 마력사용자가 아니라면, 정신력으로 작동하는 선천이능을 사용하고 있다는 증거.
강력한 초능력자, 그것도 이 정도 수준의 염동력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레녹도 흥미가 일었다.
염동력의 경우에는 그 압도적인 범용성만큼이나, 위계를 끌어올리기 어려운 초능력으로도 악명 높다.
레녹이 알고 있는 유일한 염동력자인 브로커 세바스찬도 고작 와인잔을 움직이는 수준에 그치지 않았던가.
그 정도라면 고작해야 아무리 높게 잡아도 2위계 수준.
하지만 지금 레녹을 안내하는 이 흡혈귀는 족히 6위계 이상의 염동력자임이 틀림없어 보였다.
“많은 고위계의 초능력자들이 능력을 통제하지 못해 방법을 찾기 위해 이능개화전단으로 모이고 있다 하더군.”
“…….”
성의 최상층을 향해 떠오르는 엘리베이터 너머로 레녹이 물었다.
“흡혈귀가 초능력을 통제하기 위한 방법의 일환이 될 수 있을까. 그쪽은 어떻게 생각하지?”
“……초능력에도 관심이 많으실줄은 몰랐군요.”
“선천이능은 언제나 강력한 변수가 될 수 있으니까 신경 쓰고 있지. 실제로도 많이 겪었고.”
클레비아는 살짝 침묵했다가 대답했다.
“불가능할 겁니다. 저 역시 혈계능력을 통해 이능을 계승받은 것뿐이니까요.”
“…….”
“혈계능력을 계승받는 것은 순혈에게 허락된 자격. 흡혈귀로 전향한다고 유의미한 성과가 있을거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선천적으로 초능력을 타고난 케이스가 아니라, 다른 흡혈귀가 가진 능력을 계승 받은 것에 불과하다는 말일까.
하지만 순혈 흡혈귀들끼리 능력을 서로 전해주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 자체는 무척 흥미롭다.
어쩌면 고위계 흡혈귀들의 기이할 정도로 강력하고 소름끼치는 기시감은 바로 그런 특징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괜찮은 답변이군. 도움이 됐다.”
“대답이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이군요.”
클레비아는 그렇게 말하며 곧바로 두 사람을 이끌고 거대한 저택의 최상층으로 안내했다.
거의 5층높이에 가까운 성의 형태로 만들어진 저택의 최정상.
복도나 방에서 기거하며 웃고 떠들던 사람들의 모습은 위로 올라갈수록 빠르게 자취를 감추고.
가장 위층에 올라선 순간에는 기이할 정도로 적막한 침묵만이 감돈다.
“…….”
어딘가 흐릿하게까지 느껴지는 알 수 없는 기운이 감도는 양탄자가 깔린 복도.
라얀 역시 흡혈귀로서 무언가를 느끼기라도 했는지 침을 꿀꺽 삼켰다.
양옆으로 나 있는 무수한 문을 지나친 클레비아가, 복도 끝에 위치한 거대한 돌문을 천천히 열었다.
문 안쪽에 자리한 어둡고 넓은 방.
벽면에 난 창문을 비추는 희미한 촛불만이 방 안을 흐릿하게 밝히고 있을 뿐이다.
그림자가 가득 내려앉은 방의 가장 깊숙한 안쪽 구석에 놓인 화려한 안락의자.
그 사이에 몸을 파묻은 채 앉아 있던 누군가가, 조용히 고개를 들어올렸다.
[어머, 이게 누구신지 모르겠군요.]오랜만에 들었음에도 어딘가 오연한 그 말투는 기억에 남아 있다.
얼굴이 비출것 같은 면사포 뒤로 들려오는 조용한 목소리.
한밤중에도 쓰고 있던 양산은 고이 접어 그녀의 의자 옆에 놓여 있었다.
기거하는 자택에 어울리는 가벼운 셔츠차림이지만, 손에 낀 장갑과 베일로 피부가 직접 드러나는 부분은 어디에도 없다.
[시간이 너무 오래 흘러서……. 보내드린 초대장을 잊은 줄 알았는데.]얼굴이 흐릿하게 비치는 면사포 너머로 빙긋 웃는 듯한 기색이 느껴졌다.
이 도시에서 가장 오랫동안 살아온 브로커이자, 흡혈귀.
재능 있는 프리랜서들과 함께 일하는 것을 낙으로 삼는다는 소문까지 들리는 기인.
마담, 엘레브라 트리바이어를 이제서야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세월이 참 무상해요. 그렇지 않나요?]느긋하게 레녹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다리를 꼬는 그녀의 모습.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시간이 없었을 뿐이지.”
[시간이 없었다라……. 후후, 이해할게요. 핑계라고 생각하기에는 그동안 당신이 해낸 일들이 너무나도 많았으니까.]“…….”
[8레벨에 준하는 무력을 거머쥔 마법사라, 아니면 이미 대마법사의 경지에 다다랐다고 해석해도 될까요?]어깨를 으쓱인 마담이 조용히 웃었다.
[어느쪽이든 저희의 입장이 이렇게까지 변할 거라 예상하지 못한 건 사실이에요. 겸허하게 인정할게요.]고작 몇 년 전에 도시로 흘러들어온 마법사가, 이렇게 말도 안 되는 괴물일 거라고 누가 생각할 수 있었을까.
초대장을 전해줄 때만 하더라도 마담의 눈에 레녹은 남다른 재능을 지닌 마법사 정도였을 뿐이다.
몇 년 사이 이렇게까지 역전된 두 사람의 입지를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마담의 능력을 탓하기에는, 레녹이 해낸 일들이 너무 비정상적이었다.
하지만 레녹은 그런 마담의 말을 듣고 오히려 피식 웃었다.
“글쎄. 오히려 껄끄러워 한 것 아니었나?”
[네?]“활동범위가 겹치는 것에 비해서 우리는 서로 접촉이 없었지. 우연이라기엔 꽤 이상한 일이야.”
[…….]마담은 어떤 의미로는 이 바닥에서 제니나 세바스찬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유명하고 힘 있는 브로커다.
VIP들을 주로 상대하는 세바스찬이나, 인맥을 통해 가치가 높은 지명의뢰를 주로 다루는 제니와는 달리 거의 모든 분야를 취급하고 다뤄왔기 때문.
그런데도 레녹이 삼두령 같은 조직들과 엮이는 사이에 마담이 단 한번도 관련되지 않았던 것이 과연 우연일까.
마담 쪽에서 일부러 레녹과 관련되지 않기 위해서 몸을 사려온 결과물이 아닐까.
레녹은 어렴풋이 그것을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마담의 초대장을 들고 그녀를 찾아갈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의중대로 다룰 수 없을거라 생각해 거리를 벌렸고, 피할 수 없게 된 시점에서 가까이하려 든다……. 이해할 수 없는 방식은 아니야.”
마담의 허락도 없이 맞은 편 의자에 걸터앉은 레녹이 웃었다.
“하지만 너무 노골적이었어.”
[……맞아요. 당신에게 초대장을 준 것이 실수라고 생각했죠.]잠깐 머뭇거린 것 치고는 레녹이 살짝 놀랄 정도로 시원한 인정.
마담이 한숨을 푹 내쉬고는 곧바로 말을 이었다.
[가능한 찾아오지 않기를 바랬어요. 이 바닥에서 오래 가려면, 트러블이 생기는 사람을 가까이해서는 안 되니까.]“이제는 생각이 좀 바뀌었다?”
능청스러운 마담의 대꾸에 레녹도 피식 웃었다.
통제할 수 없어 보이기에 멀리했지만, 그 마법사가 통제를 뛰어넘는 거물이 되었다면 마음을 고쳐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계산적인 사고방식이었지만, 적어도 그것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마담의 태도는 나쁘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말을 꺼낸다는 것 자체가, 레녹이 어떤 사람인지 그동안 면밀하게 주시하고 정성을 들였다는 증거였으니.
아니나 다를까 곧바로 마담의 입이 재차 열렸다.
[상황에 대해서는 인지하고 있어요. 혈법사 소년에 대한 문제는 전부 제가 책임지죠.]“생각해둔 해결방안이 있나?”
[흑혈을 복용한 시점에서 그 전으로 완전히 돌아갈 수 있다 장담하긴 어려워요.]마담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건 흡혈종 중에서도 특별한 재능을 타고난 돌연변이의 유산이고, 그만큼 지우기도 어렵죠. 장기적인 해결책이 필요할 거예요.]“빠르게 인간으로 돌아가기는 어렵다는 말이군.”
[물건의 정체를 알았다면 좀 더 빨리 손을 썼을 텐데……. 제 실수예요. 운반과정에 정작 우리의 손을 타면 안 되는 물건이 종종 있는지라.]“라얀.”
“……알았어.”
레녹의 말에 가만히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라얀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까지 와서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그도 알고 있겠지.
오히려 이런 식으로라도 방법이 생긴 것을 다행이라 여겨야 할 지경이었다.
클레비아가 라얀을 데리고 나가는 것을 보며 마담이 말했다.
[최소한으로 필요한 혈류조작과, 관념이 비틀리지 않기 위한 교육을 시킬 생각이에요. 인간으로 돌아간다 해도 성취에 상당한 도움이 되겠죠.]“그렇군.”
[최소한 흑혈에 내재된 잠재의식에 몸을 장악당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좋아. 일단 그 정도면 충분해.”
라얀이 흡혈귀가 되어버렸다는 예상 외의 일 때문에 개입하긴 했지만, 책임 소지 자체를 마담이 넘겨받은 것 자체가 그리 나쁜 일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흡혈귀 내부의 문제고, 이런 부분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전문가에게 해결을 맡기는 것이 바람직할 테니.
[그럼 이제 대외적인 명분도 적당히 합의를 봤으니, 본론으로 들어가볼까요?]살짝 몸을 앞으로 내밀며 양 손을 앞으로 모은 마담의 모습. 얼굴에 드리운 면사포가 희미하게 흔들렸다.
레녹은 마담의 말에 자기도 모르게 쓰게 웃었다.
“알고 있었군.”
[혈법사 소년에게 벌어진 일이 골치아픈 사건이긴 하지만, 견뢰 당신이 직접 와야만 하는 일은 아니었으니까요.]장갑을 낀 손으로 팔걸이를 톡톡 두들긴 그녀가 말했다.
[오히려 제가 몇년간 당신과 접촉을 피했다는 걸 알면서도 이 시점에 찾아온 것 자체가, 소년에 대한 일을 핑계 삼아 무언가를 따로 부탁하기 위해서라 생각되더군요. 제가 너무 과대해석하고 있는 걸까요?]“아니, 정확해.”
오랜 시간을 브로커로 살아온 흡혈귀라 그런지,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눈치가 귀신같다.
처음 레녹을 마주했을 때는 긴가민가했던 의혹을, 대화를 나누면서 확신하고 빠르게 라얀과 클레비아를 내보낸 것이겠지.
라얀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단순히 그것 때문에 마담을 찾아온 것은 아니다.
레녹이 찾고 있는 분야의 의사. 그 분야에서 제일가는 권위자와 가장 가까운 인맥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바로 눈앞의 흡혈귀였기 때문.
외해의 분기점 너머에 존재하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확인한 뒤로, 레녹은 보다 자신의 몸에 대해 제대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그 기회가 생각보다 빠르게 레녹의 눈앞까지 다가와 있었던 것이다.
마담은 면사포 너머로 레녹의 몸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고개를 까닥였다.
“그쪽도 이걸 보고 생각나는 바가 있나?”
레녹이 손에 쥔 지팡이를 들어올리자, 마담이 고개를 끄덕였다.
[모를 수가 있을까요. 그 지팡이의 보석과 링거 역할을 하는 인공혈맥의 존재. 고위 마법사들이 제2의 심장으로 자주 사용한다는 생명유지장치의 특징과 완벽하게 똑같은데.]“…….”
[지금도 당신의 손목에서 꿈틀거리는 인공혈맥. 심장박동와 거의 완벽하게 유사해요. 흡혈귀인 저로서는 더 민감하게 느낄 수 있죠.]“그랬었군…….”
어째서 그때 만난 흡혈귀가 레녹의 지팡이를 보고 생명유지장치라 확신했는지,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흡혈귀의 감각으로 내다본 지팡이의 움직임이, 심장 역할을 대신하는 생명유지장치의 그것과 정확하게 똑같았기 때문에.
그런 물건을 고작 장식으로 들고 다닐 이유가 없다고 반쯤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한순간에 태도를 고쳐먹었던 것일까.
거기까지 확인한 레녹은 곧바로 의사가 필요하다는 용건을 간략하게 줄여서 들려주었다.
레녹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마담이 소리높여 웃었다.
[카이세 아가씨의 정보력이 정말 상당하군요. 제가 그쪽을 후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시피 한데…….]“가능한 빠르게 일을 처리하고 싶군. 도와줄 수 있겠나?”
마담이 팔짱을 낀 채 말했다.
[그 사람은 자기가 모르는 사람을 만나는 걸 굉장히 싫어해서, 원래라면 저도 이런 부탁을 들어드리지는 않아요.]“…….”
[다만 이번 거래에 응하는 건 어디까지나 그쪽 혈법사 소년에 대한 책임이 저희에게 있기 때문이라는 걸 알아주세요.]“거래 조건을 들어보지.”
[원하는 건 간단해요. 아픈 사람에게 귀찮은 일을 시킬 생각도 없고.]면사포 너머로 마담이 웃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저희 같은 순혈 흡혈귀에게는 마력이 담긴 혈액이 굉장한 별미랍니다.]“…….”
[고위계 초인, 그것도 순수한 술사에 가까운 혈액은 특히나 저희의 영감이나 직관을 일깨우는 데 큰 도움이 되죠.]마담은 그렇게 말하면서 어두운 방의 벽을 장갑 낀 손으로 가리켰다.
거대한 유리 진열장에 와인을 보관하는 것처럼 놓여 있는 수백 가지 시험관. 그 안에 각양각색의 혈액이 정성스레 보관되어 있다.
아래쪽 진열대에는 피가 가득 채워진 시험관이 꽤 있지만, 위로 향할수록 한 방울도 제대로 담겨 있지 않은 시험관이 보인다.
그 중에서도 진열장 최상층의 빈자리 한 구석을 마담이 정확하게 가리키고 있었다.
[8레벨 극위마법사의 피 한방울. 그것도 혈액 주인이 자의로 내준 피 한방울이면 충분해요.]“…….”
레녹은 마담이 무슨 말을 하는지 깨닫고 입을 다물었다.
다소 돌려말하기는 했지만, 그녀가 누구의 피를 원하는지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좋다.”
[뭐, 거절할 줄 알았어요. 애초에 흡혈귀에게 피를 내준다는 게…… 네?]어깨를 으쓱이던 마담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지, 진짜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