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49
아마 그녀는 그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겠지. 레녹도 알고는 있다.
제니가 생각하는 반이라는 사람은 그저 오지에서 살다가 내려온 수련마법사에 불과할테니까.
하지만 레녹은 그녀의 말에 헛웃음이 새어나오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이 곳에서 그에게 준비할 시간 따위가 어디 있었단 말인가.
그를 둘러싼 환경은 언제나 가혹했고, 레녹은 언제나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스스로 선택해왔다.
그때, 감독관의 이마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 순간부터 멈추지 않을것을 결의했다.
살기 위해서 죽음을 무릅쓰는 모순을 짊어지는 한이 있더라도ㅡ
“한번 달리기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지.”
“…..반?”
“의뢰를 받겠다고 전해줘.”
승천자와의 만남은 자의든 타의든 레녹의 생각을 크게 바꾸어놓았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리스크를 줄이는 것만으로 레녹이 원하는 것을 얻기란 요원하기만 하다.
귀중한 유물, 희귀한 영약. 그것들은 단순히 돈이 많다고 손에 들어오는 물건들이 아닐테니까.
결국 언젠가는 더 위로 올라가야만 했고, 레녹에게는 그 계기가 필요했을 뿐이다.
더 높은 명성과, 자격을 원한다.
늘어나는 원한관계, 줄어드는 시간, 다가오는 위험.
그 모든것들에 일일히 의미를 부여하고 두려워하기에는 그에게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았다.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판돈이 리스크보다 크다면 뛰어든다.
이 거리에서 신경써야 할 당위성은 그것뿐이었다.
레녹의 표정에서 무언가를 읽기라도 한 것일까.
두 사람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항만
레녹이 일을 승낙한다는 의사를 밝히자마자 일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파노아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레녹에게 첫번째 목표에 대한 정보를 보내왔다.
사무실에 들어선 제니가 브리핑을 하고, 레녹은 가만히 연초를 베어물었다.
“다이크쪽에서 처음으로 설정한 목표는 48구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마약상, 폴 아커먼이야.”
미리 준비한 화면에 곧바로 사진이 떠오른다.
풍채가 두둑한 빨간머리에, 주근깨와 수염이 가득한 중년 남성.
“2년전부터 활동을 시작해서 순식간에 판매루트를 뚫고 사업을 급격하게 불렸지. 그동안은 출처를 알 수 없는 자본금 때문에 말이 많았는데, 주스마스터의 수족 중 하나라는 소문이 있더군. 그게 사실이라면 조심해야 할거야.”
마약왕 도미닉 카바로. 통칭 ‘주스마스터’.
도시간 마약거래를 직접 주도하며 방위군에게까지 마약을 팔아먹는다는 초대형 카르텔의 수장이다.
최근에는 무려 복마전에 그 이름을 올렸는데, 그가 직접 운영하던 카르텔을 데리고 판데모니엄으로 들어간건지 추측이 무성했다.
“그래서 그런지 폴 아커만이 데리고 있는 개인 호위도 그 수준이 상당해. 저쪽 바닥에서 한가닥 하던 전쟁용병을 호위로 쓰는 모양이더라. 이름은 주드 러셀. 용병들 사이에서는 꽤나 이름이 알려진 실력자야.”
스크린 옆에 굉장히 젊어보이는 흑인 남성의 얼굴이 떠오른다. 날카로우면서도 거친 인상. 상당히 준수한 외모에, 등에는 큼지막한 칼 한자루를 매고 있었다.
“다이크 쪽에서 제공한 정보에 따르면 폴 아커먼은 3일뒤에 유통업자들을 데리고 48구역의 항만쪽에서 회의를 열 예정이라고 해.”
“믿을 수 있는 정보인가?”
“이쪽에서 교차확인을 해본 결과 특정 항만에 접근이 차단되고 있다는 정보를 들었으니 틀린말은 아닐거야.”
“흠…..”
레녹은 말없이 다이크쪽에서 보내준 의뢰개요서를 살펴보다가 입을 열었지.
“무기산업을 원하면서 마약상을 죽이라는 이유가 궁금한데.”
“마약을 팔아서 번 돈으로 불법 무기거래에도 지속적으로 자금을 투자하고 있나봐. 그쪽에서는 꽤 큼지막한 투자자 중 하나라더군. 먼저 돈이 나올만한 구석을 잘라놓고 시작하겠다는 이야기겠지. 나쁘지 않은 계획이야.”
“다른 사람들은?”
“이번 일에 참가하는건 모두 다섯 명. 아마 반 당신과 비슷한 평가를 받는 이들을 골라서 일을 꾸몄겠지. 약속시간과 장소를 알려줬어. 모두 모이는건 그때가 될 거야.”
이해했다. 이런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고작 레녹 하나만으로 일을 성공시킬 수는 없을테니.
아마 레녹과 비슷한 처지나 대우를 받는 이들을 추가적으로 고용해서 한번에 상황을 바꾸려고 하겠지.
“가장 우선해야 할 목표는 폴 아커만 본인. 주드 러셀까지 죽이면 추가수당을 지급하겠다고 통보해왔어. 선수금 2천만 셀에, 성공보수 2천만. 주드 러셀을 죽인 팀원에게는 천만셀을 추가로 지급하겠다더군.”
“러셀은 왜 죽이라는거지?”
어차피 폴 아커만을 죽이려면 충돌해야 할 상대겠지만, 굳이 지목해서 제거를 부탁한 저의가 무엇일까.
제니 역시 거기까지는 알지 못했는지 그냥 어깨를 으쓱였다.
“어쨋든 다이크쪽에서 넘겨준 정보는 여기까지야. 솔직하게 말해서 공업장비쪽을 파다가 성장한 기업이라 그런지, 넘겨주는 정보의 질 자체가 그리 좋지는 않네. 이런 건 또 발리츠랑 확실히 달라.”
발리츠가 의뢰인을 특정하지 않은 의뢰에도 세부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일을 발주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확실히 그렇다.
하지만 레녹은 이걸로 됐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차피 기동력이 부족한 레녹의 특성 상 내세울 수 있는 전술은 고정되어 있다.
전체적인 그림을 짜주는 식이라면 모를까, 세부 전략은 레녹 스스로 정하고 작전에 돌입하는것이 훨씬 나았다.
“가려고?”
“3일이면 지금부터 조금씩 준비를 해야 해. 특히 상대가 전쟁용병이라면 쉽게 볼수는 없겠지.”
물론 크로켄처럼 말도 안되는 괴물이 튀어나오지는 않겠지만, 딜런 정도의 수준만 되더라도 레녹에게는 충분히 위협적이다.
지금까지는 예상되는 리스크를 철저하게 계산해가면서 몸에 부담이 가지 않도록 주의해왔지만, 평소보다 장비를 조금 더 챙길 필요가 있어보였다.
“그래. 반 당신이라면 혼자서도 알아서 잘 하겠지.”
제니가 장초를 집어들고 불을 붙이면서 씩 웃었다.
“살아서 보자고, 마법사님.”
“당연한 소리를.”
레녹은 곧바로 술집을 나섰다.
미리 생각해둔 물건들을 구입하기 위해서는 서둘러야 했다.
#
3일 뒤.
차가운 밤공기가 코끝을 적시는 새벽이다.
유난히 밝은 밤하늘 아래를 쭉 걸어서 48구역에 도착한 레녹의 입가에서 차가운 연기가 새어나왔다.
등에는 길쭉한 가죽가방을 하나 매달고, 입에는 연초 한대가 물려있다.
가방이 다소 무거운탓에 오는 길부터 연초를 피면서 피로를 잊을 필요가 있었다.
“후우….”
막상 항만에 도착해서 싸늘한 공기를 들이마시고 있자니 긴장되는 것은 사실이다.
이제부터 그가 할 일을 생각하면 더더욱.
가볍게 양 뺨을 두드린 레녹은 제니에게 시작한다는 문자를 보내고 곧바로 약속한 장소로 향했다.
“왔군. 네가 마지막이다.”
먼저 모여서 고개를 떨구고 있던 네명의 사람들이 천천히 고개들 돌린다.
삐쩍마른 여자 하나, 산적같은 체형의 남자 하나. 그리고 새파란 철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사람 둘.
가면을 가린 두 사람은 성별은 물론이고 체형도 알아보기 쉽지 않게 온 몸을 두꺼운 천으로 가리고 있었다.
‘별의 별 놈들이 다 있군….’
레녹이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말없이 그들 쪽으로 다가서자, 네 사람이 순식간에 뒤로 한발 물러났다.
명백히 경계심이 가득해보이는 모습.
작전을 앞둔 팀원들의 기강이 해이해보이지는 않았다.
가장 오른쪽의 가면이 먼저 입을 열었다. 굵직한 목소리. 틀림없는 사내의 것이다.
이 자리에서 가장 큰 발언권을 가지고 있는 듯 했다.
“모두 대략적인 내용은 알고 있으니, 세부 사항만 간략하게 정리하고 돌입한다.”
그는 그렇게 말하고 왼쪽 손목에 찬 기기를 조작하더니 간단한 홀로그램을 무리의 가운데에 띄워놓았다.
드레이 크림갈도 휘하 용병들 앞에서 선보였던 기술이다.
“현재 폴 아커만의 사병들로 봉쇄된 48구역의 항만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모두 7개. 그 중에서 뱃사람과 화물운반 관계자들이 출입하는 전용입구를 제외하면 깔끔하게 다섯 군데로 나뉘어지지. 각 입구마다 하나씩 맡아서 사병들을 제압하고 대기한다.”
각자 1인분은 철저하게 해야한다는 마인드. 나쁘지 않다.
그의 말투는 꽤 고압적이었지만 다들 별 불만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유통업자들과 아커만은 각자 다른 루트로 움직여서 회담을 가질거다. 약속장소가 특정되면 확인한 쪽에서 먼저 작전을 시작하고, 나머지가 곧바로 합류한다.”
가면남자의 품에서 작은 이어셋 다섯개가 튀어나오고, 다른 팀원들이 하나씩 그것을 나눠가졋다.
“연락이 가능한 일회용 통신기다. 하룻밤이 지나면 회로가 망가지도록 설계되어있으니 오래 보관하고 있지는 말도록. 그럼 시작하자.”
말하는 투로 보아하니 가면은 애초에 다른 팀원들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는 눈치다.
그냥 적당히 싸우다가 시간만 끌어달라는 태도가 노골적으로 보였다.
레녹 역시 어느정도는 그 심정이 이해가 간다.
당장 모르는 사람 다섯명을 모아놓고 같이 작전을 함께하라고 한다면 신뢰하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일테니.
오히려 이렇게 간략화된 작전일수록 개인의 특출함이 빛날 여지가 있으니 꼭 단점만 있는건 아닌셈이다.
“그런데 당신들, 정말로 부주의한걸.”
모두 대충 계획을 납득하고 흩어지려던 순간, 가면의 옆에 서 있던 또다른 가면이 입을 열었다.
“이런 자리에 나오면서 얼굴을 가릴 생각도 하지 않는거야? 다이크가 돈은 많을지 몰라도 그쪽들의 안전까지 책임져주지는 않는다고.”
가면남자와는 다른 느긋하면서도 높은 어조. 이쪽은 여자다.
남녀 페어로 이 의뢰를 수락한건가. 특이한 구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가면여자의 말에 레녹을 비롯한 세 사람은 말없이 서로를 마주보다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비쩍 마른 여자가 비웃는듯이 묘한 얼굴로 대꾸했다.
“당신들, 이쪽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군.”
“…..뭐?”
“이 바닥에서 자기 몸값을 올리려면 좋든 싫든 얼굴과 이름을 까고 일해야 한다고. 특별한 사정이 있는게 아닌 이상 얼굴이 까발려지는 일 따위를 신경쓸 것 같아?”
특별한 사정이라…. 딜런의 기괴한 마스크 너머에도 그런 사정이 존재하는걸까?
레녹은 문득 처음으로 공장 폭파 의뢰를 맡았을때를 떠올리면서 아련한 추억에 잠겼다.
가면여자는 마른 여자의 말에 잠깐 당황한 것처럼 보였지만, 빠르게 감정을 수습하더니 몸을 홱 돌렸다.
“흥, 일만 잘하면 아무래도 상관없겠지. 발목을 잡지나 말라고.”
‘태도를 보니 정말 이쪽 사람은 아닌 모양이군.’
레녹은 가면을 쓴 이들이 자기들끼리 사라지는것을 보면서 대충 다이크쪽에서 고용할만한 후보군을 추려봤다.
용병, 갱단, 프리랜서, 군인….. 기업 소속 무력대원이나, 혹은 아예 범죄자를 데려와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러는 사이 산적같이 생긴 남자가 마른 여자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이봐, 어디 쪽으로 갈거지?”
“…..아무데나 상관없어. 어차피 난 무력이 뛰어나서 여기 뽑힌게 아니라고. 내 할일은 내가 알아서 할 거야.”
“그래? 유감이군…. 똑같이 비쩍 마른 놈이라면 레이디랑 같은 곳으로 가고 싶었는데.”
음흉한 웃음을 짓는 남자를 보면서 여자가 냉막한 얼굴로 무시했다.
남자는 여자가 별 반응이 없자 레녹을 돌아보면서 히죽 웃었다.
“그쪽도 딱 보니 힘 쓰는 부류는 아닌 것 같은데…. 죽지 말고 항만까지 잘 따라오라고. 괜히 숫자가 부족해져서 날 힘들게 했다가는 사지를 뽑아버릴거야.”
레녹은 대꾸도 하지 않고 곧장 몸을 돌렸다.
이제 이런 시빗거리는 하도 많이 당해서 지겨울 정도다.
일이 끝난 다음에 제대로 우열을 가려도 늦지 않았다.
그때까지, 저 남자가 온전히 살아있다면 말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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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 둘, 하나. 들어간다.]이어셋 너머로 들려오는 무미건조한 목소리. 돌입 타이밍 만큼은 같이 맞춰야한다는 가면남자의 주장이 있었다.
차가운 공기를 깊게 들이마시며 항만 안쪽으로 진입한다.
주변에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고, 저 멀리 파도가 항만의 끝자락을 후리는 소음만이 낮게 울려퍼진다.
수백 수천개가 넘는 컨테이너들이 배열된 난잡한 시멘트 거리.
고개를 돌려도 온통 골판지를 닮은 철제 컨테이너밖에 보이지 않지만, 레녹은 이미 이 주변에 사람들이 잔뜩 모여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방대한 그의 마력감지 능력은 곳곳에 숨어서 사방을 감시하는 이들을 정확하게 포착한다.
하나같이 굵직한 소총을 손에 들고 몸에는 단단한 방탄 조끼를 두르고 있다.
얼굴에 쓴 복면과 온몸에서 흘러나오는 날카로운 살기까지.
폴 아커만이 직접 고용해서 데리고 다니는 사병들이겠지.
틀림없다.
오늘 이곳에서 모이는 이들은 결코 대낮에 얼굴을 떳떳이 들고 다니는 이들은 아닐것이다.
‘아직 폴 아커만은 도착하지 않은 모양이군. 일찍 도착한 보람이 있어.’
사병들의 눈과 귀에 틀어박히는 환각마법을 버티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다른 팀원들이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항만 안쪽으로 진입하는 소리 역시 들려온다.
[콰직!! 우득!]정면돌파.
[아아, 여기 잘 들리나? 제이든, 아무 이상 없어. 다만 순찰경로를 바꾸고 싶은데 협조해줘.]목소리를 변조하고.
[위이이잉…!!]알 수 없는 기계소리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