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52
고작 잠깐 달리기를 한 것만으로 온몸에서 땀이 줄줄 흐르고 숨이 가빠져 오지만 어쩔 수 없다.
그나마 다른 사람들처럼 이렇게 두 다리를 놀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했다.
콰앙! 콰앙!
한밤의 항구에 귀를 찢을듯한 굉음만이 메아리친다.
족히 열개가 넘는 컨테이너가 날아다니는 밤하늘을 넘어 레녹이 도착한 곳은, 공터의 바로 옆에 위치해있던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항만의 끝자락이었다.
1분이 채 되지 못한 도주극. 레녹의 입장에서는 나름대로 솜씨를 발휘해 만들어낸 결과였다.
남자가 어이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보기와는 다르게 수영 좀 하나본데. 밤바다를 헤엄치는일이 그리 쉽지는 않아.”
“후우, 후우…… 무슨 소리지?”
“해상으로 도망치려고 여기까지 온 것 아니었나? 그러지 않고서 지금까지 아등바등 그 속도로 달려온게 납득이 안가는데.”
그 말에 한참 숨을 고르던 레녹이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생각이라는게 없군. 이 날씨에 바다에 들어가면 두시간은 살아있을 수 있을 것 같나?”
“하긴, 그 몸뚱아리로 그런 일이 가능할리 없지.”
남자는 순식간에 수긍하고는 씩 웃었다.
“그럼 그냥 죽기 좋은 장소를 찾아서 밤바다를 보러왔다는 말인데….. 생각보다 감성적인 놈이었군?”
“………”
얼마 지나지 않아, 많이 화가난 듯한 기척 하나가 이쪽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서걱ㅡ!!
텅 비어있는 컨테이너가 사선으로 잘려나가 주르륵 미끄러지고, 그 너머에서 머리에 핏줄이 선 한명의 남자가 걸어들어온다.
남자가 주드를 보며 껄껄 웃었다.
“결국 거기까지 쫓아가놓고 제대로 죽이지도 못한거냐. 그러니 경호대상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거지.”
“닥쳐.”
날카롭게 쏘아붙인 주드가 눈을 희번뜩거렸다.
“사이브리드 에코쪽에서 그 여자를 구하기 위해서 생체전송까지 시도하는데 뭘 어쩌라는 거지?”
“오…. 그건 확실히 예상밖이야.”
생체전송이라….. 남자까지 그 말에 대해서 어느정도 알고 있는걸 보면 그녀의 조직에서 그녀를 구하기 위해 적지않은 출혈을 감수했던 모양이다.
주드는 레녹을 돌아보고는 대충 상황을 파악한 듯 피식 웃으며 말했다.
“보아하니 얼마 도망치지도 못한 것 같은데, 표정은 꽤 괜찮아보이는군. 벌써 죽음을 받아들였나?”
“하나 궁금한게 있는데.”
조롱섞인 말에 대꾸하는 대신 레녹이 물었다.
“당신은 날 죽일 이유가 없지 않나? 폴 아커만이 죽은 시점에서 당신의 일은 끝이 났을텐데.”
“…죽기 직전에 궁금해하는 것 치고는 상당히 쓸데없는 질문이군.”
주드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거리낌없이 입을 열었다.
여유라고 보아야 할까. 이 자리에서 레녹이 살아돌아갈 수 없다는 확신이 들었는지, 순순히 대답이 들려왔다.
“일단 호위대상이 죽었으니 그 복수정도는 해줘야 내 체면이 살지 않겠나. 그리고….”
“그리고?”
가만히 레녹을 바라보던 주드 러셀이 잔혹한 미소를 지었다.
“내게 이 호위의뢰를 맡긴 사람이 바로 주스마스터였기 때문이지. 경호에 실패했으면 범인의 모가지 정도는 들고 가야지 변명할 거리는 생기지 않겠어?”
“……..”
“물론 땅끝 저편에 가있는 보스가 따까리 하나 죽었다고 내 목을 자르지는 않겠지만, 그냥 넘어갈 사항은 아니긴 하지.”
폴 아커만이 주스마스터의 휘하라는 소문이 사실이었나?
마약왕이 직접 수족을 보호하기 위해 보낸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평범한 실력자는 아니겠지.
전쟁용병 출신이라는 말만 들었지만 아까 보여준 그의 몸놀림 역시 상당한 수준이었다.
역시, 이 자리에서 한번에 죽여놓을 필요가 있었다.
여기까지 온 이상 이미 모든 준비는 끝났다.
결심을 굳힌 레녹이 고개를 끄덕이며 가볍게 마력을 끌어올렸다.
파도
두 사람이 눈치채지도 못할만큼 은밀하면서도 신속하고, 또 경쾌한 흐름.
단번에 마법으로 쌓아올린다.
[리버스 그래비티]우우우우웅!!!
직후 사방의 중력이 정확하게 거꾸로 뒤집히면서 컨테이너들을 비롯한 주위의 사물들이 일제히 위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중력의 방향이 역전되면서 물리법칙이 통채로 뒤집히는 그 기묘한 광경.
그 전까지 굳건하게 땅에 발을 디디고 있던 두 사람의 표정이 달라지는것도 순식간이었다.
“…..!!”
하지만 대처는 빠르다.
콰앙!!
시멘트 바닥에 한 손을 박아넣고 버티는 남자와, 검을 뽑아들고 땅에 꽃은 채로 레녹을 노려보는 주드.
레녹은 그 모습에 담담하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단순히 중력을 거꾸로 뒤집은 것 만으로 큰 피해를 줄 수 있을거라 기대한 것은 아니다.
[리버스 그래비티]는 겉으로 보이는 그 위용과, 중력을 역전시킨다는 강력한 효과 때문에 막대한 마력을 소모하지만, 실속은 그리 없는 마법으로 유명했으니.상대를 속박시키고 싶다면 차라리 [그래비티 바인드]를 사용하는것이 더 합리적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녹이 굳이 이 자리에서 중력을 역전시켜버린 이유가 있었다.
가장 먼저 이상을 알아차린 것은 주드 러셀이었다.
“…..잠깐, 이 방향은!!”
중력의 방향이 정확하게 반대로 역전되어 있지 않다.
주위에서 허공을 부유하는 대 여섯개 정도의 컨테이너들이 일제히 바다와 멀어지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을 본 주드 러셀의 머릿속에 불길한 상상이 스쳐지나가고.
레녹이 씩 웃었다.
“감이 좋은데.”
콰아아아아아아!!!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항구쪽에서 솟아오른 파도가 미친듯이 몸집을 부풀리며 하늘을 향해서 뻗어오른다.
레녹이 이 일대의 중력을 역전시키면서 동시에, 등 뒤에 있던 바다까지 그 범위에 포함시켰던 것이다.
한순간 하늘을 가리고 오밤중에 두번째 그림자를 드리울 만큼 파도가 쭉 뻗어 기울어지고.
동시에 레녹이 한번 더 마력을 움직였다.
이때까지와는 전혀 다르게 순식간에 공간을 장악하고 그대로 두 사람이 뻗어올리는 힘의 근원을 어그러뜨린다.
우드드드득!!
“큭…!! 씨발 이게 뭔..!!”
“마력이….?!”
저들만한 실력자라면 한번 당한 뒤로는 다시는 당해주지 않을 가능성이 높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최고의 타이밍을 잡아야 하는것이다.
도망치는 동안 남자를 죽여버릴 기회가 몇번이나 있었음에도, 꾹 참고 여기까지 달려온것은 모두 이 순간을 위해서.
덮쳐오는 파도를 피해서 움직이려던 두 사람의 움직임이 평범한 일반인의 그것으로 변한 그 짧은 찰나.
막대한 양의 바닷물이 세 사람을 그대로 뒤집어씌운다.
콰아아아아!!
항만의 끄트머리를 흠뻑 적시는 소금기.
그 수분이 채 가시기도 전에 레녹이 힘껏 마력을 끌어올렸다.
뱃속에서 마력이 턱턱 걸리면서 몸에 그대로 부담으로 돌아오는것이 느껴지지만, 이를 악물고 머리 끝까지 크게 밀어올린다.
연달아 마력소모가 큰 마력을 사용하는 부담따위는 지금 상황에서 고려할 문제가 아니었다.
이 자리에서 자욱하게 퍼진 수분을 잔뜩 안고 서릿발같은 냉기가 흘러나온다.
[아이스 라운드]쩌어어어엉!!
눈 깜짝할사이에 항만사이를 흐르던 바닷물이 얼어붙으면서 허공위로 떠오르던 모든것들을 붙잡고 속박한다.
파도가 쓸어덮치는 모양으로 굳어버린 거대한 얼음덩어리가 눈에 보이는 공터 전체를 쓸어담고 내리눌렀다.
대인 빙결마법으로 사용하는 [프로스트 혼]보다는 위력이 약하지만, 사전에 수분이 있다는 전제 하에서는 시전시간이 극단적으로 짧은데다 범위도 넓다.
지금 이 순간에만 가장 효율적이고 강력하게 사용할 수 있는 마법.
이빨 사이로 새하얀 김을 내뿜으면서 레녹이 빠르게 허리춤의 리볼버를 꺼내들었다.
[조준보정] [격발강화] [회전가속]눈 깜짝할 사이에 3개의 보조마법을 쌓아올린 리볼버의 총구가 순식간에 얼어붙어버린 두 사람 중 하나를 겨눈다.
산적남자와 주드 러셀의 실력을 생각했을 때 이들을 붙잡아 둘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다.
확실하게 처리해야한다면, 가장 먼저 죽여야 하는건 누구일까?
이미 고민은 끝난 뒤였다.
레녹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방아쇠를 강하게 당겼다.
타앙!!
총구 사이로 새어나온 불꽃이 번뜩이고, 연기가 흩날린다.
그와 동시에 엉거주춤한 자세로 얼어붙어있던 산적남자의 머리통 절반이 그대로 박살났다.
퍼어억!!
마치 눈덩이가 깨지는듯한 둔탁한 소리와 함께 뜨거운 피가 쏟아져 나온다.
그제서야 속박에서 풀려난 남자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레녹을 응시했다.
“이, 이럴수는 없어. 고작, 그 잠깐 움직이지 못했다고 이렇게….!!”
머리통 반쪽이 날아간 뒤에도 제대로 사고하고 말을 내뱉는가.
남자 역시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만큼 수준 낮은 전사는 아니라는 증거.
하지만 레녹은 대꾸도 하지 않고 곧바로 한번 더 방아쇠를 당겼다.
그가 얼마나 강하고, 또 실력있는 전사인 것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남자는 방심했고, 또 레녹의 능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패인은 그것뿐이었다.
후환을 남겨두지 않는다.
산적같은 남자가 조상의 혼령을 불러내서 강화한 근력은 아무리 레녹이라고 해도 정면에서 쉽게 감당할 수 없을만큼 강렬했다.
주드 러셀이 얼마나 강한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가시적으로 확인된 위험부터 제거하고 다음 전투를 계산하는 것이 옳았다.
타앙!!
“씨, 바알…!!”
목 아래쪽만 남은 남자의 시체가 쓰러지는 것과 동시에, 주드 러셀이 차가운 얼음의 속박에서 풀려난다.
쌔액!!
동시에 그의 몸이 흐릿한 잔상만 남기더니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고, 섬전처럼 레녹의 눈앞에서 나타났다.
마법사가 마법을 사용한 직후를 노리는 과감한 판단.
방금 전까지 온몸이 냉기에 절여져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좋은 선택이다.
카아아앙!!
단 한번의 시도로 실드를 박살내야 한다고 생각했겠지.
당연히 마력을 모조리 때려박아서 이 절호의 기회를 살리려고 했을것이다.
하지만 레녹은 똑같이 실드를 박살내려는 그 시도에 두번 당해주지 않았다.
우우우웅…!!”
단순히 중첩시켜놓았던 실드가 막강한 근력 앞에 박살났다면, 실드의 배치를 바꿔버리면 그만이다.
실드 사이사이 간격을 미묘하게 띄워놓고, 공격이 다가오는 순간 방향을 조금씩 비틀어 하나를 박살날때마다 내리찍히는 힘의 방향이 어긋나게 만든다.
아까처럼 대비하지 않은 상태에서라면 모를까, 이미 알고 있는 상황에서는 얼마든지 대처가 가능했다.
마력제어에 조금 더 신경을 써야 하기는 하지만 방어에만 집중하는 상황에서는 충분하다.
“큭….!!”
아까 산적남자가 그랬던 것처럼, 레녹이 똑같은 표정으로 당황하기를 바랬겠지.
하지만 입술을 질끈 깨문것은 주드 러셀쪽이었다.
선공이 막힌 것을 깨달은 순간, 주드의 신형이 기이한 소리를 내면서 순식간에 자취를 감춘다.
레녹의 힘을 확인한 순간 정면대결에서는 답이 없다고 직감한 것이다.
파아앗!!
빠르게 사방을 오가면서 필사적으로 레녹이 만든 실드의 빈틈을 노린다.
그는 그 짧은 사이에 레녹이 펼친 실드가 전방위로는 작동할 수 없다는 사실을 꿰뚫고 가장 효과적인 대책을 내놓고 있었다.
쉬익…!! 쉬익…!!
난장판이 된 항만의 빙판 위로 새된 바람소리가 스치는 소음만이 울려퍼진다.
터터터텅!!
텅 비어있는 컨테이너를 수십번 밟으면서 들려오는 공허한 발소리와, 예기를 이기지 못하고 귀퉁이가 잘려나가는 화물들.
그 보이지 않는 살기의 바람 속에서 레녹은 리볼버를 움켜쥔채로, 그가 다가오기를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