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53
주드 러셀이 이 자리에서 도망치지 않을것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다.
남은건 주드의 노림수를 레녹이 간파하고, 제압할 수 있느냐.
그것뿐인 문제였다.
그리고 레녹은 스스로의 재능을, 그리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을 믿었다.
천천히 앞으로 걸어나간다.
오히려 빈틈을 내주는 무방비한 행위.
하지만 주드는 곧바로 달려드는 대신 조금더 속도를 올려 레녹의 감각을 현혹시키며 상황을 주시했다.
오만한 말솜씨와는 달리 극히 신중해진 태도.
그 간극이 레녹의 입가에 희미한 웃음을 띄웠다.
휘이이익!!!
레녹이 감히 짐작할수는 없는, 그러나 결코 예상보다 늦지도 않은.
감각의 빈틈과 생각의 간극을 정확하게 관통하는 그 찰나의 순간.
레녹의 왼쪽 옆구리에서 나타난 주드가 칼날을 밀어넣었다.
아주 가볍게, 의식하지 않는다면 결코 느끼지도 못할만큼 자연스러운 동작.
주드 러셀이라는 검사가 얼마나 숙련된 살인자인지 실감하게 만드는 단 한수.
하지만 레녹은 반응했다.
콰아아앙!!!
주드가 그의 옆에서 나타나는 것과 동시에 충격마법을 내리찍어서 그의 머리를 땅바닥에 찍어버린것이다.
마치 누군가에게 머리채가 잡힌것처럼 주드의 상반신이 고꾸라지고.
자줏빛의 채찍이 순식간에 그의 사지를 단단히 묶는다.
그것으로 전투는 한순간에 끝났다.
전력을 다한 필살의 공격이 무위로 돌아간 주드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레녹을 올려다보았다.
“어, 어떻게….!!”
레녹이 담담하게 대꾸했다.
“처음부터.”
그의 시선이 주드의 코트 끝자락에 아직까지 묻어있는 얼음조각으로 향한다.
레녹이 [아이스 라운드]를 사용해서 남겨놓은 그의 마력 한조각.
육안으로는 그 속도조차 간파하기 어렵더라도, 레녹의 마력감지능력은 다르다.
하물며 레녹이 직접 뿌렸던 마력의 움직임을 추적하는 일은 눈을 크게 뜨고 보이지 않는 것을 쫓는 일보다 간단하다.
주드 러셀이 바닷물을 뒤집어쓴 그 순간부터, 이미 레녹은 승기를 꽉 틀어쥐고 있었던 것이다.
그제서야 상황을 파악한 주드가 새파래진 얼굴로 어떻게든 일어나려고 발버둥쳤지만, 레녹이 준비해둔 마법이 구현되는것이 먼저였다.
끼이이이…!!
주드의 발밑에서 일어난 그림자가 아주 커다란 입이 되어서 하반신을 꿀꺽 삼켜버린다.
어둠속에서 그 진가를 발휘하는 그림자계열의 기습마법이 이번에도 제대로 먹혀든 것이다.
처절한 비명이 터져나온것은 그 다음의 일이었다.
“크, 하아아악!!!”
단 한번의 공방으로 두 다리를 잃어버린 주드가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며 칼을 놓쳤다.
그는 느릿하게 신음하면서 어떻게든 레녹에게서 멀어지려는듯이 두 팔을 천천히 뒤로 밀면서 몸통을 질질 끌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레녹은 그를 뒤쫓는 대신,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가 마지막으로 내건 도박수가 너무 뻔해보였던 것이다.
“내 눈앞에서 피를 그렇게 맛있게 핥아놓고 속아주길 바라는 건가?”
“………”
그 말을 들은 주드 러셀의 몸이 우뚝 멈춰서고.
퍼드드득!!
아무 말 없이 붉은 안개로 변해서 밤하늘을 타고 도망치기 시작한다.
뱀파이어.
강력한 육체능력. 교활한 전투지능. 피에 대한 갈망. 피안개를 부리는 능력.
웨어울프와는 비슷하면서도 또 다른 방식으로 세력을 이루고 순혈을 추구하는 이들이다.
거울처럼 비슷하면서도 또 다른 두 종족을 이제서야 모두 만나보게 된 건가.
하지만 그 이상의 궁금증은 일지 않았다.
뱀파이어의 혈화(血化)는 굉장히 유용한 능력이지만, 정작 공격에는 훨씬 취약해진다.
도망칠 때 저 모습을 취한다는 건 정말 마지막 발악에 불과했다.
메마른 하늘에서 번개가 내리쬔다.
눈이 터질것만 같은 섬광속에서 희미한 실루엣이 재가 되어 사라지고, 비릿한 기척마저 완전히 소멸한 것을 확인한 레녹이 천천히 등을 돌렸다.
전투가 끝난 다음에야 입이 바짝바짝 마르고 급격하게 머리가 띵해져온다.
금세 약발이 다했다는 것을 깨달은 레녹은 서둘러서 새로운 연초에 불을 지폈다.
“후우…..”
주드 러셀의 칼질에 깔끔하게 썰려나간 컨테이너 조각을 깔고 앉아서 연기를 줄줄 흘려보낸다.
땀에 젖은 셔츠가 밤바람에 빠르게 식어가는 것이 느껴진다.
실로 오랜만에 몸을 혹사시켜서 그런지 벌써부터 폐가 아프고 다리가 욱신거렸다.
샷건에 얻어맞았던 배도 사정없이 욱신거린다.
셔츠를 들어서 배를 확인해보니 이미 새파란 피멍이 배 아래쪽에 크게 번져있었다.
캐쉬번을 빨고 있는데도 이 정도라면, 약효가 끝난 뒤에 그 고통도 만만치 않을 것 같았다.
협상
‘쉽지는 않았어.’
멍하니 연기를 흘려보내면서 이번 전투를 회상한다.
다이크에게 의뢰를 받았을때 각오하기는 했지만, 역시 이번 일은 쉽지 않았다.
이때까지 레녹이 경험했던 의뢰들을 생각하면 상대의 수준 역시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었으니.
산적같은 남자와 주드 러셀 둘 모두, 이 바닥에서 함부로 고개를 숙이고 다닐만한 실력은 아니었을 것이다.
단지 레녹에게는 그들이 예상할 수 없는 힘과 재능이 있었고, 그것을 가장 치명적인 순간에 정확하게 꺼내들 수 있었을 뿐.
결국 그것뿐인 이야기다.
끝을 알 수 없는 전투속에서 레녹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증명해야 한다.
페널티의 완화, 더 많은 돈, 안락한 생활…. 모두 이 기본적인 전제를 통과할 수 없다면 무의미할 뿐.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레녹은 그 순간만큼은 모든 상념을 내려놓고 온전히 전투에 집중할 수 있었다.
오히려 목숨을 걸고 싸우는 이 시간이 편하다고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이건 위험해.’
타들어가는 꽁초의 끝을 바라보면서 레녹이 생각했다.
결국 약물에 대한 중독과 마찬가지다.
한번 자극에 맛을 들이기 시작하면 거기에서 벗어나는 건 쉽지 않다.
수렁에 발을 담그고 빠져나오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수렁을 피해갈 수 있도록 스스로를 철저하게 관리해야한다.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그 무엇보다 한가지만을 염원하며 몰두하고 달려오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것이 조금씩 레녹의 발목을 잡기 시작한 꼴이니.
하지만 그가 시작하고, 또 각오했던 일이다.
감내할 수밖에.
아직 레녹은 무너지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기약할 수 없는 다짐과 함께, 항만에 가득한 피비린내가 바닷바람에 씻겨내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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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럴 줄 알았지.”
화면 너머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두 보고 있던 킬리안이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이래서 커리어만 보고 사람을 뽑으면 귀찮은 일이 생길거라고 했잖아.”
“…..예상했던 일이야.”
파노아가 애써 태연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배신자가 나오는 것도?
“…….”
그녀가 입을 꾹 다물었다.
“신분도 명확하지 않은 놈들 상대로 원석을 가려내려면 거름망이 있어야 한다고. 말만 유능한 놈들이면 뭐해? 직접 작전에 투입해보면 그냥 애새끼들 투성인데.”
킬리안의 심드렁한 지적에 파노아가 발끈한 기색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테스트를 하겠다고 했으면 지금같은 퀄리티로 팀원을 뽑아낼 수 있었을 것 같아? 빈정상한 놈들 달래려면 보수도 지금보다 더 올렸어야 했어. 지금 우리 쪽 사정을 뻔히 알면서 그런 소리를 하는거야?”
이번 작전의 전개가 결과적으로 이쪽의 무능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결과가 되어버리기는 했지만, 파노아에게 할 말이 없는것은 아니다.
레녹에게 자신만만하게 말했던 것과는 다르게, 그녀에게도 사내에서 헤쳐나가야 할 난관이 적지 않았으니.
하지만 그런 변명을 레녹 앞에서 지껄일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걸 뻔히 알고 있는 킬리안이 시큰둥하게 그 모든 핑계를 한마디로 일축했다.
“그래서 이렇게 됐잖냐.”
결과론적인 말이지만, 어찌되었든 틀린 말은 아니라는게 문제다.
레녹이 없었다면 기껏 막대한 금액을 들여서 시작한 다이크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도 이상하지 않았으니.
시작부터 프리랜서 중 한명이 배신을 때릴거라고는 파노아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40번대 구역을 너무 만만하게 생각했어. 지금까지 별다른 트러블이 없던 놈들을 모아놓으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설마 그렇게 쉽게 등을 돌릴줄이야.”
“전과없는 범죄자들이랑 같이 일하는거야. 어느정도 리스크는 각오해야겠지.”
킬리안은 그렇게 말하면서 턱짓으로 화면 너머를 가리켰다.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부둣가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레녹이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거야? 저 놈은 진짜야. 네 계획을 성공시키려면 무조건 붙잡아야 할걸.”
레녹에게 아무런 호감이 없는 킬리안이 보기에도 그의 실력은 완성된 보석 그 자체다.
다양한 속성을 다루는 탓에 어떤 고유마법체계를 다루는지 짐작하기는 쉽지 않았지만, 그보다 그의 눈에 들어왔던것은 사용하는 마법보다는 레녹의 전투감각 그 자체였다.
강력하고 잔인한 적을 앞에 두고도 조금도 주눅들지 않는 담대함.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손해도 감수할 수 있는 과감함.
지형지물을 적절하게 이용하는 판단력과, 소름이 돋을 정도로 정확한 마법구사능력.
그보다 월등한 신체능력을 가진 초인들을 상대로 아슬아슬한 타이밍까지 마법사용을 아끼면서 한순간에 판을 뒤집고 승기를 틀어잡는 그 모습은, 킬리안이 알던 마법사들과는 전혀 달랐다.
동시에 직감한다.
단순히 술식을 잘 구사하는 것과는 궤를 달리하는 재능이다.
두려움과 고통을 강인한 이성으로 억누르고 날카로운 판단력으로 허를 찌르는 그 모습은 타고난 승부사에 가까웠다.
킬리안은 저런 재능을 가진 이들을 어떻게 대해야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나중에 일이 어떻게 되든, 일단 지금은 그를 대우해 줄 필요가 있었다.
“일이 이따위로 끝났으니 일단 불러서 수습은 해야할 것 같은데. 저 친구와 오래 일하고 싶다면 말이야.”
“……다른 네 명에게 약속했던 성공보수를 적당히 떼서 반에게 찔러줄 수밖에 없겠어. 당장은 그가 그걸로 만족해주길 바랄수밖에…..”
파노아가 착잡한 표정으로 대꾸했지만,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바쁘게 계산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뜻하지않게 일이 풀리기는 했지만, 그 과정에서 반이라는 마법사를 건져낸것은 큰 수확이다.
현재 프로젝트가 돌아가는 사정을 생각할때 절대로 놓쳐서는 안되는 재능.
이번 실수를 단순히 흘려넘기지 말고 지속적으로 그와 협력할 수 있는 발판으로 삼아야 했다.
“반이 계속 우리 계획에 함께해준다면 생각보다 빠르게 상황을 정리할수도 있겠어. 다른 기업들이 끼어들기 전에 판을 넓히고 판매망을 구축하기만 하면 돼.”
“인원을 다시 모아야겠군.”
“마냐에게 다시 쓸만한 프리랜서 후보군을 추려달라고 해야겠어. 이번에는 돈을 조금 많이 쓰더라도 네 말대로 한번 테스트를 거치는게 좋겠군. 아무리 인력이 부족해도 이런 일에 돈을 아끼지 말았어야 했는데…. 확실히 내 생각이 짧았어.”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빠르게 책상앞으로 걸어가 키보드를 두드렸다.
사내 네트워크. 그 중에서도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그녀가 따로 소집했던 사원들에게 일괄적으로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일단 마약상 폴 아커만을 제거함으로서 40번대 구역의 무기상들에게 자금을 대주던 큰 투자원을 끊어내는데는 성공했다.
여기서부터는 이미 자리잡은 무기상들을 상대로 협박과 포섭 두가지 방식을 적절하게 사용하며 판매망을 뚫고, 동시에 경쟁자를 제거해야한다.
“무법지대라는 걸 가정하고 계획을 세우다보니 확실히 편한 감은 있네. 생각보다 고려해야하는 뒷감당이 그렇게 크지 않아.”
“그러니까 아까처럼 뒤통수를 치는 놈도 나오는 거잖냐.”
“그 부분은 이쪽에서 잘 조절하는 수밖에.”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킬리안을 보면서 손을 휘저었다.
“이제 나가봐. 아 참, 마냐가 후보군을 추려서 올릴테니까 이력서 모두 뽑아서 내일 아침까지 내 책상 앞으로 가져다 놓고.”
“빌어먹을… 이딴 일이나 하려고 지금 네 수발을 들어주고 있는게 아니라고.”
킬리안은 그렇게 투덜거리면서도 별다른 불평을 내뱉지 않고 사무실을 떴다.
파노아 역시 얼마간 키보드를 두드리고는 곧바로 겉옷을 챙겨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늦은 새벽이다.
이 시간까지 회사에 남아서 업무를 보고 있었던 것은 오직 48구역 항만에서 벌인 일련의 계획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하품을 하면서 리모컨을 들어 항만을 비추던 드론의 카메라를 끄고, 귀환커맨드를 입력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