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544
약먹는 천재마법사 544화
카이세(1)
과거에 괴리되어 남겨진 시공간.
하물며 이 구역을 폐쇄구역으로 만들었던 사건의 당사자들을 직접 마주하고 있기 때문일까.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정보와 인물들을 제대로 판단하고 계산하기도 어려울 지경이다.
삼두령 데드라이즈.
카이세의 심복들이 모여서, 그들의 주인을 배신하고 세웠다 일컬어지는 민간군사기업.
어쩌면 레녹은 그 시작의 전조를 이 자리에서 다시금 목격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레녹이 그 사실에 대해 어떠한 감상을 품기도 전에, 날개를 떨친 남자가 몸을 일으켜 세웠다.
“올리비에라 론 메이즈의 지령에는 관심 없어.”
머리를 쓸어넘기며 자리에서 일어서는 남자의 얼굴은 레녹조차 살짝 놀랄 만큼 미형이었다.
잿빛 머리칼을 가볍게 털어낸 남자가, 표정 하나 없는 무기질적인 태도로 중얼거렸다.
“난 카이세가 남긴 전언을 지킬 뿐이다. 해야 할 일은 하나뿐이지.”
철컥!!
남자가 손을 들어 올리자, 등허리에 매달린 날개 한쪽이 다섯 갈래로 갈라져 손바닥의 형상을 그리기 시작했다.
직후 날개 안쪽에서 들려오는 시동음과 함께 공간 자체가 유리처럼 깨져나가는 환각이 보였다.
키기기기긱……!!
“작전이 끝나기 전까지 승인되지 않은 관계자는 들여보낼 수 없다.”
“제정신이 아니군, 여기서 네놈의 마력을 사용하면……!!”
안색이 살짝 질린 맥퀸이 뒤로 물러나는 것과 동시에, 레녹의 눈앞에서 공간이 산산이 부서져 떨어져 내렸다.
와장창!!
일대 공간이 통째로 부서져 내리며, 그 공간의 균열 사이로 존재 자체를 밀어 넣으려는 듯한 기이한 감촉.
레녹은 이 현상이 정확하게 어떤 공간조작능력의 일종인지 이해하고 있었다.
공간의 층 자체를 벗겨내서 그 자체로 반발력을 극대화시키는 공간박리.
항하사미궁에서 만났던 보석술사, 자운 오디스가 이상할 정도로 능숙하게 다루던 능력들 중 하나다.
아마 저 남자가 장착하고 있는 날개와 스스로의 마력을 조합해서 만들어낸 고유이능의 일종일 터.
레녹은 거기까지 판단한 뒤 곧바로 두 눈을 감았다 떴다.
파앗!!
왼쪽 눈동자에 떠오른 자색의 마안이 가능성의 영역을 시각화, 부서져 내리는 공간의 너머를 비추기 시작한다.
레녹은 그 모습을 보며 그 자리에서 지팡이를 짚지 않은 손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손을 펼치는 것과 동시에 시간이 멈춘 것처럼 박살 나던 공간의 파편들이 우뚝 멈춰 선다.
끼이이익!!
“……!!”
무표정한 남자의 눈썹이 꿈틀거리고, 레녹의 다섯 손가락이 다이얼을 돌리듯 회전하는 순간.
차르르륵!!
마치 시간이 되감기는 것처럼 파편이 그대로 원상복구되어 원래의 풍경을 비추기 시작했다.
레녹의 등 뒤에서 맥퀸이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이, 일개 마법사가 어찌 시간의 개념을……!!”
“시간이 아니다.”
물끄러미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남자가 부정했다.
“공간의 연속성 자체를 인지하고 부서진 부분을 처음부터 모조리 끼워 맞춘 것뿐이지.”
한순간, 칙칙한 남자의 눈동자에 초점이 돌아오는 기분이 들었다.
“마력조작의 정밀성과 기억력, 구도 인지능력까지……. 어떤 의미로 보자면 시간을 직접 다루는 것보다도 희귀한 재능이군. 카르텔의 마법사라고 했나?”
“…….”
레녹은 그 말에 대답하는 대신 가볍게 고개를 까닥였다.
남자는 그런 레녹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이내 목에 걸고 있던 고글을 다시 올려 썼다.
철컥!!
강철의 날개가 한번 크게 펄럭이는 것과 함께 남자의 몸이 너무나도 가볍게 위로 살짝 떠올랐다.
방금 전까지 레녹을 배제하려던 것치고는 놀라울 만큼 순순히 길을 열어주는 모습.
레녹이 보여주었던 공간 조작 능력에 대해 흥미를 느낀 이유가 있는 것일까.
튕기듯이 하늘 위로 떠오른 남자가 레녹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작전이 끝나고 나면 카이세를 한번 만나러 오도록. 그는 올리비에라 론 메이즈보다도 훨씬 믿을 만한 남자다.”
“길레온……!!”
바로 옆에서 자신의 상관을 깎아내리는 말을 들은 맥퀸의 얼굴이 분노로 한껏 물들었다.
“감히 지금 내 앞에서 그분을 모욕하고 멸시하려는 것이냐!!!”
“멸시가 아니지. 사실을 말하는 것 뿐.”
길레온이라 불린 남자가 담담하게 말했다.
“자신의 측근으로 너와 같은 이들을 사장단으로 골랐다는 것이, 그녀의 음험함을 대변하고 있지.”
“……!!”
“올리비에라 론 메이즈는 신뢰와 충의에 가치를 두지 않는다. 살아가며 당연히 품어야 할 감정을 배제하고 위로 올라서려 하지.”
서슴없이 카르텔의 회장을 깎아내린 길레온이 날개를 조정해 방향을 바꾸었다.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 협력하고는 있지만, 비대한 자의식과 재능에 걸맞지 않은 인성을 지니고 있어. 그런 존재는 마지막 순간에 반드시 믿음을 저버리기 마련이다.”
레녹이 피식 웃었다.
“카이세의 심복들 중 하나였군. 그에게 충성하고 있나?”
“충성?”
길레온은 그 말이 이상하게 들린다는 듯 되물으며 그대로 몸을 돌렸다.
“나는 그를 대신해서 죽기 위해 살아가고 있다.”
“…….”
그 이상의 대답은 없었다.
한줄기 회색의 섬광으로 변한 남자의 몸이 그대로 수백 미터 상공 위로 솟구쳤다.
파아앙!!
동시에 다시금 저 멀리서 느껴지는 날카롭기 그지없는 기척과 시선의 존재.
그제서야 레녹은 길레온이 이번 작전에서 맡은 역할이 무엇인지 이해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비행능력과 감지능력. 압도적인 제공권과 시야를 이용해서 발전소 사방에서 접근하는 이들을 모조리 감시하고 있는가.
지금 이 시간대는 아직 레녹이 반중력 기술을 개발하기 한참 전의 시대.
그걸 감안하면 연비가 엄청나게 나쁜 비행능력을 저렇게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길레온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간접적으로 실감할 수 있다.
맥퀸 역시 그것을 모르지는 않는지, 이마에 핏대를 세운 채 씰룩이다 이내 등을 휙 돌렸다.
“카이세의 심복들은 다 저런 놈들뿐이지. 됐다, 오래 열을 올릴 이유는 없어.”
“카이세 역시 수하들을 몇 명 데리고 작전에 참가한 모양이군.”
“애초에 본인의 무력보다는 심복의 능력에 가중치를 두는 자였으니, 이상한 일은 아니지.”
맥퀸이 그렇게 대답하며 피식 웃었다.
“하지만 충의니 신뢰니 하는 말은 가당치도 않아. 자신들이 구축한 세력과 관계가 단연코 이 도시에서 제일 가는 것이라고 믿지. 하찮기 그지없어.”
“…….”
“말로만 충성과 신의를 외치는 놈들이, 정작 위기가 오면 가장 먼저 등을 돌리기 마련이다. 두고 보지.”
그 말이 자기 자신에게도 해당된다는 것을 이 파계승은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을까.
하지만 아이러니한 사실은 그 저주에 가까운 발언이 레녹의 시점에서 마냥 틀린 말도 아니라는 것이었다.
결국 수십 년이 지난 현재에서, 카이세의 심복들은 마지막에 그를 배신하고 데드라이즈라는 조직을 새롭게 만들어 활동하고 있었으니까.
카이세를 위해 죽기 위해 살아가고 있다던 길레온은 과연 지금 어디에 있을까.
레녹은 그것을 떠올리고 피식 웃으며 맥퀸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우우우웅……!!
발전소 건물 안으로 들어오는 것과 동시에 웅장한 진동소리가 천지 사방에 크게 울려 퍼진다.
시설 전체가 은은하게 진동하는 듯한 격렬한 작동음.
“회장님께서는 아마 통제실이나 관리실에 계실 거다.”
맥퀸은 거침없이 레녹을 이끌고 발전소 복도를 빠르게 헤집고 나갔다.
레녹은 그런 맥퀸의 설명을 들으며 빠르게 올리비에라를 만났을 때 해야 할 말을 고르기 시작했다.
카이세의 이름을 듣고 여기까지 온 이상, 거짓말이 들통나서 전투에 돌입하는 상황은 차악에 가깝다.
여기서는 차라리 올리비에라 본인까지 속여넘길법한 애매한 거짓말을 더해서 아예 돌아가는 상황을 복잡하게 꼬아버리는 편이 좋겠지.
레녹이 그렇게 생각하며 빠르게 머리를 굴리는 사이, 정작 맥퀸은 올리비에라를 찾지 못하고 발전소를 헤매고 있었다.
“……계시지 않는군. 아무래도 다른 볼일이 있어서 잠시 외출하신 듯하다.”
“기다리면 되겠군. 뭐가 문제지?”
레녹이 태연하게 대꾸하며 복도 벽에 기대 멈춰서자, 맥퀸이 미미하게 얼굴을 찌푸렸다.
예상 밖의 상황에 레녹이 아니라 오히려 맥퀸이 당황한 듯한 태도.
무언가를 고민하듯 레녹의 앞에서 서성이던 맥퀸이, 이내 법장을 치켜들고 바닥에 강하게 내리찍었다.
위이잉……!!
동시에 레녹의 발치에서 은은한 빛이 떠올라 발전소 내부 복도를 안내판처럼 비추기 시작했다.
맥퀸은 술식이 잘 발동되었는지 간단하게 확인하고는 곧바로 등을 돌렸다.
“발전소 동력실에 사람이 있을 거다. 그들에게 필요한 사항을 안내받을 수 있도록. 난 이만 가보겠다.”
“여기까지 와서 일을 그렇게 처리해도 상관없겠나?”
레녹의 말에 맥퀸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네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원래 진행하던 작전순찰을 멈추고 돌아온 거야. 내게도 시간이 많지 않아. 회장님께서 돌아오시면 그 뒤에 판단하는 걸로 하지.”
“…….”
“길레온 그놈에게 더 이상 꼬투리를 잡힐 수는 없어.”
아무래도 맥퀸이 마음을 바꿔먹은 계기가 길레온을 만나고 엄한 소리를 들었기 때문인가.
파계승은 슬쩍 레녹을 바라보고는 이내 고개를 내저으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카이세의 편은 확실하게 아닌 것 같으니, 아무래도 상관없겠지…….”
“……”
아무래도 레녹이 길레온의 행동에 당황하지 않고 대처하며 맞선 것으로, 맥퀸의 신뢰가 어느 정도 쌓인 모양.
그 상황에서 도망치거나 당황하지 않은 레녹의 반응으로 오히려 확실하게 카르텔의 편이라 인식했다면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돌아가는 상황을 이해한 레녹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난 동력실에 가 있지.”
“……회장님께서 돌아오시면 곧바로 내가 연락을 넣을 거다. 허튼짓하지 말고 기다리고 있도록.”
맥퀸은 그렇게 말한 뒤 바쁜 걸음으로 발전소 밖으로 사라졌다.
레녹을 만나면서 멈췄던 라마할 구역의 순찰을 빠르게 재개할 생각이겠지.
순식간에 혼자 남은 레녹은 물끄러미 발전소 복도를 바라보다, 천천히 동력실을 향해 걸었다.
아까 있던 일로 어느 정도 신뢰를 확보하긴 한 모양이지만, 맥퀸이 완전히 의심을 벗어던진 것은 아니다.
맥퀸의 술식으로 만들어진 길에서 벗어난다면 즉시 그에게도 모종의 신호가 갈 터.
발전소 안으로 들어온 이 시점에서 벌써부터 수상한 움직임을 보일 필요는 없었다.
차라리 이 시간선의 올리비에라가 자리를 비운 틈을 타 발전소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확인하는 게 좋겠지.
동력실은 입자발전소의 모든 에너지 흐름을 한눈에 관찰할 수 있는 구역.
맥퀸이 그곳을 방향으로 제시해 준 것이 의도적인지는 모르겠지만, 레녹에게도 나쁘지 않은 도착지점이었다.
우우우웅……!!
길게 굽이치는 복도를 따라 걷다 보니, 검붉은 경고등이 점멸하며 사방을 어둡게 밝히기 시작한다.
동력실 문을 열자마자 느껴지는, 당장이라도 무언가 튀어나올 것만 같은 으스스한 분위기.
천장에서 내리쬐는 따스한 조명의 온기마저 금방이라도 빼앗길 것만 같았다.
맥퀸이 말했던 것과는 달리 주위에는 사람이 하나도 보이지 않고, 오히려 신식 설비들에 전혀 걸맞지 않은 공허함이 자리를 메우고 있을 뿐.
함정인가.
레녹이 거기까지 생각하고 걸음을 멈춘 그 순간.
“거기, 문을 열고 들어왔으면 제대로 닫는 것까지 확실하게 해주겠나?”
동력실 한쪽 구석에서 심드렁한 목소리가 들렸다.
“유압 변화가 결과에 그리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변수는 최소한으로 줄이는 게 낫다고 모두 합의한 걸로 아는데.”
“…….”
“왜 대답이 없지?”
레녹은 그 목소리에 대답하는 대신, 음색이 들리는 방향을 향해 조용히 걸었다.
광활하기 그지없는 동력실의 정 중앙에 놓인, 형태를 알 수 없는 거대한 알을 닮은 기계장치.
내부를 훤히 드러낸 채 온갖 복잡한 부품과 마력의 흐름을 노출하고 있는 장치의 한쪽 끄트머리에서.
한 남자가 몸을 굽힌 채 태블릿으로 무언가를 쉴 새 없이 조작하고 있었다.
곱슬기가 섞인 검은 머리. 생각보다 더 큰 체구. 예상보다도 훨씬 강렬하기 그지없는 기세.
아무리 낮게 잡아도 성위급 이상의 마력사용자.
하지만 레녹의 감각에 들어오는 그런 정보들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지금 이 동력실에 혼자 남아 있는 이 남자가 누구인지, 레녹 역시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직감했던 것이다.
일을 할때 유난히 자세가 흐트러지고 건강에 좋지 않은 태도를 유지하는 것도.
어딘가 퉁명스럽게 느껴지는 묘한 말투조차, 그의 손녀와 똑 빼닮았다.
이 거대도시의 가장 깊고 어두운 비밀의 중심에 서 있었고, 죽음과 함께 모든 것을 비밀에 묻어버린 장본인.
발칸의 어둠을 모조리 손에 넣었다 공언받은 음지의 왕이자, 죽고 남긴 그 흔적만으로 아직도 수많은 이들을 고민하고 고통스럽게 만든 계획의 입안자.
블랙컨슈머 프로젝트의 주인.
“카이세 바쥬르.”
레녹이 무심코 입을 열었다.
“여기 있었군.”
“음?”
레녹의 말을 들은 남자가 고개를 퍼뜩 치켜들었다.
“넌 누군데 내 이름을 그렇게 막 부르는 거냐?”
마침내, 레녹은 그 프로젝트의 비밀에 누구보다 가까웠던 남자를 직접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