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694
약먹는 천재마법사 694화
마녀와 마탑(8)
제니의 드넓은 술집 로비를 가득 메운 거대한 불길.
시선을 불태우는 옥염의 파도가 레녹의 머리 위로 폭포처럼 쏟아져 내린다.
회전하는 화염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레녹과, 주변에서 당황한 사람들의 고함소리가 교차했다.
“반!”
“이게 대체……!!”
“타티아나, 당장 멈춰!”
제니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소리치는 사이, 타티아나 역시 이를 악물고 마력을 끌어올렸다.
하지만 손안에서 일렁이는 불새는 외려 그 형상을 펴고 일어나 천천히 레녹에게 다가서려 할 뿐.
식은땀을 흘리며 타티아나가 레녹을 향해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안돼. 탑주 승계과정이 작동해서 내 권한으로는……!!”
“그러니까 반이 왜 마탑주를 계승……!! 하, 이딴 걸 고민할 때가 아니지.”
그렇게 외치던 제니가 이를 악물고 고개를 내저었다.
레녹이 이제 와 갑자기 마탑주가 될 자격이나 능력을 갖추고 있다 고백해도 놀랄 일은 아니다.
다만 이 갑작스러운 사태에 레녹이 준비가 되어 있는지 알 수 없는 이상, 해야 할 일을 할 뿐.
“창문이랑 환기구 열고 온도 낮출 거야. 일회성 소화 아이템 가져올 테니까, 최대한 로비 안쪽에서 막아봐!!”
그사이에도 회전하는 불길은 순식간에 레녹과 불새만을 남겨두고 압축. 그 사잇길을 잇는 원형의 통로로 변했다.
주변의 모든 사물들이 일절 보이지 않는 불길의 통로가 의식을 스쳐 지나가는 그 순간.
[솔라 시스템 진입.]콰아아아!!
아지랑이로 일렁이는 불길이 넓게 구부러져, 거대한 불의 궁전처럼 레녹의 주위로 펼쳐졌다.
끊임없이 일렁이는 불길이 넘실거리며 왜곡된 시공 속에서 타오르는 장대한 풍경.
순식간에 술집 한복판에서, 불의 궁전 안으로 걸음을 들인 레녹이 말없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의식에 강제로 염상을 주입해 만들어낸 의념공간인가.’
봉황전이라는 아티팩트가 지닌 의념의 이미지를 그대로 끌어올려 대상의 눈앞에 펼쳐 보이는 신기.
자성영역처럼 심상의 정경을 강제로 현실에 구축한다기보다는, 반대로 대상을 가상의 의념공간 저편에 끌고 들어가는 방식이다.
화르르르륵!!!
시공을 불사르는 장대한 화염의 궁전.
그 저편에서 끊임없이 타오르는 거대한 여덟 갈래 태양의 제단.
쿠구구구구!!!
제단 위에는 각자 다른 빛과 형태를 지닌 태양이 끊임없이 발광하며 타오르고 있었다.
강렬하게 타오르며 열기를 내뿜는 태양도, 힘을 잃고 비틀거리며 꺼져가는 태양도 있다.
아예 태양의 형상조차 아닌 발광체가 있고, 어떤 제단 위에는 아예 태양이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바로 그 옆에 텅 비어있는 아홉 번째 제단.
공백의 제단 위에 똬리를 튼 거대한 불새의 형상이 레녹을 내려다보았다.
“…….”
펄럭!!
타티아나의 손끝에서 날아오른 불새가 레녹을 향해 천천히 다가온다.
마치 새로운 둥지를 찾은 새처럼, 그 의념 자체가 레녹의 내면 안에 녹아드려는 듯한 우아한 몸짓.
[적성인자 판단 완료. 정식승계과정 진행 중.] [아홉 번째 태양이 되신 것을 환영합니다, 계승자여.]모든 것을 불태우는 염열계열의 마법과는 정작 상반되는 차분한 전성.
뇌리를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와 함께 날개를 활짝 펼친 거대한 불새가 레녹의 내면으로 뛰어들려던 그 순간.
한 손을 들어 올린 레녹이 그대로 불새를 막아 세웠다.
치이익!!!
손끝에 덧바른 실드가 그 압박에 뭉개져 녹아내리지만, 여전히 레녹의 손바닥에는 열기 한 줌 느껴지지 않는다.
레녹의 내면으로 파고들기 위해 날갯짓하던 불새의 몸짓에 의아함이 섞이고.
이내 좀 더 힘을 주려는 듯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환영…… 환영합니다, 마법사여…… 환영을…….]이게 아니라는 듯 파닥거리는 불새의 몸짓을 가만히 바라보던 레녹이 말했다.
“처음 보는 의념을 선뜻 들일만큼 튼튼한 몸은 아니라.”
레녹의 대상지정 저항능력은 존재하는 모든 술식과 마법의 지정에서 자유롭게 만들어준다.
굳이 의도하고 억지로 받아들이지 않는 한, 인식과는 별개로 지정 자체는 언제든지 거부할 수 있는 바.
그렇기에 레녹은 이 의식공간에 진입하는 것은 내버려 두었으면서도, 봉황전의 의념이 녹아드는 것은 막아두고 있었다.
타티아나가 직접 들고 오기는 했으나, 이것은 엄연히 선대 마탑주가 남겨놓은 힘.
그렇다면 이 시점에 섣부르게 집어삼켰다가는 뒷감당이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런 사정을 이해하지 못한 불새는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리고만 있을 뿐.
[인수인계 진행 오류…… 적성인자 판단 재검토.] [극위사용자 인식 완료. 시정 조치 진행 중.]화르륵!!
더 격렬하게 타오르는 불길이 살아 있는 물리력이 되어 레녹의 눈앞에서 회전한다.
레녹의 주변을 둘러싼 불의 궁전이 격동하는 거대한 진동. 의식 자체를 크게 뒤흔드는 강력한 의념이다.
그런 불새의 염상에 조용히 귀 기울이던 레녹이 중얼거렸다.
“내가 염열마법을 익혔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군. 하물며 탑주 승계 과정이라…….”
레녹이 눈앞에서 흔들리는 불새의 형상을 보며 웃었다.
“마탑에서 봉황전을 추적하고 있던 것이 이런 의미였나.”
타티아나가 말했던 마탑의 정통성과 상징. 마탑 휘하 염주와 데드라이즈가 이 물건을 추적하고 있던 이유.
선대 마탑주가 남겨놓은 유일무이한 유산이자, 무엇보다 가치 있는 아티팩트.
봉황전이라는 이 화염체가 의미하는 바를 레녹은 이제서야 비로소 온전히 이해했다.
이것은 바로 블레이버 마탑의 주인을 정식으로 승계받기 위해 필요한, 말 그대로 [인장] 그 자체였던 것이다.
말없이 불새의 형상을 바라보던 레녹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상황 자체도 문제지만, 하필 이 시점에 탑주 계승을 진행하려 한다는 건…….’
레녹이 지닌 염열마법에 반응했다는 건 이해할 수 있지만, 그것이 탑주 승계과정으로 이어진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엄연히 블레이버 마탑주가 존재하는데도 그를 무시하고 레녹에게 승계 과정이 발동되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거기까지 생각한 레녹은 그대로 한 손을 들어 손목에 손을 가져다 댔다.
손목에서 염주 형태의 아티팩트를 잡아당겨 불새의 목 위에 던져 올렸다.
찰칵!!
[……?]“일단 멈춰놓고 설명을 듣는게 우선이겠어.”
천견의 유산 중 하나인 유물 정토신해진언. 공간결속의 기능을 보유하고 있어, 대상을 특정해 강제로 묶어두는 것이 가능하다.
아티팩트만으로는 부족할지라도, 레녹의 의념과 조합해 묶어버리면-
화르르륵!!!
그 순간 불새의 형상이 급격하게 구부러지더니, 레녹이 염주를 차고 있던 팔뚝 위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주변을 가득 메운 불의 궁전에서 한걸음 물러나 순식간에 의식세계를 빠져나온다.
동시에 레녹을 휘감고 타오르던 불길이 전부 압축되어 순식간에 레녹의 손안에서 사그라들었다.
“…….”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것은 놀란 표정으로 뻣뻣하게 굳어버린 조든과 타티아나의 얼굴.
바 뒤쪽 방에서 소화기를 비롯한 온갖 아이템을 들고나온 제니가 놀란 표정으로 소리쳤다.
“반!”
“대충 끝났다.”
레녹이 왼손을 가볍게 흔들며 웃었다.
“급한 대로 형상을 바꿔서 묶어두었어. 이 정도라면 반응이 격해지지 않는 선에서 현상을 유지할 수 있겠지.”
“그건…….”
피부 위를 휘감고 흐르는 불길처럼 회전하는 기묘한 화염의 형상.
그것이 방금 타티아나의 손안에서 빠져나온 봉황전의 의념체라는 사실을, 모두가 늦게나마 이해했다.
제니가 어안이 벙벙한 기색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다, 황급히 정신을 차리고 다가와 물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방금 그 불길은 또 뭐였는데?”
“그 전에 타티아나에게 먼저 설명을 듣는 게 좋을 것 같군.”
레녹이 그렇게 말하며 시선을 돌렸다. 그 눈짓을 받은 타티아나가 어깨를 움찔거렸다.
“봉황전이라는 아티팩트. 단순한 아티팩트나 유물이 아니야. 그렇지 않나?”
“……그래.”
작게 한숨을 내쉰 타티아나가 말했다.
“봉황전은 선대 마탑주가 남긴 유산이 아니야. 정확히 말하자면 그분의 유해 그 자체지.”
“유해라고……?”
믿기 어렵다는 제니의 말에 타티아나가 다시 말을 이었다.
“아주 강력한 마법사가 죽고 나면, 드물게 그 의념이 자리에 남아 물질화되는 경우가 있다.”
“…….”
“오래된 마탑에서는 대대로 그렇게 남겨진 의념물질을 가공해, 마탑의 권한을 승계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곤 하지.”
타티아나가 레녹의 팔뚝에 휘감긴 불길의 형상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강력한 술사가 죽고 난 자리에 남겨진 의념의 물질화. 레녹은 이미 그 존재에 대해 한번 들어본 적이 있었다.
기계도시 마키나에서 마이야 렌슬릿이 사용했던 천견의 의념물질.
이두팔비 신상에 박혀 있던 의념체를 사용해 기계도시 전체를 속이고 헤르메스 앞에 도달하지 않았던가.
선대 마탑주 역시 죽고 사라진 자리에 의미를 남겨둘 수 있을 만큼 강대한 마법사였던 것이다.
“이 물건이 위성의 엔진 따위로 사용되느니, 차라리 다른 마탑에게 넘겨 보존이라도 부탁할 생각이었지만…… 설마 네가 솔라 시스템에 인식이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어.”
“…….”
“언제부터 본 마탑의 마법을 익히고 있던 거지? 아니, 정말 염열마법으로 위계를 넘어서는데 성공한 거야?”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묻는 타티아나의 말에, 레녹은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타티아나의 설명은 레녹의 추측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재고해 보아야 할 사실이 몇 가지 있었기 때문.
그녀의 말대로라면, 현 탑주는 마탑 권한 승계를 위해 필요한 봉황전을 소중히 간직하기는커녕 위성의 엔진으로 팔아먹으려 했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그건 현 마탑주가 그만큼 마탑의 권한 승계 자체에 긍정적인 감정을 지니고 있지 않다는 의미일 터.
그를 통해 탑주에 대해 알 수 있는 사실이 무엇인가.
“반. 난 대답을 들어야겠어.”
타티아나가 살짝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네가 정말 마탑의 정당한 계승자 자격을 손에 넣었다면, 나는…….”
“나도 잘 모르겠군.”
레녹이 대답했다.
“아예 짐작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확신할 수 있을 만큼 지금 상황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탑주 승계 권한은 단순히 위계를 초월했다고 발동하는 게 아니야.”
타티아나가 설명했다.
“솔라 시스템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그 전당에 들어설 수 있을 만큼 강렬한 심상을 손에 넣지 않고서야-”
“우연한 기회에 비슷한 힘을 손에 넣었지. 내가 자격을 얻은 것은 그것 때문일 것 같군.”
“……어떻게?”
레녹이 뻔뻔하게 대답했다.
“오다가다 주웠다.”
“…….”
얼굴에 철판을 깐 듯한 대답에 다른 이들이 할 말을 잃은 표정으로 변했지만, 레녹은 이것이 그나마 원만하게 수습할 방법임을 알고 있었다.
봉황전의 존재로 인해 레녹이 염열계열 고유마법을 익힌 사실이나, 탑주의 자격을 얻었다는 사실을 숨길 수 없게 된 상황.
어설프게 얼버무리기보다는, 차라리 모종의 사정이 있어 대답하지 못한다는 식으로 나서는 것이 옳다.
“……그래. 당연히 말할 수 없는 이유가 있겠지. 봉황전의 내력을 설명하지 않은 내가 할 말도 아니고.”
형용할 수 없는 얼굴로 레녹을 바라보던 타티아나가, 이내 납득한 듯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레녹이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게도 이유가 있을 텐데.”
“마탑 내부 사정과, 탑주의 권한이 복잡하게 얽혀있어. 염주의 자리를 유지하는 한, 탑 내부 사정을 발설하지 않는다는 금제에서 벗어날 수 없기도 하고.”
타티아나가 레녹의 팔뚝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원래는 같은 염주가 아니라면 만지는 것도 불가능해. 그래서…….”
“그래서 네가 봉황전을 가지고 나올 수 있었다는 말이군. 그걸 숨긴 방법도 그렇고.”
레녹은 봉황전을 직접 다뤄보고 난 뒤에야, 타티아나가 마탑의 감시를 피해 봉황전을 들고 도망칠 수 있었는지 깨달았다.
그녀는 봉황전을 따로 봉인하거나 은폐해서 지니고 나온 것이 아니다.
타티아나는 선대 마탑주의 유산을 가지고 나오기 위해, 그 힘을 자신의 체내에 직접 녹여 버렸던 것이다.
헛웃음을 지은 레녹이 고개를 내저었다.
“시도한 순간에 죽을 수도 있었어. 무모한 도박을 했군.”
대마법사가 죽으며 남긴 의념물질이라면, 그 자체로 엄청난 마력과 힘을 내장한 마도병장이나 다름없다.
그런 물건을 계승할 권한도 허락받지 못하고 체내에 흘려 넣었다니, 맨정신으로는 시도할 수 없는 발상.
타티아나가 염열마법의 위계를 완성하고, 염주의 권한을 승계받았다고 해도 말이 안되는 일이다.
아주 조금이라도 계산과 판단이 엇나갔다면, 혈관부터 타오르는 고통 속에 죽어나갔을 터.
하지만 타티아나는 그런 레녹의 말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가 아니었다면, 스승님의 눈을 피해 도망칠 수는 없었겠지.”
“…….”
“이제 와서 말하기는 그렇지만, 내 스승님은 굉장히 치밀한 분이거든. 애매한 방법으로는 이미 발각당해 추살당하고도 남았을 거야.”
제 혈관 속에 봉황전을 녹이고, 피에 섞어 흐르게 만들면서 맨정신으로 발칸까지 도달한 것인가.
하기야 그 정도 무모한 수를 던졌기 때문에, 봉황전의 힘을 숨기고 도망칠 수 있었던 것이겠지.
사실상 봉황전이 타티아나와 동화된 것이나 마찬가지기에, 겉으로는 그 이상을 알아차릴 수 없었다.
거기까지 생각해낸 레녹이 그녀의 행적을 돌이켜보고 물었다.
“싸우기 버거워하던 것도 그 때문이었군. 그만한 유물을 체내에 녹여두고 있으면, 마력을 움직이기도 힘들었겠지.”
“맞아. 물론 염열마법을 포화계통에 특화되도록 어느정도 조정을 거친 건 사실이지만…….”
타티아나가 웃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전장에서, 내 한몸 건사하지 못할만큼 마법체계를 망가뜨릴 생각은 없었거든.”
“마지막에 피를 매개로 마법을 사용했던 것도…….”
가만히 기억을 되짚어본 레녹이 뒤늦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프먼과 말라시아와의 전투 직전, 타티아나는 자신의 피를 이용해서 마법을 사용하려 했다.
그때 레녹은 타티아나가 수명을 깎아먹는 혈마법을 사용하려는 줄 알았지만, 사실은 핏속에 녹여낸 봉황전의 힘을 사용하려 했던 것.
“무모했지만, 어쩌면 성공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 단순히 강력한 아티팩트가 아니니까.”
타티아나가 레녹의 팔뚝 위로 물결치듯 흐르는 화염의 파도를 바라보며 말했다.
“선대 탑주의 의념이 깃든 물건이야. 그분의 유지에 제대로 반응한다면, 형태를 바꾸고 공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거라 생각했어.”
“…….”
“설마 기다렸다는 듯 그쪽에게 붙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지만.”
낮은 가능성에 목숨을 걸었다는 인정. 하지만 레녹은 더 이상 그녀에게 무어라 말하지는 않았다.
그만큼 타티아나가 이번 일에 강한 각오를 다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기 때문.
그만큼 그녀는 자신과 함께했던 마법사들이 엔진의 재료로 갈려 나간다는 사실을 참기 어려웠던 것이겠지.
“작전에 실패해 죽는 것도, 버림패로 던져져 무의미한 희생을 반복하는 것도 감내할 수 있었지.”
타티아나가 중얼거렸다.
“마탑에 들어온 시점에서 전쟁에 나서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고, 불만을 가져본 적도 없으니까. 하지만…….”
붉은 머리칼 너머로 흐릿한 증오가 피어오르는 듯했다.
“……하지만 내 부하들을 이런 식으로 갈아버리는 건 안되겠어. 죽음조차 의미를 다했다면 받아들일 수 있지만, 이건…….”
말문이 막힌 것처럼 입을 다문 타티아나의 모습.
“타티아나.”
제니가 차분한 표정으로 조용히 어깨를 두들겼다. 타티아나가 쓴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쓸어넘겼다.
“쓸데없는 말을 했군. 이제 와서 이런 이야기를 해봤자, 토해내는 것밖에 되지는 못하는데…….”
“누구든지 그런 순간이 필요할 때가 있는 법이지.”
부드러운 말로 그녀를 위로하는 조든을 보며, 레녹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직접 보니까 확실히 알겠군. 이건 그만한 대가를 치를만한 가치가 있는 물건이다.”
“…….”
“마탑의 권한 승계뿐만 아니라, 존재 자체로 주변의 환경을 바꿔 버릴 수 있는 유물이지. 봐라.”
레녹이 팔을 묶은 염주를 살짝 풀고 손을 들어올렸다.
왼손을 그대로 근처 테이블에 가져다 댄 그 순간.
쩌저적……!!
나무로 만들어진 테이블이 말라 비틀어지더니, 한줌의 재로 변해 무너져버렸다.
“그게 왜? 마탑주가 남긴 물건이라면 그 정도 열기는 당연한 거잖아?”
“단순히 봉황전에서 뿜어내는 열기 때문이 아니다. 솔라 시스템에 진입해, 마탑의 열량과 마력을 끌어다 사용하고 있는거지.”
손을 거둬 들인 레녹이 말했다.
“데드라이즈와 마탑에서 이 물건을 엔진으로 삼으려던 이유가 있었군.”
그 의미를 깨달은 제니와 조든의 표정이 살짝 변한 사이, 레녹이 염주를 다시 채워 넣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사실상 대기권 위에 새로운 마탑을 만들어내기 위한 초석이나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