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80
그들의 목숨값을 이미 돈으로 지불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딜런이 보기에 그는 기업보다는 이 바닥이 훨씬 더 잘 어울리는 것처럼 보였다.
모든 마력을 쏟아붓고 허탈하게 주저앉은 레녹의 어깨를 탁탁 두드렸다.
“괜찮아?”
“…..그래.”
“방금 아주 끝내줬어. 보스가 이걸 봤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너랑 같이 일하고 싶어했을걸.”
레녹은 그 말에 대꾸하는 대신 피식 웃고 품안에서 새 연초를 한대 꺼내물었다.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방금 에덴과의 전투로 인해서 얻은 수확이 상당하다는 것을 스스로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계속해서 연구해오면서도 갈피를 잡기 힘들었던 고유마법.
그 중에서도 토르번 학파의 전격계열 고유마법을 에덴에게 빼앗아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은, 마침내 레녹의 마법이 더 나아갈 준비가 끝났다는 의미겠지.
고유마법을 제대로 익히지 않고서도 똑같은 마법을 사용한 것에는 그만큼 중요한 의미가 담겨져 있었다.
시공계열 고유마법을 위한 자리를 남겨놓고서라도, 공용마법을 베이스로 다른 고유마법에 손을 대는 것이 가능하다는 말일테니.
그리고, 이런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게 만들어준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레녹의 재능 때문이겠지.
뜻하지 않은 기연을 얻은 기분이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뿌듯한 성취감이 느껴졌다.
기분이 좋아지자 절로 씀씀이가 후해진다. 바로 옆에 있는 동료에게 한번쯤 호의를 베풀 수 있을 것 같았다.
레녹은 품에서 연초 한대를 꺼내 딜런에게 내밀었다.
딜런이 얼떨덜한 얼굴로 연초를 받아들었다.
“……고맙군. 가끔씩 그립긴 하더라고.”
“우리도 발전소 아래로 내려가보지.”
“내가 이런 말 하는것도 웃기기는 한데, 더 쉬지 않아도 괜찮겠어? 사실상 혼자서 일을 다 끝낸 셈이잖나.”
“문제없어.”
가장 힘든 전투가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마법사들간의 대결이라 그런지 승부는 한순간이었다.
차라리 격렬함의 정도로 따지자면 벡과의 전투가 훨씬 더 힘들었겠지.
약물로 펌핑된 레녹의 체력 자체는 아직까지 쌩쌩했다.
두 사람은 곧바로 킬리안 일행을 따라서 옥상에 난 계단으로 향했다.
발전소 아래쪽부터 공략하는게 아니라 옥상에서부터 아래로 내려간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기는 하지만, 원체 이 바닥이 그런 곳 아니겠는가.
따지고 보면 그리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여길 봐. 그놈이 정말 작정하고 트랩을 깔아놓았었군.”
발전소 곳곳에서 고통스러운 얼굴로 죽어있는 프리랜서들의 시체를 본 딜런이 혀를 내둘렀다.
아마 에덴의 계획도 발전소 밖에 전격의 폭풍을 뿌리고, 이쪽 전력을 발전소 안쪽으로 끌어들여서 일망타진하려는 방식에 가까웠겠지.
다만 레녹이 아티팩트를 써가면서 그 복잡한 과정을 한수로 꿰뚫었고, 에덴이 속수무책으로 당해버렸을 뿐이다.
레녹은 마력감지로 빠르게 발전소 안쪽을 훑고는 곧바로 지하로 향했다.
“다른 층은 안봐도 되겠어?”
“다른 팀원들이 모두 그쪽에 있다. 일단 가보는게 맞겠지.”
발전소 안에 살아있던 갱단원이나 군인들이 몇명 있는 듯 했지만, 이미 킬리안을 비롯한 다른 팀원들이 지나가면서 모조리 처리한 모양이었다.
과연 1층의 널찍한 복도를 지나 지하로 내려가니 다른 팀원들이 방 여러곳을 이잡듯이 뒤지고 있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뭔지 모를 서류가 풀풀 휘날리는 사무실에서 킬리안의 모습을 발견한 레녹이 물었다.
“일은 잘 돼가나?”
“어, 왔군. 몸이 괜찮으면 좀 도와줘.”
“별로 안 괜찮군.”
“………”
킬리안은 말없이 어깨를 으쓱거리고는 다시 사무실을 뒤지기 시작했다.
뭔가 특별한 물건을 찾기보다는 방 안에 놓인 가구들을 박살내면서 휘적대는 느낌에 가깝다.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레녹이 뭔가를 깨닫고 말했다.
“숨겨진 공간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래.”
킬리안이 대답했다.
“지하실 부근에서 묘하게 마력감지가 끊기는 기분이 든단 말이지. 이놈들이 갱단이라는 걸 감안하면, 이런 경우에는 보통 금고같은게 있어도 이상하지 않거든.”
“금고라…..”
자연스레 벡 클린턴의 시체에서 노획한 열쇠가 떠올랐지만 레녹은 순진하게 그것을 입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대신 기대고 앉아있던 낡은 소파에서 슬쩍 엉덩이를 떼고 일어났다.
“피곤하다면서? 앉아 있어도 돼. 어차피 다른 놈들도 지금 다 똑같이 지하실을 뒤지고 있을걸.”
“아니, 난 다른 곳을 찾아보지.”
“뭐…. 알아서 하라고.”
서재를 반쯤 박살내면서 벽면을 샅샅히 훑는 킬리안을 내버려두고 사무실을 나왔다.
뒤따라온 딜런이 레녹의 어깨너머로 물었다.
“금고가 지하실에 있을까?”
“발전소 제어실에는 이것저것 숨길 공간이 상당하겠지. 아마 찾아보면 뭔가 나오기는 할거다.”
레녹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머릿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킬리안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갱단의 금고보다 먼저 찾아야 할 것이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던 것이다.
에덴은 나름대로 뛰어난 마법사였고, 토르번 마탑이라는 전문적인 마법사 조직 출신이었다.
그런 마법사가 조직생활을 하고 있다면 어딘가에는 스스로의 연구실을 따로 마련해 두었을 터.
그곳에서 토르번 학파의 고유마법에 대한 학술정보를 얻을 수 있다면 큰 수확이 되겠지.
[뇌인]이나 [창뢰]같은 마법들을 연구하면 굳이 고유마법을 제대로 습득하지 않더라도 마법을 발전시킬 수 있다는 점은 분명했다.딜런에게 다른 팀원들과 같이 금고를 찾아보라며 떠밀고, 레녹은 다시 발전소 계단을 타고 위층으로 향했다.
갱단 보스라는 점을 감안할때 사용하는 집무실은 꼭대기 5층의 가장 넓은 집무실.
두꺼운 암막커튼으로 가려져 있어 어두컴컴하고 음침한 느낌이 나지만, 책상위에 걸린 명패를 보면 이곳이 에덴이 사용하던 방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혹시나 해서 주변의 물건들을 싹 뒤져보았지만, 당연하게도 마법과 관련된 어떤 물건도 찾아볼 수 없었다.
당연히 지하실은 아니겠으나, 그의 연구실 역시 어딘가에 숨겨져있다는 말이겠지.
눈을 감고 마력을 넓게 퍼트렸다.
방 안을 싹 훑어도 별다른 낌새는 없다. 정말로 연구실을 마련했다면 이 근처일 가능성이 높을텐데….
조금씩 범위를 부풀리면서 이상을 찾아나간다.
4층, 3층, 2층, 1층과 지하실…. 다시 위로…..
“…..아.”
그리고 깨달았다.
다른 층과 5층의 천장 높이가 확실하게 다르다.
불청객
숨겨진 공간이 있는 것이 확실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외부의 시선으로는 결코 확인할 수 없는 6층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겠지.
단서를 포착했다면 찾아나가는 것은 어렵지 않다.
방을 나와 복도 건너편에 위치한 작은 골방으로 향한다.
낡은 피아노 한대와, 수북하게 쌓인 담배꽁초를 제외하면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공간.
답은 정해져있었다.
피아노를 향해 마력을 끌어올리고 마법을 사용했다.
[언락]파지지직….!!
그 순간, 피아노의 하얀 건반에서 보이지 않는 스파크가 튕겨오르더니 레녹의 마법을 튕겨냈다.
놀라운 일은 아니다.
공용마법중에서도 굉장히 기초적인 잠금해제마법으로, 실력있는 마법사의 결계를 뚫어낸다는 것이 이상한 일일테니.
하지만 적어도 연구실로 향하는 열쇠가 이 피아노에 담겨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렇다면 마법이 아니라, 힘으로 열어젖히면 그만이다.
스파크를 무시하고 그대로 마력을 때려부어 피아노를 완전히 감쌌다.
마력으로 만들어진 구체에 피아노를 푹 담그듯이 밀어넣고 그 안쪽의 감각으로 낱낱히 숨겨진 마력의 구조를 파헤친다.
피아노의 건반을 타고 복잡하게 꼬여있는 마력의 흐름을, 레녹의 마력으로 일일히 잡고 풀어냈다.
찌지지직!!
마치 종이가 찢어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피아노의 건반이 귀신이라도 들린것처럼 알아서 움직이고.
그와 동시에 방의 천장이 활짝 열리고 계단이 떨어져내렸다.
쿵!
“……..”
가닥을 제대로 잡았다는 것을 깨달은 레녹이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보통 이런 방식으로 숨겨놓은 공간은 외부의 강제적인 침입에 반응하여 내용물을 모두 태워버리게 설계되어있어도 이상하지 않다.
방금 레녹처럼 정공법으로 보안장치를 조작해서 들어가는 것이 최선의 방법임이 분명했다.
계단을 타고 위로 올라가자 고개를 살짝 숙여야 하는 낮은 천장의 다락방이 눈에 들어왔다.
수북히 쌓여있는 책들과, 온갖 용도를 알 수 없는 재료들, 그리고 바닥에 흩어져 널린 촉매들의 존재를 확인한 레녹이 씩 웃었다.
바닥에 떨어진 책 한권을 펼쳐들고 내용을 확인한다.
[전격흐름제어 고급응용 연구일지 3본]“확실하군.”
도서관에서는 절대로 찾아볼 수 없는 고급이론. 그것도 고유마법에 관련된 아주 확실한 자료들이다.
그것도 에덴이 직접 고유마법을 연구하고 개발시키려고 노력했던 흔적들이 그대로 적혀있는 산물.
이런 책들을 보고 스스로 연구를 거듭하는 것만으로 레녹의 마법 경지는 한차례 더 진보할 수 있겠지.
그건 이번 작전에서 레녹에게 있어 다른 무엇보다 큰 수확이 틀림없었다.
‘그럼 이것들을 어떻게 가져가야 할까….’
눈대중으로 훑어봐도 족히 열댓권은 되는 분량. 촉매같은 다른 물건들까지 감안하면 지금 당장 들고 움직이기에는 너무 눈에 띈다.
일단 위치는 확인했으니 닫아두고 나중에 찾으러 오는 것이 맞겠지.
결국 레녹은 아쉬운대로 책 한권만 챙겨서 다시 지하실쪽으로 향했다.
다른 팀원들은 지하실을 한바탕 싹 쓸었는지 모두 복도에 나와있었다.
“아, 왔군.”
킬리안이 손을 흔들었다.
“아직도 찾지 못한건가?”
지하실에 숨겨져 있는게 정말로 갱단의 금고라고 한다면,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숨겼을리가 없다.
엄연히 그들도 수시로 이용해야 할 공간을 이 자리에 모인 마력사용자들의 눈에 뜨이지도 않게 숨긴다는건 말도 안되는 일이니.
“아니, 찾았어. 그런데 문제가 있어서 말이야.”
“금고에 걸려있는 보안장치가 너무 강력해서 쉽게 손을 대기가 어려워요.”
아그리아가 쓴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외부에서 비밀번호를 다섯 번 이상 틀리는 순간 안에 초고온의 열풍을 불어넣어 내용물을 모조리 박살내는 보안장치를 사용하고 있더군요. 그게 아니라면 생체인식을 사용해야하는데, 보스의 시체가 없는 이상 이것도 요원한 일이죠.”
묘하게 설명이 자세하다 싶어서 캐물었더니 아그리아가 쓴웃음을 지으면서 대답했다.
“…..저희쪽에서도 비슷한 구조의 금고를 개발해서 이곳저곳에 납품하고 있어요. 보안을 유지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침입자를 인지한 순간 내용물을 파괴하는 것일테니, 아마 이들도 비슷한 생각을 한 거겠죠.”
“금고의 위치는?”
“….설비 제어관리실에 있어. 일단 보고나서 이야기하지.”
일행은 곧바로 레녹을 데리고 자리를 옮겼다.
지하에 위치한 드넓은 공동. 천장까지 높이가 수십미터는 되어보이는 널찍한 제어관리실.
이미 작동을 멈춘 기계들과, 먼지가 쌓인 제어설비들을 지나쳐 공동의 벽면으로 향하자 레녹은 그들이 무엇때문에 이렇게 말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아예 방 하나를 통채로 개조해서 금고로 사용하고 있군.”
“아그리아가 말한 보안장치 때문에 쉽사리 손도 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야. 특별한 방법이 있을까?”
킬리안의 말에 레녹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돌아보았다.
“지금 마법사에게 보안장치를 해킹해달라는 부탁을 하는건가?”
에덴의 연구실처럼 술식으로 만들어진 결계라면 레녹 본인의 역량으로 어떻게든 뚫어낼 수 있겠지만, 이렇게 마도공학이 섞인 물건은 이야기가 다르다.
마법이라기보다는, 마력을 동력원으로 하는 공학의 산물에 가까운 물건이다.
킬리안도 그 대답에는 할말이 없었는지 멋쩍은 표정으로 입맛만 다실 뿐이었다.
‘그나저나, 이건 좀 예상과 다른데….’
벡 클린턴에게서 빼앗은 열쇠가 십중팔구 금고의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살펴보니 열쇠가 필요하기는 커녕 바늘하나 들어갈 틈도 보이지 않는다.
다른 팀원들은 레녹이라면 뭔가 방법이 있을거라고 생각하고 그를 데려온 모양이지만, 막상 그도 마땅한 해결책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점멸을 사용하면 안쪽으로 들어가는 것이 가능하기는 하겠지만….’
굳이 이 자리에서 귀중한 아티팩트를 한번 더 소모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일단 본사에 연락해서 비슷하게라도 해독코드가 존재하는지 확인해보겠습니다.”
아그리아가 슬쩍 자리를 피하고, 다른 팀원들도 하릴없이 소강상태에 들어선 상황.
레녹은 가만히 보안장치를 바라보다가,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키패드에 손을 올리고 마력을 불어넣었다.
원리는 전혀 다르더라도 같은 마력으로 작동하고 있다면 뭐라도 알아낼 수 있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