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805
약먹는 천재마법사 805화
화신술식(7)
권사의 화신과 교단의 신녀가, 감각이 존재하지 않는 영계 너머에서 서로의 존재를 인지한다.
말없이 신녀를 바라보는 화신의 형상과 그 자리에 멍하니 멈춰선 신녀의 모습.
레녹은 마력감지를 끌어올려, 아무런 말없이 두 영체의 형상을 응시했다.
지금 신녀에게 자신의 화신체를 보여준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레녹 역시 알고 있었기 때문.
그리고 신녀는, 그것만으로 모든 것을 이해한 것 같았다.
[……그렇군요.]놀라는 일도, 화를 내거나 두려워하는 일도 없이 양손을 모으고 기도할 뿐.
그 기도는 눈앞에 서 있는 화신체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를 향하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것이 당신의 뜻이라면.](…….)
말없이 신녀를 굽어보는 화신을 뒤로하고, 그녀가 천천히 레녹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제 공능을 이용해, 영계를 넘어 귀하를 무간에 데려다 드리겠습니다.]그렇게 말한 신녀가 손짓하자, 반지 안에서 인도자의 영혼이 솟구쳐 신녀의 앞에 섰다.
레녹을 보호하는 화신체와 그 양 옆에 선 인도자와 신녀의 영체.
각기 다른 존재감과 광채를 발하는 세 명의 영체가 레녹을 둘러싸고 보호한다.
[영계에 위치한 방대한 영혼의 흐름은 요르타의 업보……. 만귀야행에 실패하고 버려진 영혼이 쌓이며, 원념의 바다를 구축한 것입니다.]신녀는 인도자의 영체를 앞세운 뒤 양손을 모으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저는 그렇기에 인도자의 존재를 중심으로, 이곳에서 새로운 야행을 구축하여 영계를 건널 생각입니다.]그 순간, 인도자의 영체가 영혼의 파도 너머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뒤를 따르는 군령 몇을 데리고 헤아릴 수 없는 흐름을 거슬러 움직인다.
쿠과과과!!
불순물을 확인한 영혼의 파도가 그 존재를 갈아 지우려 하지만. 인도자의 영은 더욱 강렬하고 선명한 의지를 발하기 시작했다.
신녀는 그런 인도자를 향해 손을 뻗으며 말했다.
키이이잉!!
천천히, 인도자의 뒤를 따르는 영의 숫자가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한다.
수십에서 수백, 수백에서 수천.
영계 너머를 흐르는 영혼의 파도 너머에서 떨어져나온 군령들이 홀린 듯이 인도자의 뒤를 따른다.
순식간에 무수한 영혼들이 도열하여 또 다른 흐름을 구축한다.
오오오오오오!!!
영혼들이 다 함께 내지르는 노랫소리가, 먹먹해진 귓가로 울려 퍼지는 듯하다.
아무런 지성도 없이 영계를 헤매던 영혼들이 인도자를 따라 집결해 거대한 행렬을 만들고.
어떠한 감각조차 느껴지지 않는 이 영계 속해서 새로운 길을 만들어 열어젖힌 그 순간.
영계 너머에서 잃어버렸다 생각한 오감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화아아악!!
어느새 레녹은, 영혼의 빛으로 빛나는 거대한 다리 위에 서 있었다.
한 치 앞도 종잡을 수 없던 막막한 공허 너머에서, 의미와 기준이 되어 존재하는 영혼의 다리.
그 다리를 구축하는 것은, 인도자를 따라 끝없이 걸으며 노래를 부르는 군령들의 존재 그 자체다.
물질계와 영계 저편을 이어붙이고, 다음으로 향하는 대답이 되기를 바라며 만들어진 교각.
바로 그것이 요르타의 만귀야행이 지닌 목적이었던 것이다.
화악!!
흐릿하게 빛나는 영혼의 다리 위에 서서 주변을 돌아보던 그 순간, 신녀의 영체가 레녹의 곁에 내려앉았다.
[가시지요.]“……교단의 신녀란.”
말없이 신녀를 돌아본 레녹이 고개를 저으며 웃음을 흘렸다.
“인간에게 허락된 소질이 아니로군. 제사장의 자질을 타고났다 하나, 요르타의 야행을 즉석에서 이 정도까지 재현할 수 있는 거냐?”
영혼의 다리를 구축하고 야행을 인도하는 것은 인도자의 영이지만, 야행의 의식을 개시해 주관하는 것은 오로지 신녀 세이나 나이드리의 힘이다.
수천, 수만의 영혼들을 그러모아 거대한 흐름을 구축하고, 하나의 의미가 되도록 개편하는 것.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형적인 관념과 절차를 실재하는 법칙으로 정리해 의식의 형태로 구현하는 일.
하지만 설마 교단의 의식이 아닌, 요르타의 야행조차 모방해 재현할 수 있는 정도일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교단의 신녀이자, 교단 내부 모든 의식을 주관하는 제사장의 재능.
그것은 교단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의식까지 대행할 수 있을 정도로 압도적이고 고절한 재능이었던 것이다.
신녀는 그런 레녹의 말에 잠시 시선을 들어, 자신이 만든 영혼의 다리를 바라보았다.
[대심판관이 일전에 설명하였듯이, 교단과 요르타는 한때나마 같은 것을 마음에 품었으니까요.]“…….”
[만귀야행의 본질과는 별개로, 그 형태와 방식은 교단의 의식과 일견 닮아 있습니다.]신녀가 그렇게 말하며 천천히 다리 위로 걸음을 옮겼다.
“그건…….”
그것은 조악하다거나, 따라한다는 겸손한 말로 설명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군령도시 전역에서 모든 힘과 자산을 그러모아 시도했던 승천의식.
그것을 오직 신녀 하나의 재능과 의지로 군령들을 개편해 따라할 수 있다는 의미.
인도자의 영을 기점으로 삼았다고는 하나, 애초에 그런 것이 가능한 재능자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재능의 방향과 크기는 레녹과 비교할 수 없을지라도, 그 희소성으로 따지자면 레녹과 비견될 만한 수준의 제사장의 재능.
레녹은 그제서야, 어째서 화신체가 신녀의 영을 이 자리에 불러내려 했었는지 깨달았다.
신녀 세이나 나이드리가, 자신의 화신체를 본 뒤에야 자신의 역량을 다해 레녹을 도울 것이라는 사실을.
화신체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습니다.]나직하게 중얼거린 신녀가 시선을 돌렸다.
“…….”
[배교자에게 흔히 느껴지는 불쾌함이 없던 것도, 끝을 알 수 없던 귀하의 재능도, 불현듯이 찾아오는 기시감도.]레녹에게 얼굴이 보이지 않게 고개를 치켜든 그녀가 중얼거렸다.
[계시의 공능을 그리 능숙하게 다루던 것조차…… 모두 이유가 있던 것이었군요.]역시 그녀는, 레녹의 화신을 보자마자 모든 것을 알아차렸던 것이다.
레녹과 교주가 설명할 수 없는 인연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그를 보호하듯 둘러싼 창백한 헤일로가, 신녀가 섬기는 누군가의 것과 무척이나 닮아 있다는 것도.
그리고 신녀 역시 어렴풋이 그것을 짐작하고 있었다는 사실까지.
이미 실재하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서야, 가슴 속 깊이 묻어두었던 미혹과 의심들이 떠올라 의미를 더한다.
신녀 역시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음에도, 이 순간이 그가 안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에,
자신에게 허락된 공능을 전력으로 사용해, 레녹을 위해 이 영계 속에서 길을 열어준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지?”
레녹은 무심코, 신녀를 향해 그렇게 되묻고 말았다.
자신과 교주 사이에 존재하는 연관성. 절대적인 신앙에 섞인 레녹의 존재.
교단의 신녀가 그에 대해 어떤 감상을 품었는지 이해하고 싶어서.
“……기대와는 달라서, 실망했나?”
아니, 다르다. 레녹은 그렇게 물은 뒤에야 자신의 본심을 깨달았다.
레녹은 신녀를 통해, 자신의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를 미리 비춰보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언젠가 가면을 모두 내려놓고 진실을 알려주었을 때, 그를 믿고 의지하는 이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알고 싶어서.
두려워하거나, 실망하거나, 화를 내지는 않을까 고민되어. 무심코 그 심정을 되묻고 싶었던 것이다.
무엇에도 의지하지 않고, 혼자서 답을 찾아내겠다고 몇 번이고 다짐하지만.
절대적인 마법사의 이성을 지니고도 마음은 바라는 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기대하지 않으려 해도 기대하고, 의지하지 않으려 해도 의지하며.
이미 마음속 어딘가에선 그 사실만으로 위안을 얻곤 하는 것이다.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 것을 생각하며 믿음을 보낸 적은 없기에.]그런 본심을 깨닫고 레녹이 무심코 가면을 쓸어내린 찰나. 신녀가 말했다.
[그리고 질문에 대해 올바른 대답을 드리기에는, 이제 상황이 여의치 않군요.]“…….”
그 말대로, 신녀의 영체가 당장이라도 이 자리에서 사라질 것처럼 위태로이 흔들리고 있었다.
수명을 다해가는 촛불처럼, 흐릿하게 깜박이고 흔들리며 흩어진다.
레녹과 함께하며 한순간도 흔들리지 않았던 신녀의 영체가, 대번에 그 의지와 존재감을 잃어가고 있다.
제아무리 신녀가 지닌 제사장의 재능이라 해도, 홀로 야행을 주관해 영계를 잇는 다리를 만드는 것은 엄청난 부담.
하물며 육신을 잃고 영체로서 공능을 휘두르는 것은 신녀에게 허락된 역량을 아득하게 뛰어넘는 위업이었던 것이다.
[귀하, 제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어느새 영혼의 다리보다 흐릿해진 신녀의 영체가, 레녹을 바라보며 살풋 웃었다.
“…….”
세이나 나이드리가 신녀로서 수행하는 마지막 사명.
그녀는 일전에 레녹에게 약속했던 대로, 무간 너머에서 마지막 역할을 다할 생각인 것이다.
승천자의 언령에 저주받아 죽은 뒤에도, 영혼만이 남아 구천을 떠돌면서도 그녀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 과연 무엇일까.
방향이 틀린 믿음을 광신이라 칭하며 비웃고 깎아내리지만, 레녹은 그 의지가 얼마나 강력하고 위험한 것인지 이제는 이해하고 있었다.
어느새 인도자의 영체는 한참이나 그들을 앞서나가, 저 멀리 흐릿한 빛으로 변해 있었다.
무수한 영혼들을 그러모아 이어지는 다리의 저편에서, 영계의 공간이 접히며 흑색의 거대한 입구로 이어지는 것이 보인다.
역문을 통해 영계를 넘어, 물질계의 경계선으로 빠져나오는 무간의 입구.
요르타에 도착해, 위령탑을 돌아와 오랜 시간이 지나 마침내 다시 이 앞에 섰다.
진혼정과의 갈등 끝에 도망쳐 유령용의 요새에 도착해, 화신 술식을 손에 넣고 이곳을 다시 찾아오기까지.
이제는 이 너머에서 레녹이 바라던 의미를 찾을 수 있기를.
아직 이루지 못한 목적과 알지 못한 지식을 손에 넣기를 바라기만 할 뿐.
천천히 숨을 들이쉰 레녹이 신녀를 지나쳐 무간의 입구 너머로 발을 들이민 그 순간.
휘오오오……!!
레녹은 메마른 바람이 불어오는 어두운 성당 안에 서 있었다.
“…….”
그 너비와 면적을 짐작할 수 없을만큼 거대하고 광대한 대성당의 정경.
헤아릴 수 없는 촛불들이 바닥과 벽면 곳곳에서 위태로이 흔들리며 주변을 비춘다.
사람의 기척이 느껴지기는커녕, 아주 오랫동안 누군가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처럼 쓸쓸하고 조용한 공간.
이곳이 바로 대륙의 모든 저주의 흐름을 관측하는 고대의 성소. 요르타의 무간 내부라는 말인가.
마치 누군가에게 기도를 드리기 위해 세워진 듯한 성당의 모습.
그 안에 자리한 무수한 촛불들의 형상.
천천히 성당 안으로 걸음을 옮기던 레녹은, 주변을 밝히는 촛불을 바라보다 걸음을 멈춰 세웠다.
[오로크네의 쇠약] [말디온의 노화 저주]조용히 흘러 녹아내리는 촛대 아래에는, 하나같이 작은 명패로 무언가가 적혀 있었다.
[헤드윙 엘더사르의 원망] [에드몽의 전이의식 오염] [오니온의 일곱 번째 영혼봉인]“…….”
촛대 명패마다 적혀 있는 불길한 단어들.
저주뿐만 아니라 원망, 후회, 오염과 같은 온갖 부정적인 언어로 정의되는 개념의 형상.
명패가 걸린 촛불들은 제각기 다른 크기와 빛으로 타오르며, 천천히 성당을 비추고 불을 밝힌다.
아까보다 훨씬 흐릿해진 신녀의 영체가, 레녹의 뒤에서 중얼거렸다.
[이곳을 밝히는 모든 촛불들이…… 무간에서 관측되는 저주를 일컫는 말이군요.]대성당을 비추는 무수한 촛불들.
그 촛불들 하나하나가, 물질계와 영계의 경계에서 관측되는 저주들을 형상화한 결과라는 말인가.
레녹은 말없이 그 촛불들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걷는 속도를 높여 성당을 주파하기 시작했다.
이 성소에서 대륙의 모든 저주와 원망을 관측해서 보고하고 있다면, 탈태의 저주 역시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을 테니까.
수호령수에게 걸려 있는 탈태의 저주. 그 이름을 찾아 촛불을 꺼트리기만 하면 되는 걸까.
레녹이 그렇게 생각하며 무심코 성당 중앙을 향해 걸음을 옮기던 그 순간.
화악!!
광대한 대성당의 예배당 아래, 무수한 촛불 사이에 둘러싸인 무언가를 발견하고 걸음을 멈춰 세웠다.
쿠우우웅!!
무수한 촛불들 사이에 둘러싸여, 은은하게 빛을 발하는 거대한 흑색의 옥좌.
인간이 아니라 거인을 위해 만들어진 듯한, 수십 미터 크기의 조형물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압도적인 크기.
그 거대한 옥좌의 가장 안쪽에, 한 남자가 쓰러질 것처럼 힘없이 기대 앉아 있었다.
“…….”
잠들듯이 기대앉은 그 육신 위로 매여 있는 수십 갈래 굵직한 영혼의 사슬.
함선을 정박시킬 때나 사용할법한 굵직한 사슬이 옥좌 사방을 묶고 무간의 공간 전역을 이어붙이고 있다.
수십 갈래 사슬 위로는 수만 장의 부적들이 빼곡하게 덮여, 한눈에 느껴질 만큼 강대한 봉인을 구축하고 있었다.
[……여기 계셨군요.]목에 메인 듯이 그 모습을 바라보던 신녀의 독백.
레녹은 그 말을 듣고서야, 지금 자신이 마주한 것이 무엇인지 확신할 수 있었다.
일전에 위령탑 너머에서 무간을 엿보면서 한번 확인했던 풍경.
시간이 무색해 보일 만큼 정적이면서도, 마치 그 공간 자체에 아로새기듯이 남겨진 시체의 형상.
승천자 도래.
레녹은 무간의 성소, 대성당의 중심에서 마침내 그 시체를 마주한 것이다.
[마침내, 저희가 나누었던 약속을…… 귀하?]신녀의 말을 무시하고 성큼 도래의 시체를 향해 걸음을 옮기는 레녹의 모습.
무수한 사슬 더미에 가려진 도래의 유해가 가장 잘 보이는 곳까지 걸음을 옮긴 레녹이 의념을 끌어올렸다.
우웅!!
그 의지에 따라 나온 레녹의 화신체가 도래의 유해 바로 앞에 섰다.
[무엇을…… 하시려는 겁니까?]“화신체의 모습을 확인한 순간부터, 도래의 유해를 마주하면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었지.”
일말의 불길함을 느낀 신녀의 질문에 레녹이 곧바로 대답했다.
“이 자리에서 도래의 유해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일이다.”
[……그릇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말씀은……?]레녹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 대신 술자의 의지에 호응하듯, 창백한 화신이 천천히 레녹을 대신해 도래를 향해 걷기 시작했을 뿐.
안개의 사슬 사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스쳐 지나간 화신체가, 도래의 유해 앞에 서서 시선을 들어올린 순간.
파아아앗!!
화신체가 그대로 도래의 유해 안으로 스며들듯이 사라졌다.
[……!!!!]신녀가 그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에 숨을 삼키고.
레녹이 팔짱을 낀 채로 그 모습을 지켜보며 고개를 끄덕인 찰나.
“…….”
잠들듯이 눈을 감고 있던 승천자의 유해.
그 무거운 눈꺼풀이 천천히 떨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