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810
약먹는 천재마법사 810화
승천자 도래(5)
쩌어엉!!
레녹과 도래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충돌하는 것과 동시에, 그 이상의 속도로 뒤로 튕겨져 나갔다.
옥좌 아래로 빠른 속도로 떨어지는 레녹의 신형을 보자마자 도래가 떨어지는 사슬 파편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옥좌 위에 올라탄 승천자의 어깨가 느릿하게 회전할 때마다, 손끝의 사슬 파편이 사라지고.
동시에 레녹이 서 있는 위치에 엄청난 속도로 내려 찍혔다.
쿠과과과!!!
그 충격으로 광활한 대성당의 풍경이 쉴 새 없이 흔들리지만, 의외로 무간의 공간이 찢겨나가는 일은 없다.
물질계와 영계의 경계선에 위치한 저주의 성소.
그렇기에 단순히 물리적인 충격만으로는 쉽사리 훼손되거나 파괴되지 않는 것일까.
레녹은 그렇게 생각하며 마력사를 쥐고 도래가 서 있는 옥좌 주변을 엄청난 속도로 회전.
도래가 쏘아내는 사슬 파편을 모조리 피해내며 빠르게 성소 주변을 샅샅이 훑었다.
“자신만만하게 지껄인 것 치고는 이렇다 할 재간이 없는걸.”
쿠웅!!
빠른 속도로 옥좌 주변을 주파하며 내리 찍히는 사슬 파편을 피해내는 레녹을 보며, 도래가 웃었다.
새하얗게 탈색된 머리칼을 한 손으로 쓸어올리는 승천자의 자태.
반대로 먹물처럼 어둡게 물든 팔뚝 위로 새겨진 근육의 갈래는 이 거리에서도 선명하게 보인다.
“언제까지 그렇게 내 모습을 구경이나 할 생각이지?!”
끼이익!!
하지만 레녹은 도래의 말을 무시하고, 마력사에 매달린 채 손을 아래로 뻗었다.
사슬 파편의 빗속에서 망가진 촛대를 주워들어 관찰한다.
무간의 성소. 이곳에서 촛불의 형태로 관측되는 저주의 존재.
하지만 이곳에서 촛불이 꺼진다고 하여, 관측된 모든 저주가 바로 소멸하는 것은 아니었다.
촛불이 꺼지는 것과 동시에 소멸하는 저주도, 새로운 촛불이 되어 이 성소에서 관측되는 저주도 있다.
‘관측을 통해 존재를 인지하고, 그 흐름을 이 성소에 투영하는 것이 본질인가.’
무간의 힘을 통해 저주를 건 대상이 누구인지, 어떤 연유로 저주가 걸렸는지는 알 수 있지만.
이곳에서 관측되는 저주의 촛불을 꺼트린다고 현실의 저주가 바로 소멸하는 것은 아닌 바.
그렇다면 어째서 유령용 야오 쉰은 레녹에게 무간에서 자신의 존재를 상징하는 저주를 지워달라고 한 것일까.
레녹은 그것이 유령용의 존재가 관측을 필요로 하는 독특한 원리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일 거라 생각했다.
단지 이곳에서 관측되는 것만으로 소멸하지 않는 형태의 저주가 있다면, 반드시 무간에서 손을 써야만 그 존재를 소멸시킬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레녹은, 바로 그것이 화신 술식의 의의와도 상통한다는 사실을 직감하고 있었다.
두두두!!
옥좌 끄트머리에 마력사를 걸고 순식간에 도래와의 거리를 좁힌다.
기다렸다는 듯 사슬 파편을 움켜쥐고 휘두르자, 승천자의 머리 위를 중심으로 바람이 두 쪽으로 갈라져 회전.
콰아아아!!!
엄청난 풍압이 레녹을 도래의 발아래 찍어누르려는 듯이 쏟아져 내렸다.
하지만 레녹은 대번에 점멸로 그 공세를 뛰어넘어 피해내며, 도래의 지척까지 접근했다.
조작계열 고유마법
[사견주박(絲牽鑄迫)]그림자 로브 사이로 뻗은 손길이 마력사에 묶여 어지러이 흔들리고.
그 진동을 따라 도래가 사출하는 의념을 모조리 피해 순식간에 그 앞까지 도달.
마력사 수백 가닥을 동시에 조작해, 저항조차 하지 않는 도래의 명치에 그대로 꽂아 넣은 그 순간.
[만라선통(蔓羅線通)]쩌어어엉!!
도래의 피부 위로 우윳빛의 광채가 번뜩이며 레녹의 술식을 모조리 튕겨냈다.
지금까지 공방을 회피하던 태세와는 달리, 대번에 자신의 간극을 파고드는 레녹의 날카로운 기세에 도래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호오, 방금 움직임은…….”
“물리적 간섭을 차단하는 결계. 혹은 그에 비견되는 아주 강력한 가호의 일종이군.”
튕겨져 흩날리는 마력사를 모조리 거두어 회수하는 것과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놀란 듯이 자신을 바라보는 승천자의 새카만 동공을 보며 레녹이 물었다.
“애초에 이 세계의 힘이 아니야. 교주의 그릇으로 내려받은 축복이 아직 그 육신에 남아 있는 건가?”
도래의 의지와는 별개로 그 육신 자체를 철저하게 보호하는 우윳빛의 광채.
본디 교주를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되는, 신비하게까지 느껴지는 축복이자 가호의 일종.
도래는 바로 그 힘을 온전히 통제하기 위해 아직까지 전력을 다하지 않았던 것이다.
“교주의 가호. 네 힘이 아닌 축복이 이제서야 뒤늦게 발동하고 있다면…….”
새하얗게 탈색된 도래의 머리칼을 바라보며 레녹이 말했다.
“그 육신에 깃든 내 화신으로 인해 벌어진 일이겠지.”
“…….”
지금 승천자의 육신을 움직이는 것은 한없이 도래 자신에 가까운 존재.
하지만 레녹은 그 열쇠가 된 것이, 자신의 화신 때문이라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었다.
구세계의 권사. 그것도 교주에게서 비롯되었을지도 모르는 화신체의 힘이라면.
교주의 환상을 평생 목도한 도래를 자극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는 계기였을 터.
레녹은 도래의 기억을 본 직후 그것을 깨닫고, 어째서 도래가 레녹을 죽이려 하는지도 이해한 것이다.
화신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다면, 레녹과 교주 사이에 존재하는 관련성을 도래 역시 짐작하고 있을 터.
교주의 흔적을 지워 없애려는 도래라면, 그에게 있어 레녹은 가장 먼저 죽여 없애야 할 적이나 다름없다.
“그래. 그건 아직 내 육신 안에 잠들어 있다. 지금 이 가호는 그것 때문에 깨어난 힘이지.”
도래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화신을 완전히 흡수한 뒤에 너를 죽일 생각이었건만…… 생각만큼 잘 되지는 않는군. 그건 네 화신이 교주에게 비롯된 힘이기 때문이겠지.”
도래가 레녹의 화신을 흡수하지 못하는 것은, 엄밀히 따지자면 레녹 자신에게서 비롯된 힘이기 때문.
하지만 눈앞의 승천자는 그 화신이 교주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그 존재를 자신의 육신에서 쉽게 지워버릴 수 없다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누구냐고 물었었지. 반대로 너는 누구냐?”
레녹을 섬뜩한 시선으로 응시하며 도래가 물었다.
“너는 이 세계에서 교주를 대변하는 존재인가? 아니면 나와 같이 교주를 위해 안배된 또 다른 그릇인가?”
[…….]뒤에서 필사적으로 기도를 올리는데 집중하던 신녀조차 이쪽에 시선을 던지는 것이 느껴진다.
그녀 역시 레녹과 화신체의 힘을 보고, 그와 교주와의 관계성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레녹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태연하게 도래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그건 내가 대답해야 할 질문이 아닌 것 같군. 난 그렇게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까.”
부우웅!!
사방에서 흩날리는 사슬 파편을 마력사로 잡아채, 길게 원을 그리며 회전.
원심력으로 가속한 파편을 그대로 방향을 바꿔 도래의 머리 위에 내리찍었다.
콰아앙!!
그 자리에서 피할 생각도 없이 사슬 파편을 받아낸 승천자의 육신을 보며 레녹이 말했다.
레녹의 목소리가 순간 흐릿하게 변했다.
“그가 남긴 힘과 믿음. 수단과 방식. 세계를 넘어온 이유…… 무엇하나 제대로 알지 못하지.”
“…….”
“오히려 네 존재가 나보다 훨씬 더 그에게 가깝지 않겠나?”
쿠웅!!
머리 위에서 부서져 쪼개지는 안개의 사슬 파편.
날카롭게 벼려져 사방을 할퀴는 파편 덩어리조차, 도래의 몸을 휘감는 우윳빛의 가호에 막혀 사라진다.
도래는 그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다 중얼거렸다.
“교주는 내 육신을 통해 현세에 강림했고, 그 자리에서 강제로 내 위계를 끌어올려 나를 승천자로 만들었다.”
귀가 의심될 정도로 충격적인 고백.
다른 인간의 육신을 빌려 현신하는 것만으로, 위계를 끌어올려 승천에 준하는 경지로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인가.
얼마나 궤가 다른 지식과 힘을 쌓아 세계를 뛰어넘었기에,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가능한 것일지.
레녹이 그 초월적인 위업을 위해 필요한 일을 생각하며 멈칫거린 찰나. 도래가 말했다.
“하지만 교주가 떠난 뒤, 내 몸은 그 여파를 받아들이지 못했지. 한계를 넘은 내 정신은 그대로 붕괴했고…….”
말을 멈춘 도래가 담담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렇게 미쳐 버린 채, 대륙을 돌며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잡아죽였다.”
“…….”
“나 자신을 바쳐서라도 다음을 보려 했지만…… 교주는 처음부터 내가 원하는 바를 들어줄 생각이 없던 거지.”
도래 자신은 교주와의 거래를 받아들여 승천에 도전할 자격을 손에 넣었지만,
자기 자신을 내던져가며 대답을 구하던 그 소망조차 후회로 일그러진 기억이 되어있을 뿐.
레녹은 그 말을 듣고서야, 승천자 도래가 어째서 다른 승천자와 다르게 느껴지는지 이해했다.
승천자 도래는 스스로의 의지를 통해 승천에 도전하여, 9레벨의 위계에 오른 초월자가 아니다.
교주의 존재를 수육받아, 그 의지를 통해 무엇보다 완벽하게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승천자.
그렇기에 그 정신은 온전한 승천자로 존재하지 않고, 그 감성 역시 자격을 얻은 이들과는 멀어져 있는 것.
“수백 년 넘게 미쳐 버린 채로, 삶과 죽음을 오가며 생각했다.”
온몸이 새카맣게 물든, 칠흑의 육신을 번뜩이며 그가 레녹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결국 교주가 내게 제시한 대답이 이것이었다고.”
“…….”
“이 세계의 모든 것을 광기에 물들여, 학살에 가까운 파괴와 자학을 병행하며 파멸로 향하는 것이 그의 소망이라면…….”
레녹의 코앞에서 멈춰선 승천자가, 형형한 안광을 흩날리며 속삭였다.
“내가 직접 그 모든 인과를 끊어버려야겠다고 말이다.”
교주의 그릇으로서 살아온 도래라면, 레녹의 화신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모를 리가 없겠지.
교주가 남긴 모든 흔적을 지우고 싶어 한다면, 레녹을 살려두지 않으리란 사실 역시 불을 보듯 뻔했다.
신녀의 영체와 함께 무간에 들어와, 계시의 공능을 사용해 기억을 들여다본 시점에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상황.
하지만 레녹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말없이 품안에서 새로운 앰플을 꺼내 팔뚝에 꽂아 넣었다.
치익!!
“교단의 방식이 옳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네가 왜 그것을 바라는지도 이해할 수 있지.”
혈관 위로 직접 주입되는 영약의 영롱한 색채를 바라보며 레녹이 물었다.
“하지만, 네가 바라는 것이 교주와 무엇이 다르지?”
“…….”
“교주와 다른 방향으로 그와 관련된 인과를 모두 끊어낸다면, 결국 너 역시 종국에는 파멸만을 바라는 것 아닌가?”
침묵하는 도래를 향해 레녹이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결국 우리는 우리가 보고 들은 대로밖에 답할 수 없다. 아무리 숭고한 가치를 바라고 원한다 해도, 알지 못하는 의미를 만들어 낼 수는 없지.”
그렇기에 레녹은 이렇게 세계의 비밀을 찾아내고, 남겨진 실패를 들여다보고 있다.
확실한 대답을 내기 전 조금이라도 더 알기 위해. 조금이라도 더 보고 들으며 답습하지 않기 위해.
“교단의 답이 틀린 것과는 별개로,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망자의 몫이 아니다.”
천천히 자세를 낮추고 마력을 끌어올린 레녹이 고개를 기울였다.
“교주에게 복속되어,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잊은 광전사는 더더욱 아니지.”
“……그렇군.”
쿠구구구구구!!!!
그 이상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레녹이 그렇게 말한 순간, 도래의 얼굴에서 모든 감정이 깨끗하게 씻겨나가는 것만이 느껴졌을 뿐.
레녹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느릿하게 온몸의 감각을 일깨우기 시작했다.
키이잉……!!
9레벨의 승천자. 그것도 그 육신의 기억을 온전히 가지고 태어난 존재.
완성된 승천자의 육신이 지닌 잠재력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하나, 레녹은 그럼에도 이 자리에서 승산을 점치고 있었다.
광전사의 위계로 승천자에 올랐으나, 정작 지금 눈앞에 서 있는 도래는 미쳐 있지 않다.
레녹과 정상적으로 대화가 가능한 지금 저 모습을 미쳤다고 말할 수는 없을 터.
만약 승천자의 위계가 오직 광전사로서 미쳐 있을 때 온전히 발휘되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레녹에게도 승산이 있다.
흩날리는 안개의 사슬이 모두 가라앉아, 무간의 성소에 침묵이 다시 찾아드는 찰나의 순간.
콰아앙!!
레녹과 도래가 그 자리에서 거의 동시에 사라져 충돌했다.
지금껏 하릴없이 서로를 빗겨나가던 공허한 견제와는 시작부터 다른, 철저하게 서로의 목숨을 노리는 일발.
드르르륵!!!!
마력사를 다루는 조작술사와, 주먹을 움켜쥔 무투가가 찰나에 수백 번이 넘는 공방을 주고받는다.
희끄무레한 마력사가 위아래로 교차하며 두 팔을 가로막고 줄지어 뭉개지며 흩날린다.
카가가각!!
의념의 궤적을 따라 권광이 휘감기며, 격렬하게 비산하는 마력파편을 모조리 꿰뚫었다.
마력사가 권격을 버텨내지 못하고 모조리 처참하게 짓밟혀 찢겨나가는 일방적인 구도.
하지만 레녹은 끊긴 마력사에 집착하지 않고 새로운 마력사를 빠르게 뽑아 권격을 받아내기 시작했다.
마력을 주입해 장력을 끌어올리면 더 버틸 수는 있겠지만, 그만큼 효율이 대폭 나빠진다.
소모되는 마력을 아까워하지 않고, 당장의 공방을 받아넘기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
차르르륵!!
부러지는 마력사 다발을 그러모아 다시 이어붙이며 도래가 내뻗는 충격의 방향을 바꿔 나간다.
잘려나간 마력사 단면을 온몸에 이어붙이고 힘의 분산을 유도한다.
앞에서는 연신 마력을 불태우며, 뒤로는 술식 파편을 이어붙여 도래의 움직임을 견제하는 신기.
정면에서 이어지는 공방과, 후면에서 시작된 견제 양쪽을 동시에 수행하며 계속해서 전투를 이어나간다.
파바바박!!
레녹의 손끝에서 뻗어나온 마력사 수십 다발이, 눈 깜짝할 사이에 수백 갈래로 쪼개지며 사방을 휘감은 듯한 환상.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마력사끼리 묶여나가며 서로를 지탱하고 장력을 끌어올린다.
눈부시게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도래의 권격.
얽매이지 않고 활보하는 그의 의지를 손끝으로 인도하듯 뻗어, 허공에서 붙잡았다.
정처 없이 맴돌던 레녹의 손끝이 거짓말처럼 도래의 주먹 끝에 맞닿은 찰나.
끼기기긱!!
주변에서 흩날리던 마력사 파편이 일사불란하게 휘감기며, 사방에서 도래의 육신을 거칠게 두들겼다.
난해한 것으로 잘 알려진 특질계 조작술식으로, 육체능력자와의 공방을 완벽하게 수행해 냈다는 증거.
아주 찰나에 불과하지만, 레녹은 틀림없이 도래와의 공방에서 앞서 나갔-
콰아아앙!!!
묵색의 파동이 폭발해 레녹의 신형을 그 자리에서 벌레처럼 찍어누른다.
찰나의 순간 반응해서 실드를 두르고 점멸로 몸을 뒤로 빼냈음에도 따라붙는 참격.
“쿨럭……!!”
고통을 싹 지워 없애 버렸음에도 가슴 한구석이 짓눌리며 강제로 숨을 토해내는 것이 느껴졌다.
“공간술사. 아까부터 자꾸 조잡한 수작을 부리는군.”
덥석!!
치열하게 이어진 공방이 무색할 만큼, 순식간에 레녹을 찍어누른 도래가 로브를 움켜쥐었다.
그 육신 온몸에서 번뜩이는 우윳빛의 가호가, 레녹의 공격을 그 자리에서 대부분 쳐내어 버텨낸 것.
그대로 레녹의 신형을 한 손으로 쥐고 들어 올린 도래가 입매를 비틀었다.
“무인도 아닌 주제에, 감히 내 앞에서 무투의 깊이를 견줘보겠다고?”
“……!!”
휘청거리며 흔들리는 레녹의 신형을, 도래가 착 가라앉은 시선으로 노려보았다.
“나를 상대로 수싸움을 성공시킨 직관만큼은 놀라우나, 형편없는 몸으로 무예를 펼쳐봤자 그뿐.”
쿵!!
로브를 움켜쥔 채로 마력을 끌어올리자, 도래의 손아귀 사이로 묵색의 마력이 격렬하게 회전.
“너비가 다른 그릇끼리 부딪혀봐야, 한쪽이 더 크게 구르며 부서질 뿐이다.”
마치 먹물이 허공에 선을 그려내듯 레녹의 신형을 휘감더니 그 자리에서 쥐어짜기 시작했다.
쩌저적!! 드드드득!!
레녹의 기척을 그 자리에서 놓치지 않고 완전히 여지를 없애 버리려는 듯한 손속.
광전사 도래의 무예라고 알려진 구중도래의 무예.
여덟 가지 무기술과 하나의 무투술.
하지만 그 기반이 되는 것은 두 주먹을 사용해 휘두르는 단 하나의 박투에 있다.
승천자의 육신이 허공에 손을 뻗어, 그곳을 부드럽게 잡아 쥐는 것만으로 주위의 공간이 일그러지며 호응한다.
레녹의 존재조차 그 손짓과 의지의 흐름에 따라 비틀리며 형용하기 어려운 끔찍한 소음을 연달아 내뱉었다.
뚜두둑!!
도래가 차가운 시선으로 쓰러진 레녹의 머리를 으깨버리기 위해 발을 들어 올린 그 순간.
레녹이 힘겹게 입술을 달싹였다.
“자신을 그릇이라 비유하는 건…… 교주의 흔적을 완전히 지우지 못했기 때문인가?”
“…….”
“아이러니한 일이군. 완전히 벗어나지도 못했으면서, 그 흔적을 이 세계에서 지우겠다니.”
금이 간 흑요석 가면 너머로 도래를 바라보는 레녹의 눈이 둥글게 휘어졌다.
“그건 후회가 아니라, 집착에 가까운 망집이다.”
콰아아앙!!
도래가 가볍게 발을 구른 순간, 거대한 묵색의 기둥이 무간의 성당 위로 솟구쳐 폭발했다.
마력과 의념이 흘러넘치다 못해, 가볍게 두들기는 것만으로 폭발하는 경지.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육신임에도 그 출력과 호응하는 의지가 차원이 다를 만큼 고강하다.
쿠과과!!!
성당의 촛불을 더 격렬한 의지로 뒤덮어 불태우고, 색채가 바랜 폭풍이 몰아치며 회전한다.
하지만 모든 것을 지워 없애버려야 할 광전사의 마력 저편에서,
“주제에 맞지 않는 무투로 겨뤄보려 한 게 아니다.”
레녹의 목소리가 재차 울려 퍼졌다.
“승천자를 상대로도 수싸움을 할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일 뿐이지.”
“……!!”
“술식을 사용하지 않고, 굳이 그쪽과 육탄전을 벌여 이렇게 소모시킨 건-”
도래가 곧바로 마력을 거두어 레녹을 찾았지만, 이미 레녹의 신형은 그 자리에서 한참이나 멀어져 있었다.
뚝뚝 피에 절어 떨어지는 로브를 간신히 뒤집어쓴 채로, 바닥에 주저앉은 모습.
당장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는 흑요석 가면 너머로, 레녹이 조용히 말했다.
“교주의 가호를 두른 존재를 상대하려면, 평범한 술식으로는 어려울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
온몸이 고통에 절어진 몸으로 힘겹게 고개를 들어올린다.
지금껏 어떤 개입도 하지 않고, 순수하게 공능을 그러모으는 일에 집중하고 있던 신녀의 모습.
그녀가 남은 여력을 모두 끌어모아 만든 공능이, 이제 육안으로 보일 만큼 강렬한 계시의 염상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계시의 공능을 완성시켜, 준비를 마친 신녀를 향해 레녹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이나 나이드리. 외해를 향해 계시의 공능을 사용해라.”
[……귀하.]그제야 레녹의 의도를 알아차린 신녀의 두 눈꺼풀이 힘겹게 떨렸다.
레녹은 신녀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저 멀리서 천천히 걸어오는 도래의 모습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온몸이 새카만 먹으로 절어진 것처럼 검게 물든 모습.
하지만 한 줌의 빛도 침잠하지 않는 그 피부 위로도 단단한 체격과 선명한 근육질의 육신은 또렷하게 보인다.
수백 년의 시간을 지나, 오랫동안 죽음을 맞이했음에도 조금도 빛이 바래지 않은 승천자의 육체.
본디 교주의 것이었던 가호마저 온 몸에 두른 채로, 어떤 물리적인 간섭마저 거부하는 초월자.
하지만 레녹이 이 자리에서 반의 신분으로 사용하는 본신마법을 더 꺼내 들지 않은 이유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죽은 몸에 갇힌 기억. 생과 사의 경계를 넘어 깨어난 승천자. 죽지 않는 것을 죽이기 위해서는…….”
레녹이 그를 바라보며 속삭였다.
“그보다 훨씬 더 비틀리고 저열한 힘이 필요한 법이지.”
[…….]“선정 의식을 열고 외해 너머에서 이곳을 바라보는 종말을 불러라.”
무어라 대답하지 못하고 굳어버린 신녀를 보며, 레녹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교단의 사도가 되어 저 망자를 죽여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