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939
약먹는 천재마법사 939화
아나테마(13)
도시 한복판에서 솟구친 뇌광이 끝을 모르고 퍼져 나와 밤하늘을 파랗게 빛냈다.
방향도, 형태도 없이 그저 압축된 의념을 반발시켜 터트리고 남은 잔향만으로 소도시 하나를 집어삼키는 힘.
어두운 하늘을 열어젖히고 빛을 내리쬐며, 새벽을 열어젖히는 개벽의 주문.
“저것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던 결백조차 표정을 관리하지 못하고 숨을 멈춘다.
도시 한복판에 떨어져 내린 별똥별이 열어젖히는 아침의 풍경.
하늘 아래 떨어져 다시 솟구치는 마력과 의념이, 입자 단위로 압축되어 융합하고 발산하는 극의임을 그 역시 깨달았기 때문.
밤하늘에 소원을 비는 별똥별의 형태로 나타난 것은, 그것이 본디 도달할 수 없는 도달점이기에 가능한 일.
마음과 의지를 구부려 존재할 수 없는 기적을 현실에 잠시 구축한다.
영역을 전개하지 않았음에도 마법사의 심상은 현실의 물리법칙보다 우선해 존재하고.
그렇게 손에 넣은 기적의 반동조차 위력을 끌어올리는 용도로 삼아 종말의 화신을 불태우는 신기.
먼 하늘의 벼락을 부리는 대마법사는, 자신이 얻은 깨달음조차도 도구로 휘두르며 그 너머를 바라보고 있다.
그 사실을 떠올린 크로드가 복잡한 표정으로 침묵하는 사이, 페이샤 역시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저 마법에 당해 한번 죽을 뻔했어…….”
“…….”
“마지막에 놈이 손속을 두지 않았다면 죽었겠지.”
손톱 사이로 피가 흘러내리지만, 페이샤는 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저 벼락의 광채를 보는 것만으로, 아직도 온몸이 발작하듯 떨려온다.
한 번도 죽는 것을 두려워해 본 적 없던 그녀에게, 생명에게 존재하는 공포를 각인시켜 준 마법.
뒤늦게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지 자각한 페이샤의 표정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빌어먹을, 아직도……!”
견뢰가 휘두르는 번개에 불타 온몸이 으스러졌던 마지막 전투.
그때 차라리 그 자리에서 죽었어야 했다.
그 자리에서 마법사와 싸우다 죽었다면, 이런 비참한 기분 따위는 느끼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자신을 농락한 마법사의 주구 따위가 되어 처참하게 구르면서 발버둥 치지 않을 수 있었는데.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구차하게 살아 열패감을 맛보고 있는 자신에게 살의가 차오를 뿐.
“……그리스번 공이 이렇게까지 주눅 든 건 처음 보는구려.”
평소에는 전혀 볼 수 없는 페이샤의 격렬한 반응에, 결백이 신기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역시 미친 개에게는-”
뻐억!!
살기 어린 표정으로 결백의 배를 후려갈긴 페이샤가 그를 걷어차고 일어섰다.
“치매 걸린 늙은이가 뒤지고 싶어 작정을 했군.”
“사, 상처가…… 벌어져서…….”
결백이 새파래진 안색으로 심호흡을 하는 사이, 페이샤가 제 뺨을 후려갈기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온몸의 감각이 망가져서 통각조차 제대로 느껴지지 않는다. 정신을 차리고 있으려면 이런 식으로라도 자극을 주어야 할 터.
등 뒤에서 번뜩이는 벼락의 빛을 필사적으로 무시하고 돌아선 페이샤가 물었다.
“도시 밖으로 향하고 있다는 건 알겠어. 어디로 갈 생각이었지?”
“……올리닉과 키리야 공이 의식을 담당하던 방향이오.”
힘겹게 창대를 짚고 일어선 결백이 대답했다.
“결국 아나테마 공과의 전투 내내 다른 이들은 돌아오지 않았지. 바깥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확인해야 할 필요가 있소.”
“순진하기 짝이 없군. 정말 다른 놈들이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 우릴 도우러 오지 않았다고 믿는 거냐?”
페이샤가 그런 결백의 말을 대놓고 비웃었다.
“그 배신자들은 그런 위인들이 아니야. 매사에 적당히 발을 빼며 잇속을 챙기려 드는 버러지일 뿐.”
“…….”
“내전 때와 똑같아. 중요한 일을 어물쩍 넘기다가 결국 바쥬르 님에게 승리를 헌납했지. 그쪽에 서 있었으면서 아직 깨닫지 못한 거냐?”
“……물론, 알고 있지.”
결백의 눈동자가 순간 깊게 가라앉았다.
“그들로서는 적당한 핑계를 대고 6사도와 탑주께서 공멸하는 것을 바랐을 수도 있소. 오히려 그런 가능성이 높은 것 역시 사실.”
“…….”
“하지만 그렇다면 더욱 탑주께 이 사실을 알려드리는 것이 도리 아니겠소?”
“하! 어처구니가 없군. 번견이니 뭐니 지껄이더니 진짜 개새끼가 다 됐잖아.”
빈정거린 페이샤가 등을 휙 돌렸다.
“지랄하지 말고, 난 더 이상 못해 먹겠으니까 혼자 가보던지 하-”
콰아아앙!!!
그 순간, 사막 저편에서 지축을 뒤흔드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
새하얀 모래가 분수처럼 폭발하며 아침 햇살을 반사해 번쩍이고, 거대한 금속의 구체가 솟구쳤다.
수십만 개의 부품을 조립해 만든 복잡한 형상의 금속구체의 크기가 어찌나 거대한지, 그 존재만으로 고층 빌딩에 비견될 정도.
키이이이잉!!!
등장과 동시에 사막 위로 태양처럼 떠오른 금속 구체가, 허공에서 격렬하게 회전하며 마력을 흩뿌렸다.
극편(極偏)의 금련(金鍊)
전륜금구(全輪金球) 1식
사철조작(沙鐵操作) : 금앵(金櫻)
쿠과과과과!!!!
금속구체의 회전을 따라 사막의 모래 아래서 무수한 사철이 떠올라 흑색의 폭풍으로 화한다.
도시 바깥으로 펼쳐진 반경 수백 미터 일대를 해일처럼 휩쓸며, 금속성 물질을 모조리 뽑아 휘두르는 순간.
[키에에에엑!!!]떠오르는 사철을 따라 사막 아래서 거대한 지네가 끌려 나오며 미친 듯이 울부짖었다.
온몸에 인간의 눈알이 듬성듬성 박혀 있고, 각질 위로는 핏줄이 돋아 있는 기괴한 행색.
산성이 뚝뚝 떨어지는 입으로 금속구체를 집어 삼키려는 거대지네의 모습.
카가가각!!!
금속구체의 회전과 함께 몰아치는 사철에 지네의 머리가 갈려 나가며 녹색의 체액을 흩뿌렸다.
머리가 으깨진 뒤로도 구체를 붙잡고 발작하며, 실시간으로 재생을 반복하는 괴수.
수십 미터 크기의 괴수와 구체가 충돌하는 것만으로 사막이 거세게 진동하며 사방에서 모래가 솟구쳤다.
쿠우우우웅!!
도시 밖으로 나오자마자 마주한 싸움의 여파에 땅이 흔들리는 것을 느낀 페이샤가 중얼거렸다.
“저건…….”
사막의 모래 사이에 섞인 사철을 국지적인 규모로 전장을 장악하는 신기.
금속의 편향성을 극한까지 기울여, 사막이라는 환경 자체를 자신의 전장으로 뒤바꾸는 장악력.
“……올리닉 공이로군.”
기수신궁의 수장. 양지의 거인. 내전의 영웅.
척뇌 올리닉이 금속을 조작하는 금련술식을 전력으로 전개하며 전투에 임하고 있다.
직경 수십미터에 달하는 금속구체, 전륜금구(全輪金球)는 전장에 나서는 올리닉의 성명절기나 다름없는 힘.
그것을 깨달은 크로드가 묘한 표정으로 금속구체를 바라보았다.
“전륜금구…… 저 아티팩트는 정작 내전 당시보다 훨씬 더 완성도가 높아 보이는구려.”
“한심하기 짝이 없는 감상이군. 같은 편에 서 있었으면서 아군의 전력조차 알지 못하는 거냐?”
“……금제율령 아래 묶여있다 하여, 같은 편은 아닌 셈이지.”
페이샤의 조소에 결백이 쓴웃음을 지었다.
“기수신궁은 양지에서도 강성한 거대세력이자, 올리닉 공 역시 본인을 숨기는 일에 능숙한 술사요. 특히, 내전 당시부터 사용해온 전륜금구 안에 무엇이 존재하는지는-”
그 순간, 전륜금구를 둘러싼 사철이 날카롭게 일어서 거대한 송곳처럼 변했다.
회전하는 드릴이 되어 구체의 무게를 담은 사철이, 발작하는 지네를 짓누르고 그대로 그 길쭉한 거체를 갈아 으깨 버렸다
[케에에에엑!!!]수십 개의 다리를 덜덜 떨며 지네가 몸부림치지만, 사철에 둘러싸인 금속구체는 그대로 강하해서 사막 아래 지네를 처박아 갈아버리고.
결백과 페이샤가 서 있는 도시 외곽 폐허 인근에 내려앉았다.
쿠우우우웅!!
지네의 체액이 폭발하듯 비산하며 사방에 거대한 산성 웅덩이를 만들었다.
하지만 금속은 대번에 녹이고도 남을 산성에 덮인 전륜금구는 일체 손상조차 없이 오롯하게 서 있을 뿐.
대번에 지네를 갈아 죽여버린 구체 위에, 머리가 구체로 이루어진 마른 체격의 남성이 뒷짐을 지고 서 있었다.
[반가운 목소리가 들린다 싶었더니, 역시 그대들이었군.]그가 폐허가 된 시가지 한복판에서 결백과 페이샤를 발견하고 반가운 기색으로 손을 들어 올렸다.
[하룻밤을 꼬박 새우고 다시 보니 이렇게 정겨울 수가. 적어도 이 징그러운 괴물보다는 훨씬 낫군.]“이 줘도 못팔아먹을 고철덩어리 새끼가.”
태연스러운 올리닉의 인사에 페이샤가 걸쭉한 쌍욕을 내뱉었다.
“아나테마가 현신해서 개지랄을 떤지 한참이 지났는데, 뭘 하다 이제야 기어나온거냐!!!”
[아니, 방금 전까지 내가 뭘 하고 있었는지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는 건가?]올리닉이 페이샤의 쌍욕에도 난처한 기색으로 어깨를 두들겼다.
[나로서도 콧대 높은 귀족 나으리께서 타락한 모습을 구경하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이쪽도 사정이 있어서 말이네.]“뭔 지랄 맞은 핑계를……!!”
크에에에에!!
그 순간, 금속 구체 아래 갈려나간 지네의 비명소리가 울려퍼지며 사막이 다시 요동쳤다.
분명 제 몸의 절반 이상이 으깨져 죽어버린 지네가, 벌써 다시 재생을 끝내고 전륜금구 아래서 발작을 시작했던 것.
[어이쿠, 벌써 또……!!]올리닉이 어깨를 으쓱이며 다시 금속구체를 회전시키자, 모래가 폭발하며 순식간에 지네를 달고 멀어진다.
“잠깐, 저 재생력은…….”
뒤에서 말없이 그 모습을 지켜보던 결백이 눈살을 찌푸렸다.
사실상 그 몸을 완전히 갈아 죽여버렸음에도, 육편 속에서 스스로 제 몸을 재생해내는 괴기한 회복력.
기괴하다 못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그 생명력이, 마수나 장생종의 그것과는 궤가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
육체의 강함보다 존재의 재생산이 돋보이는 저 기분 나쁘고 섬뜩한 기시감은 분명-
“……사도? 사도가 맞는 겐가?”
“사도가 맞아, 아즐란.”
파앗!!
새하얀 칼날을 뽑아 든 은발의 여성이 아즐란의 옆에 내려앉았다.
싸늘한 의념을 내뿜는 은빛의 갑주를 입은 채, 등 뒤에는 새하얀 서리고리를 띄워 올린 기이한 모습.
그녀의 등장과 동시에 사위에 저릿한 냉기가 내려앉고, 뜨거운 사막의 공기가 서늘하게 변했다.
촤악!
칼날에 묻은 체액을 손짓 한 번으로 털어낸 여성이 시선을 돌리자, 몸에 걸쳐져 있던 갑주가 분해되어 사라졌다.
싸늘하다 못해 얼음장같은 시선을 힐끗 돌린 키리야가 물었다.
“살아 있었군. 6사도와의 전투 도중 죽었을지도 모른다 생각했는데.”
“……키리야 공.”
저쪽에서는 이미 도시 안에서 벌어진 전투에 대해서 소식을 전해 들은 것인가.
그렇다면 전투 직전 내보낸 하백이 정상적으로 이쪽의 전황을 전했다고 보는 것이 맞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아직 풀리지 않는 의문이 남아 있었다.
키리야 역시 짐작한다는 듯 싸늘한 시선을 눈앞에서 싸우는 올리닉을 향해 돌려세웠다.
“왜 우리가 이곳에 발이 묶여 있었는지 궁금하겠지.”
“그걸 말이라고 하냐, 반역자?”
페이샤가 기다렸다는 듯 걸쭉한 쌍욕을 내뱉었다.
“대체 뭘 하고 있길래 저딴 괴물이랑 처 놀고 있던 거냐!! 역시 우리가 저 안에서 뒤지는 꼴을 보려고 한 거겠지?!”
“정신병자에게 양해를 구할 생각은 없어. 굳이 핑계를 대지 않아도 할 말은 많으니까.”
“지랄……!!”
“의식이 끝난 직후 아나테마의 배신을 눈치챘지만, 교단 측에서 우리의 발을 잡았어.”
키리야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말했다.
“도시 바깥에 성역을 펼친 뒤 사도를 이용해 우리가 도시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더군.”
“사도를 이용하다니…… 설마?”
곤혹스러운 기색으로 올리닉과 싸우는 거대지네를 바라보던 결백의 눈에, 순간 이채가 돌았다.
금속 구체에 미친듯이 자신의 머리를 처박는 지네에게, 지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
“눈치챘겠지만, 정상적인 판단력을 가진 사도가 아니야.”
키리야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는 광증에 빠져 짐승으로 전락한 사도를 미끼로 삼아 우리를 상대하고 있어. 우리의 발을 실질적으로 묶은 건 그자였지.”
“그건…… 불가능한 일이 아니오?”
결백이 쉽사리 믿겨지지 않는 듯한 기색으로 물었다.
“교단 측에서 미쳐버린 사도를 전략적으로 이용할 방법이 있었다면, 성전 당시부터 시도하지 않았을 리가 없을 터인데.”
투련문의 호법이자, 성전의 참전자인 크로드 역시 사도가 어떤 존재인지는 알고 있다.
종말의 화신체로서 힘을 내려받는 대신, 외신의 꿈을 함께 꾸며 그 정신마저도 잡아먹히는 괴물.
시간이 지날수록 외해와 정신이 동화되어, 현실에서는 버티지 못하고 미쳐버리는 것이 그들의 결말이다.
그토록 강대한 성세를 자랑하던 교단조차, 휘하 사도들의 광증을 막지 못해 뛰어난 전사들을 여럿 잃어버리지 않았던가.
같은 자리에 모이면 서로를 잡아먹는 일에 정신이 팔려도 이상하지 않은, 통제할 수 없는 괴물들이다.
“광증에 빠져 그렇게 짐승으로 전락한 사도가 내가 아는 것만 여섯이 넘소. 그런 능력자가 있었다면 왜 진작에-”
“그건 내가 이번에 새롭게 계승을 끝내고 속세에 나왔기 때문이지.”
결백의 머리 위에서 칼칼한 목소리가 울려 퍼진 순간.
사락!
온몸에 치렁치렁한 털을 휘감은 표범 같은 짐승이 사막에 떨어져 내렸다.
반쯤 얼어붙은 몸을 비틀면서 소리도 없이 가뿐하게 모래 위로 착지하는 거대한 짐승.
키이이잉!!
표범의 이마 위에 박힌 세 번째 눈이 발광한 순간, 기이한 광채가 번뜩이며 모래바람을 멈추고 석화시킨다.
등장과 동시에 석화의 광선을 흩뿌리는 표범 머리 위에, 누군가 지팡이를 들고 올라타 있었다.
신경질적으로 느껴지는 위험한 인상의 여성. 새하얀 백발과 구릿빛의 피부.
호리호리한 체격과는 달리, 화려하다 못해 풍성하게 느껴지는 교단의 예복을 입고 있다.
찢어진 눈매로 인간들을 바라보던 그녀가 피식 웃었다.
“신의 공능이라는 건 필요할 때마다 형편좋게 주어지는 게 아니거든. 마땅한 사명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기적은 이루어지지 않지.”
“…….”
마치 목이 쉰 것처럼 거슬리게 찢어진 칼칼한 목소리가, 모두의 귓가를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하지만 거시적인 국면 아래 모든 것이 그분의 뜻대로 돌아가게 되어 있지. 내게 주어진 권한 역시 그런 점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해.”
“……그대는.”
등장과 동시에 결백을 비롯한 인간들을 깔아보며 교단 소속임을 드러낸 장본인.
이 여자가 키리야가 말한 존재임을 직감한 결백이 물었다.
“그대는 교단 내부에서 어떤 신을 섬기는 사도지? 아나테마의 각성을 도운 것이 그대였나?”
“한번 설명을 해줬는데도 말귀를 못 알아듣네. 내가 사도로 보여?”
여자의 날카로운 눈매가 둥글게 휘어졌다.
“네가 내 시중을 드는 사제였다면 이 자리에서 혓바닥을 뽑아버렸을 거야.”
“…….”
“아즐란.”
여자가 비웃고, 키리야가 차분하게 대답했다.
“그런 게 아니야. 애초에 그녀는……”
“아나테마랑 싸우고 살아남았다길래 눈치는 빠를 줄 알았더니, 시간 낭비했잖아.”
어깨 부근까지 쳐낸 백발을 신경질적으로 쓸어넘긴 여자가 말했다.
“전대 나이드리는 왜 이런 벌레들을 내버려 둔 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가는걸.”
“……설마.”
나이드리. 그 이름을 들은 결백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고, 여성이 만족스러운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내 이름은 우레카 나이드리.”
파바바바밧!!!
그 말과 동시에, 우레카의 발 아래서 사막이 요동치더니 세채의 거대 괴수가 더 모습을 드러냈다.
촉수달린 가재. 얼굴 반쪽이 잘린 멧돼지. 인간의 얼굴을 갑옷처럼 기워 붙인 기사.
올리닉과 미친 듯이 싸우던 거대지네조차, 그녀의 말 아래 복종하듯 머리를 조아렸다.
형용할 수 없는 기괴함을 담뿍 담은 괴수와 짐승들을 발아래 깔아 밟은 그녀가 말했다.
“세이나 그 여자의 뒤를 이어 나이드리의 이름을 이어받은 제사장이다.”
“…….”
“우리의 발을 묶고 있던 것은 사도가 아니라, 교단의 새로운 신녀였어.”
결백이 침묵하는 사이, 키리야가 담담하게 설명했다.
“그녀는 광증에 잡아먹힌 사도를 종복으로 부린다. 이 전장에서 가장 위험한 존재는 바로 저 여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