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98
장전, 격발. 장전, 격발.
기능성과 효율성을 대폭 끌어올렸지만, 여전히 일반 공용마법에 비하면 마력소모가 적은 사격보조마법은 레녹에게 아무런 부담도 없다.
쏘고, 뱉고, 총알이 덜어지면 갈아치우고, 총열이 달아오르면 다른 총을 집어든다.
장거리에서 이어지는 저격이 한두번이라면 어떻게든 받아낼 수 있지만, 그만한 위력의 일격이 연달아 날아드는 것을 참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보통 저격에 특화된 능력자들은 일발의 위력이 강한대신 여러가지 페널티를 떠안기 마련이지만, 넘치는 재능으로 그 모든 단점들을 문대버린 레녹에게는 별다른 해당사항이 없는 이야기다.
‘특히 이 상황에서는 말이지.’
초인들과의 전투에서 이런 상황이 흔하지 않다는 것을 아는 레녹은 부담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두 빌딩 사이라는 다소 이질적인 전투환경.
앞서 상대하고 있던 세명의 프리랜서라는 존재.
저격능력의 여부를 떠나서 애초에 이만큼 편한 상황은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그러니 할 수 있을때 즐기는 수밖에.
타타타타타타탕!!!
비워낸다.
소총수들의 손안에서는 레녹의 코트조차 스치지 못했던 탄알들은 새파란 빛의 무리를 달고 밤하늘을 날아 테러리스트들에게 내리찍혔다.
그 틈을 놓치지 않은 프리랜서들 역시 장거리에서 이어지는 지원이 아군의 것임을 확신하고 이를 악문다.
전투가 길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
그리고 마침내 네 사람의 이어폰을 타고 히나의 목소리가 도착했다.
[준비하세요.]이제까지 보아온 그녀답지 않은, 살짝 들뜬 목소리.
그러나 그 사이에 희미한 두려움이 섞여 있다는 것을 레녹은 놓치지 않았다.
[10초 뒤 단 한번. 이 자리에 지원이 도착합니다. 그때 승부를 마무리짓습니다.]“그게 도대체 무슨 개소리…!!”
말하는 사이 5초가 지나고, 울컥한 염화능력자가 소리치는데 3초.
그리고 남은 2초가 지나기 전에 저 아득한 창공 저편에서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쐐애애액…!!
바람을 꿰뚫는 유려한 소음.
진중하면서도 우아한 모습으로 유영하면서 고고하게 지상을 내려다보는 그것은 한줄기의 새카만 섬광이다.
레녹은 말없이 고개를 들어올려 그 ‘지원’의 정체를 확인했다.
널리 이르른 마력의 감각이 날카롭게 목표를 포착한다.
길이는 족히 8m 언저리. 지름은 10cm.
두르고 있는 것은 칠흑처럼 검은 마력. 그러나 흑마법사들과는 달리 끈적이기는 커녕 한없이 정순하고 메마르다.
그림자를 곱게 빻아 빚어낸 듯한 한줄기의 창.
‘아니…. 여기까지 쏘아진 것을 생각하면 화살인가.’
현궁(玄弓).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두 글자를 온전히 이해하기도 전에.
수 킬로미터를 날아온 검은 창이 그대로 트레이드 센터를 관통했다.
콰지지지지지지직!!!
비집고 비틀어 끄집어낸다.
빌딩을 꿰뚫은 순간 검은 섬광은 마치 실타래처럼 줄줄이 풀리면서 순식간에 빌딩의 상층부를 뒤덮고 묶어버렸다.
마치 성냥개비처럼 둥그런 구체에 막대기를 꽂아넣은 모양으로 변해버린 트레이드 센터.
레녹이 그 모습을 확인하고 고개를 젓는 것과 동시에 이어폰에서 히나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에이전트 이벨린 마르시아의 지원 도착.] [적군 포획 성공. 작전 완료.]탁!
손에 들고 있던 소총을 대충 바닥에 던져버린 레녹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 타들어가는 연초를 비벼끄고 새로 하나를 더 꺼내물었다.
시선은 여전히 트레이드 센터를 향한 채.
표정은 무심하지만, 내면에서 휘몰아치는 생각은 복잡하기 그지없다.
‘이벨린 마르시아….. 괴물일거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상상 이상이군.’
검은 활이라는 이명을 가지고 있을때 어느정도 짐작하기는 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수 킬로미터가 넘는 거리에서 쏘아낸 저격을 단 한번의 시도에 성공시킨것도 놀라운 일일 지경인데, 그 타겟이 단일지정이 아니라 공간을 통채로 점유하는 것이라니.
직접 보고도 쉽사리 믿기 힘든 기술이다.
그녀가 가지고 있다고 하는 본연의 초능력에 소름끼치도록 정교한 마력조작능력, 그 모든 것을 망라하는 방대한 심상 없이는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응용기.
정작 그녀의 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았지만 확신한다.
이벨린 마르시아는 실로 그 악어거인과 대등한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는 초인이었다.
‘빠르게 올라가야 한다.’
지금은 그저 아득하기만 한 괴물의 기예를 보고도 레녹이 느끼는 것은 두려움이나 경외가 아닌, 철저한 분석과 평가.
그리고 작은 감탄 뿐이다.
잠시 협력관계를 맺고 있기는 하지만 이 바닥에서 피아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일은 무의미하다.
수준높은 힘을 견식했다면, 그 화살촉이 자신을 향할 순간을 대비하고 정진하는 것이 옳았다.
폐에 가득 찬 연기를 가볍게 내뿜으며 계단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찌되었든 오늘 해야 할 일은 모두 끝났다.
남은 건 실적과 보수의 계산.
그리고 다음 작전에서 해야 할 일을 듣고 준비하는 것 뿐이었다.
#
“실패했군.”
휘이이잉!!
모래먼지가 불어닥치는 황야.
평범한 사람이라면 제대로 눈을 뜨기도 힘들만큼 따갑게 피부를 찌르는 사막의 한가운데.
두 사람이 아무렇지도 않게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눈 아래쪽에 나무뿌리 문신이 새겨진 중년 남성.
마른 체격에 뱀처럼 가는 눈매를 가진 의뭉스런 표정의 청년.
흑마법사 급진 계파와 테러조직 팔시온의 수장.
두 조직의 머리가 어떤 수하들도 대동하지 않고 단 둘이서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실패는 아니지.”
청년이 대꾸했다.
이렇게 거친 사막의 중심에서도 반팔에 반바지 차림으로 술잔을 흔드는 그 모습은 일이 아니라 휴가를 나온 사람처럼 한가해보인다.
반면 육중한 재킷과 헤진 청바지를 입고 작은 나무 판때기에 걸터앉은 중년 남자의 모습은 썩 이 장소에 어울려보였다.
“크레이그. 어찌되었든 암호키를 탈환하는데는 성공했어. 투자자들의 회담 전에 필요한 패는 모두 모은 셈이지. 너무 걱정이 과한 것 아닌가?”
“좋은게 좋은거라고 넘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걸 알텐데, 자운.”
“……….”
“넌 그 여자를 잘 몰라. 이벨린 마르시아가 이 일에 본격적으로 끼어들면 끝이다. 시의회에서 그녀의 접근권한을 풀어주기 전에 빠르게 일을 마무리지어야해.”
청년, 자운이 크레이그의 말을 듣고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무언가를 생각하는 얼굴로 먼 곳을 쳐다보던 자운이 중얼거렸다.
“확실히, 지금 시점에서 그녀를 상대할만한 실력자를 찾으려면 복마전을 찾는 수밖에 없겠군…..”
“그건 최악의 수다.”
크레이그가 거친 목소리로 단언했다.
“그 미친놈들을 끌어들여서 제대로 된 일은 단 하나도 없어. 통제할 수 없는 괴물들을 이 판에 끌어들였다가는 설계가 망가질거다.”
“…..안심해.”
자운이 천천히 몸을 일으켜세웠다.
“그놈들한테 레이센의 비자금을 넘겨줄 생각은 없으니까.”
“……..”
“가질 수 있는 거라면, 전부 다 우리가 먹어야지. 처음부터 그걸 전제로 협력한게 아니었나?”
비웃는듯한 묘한 웃음이 크레이그를 향했다.
“시작한 이상 멈출 수 없어. 혹시라도 시정부와의 극적인 타협을 기대하고 있다면 꿈 깨라고. 적어도 이번 일까지는 서로 멱살을 쥐고 골라인까지 끌고가야 할거야.”
“물질적인 것에 집착하다보면 오히려 일을 망치게 되는 법이다.”
크레이그가 자운을 쳐다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돈은 수단일 뿐, 목적이 될 수 없어.”
“뭔 개소리야?”
자운이 웃으며 말했다.
“그건 돈이 부족한 거지들이 지껄이는 변명일 뿐이라고.”
서로의 가치관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마지막 문답.
사아아아..!!
그 말과 함께 자운의 몸이 아주 작은 결정 덩어리로 변해 사라진다.
사막의 뜨거운 공기에 녹아드는 자운의 모습을 크레이그가 우직하게 응시했다.
잠깐의 시간이 흐른 뒤, 품에서 휴대폰을 꺼내드는 것과 동시에 그의 모습 역시 자취를 감춘다.
뜨거운 열풍이 그들이 있던 자리를 휩쓸어버리고 나자, 그곳에는 더 이상 어떤 흔적도 남아있지 않았다.
#
“레이센의 실각 말인가?”
이벨린의 집무실.
상당히 호화로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관리가 되지는 않는지 이곳저곳 잡동사니가 쌓여 있는 것이 보인다.
그 중에서도 특히 눈에 들어오는 것은 집무실 곳곳에 듬성듬성 심어져 있는 텃밭들.
이벨린은 공석에서도 굳이 취미생활을 자제하는 편은 아닌 듯 했다.
“그래.”
레녹의 말에 이벨린이 그렇게 대답하면서 자연스럽게 책상위로 손을 뻗었다.
잔뜩 널브러져 있던 채소들 중 당근 한개를 집어든 그녀는 생으로 그것을 아작아작 씹어먹기 시작했다.
레녹은 굳이 그쪽으로 시선을 던지지 않기 위해 노력했지만, 코끝을 감도는 양파냄새가 신경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나 먹을래? 내가 직접 키운거야. 개인적인 취미거든.”
“….됐다. 그보다는 먼저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
“내가 직접 유기농으로 가꾼거야. 이 저질스런 도시공기속에서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 하나 줄때 먹어봐.”
“………”
반의 얼굴로 만나는 건 두번째지만, 예나 지금이나 지독하게 엉뚱하고 제멋대로인 사람이다.
결국 레녹의 손에 길쭉한 오이 하나를 들려준 뒤에야 이벨린은 다시 입을 열었다.
“레이센이 그동안 모아온 비자금은 그동안 거대기업들과의 야합으로 만들어진 돈이지. 이번 기회를 계기로 시의회의 나팔수를 끌어내릴거야.”
“……별로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군.”
비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설마 이런 생각을 품고 있을줄은 몰랐다.
아니, 이런 계획을 레녹에게 대놓고 말해줄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이 도시를 둘러싼 알력다툼에 끼어들기에는 레녹은 아직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다.
“뭘, 어차피 그쪽에게 어려운 일을 시킬 생각은 없어.”
그런 레녹을 안심시키려는 듯 이벨린이 말했다.
이런 심각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녀의 표정은 여전히 평온했다.
레녹은 표정을 조절하기는 했지만, 입안에 감도는 오이가 유난히 쓰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트레이드 센터를 둘러싼 작전이 끝난 하루 뒤.
이번 일에 고용되었던 세명의 프리랜서와, 작전구역에서 일어난 모든 일에 관한 뒤처리를 고작 24시간만에 끝내고 단 둘이서 진행하는 면담.
명목상으로는 이번에 레녹이 독차지하게 된 성공보수를 확인하고 지급하기 위한 호출이지만, 사실상 이번 작전을 누가 처음부터 끝까지 완성시켰는지는 모두가 알고 있다.
레녹의 입장에서는 같은 팀원들의 역량이 시원찮게 느껴진 것이 하루이틀이 아니지만, 그와 처음 일하는 사람들은 다르겠지.
계좌에 꽃히는 금액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 자리에 이벨린이 나와있다는 사실은 조금 의외였다.
처음 그를 섭외하기 위해 발품을 팔았을때야 그러려니 했지만, 그녀만한 실력자가 이런 사소한 보수지급과정에 관여한다는건 흔치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벨린 마르시아가 마법사 반의 능력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는 말이 되겠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리 달가운 일은 아니었다.
이번에 그녀를 비롯한 시정부의 에이전트와 협력을 진행한것도 어디까지나 레녹의 본래 목적과 부합하는 면이 있는데다, 겸사겸사 일전의 빚을 갚는다는 의미였을 뿐.
원래라면 이런 위험한 집단과는 상종조차 하지 않는것이 옳다.
그런데 레녹은 본의아니게 점점 이 도시에서 일어나는 일의 중심으로 끌려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 건, 이번 작전에서 상대해야 할 적이 단순히 테러리스트만이 아닐수도 있기 때문이야.”
“뭐라고?”
“내가 이번 작전에 개입한 대가로 상부에서 징계위원회가 열렸어. 지시를 어겼으니 우리쪽 권한이 대폭 축소될테고, 그에 맞춰서 레이센 역시 손을 쓰기 시작하겠지.”
이벨린의 녹색 눈동자가 레녹을 향한다.
변조된 마력패턴이 완벽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무심코 긴장할만큼 투명한 시선.
“반, 너는 같은 프리랜서들을 죽일 준비가 되어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