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97
제약회사 의뢰때 만난 마법사를 포함해서 같은 계열 마법사를 두번이나 마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으니.
그래도 아주 안목이 없지는 않은지 방금 검사를 향해 뿜어낸 마법이 자신이 사용하는 술식과 비슷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듯 했다.
“어깨 너머로 보고 배운 정도지.”
“…..그쪽같은 거너가 말이냐? 말도 안되는 소리군. 아니, 애초에 거너조차 아니었어.”
그제서야 이 혼란한 상황에서 어느정도 정신을 차린 듯 마법사의 눈빛이 한결 선명해진다.
“넌 누구지? 40번대 구역의 프리랜서들 중에서 이런 마법사가 있다는 소문을 들어본 적이 없는데.”
“음….”
반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 없냐고 반문할만큼 레녹은 과시욕이 강한 편은 아니었다.
레녹이 쉽사리 대답을 하지 못하자 마법사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그 반응을 보면 분명 단순한 프리랜서는 아니겠지. 좋다, 그럼 이건 어떠냐?”
“뭐?”
“얼마만큼의 돈을 받고 이 일에 뛰어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금액의 두배를 주지. 그러니 우리가 이 곳을 안전하게 탈출할 수 있도록 도와라.”
“………”
“이 41구역을 벗어날때까지면 된다. 바깥에는 우리의 도주를 돕기 위한 차량이 대기하고 있으니 그것을 호위해주는 것만으로 충분해.”
레녹은 대답하는 대신 팔짱을 끼고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아무리 시간을 끌려는 수작이라고 하더라도 이 자리에서 그에게 이런 제안을 하다니, 보통 신경줄이 두꺼운 놈이 아니었다.
조직의 수장도 아닌 일개 조직원이 이렇게 나온다면 분명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것 같은데…
“얼마나 돈이 많길래 이런 제안을 하는지 모르겠군.”
레녹이 슬쩍 묻자 마법사가 곧바로 미끼를 물었다.
“물론이지. 자세히 말할수는 없지만 곧 조직에 막대한 양의 자금이 들어오게 될 거다. 조직의 기틀을 뿌리부터 바꾸고도 남을 돈이겠지. 너처럼 우수한 인력을 섭외하는 것도 분명 어려운 이이 아니다.”
“…..그런 말을 지금 내게 해줘도 되는건가?”
레녹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대꾸하면서 내심 확신했다.
‘확실하군. 레이센 이야기다.’
흑마법사가 알고 있다는 시의회 상원의원의 비자금.
테러조직과 손을 잡으면서 그 금액의 일부를 같이 나눠먹기로 결정한 것이 아니라면 이런 대답이 나올 수 있을리가 없다.
레녹의 말에 마법사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면서 대답했다.
“그야…. 네놈에게 단 한푼도 줄 생각이 없으니까 그렇지…!!”
“……….”
이제서야 마무리가 된 건가.
레녹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충격마법에 얻어맞고 레녹의 등 뒤로 날아갔던 검사가, 사무실에서 USB포트처럼 생긴 무언가를 챙겨 나오고 있었다.
“도망쳐!!”
시선이 마주친 순간 술사가 소리를 빽 지르고, 검사가 등을 돌려서 번개처럼 달려나갔다.
콰콰쾅!!
마치 지금까지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것마냥 냅다 충격마법을 레녹에게 난사하면서 어떻게든 시간을 끌려는 술사.
그런 술사의 모습을 보고 한 손으로 눈가를 훔친 검사가 근처의 창문으로 과감하게 몸을 던지고.
와장창!!
17층 높이 저 아래로 빠르게 사라져가는 검사의 그림자.
그 처절한 동료애를 두 눈으로 목도한 레녹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희들 지금 뭐하는거냐?”
“아, 암호키를 빼돌릴 수만 있다면 충분해… 더 이상 미련은 없다.”
“……..”
덜덜 떨리는 두 손을 부여잡고 다가오는 최후를 기다리듯 눈을 감은 술사를 본 레녹이 참지 못하고 피식 웃었다.
정면에서는 제대로 상대하기 힘들다고 판단하자마자 양동작전을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정작 그 모든 순간이 레녹의 의도대로 이루어진 것이었다는 것을 알면 이 놈은 도대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안전하게 도망쳤군요. 실시간으로 위치추적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보니 아주 완벽해요. 수고했습니다.]만족스러운 히나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레녹이 물었다.
“테러조직의 술사 하나를 잡았는데, 어떻게 할까.”
“…….!”
보이지는 않지만 지금 이 순간이 자신의 생사를 결정짓는 순간이라는 것을 엿들었는지 술사의 이마에 식은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한다.
[음…. 일단 이쪽의 목적은 달성했으니 큰 상관은 없어요. 죽이시고 싶다면, 원하시는 대로.]“날 뭐라고 생각하는 거지?”
레녹은 딱히 피에 미친 살인마나, 싸움의 스릴을 즐기는 미친놈이 아니다.
필요하기 때문에, 또 그의 형편상 가장 효율적이고 리스크가 없기 때문에 이 일을 하고 있을 뿐.
만약 그 혼자서 이런 의뢰를 진행하는 중이었다면 살려둬봤자 뒤처리가 곤란하니 그냥 죽여버렸겠지만, 에이전트라는 뒷배를 지니고 있는 지금은 다르다.
퍼억!!
충격마법으로 뒤통수를 후려갈기자 곧바로 두 눈을 까뒤집으며 쓰러지는 술사.
“기절시켜놓았으니 알아서 데려가. 심문을 하든 말든 마음대로 하라고.”
[흠…. 이건 좀 의외군요.]“뭐?”
[아닙니다. 그러면 뒤처리는 저희쪽에서 알아서 하도록 하죠. 어차피 암호키를 손보는 과정에서 건드려놓았던 내부 네트워크를 복구시켜놓기는 했어야하니까요. 일단 작전구역에서 나오시면ㅡ]콰아아아앙!!
이어폰을 뒤덮는 강렬한 폭발소리.
히나가 당했나, 싶었지만 이내 창문을 통해 들려오는 소음이라는 것을 깨닫고 고개를 돌린다.
작전 집결지역이었던 30층 높이의 트레이드 센터.
레녹을 제외한 3명의 프리랜서가 합을 맞추기로 했던 그 건물에서 새빨간 불꽃이 피처럼 뚝뚝 떨어져내리고 있었다.
일순 밤하늘이 환하게 밝아질만큼 강렬한 화력이다.
검사가 암호키를 들고 탈출하는데 성공한 직후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은 틀림없이, 이쪽에게 좋은 징조는 아니었다.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한껏 무거워진 히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했군요.]레녹이 품안에서 연초를 꺼내면서 중얼거렸다.
“우리쪽이겠지.”
[저쪽에도 만일을 대비해 실력자가 숨어있었던 모양입니다. 암호키를 탈취한 이후 트레이드 센터를 습격한 전력을 안전하게 탈출시키기 위한 요량인듯 한데…. 예상 이상이군요.]“다른 팀원들과의 연락은?”
[끊긴 상태입니다. 아직 생명반응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전원 전투중에 있는것으로 추측되는군요.]“후우….”
입안에 가득 머금은 연기를 창문 밖으로 흘려보내면서 레녹이 왼쪽 손목을 들어올렸다.
아그리아에게 받았던 시계가 자연스럽게 망원경으로 변해 레녹의 시야확보를 돕는다.
한쪽 눈을 망원경에 들여다대고 트레이드 센터 안쪽을 살피며 마력감지를 계속 돌리자 어느정도 돌아가는 상황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상대는 술사 하나, 전사 하나.
따지고 보면 레녹이 맡았던 곳과 동일한 초인구성이지만, 그 수준은 멀리서 대충 엿보기만 해도 차원이 다르다.
아마 전사는 테러조직, 술사는 흑마법사 측에서 동원한 모양인데 거의 압도적인 수준으로 세 사람을 밀어붙이고 있었다.
무뚝뚝한 거한과 염화능력자 청년이 어떻게든 앞에서 버티는 동안 여자가 두 자루의 칼날을 쥐고 어떻게든 빈틈을 노리고 있지만 정작 근접전에서 상대조차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알 수 없는 기계장치로 개조한 양쪽 팔에서 미친듯이 증기를 뿜어내면서 가속하는 남자.
육안으로는 따라잡을 수 없는 엄청난 속도를 확인한 레녹의 눈이 자연스럽게 가라앉았다.
“……..”
망원경에서 시선을 떼면서 느긋하게 물었다.
“슬슬 개입해야 하지 않나? 작전을 관리감독하고 있다면 팀원들을 관리하는 것도 중요해보이는데.”
[…….]히나는 먼저 레녹에게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첫 작전. 그것도 이벨린의 협력을 통해 간신히 도달한 협업이다.
주도권을 넘겨주고 싶지 않다는 그녀의 심정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레녹이 먼저 아쉬운 소리를 할 이유는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이 자리에서 먼저 패를 까야하는 것은 히나쪽이 아니겠는가.
잠깐의 침묵. 그러나 결국 백기를 드는 쪽은 정해져 있었다.
[……제 능력은 이런 상황에서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방해가 될 확률이 높죠.]“그렇군.”
레녹이 즐거운 듯이 대답했다.
“그래서?”
틀린 말은 아니다.
예상 밖의 강적이 나타나서 고생하고 있을 뿐이지, 저기서 고전하고 있는 팀원들은 확실히 레녹이 보기에도 상당한 실력자들이 분명했으니.
따지자면 마담과의 만남에서 마주쳤던 마운트 정도의 숙련자들.
이러니저러니 해도 살려둔다면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되기에는 충분하다.
계산을 마친 레녹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 친구들의 성공보수가 어느 계좌에 꽂혀야 하는지 알겠지?”
[물론입니다.]그 말로 충분했다.
레녹은 곧바로 등을 돌려서 복도쪽으로 향했다.
지원사격
그에게 제압당한채로 기절한 술사 한명과, 그 옆에서 고통에 신음하는 다른 전투인원들.
바닥에는 그들이 들고왔던 여러가지 장비들이 종류와 크기를 가리지 않고 널브러져 있다.
레녹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원하는 물건을 발견하고 곧바로 집어들었다.
소총수가 들고왔었던 길쭉한 라이플.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이만한 물건이 따로 없다.
약간 무겁게 느껴지는 라이플을 힘겹게 창문까지 옮긴 레녹이 총구를 고정시키고 천천히 어깨에 개머리판을 가져다댔다.
“후우……”
익숙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또 생경한 감각은 아니다. 군대 생각이 났다.
좋은 기억은 아닐지라도, 자연스럽게 또 지구를 떠올리게 된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순간 불현듯이 떠오르는 그리움.
억지로 떨쳐내고서 자세를 고쳐잡았다.
총구가 긴 장비를 손에 넣기는 했지만, 소총의 사정거리가 어느정도인지는 레녹도 잘 알고 있다.
마도공학이 존재하는 세상이라고 할지라도, 총의 규격이나 능력 자체는 레녹이 알고 있는 것과 다를바가 없다는 사실을 이미 여러차례 확인한 상황.
단순히 이 라이플의 스펙만으로는 저 빌딩까지 닿을 수 없다.
그렇다면 마법을 쌓아올릴 뿐이다.
[조준보정=2단계] [거리증폭] [집중사격]우우우우웅!!
조립해낸 보조마법은 고작 3종. 그러나 하나하나의 위력과 수준은 이전과는 확연히 다르다.
새파란 마력광이 느릿하게 깜박이면서 총구의 주변을 감싸고 희미한 나선을 그리며.
발사.
타아앙!!
방아쇠를 당기는 것과 동시에 뛰쳐나간 탄알 한발이 얼어붙은 공기를 꿰뚫고 두 고층 빌딩 사이를 건넌다.
강선을 타고 회전하는 작은 금속체. 한점으로 수렴하는 그 꼭짓점이 일체의 흐트러짐도 없이 나아가며.
안광을 부라리며 앞으로 뛰쳐나오던 남자의 관자놀이에 정확하게 때려박혔다.
콰앙!!
예상치 못한 충격에 남자의 신형이 옆으로 나가떨어지는 것을 확인한 레녹이 곧바로 총구를 돌렸다.
다음 목표는 뒤에서 얼이 빠진 표정으로 빌딩 밖을 바라보는 술사. 마법 조합은 전과 동일하다.
빠른 속도로 장전, 격발.
타아앙!!
육체능력자인 전사도 반응하지 못했던 일발.
그러나 오히려 술사는 흐물거리는 검은 벽을 끌어올려 막아내는데 성공했다.
마력감지를 통해서 극한까지 끌어올린 오감. 거기서 비롯되는 반응속도는 일시적이지만 육체능력자를 뛰어넘기도 한다.
레녹이 벡 클린턴과 같은 전사와 맞상대가 가능한 것과 똑같은 원리.
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재밌는데.”
이어지는 전투는 단순한 반복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