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239
239화
폭풍전야 (1)
* * *
그날 오후.
늦은 점심을 함께하기 위해 만난 DBC 국장과 장희재는 고급 일식집의 룸에 자리했다.
“잘 좀 부탁드립니다, 국장님.”
술잔을 따르던 장희재가 자신만만한 미소로 덧붙였다.
“이번 작품 잘 되면 저희만 좋나요. 방송국도 다 같이 나눠 먹는 거죠.”
“이이제이죠. 이제 우리는 같은 배를 탄 겁니다.”
국장이 호쾌한 웃음을 터뜨리며 덧붙였다.
“그런데 장 대표가 보내준 영상을 보니. 어후, 1, 2회 안에 무슨 볼거리가 그렇게 많은지. 시청자들이 다른 곳으로 새어 나갈 틈이 없겠더라고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장희재가 씩 웃으며 덧붙였다.
“정말 볼거리도 많고, 액션도 풍성하고. 재밌는 드라마입니다.”
“강재하가 연기를 제법 잘하더군요. 은혜선 씨도 그렇고. 그리고 샤오웨이 그 친구는….”
그 말에 장희재가 크흠, 어색한 헛기침을 내뱉었다.
“육회상 감독님한테 못 들으셨나 보네요. 샤오웨이가 극 중에서 그 존재감을 날로 발한다는 사실을요.”
“아, 그건 들었어요. 그런데 장 대표한테 먼저 확인하고 싶었지. 장 대표는 워낙에 솔직한 사람이잖아요.”
반어법을 쓰는 국장의 미소에 장희재는 더욱 뻔뻔하게 나왔다.
“샤오웨이 덕분에 저희가 중국에도 판권을 판 겁니다, 국장님. 헤븐 리조트가 중국에 힘을 많이 써 줬어요.안 그럼 저희 300억짜리 계약도 따내기 힘들었습니다?”
그 말에 국장이 꼬리를 팍 내렸다.
“하하. 알죠, 알죠. 장 대표 노고가 대단했다는 거.”
그는 못마땅한 기색을 인위적인 미소로 덮었다.
‘장 대표, 이 인간 앞에만 있으면 이상하게 맥을 못 추겠단 말이야.’
드라마 ‘청룡검신’의 공동 제작자인 장희재 대표.
제작비 300억을 끌어온 일등 공신이자 거액의 홍보비를 도맡은 그 앞에서 국장은 목소리를 높이지 못했다.
얼굴이 붉어진 국장은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장 대표, 우리 쪽에서 회의를 한 결과. ‘청룡검신’의 공개를 몇 달 정도 늦추는 게 어떠냐는 의견이 있었거든요. 어떻게 생각해요?”
“내년 2월 초쯤에 첫 방송 하기로 되어 있지 않았습니까? 설날 연휴 때 첫방 시작하면 더 화제성 높을 거라고, 그 시간대 추천해주신 건 국장님 아니셨습니까.”
장희재의 말에 국장이 난감한 기색을 비쳤다.
“그게, 내년 초에 베일릭스에서 ‘데스 게임’을 방영한다고 해서요. 장 대표도 잘 알잖아요. 거기에 만만치 않은 배우들 포진한 거. 심요연의 복귀작인 것도 그렇지만, 한태주가 주연인데, 다 끝난 거지 뭐.”
“국장님.”
장희재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한태주 따위에 저희 드라마가 질 거로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죠?”
“아니, 그게 아니라….”
“그깟 서바이벌 드라마에 저희 드라마, 절대 지지 않습니다. 그런 건 일본에서나 통할 만한 장르라고요. 데스 게임이라뇨. 그렇게 피 튀기고 맥락 없는 잔인한 드라마를 누가 좋아한답니까?”
장희재의 강권에 국장은 애써 그를 다독였다.
“진정해요, 장 대표. 당연히 우리가 질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어요. 다만 신중히 처리하자는 거죠. 그래도 상대가 한태주랑 심요연이니, 경계할 필요는 있다고 말해 준 겁니다.”
그 말에 장희재가 거만한 눈초리를 깜빡였다.
“경계라니요. 그쪽이 우리를 경계해서 편성을 바꾸면 모를까. 저희는 절대로 피하지 않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우리는 장 대표만 믿고 갑니다.”
국장은 마치 자신을 안심시키려는 듯 재차 말했다.
“이제껏 장 대표의 선택이 틀린 적은 없으니까.”
* * *
동 시각, 제작사 ‘화음픽쳐스’에서는 열띤 회의가 이어지고 있었다.
모황국 감독과 제작자 이덕량, 베일릭스 박숭원 본부장 등이 모여 함께 진행하는 회의는 한태주로 귀결되었다.
“한태주 씨 춤추는 영상 봤어요? 지금 유튜브에서 핫하던데.”
“400만 뷰 넘어갔더라고요. 인기가 웬만한 케이팝 아이돌 못지않아요.”
“댓글 보니까 한태주 씨 차기작 언제 하느냐고 난리 났더라고요.”
그 말에 모황국이 히죽 웃었다.
“하하, 태주 씨가 우리 드라마에서 서바이벌 게임 도전하며 온갖 고생하는 역할인 것 알면, 팬들 난리 나겠네요. 왜 태주 씨 고생시키냐고 말이에요.”
“오히려 역경을 이겨내는 주인공이라고 좋아할걸요.”
“한태주 씨라면 온갖 고생을 해도 멋있게 보일 겁니다.”
모황국이 박숭원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제 티저를 내놔도 될 것 같은데. 저희가 보낸 편집본 보셨습니까?”
“잘 봤습니다. 다음 주 중에 공개하죠. 벌써 반응이 궁금해지는군요.”
기대 어린 표정의 박숭원이 말을 이었다.
“좀 있으면 저희가 전 세계적으로 동시각에 온라인으로 간담회를 열 겁니다. 내년에 내놓을 작품들을 소개하는 자리인데, 그중 ‘데스 게임’을 제일 먼저 소개할 생각입니다.”
훅 들어온 박숭원의 말에 이덕량과 모황국은 놀란 눈을 마주쳤다.
“그만큼 저희가 기대를 걸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박숭원이 모황국에게 의미심장한 미소로 물었다.
“기대해도 되겠습니까?”
“당연한 말씀을.”
모황국은 피식 웃으며 화답했다.
“한태주의 연기에 전 세계 시청자들이 열광할 그 날이 벌써 기다려지는군요.”
* * *
쌀쌀한 가을이 지나가고 있는 11월 초.
연예계의 지각변동이 일어나기 직전인 이때, 차근차근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회사들이 있다.
“선플라워 프로덕션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앤디 피셔 감독이랑 조감독, 그리고 스태프들까지 도합 30~40명 정도 서울로 온다고 합니다.”
컴퓨터를 응시하던 김진수가 송유리에게 고개를 틀었다.
“아, 그리고 차용석 팀장님이 물어보셨어요. 이번 촬영 끝나고 잠깐 시간이 나는데. 디에고 크루즈, 앤디 피셔 감독, 한태주 씨 이렇게 셋이서 어디 관광할 수 있는 곳 없겠느냐고.”
“세 분 일정도 있고 하니, 간단히 시간 보내고 식사도 하실 수 있는 곳으로 잡아보겠습니다.”
“유리 씨, 땡큐.”
고개를 끄덕이던 송유리가 반짝이는 시선을 들었다.
“아, 진짜 기대돼요. 한태주 씨가 드디어 할리우드에 진출하다니. 그것도 디에고 크루즈랑 공동 주연으로요. 어떤 연기를 보여줄지 정말 궁금해요.”
“태주 씨의 적극성이 아니었다면 성사되기 어려운 조합이죠.”
“맞아요. 태주 씨 같은 톱스타가 같이 연기해 보고 싶다고, 그렇게 적극적으로 달려든 건 정말 신기했어요. 그러기 쉽지 않은데….”
김진수와 이야기하던 송유리가 문뜩 생각난 것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그런데 대리님, 제가 듣기로는요….”
송유리가 김진수를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차용석 팀장님. 이곳에 더 높은 직급으로 오신다는 얘기가 있던데, 그거 진짜예요?”
김진수는 다른 직원들을 쓱 둘러보았다.
총대를 멘 송유리의 질문에 다들 김진수의 대답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 상황.
그런 그들에게 김진수는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
“맞아요. XJ에서 우리 팀장님을 보다 좋게 대우해서 모셔 온다는 얘기가 있더라고요.”
“와, 대박.”
“차 팀장님 능력은 인정해줘야죠. 솔직히 이번에 태주 씨가 선택한 작품 모두 차 팀장님이 강력하게 밀어붙여서 할 수 있었잖아요.”
“솔직히 저는 ‘탈출’이나 ‘데스 게임’이 장 대표님이 민 ‘조선패션왕’, ‘청룡검신’보다 잘될 거로 생각해요.”
“그런데 참 공교롭게도 그 작품들이 개봉 일자가 비슷해요. 영화도, 드라마도.”
직원들의 수다에 김진수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 보니 내일 ‘탈출’하고 ‘조선패션왕’ 티저가 나온다던데요. 누가 더 조회수 높을지 궁금하네요.”
“본격적인 전초전이라고 할 수 있겠죠.”
송유리가 신나게 덧붙였다.
“이름하여 한태주와 장 대표님의 승부랄까. 누구의 선택이 맞는지 드디어 내일부터 윤곽이 드러나는 거예요.”
* * *
다음 날 오후.
태주는 회의실에서 차용석과 함께 선플라워 프로덕션 측과 영상 회의를 진행했다.
영화 ‘나의 미래’ 서울 로케이션 촬영과 관련해 연락한 앤디 피셔는 만족스러운 미소로 회의를 마쳤다.
“그럼 이번 달 말에 뵙겠습니다, 태주 씨.”
“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감독님.”
기분 좋게 회의를 끝낸 후.
태주는 차용석과 함께 회의를 마무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ABS 라디오 방송국 가야 하지? 간식이라도 챙겨 줄까? 바나나는 어때?”
“괜찮아요. 인우 형이 차에 간식들 잔뜩 쟁여 놨어요.”
차용석은 안쓰럽다는 듯 태주를 바라봤다.
“오늘 오래간만에 있는 휴일인데 쉬지도 못하고 또 스케줄이네.”
“보이는 라디오라서 샵 들려서 살짝 단장하고 가려고요.”
“보이는 라디오야? 그러면 대충 하고 가기도 좀 그렇지.”
“그러니까요.”
태주가 머리를 쓸어올리며 피식 웃었다.
“강현이하고 단둘이 하는 스케줄은 처음이라 기대돼요.”
얼마 전 임강현은 라디오 디제이로 발탁됐다.
ABS에서 16~18시에 진행되는 ‘허그 더 라디오’라는 라디오쇼로, 제법 인기가 있는 방송이었다.
그런데 그가 첫 방송에 게스트로 태주를 부른 것이다.
생방송이라는 사실에 부담스러웠던 태주가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그는 재차 태주에게 부탁했다.
-야, 친구 좋다는 게 뭐냐. 오랜만에 라디오 디제이로 복귀하는데 좀 도와줘라.
평소 애교라고는 1도 없던 임강현이 그에게 애원하는 모습이 떠오르자. 태주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인우 형 올 때까지 시간 좀 있으니까, 커피 한잔하실래요?”
“좋지.”
태주가 차용석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러 향하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잠깐만, 나 전화 좀. 신예지 대표님이네.”
전화를 받은 차용석이 몰랐다는 듯 말했다.
“탈출 티저요? 아니, 벌써 올라왔어요? 분명히 오후 6시에 올라온다고 했잖습니까.”
태주가 재빨리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오후 2시 반이었다.
이중협이 알겠다는 듯 피식 웃었다.
[오늘 ‘조선패션왕’도 티저 올라온다고 했잖아. 그래서 일부러 빨리 올렸나 보다. 신 대표가 잘했네, 제작사는 이런 변칙적인 마케팅도 펼칠 줄 알아야지.]그때, 차용석의 목소리가 왈칵 커졌다.
“벌써 조회수가 그만큼 나왔다고요? 아니, 공개된 지 20분밖에 안 지났는데 15만 회….”
수화기 너머에서는 그보다 더 흥분한 신 대표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런 기세라면 100만 회 찍는 건 시간문제예요.
“그런데 조선패션왕도 오늘 티저 공개한다고 했었잖아요. 아까 오전 11시인가, 그때 올라온 거 봤는데 지금 삭제돼 있던데요?”
-하도 유치하다는 평이 많아, 일단 삭제하고 수정해서 올리려는 거겠죠. 의도적인지 고의적인지는 모르겠는데, 김결 씨가 그렇게 연기 못하는 것처럼 나오는 건 처음이었어요.
띵, 스르륵.
기다리고 있던 엘리베이터 문이 경쾌하게 열린 가운데, 수화기 너머 신 대표의 신난 목소리는 계속되었다.
-티저 쪽에서는 저희가 압승이라고요!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