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270
270화
수확의 묘미 (4)
태주의 굳어진 얼굴에 박인우가 그를 슬쩍 떠보았다.
“아니, 시간 조정하면 아벨 측도 갈 수는 있어. 좀 촉박해서 그렇지.”
“형은 내가 그쪽에 참석하기를 바라?”
“어? 그게…….”
결국 박인우는 진심을 조금 털어놓았다.
“‘아벨’은 명품 중에서 ‘루이스 모드’와 더불어 최상급 명품이잖아. 거기 쇼에 초대받은 배우들은 다들 급이 다르다고 평가받고. 그래서 네 이미지에 도움이 될까, 했지.”
“그래서 백시영 선배님이 거기에 초대받으신 거고?”
태주는 더 이상 말할 가치가 없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됐어, 그런 곳은. 나는 ‘보드레’ 모델로서 그 쇼에만 집중할래.”
한국 브랜드인 ‘보드레(Bodre)’는 여러 해외 브랜드들 사이에서도 꽤 유명했다.
작년에는 파리 최고급 백화점, 봉마르셰 남성관에서 매출 1위를 기록했을 정도.
그러나 아직 파리에서 명품으로서 그 인지도가 밀리는 건 사실이다.
특히 세계적으로 손에 꼽히는 명품, ‘아벨’과 ‘루이스 모드’와는 비교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100년의 역사와 20년의 역사를 견줄 수는 없는 거니까.
그래도 태주는 국내 브랜드인 ‘보드레’의 모델로 이곳에 초대받았다는 것에 무한한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배우는 연기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지, 몸에 걸친 명품으로 그 가치를 올리지는 않아.”
그 말에 박인우는 두 손을 들었다.
애초에 태주가 이렇게 대답하리라 예상했던 그였지만, 그의 개인적인 욕심에 한 번 더 물어본 거였다.
그러나 한태주의 우직함은 여전했다.
“하긴, 그게 네 방식이지.장신구보다 내실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
태주가 노블 팀과 촬영을 계속 이어가는 도중, 박인우는 ‘아벨’ 측에 연락을 취했다.
쇼에 참석 못 하겠다는 의견을 전달하자, 그쪽에서는 도저히 이해를 못 하겠다는 말을 전해왔다.
그것도 그런 것이, 콧대 높은 브랜드 ‘아벨’로서는 유명인이라 할지라도 초대장을 잘 보내지 않기 때문이다.
-보드레 같은 브랜드 말고 저희와 함께하며 이름을 알리는 게 더 좋으실 텐데요.
“한태주 배우의 뜻은 확고합니다. 자신이 지금 모델을 맡은 브랜드에 충실히 하고자 한다고 합니다.”
-세상에, 보드레와 아벨 중 어떤 게 본인 이미지에 도움이 될지는 누구라도 알 텐데. 한태주 씨가 어리석네요.
상대방한테서 오만한 웃음이 흘러나옴에도 박인우는 끄떡없었다.
“글쎄요, 그런 섣부른 결론은 아직 짓지 않으려 합니다. 한태주 배우의 스타성에 힘입어 보드레가 더욱 대성할 수도 있는 법이니까요.”
* * *
얼마 후.
고요한 사무실에 차용석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아벨 측 연락을 또 받았다고? 그런데 태주가 거절했고…. 아, 알겠어. 그래, 수고해.”
대표실에서 야근하고 있던 차용석이 전화기를 내려놓자, 옆에 있던 김진수 팀장이 전전긍긍한 목소리를 냈다.
“아벨 측에서 태주 씨에게 초대장을 보냈답니까?”
“보냈는데, 태주가 거절했대.”
“아무리 백시영이 있다고 해도 저는 거절하는 게 아까운 것 같아요. 애초에 거기 아시아권 인사들은 참석하기조차 어렵잖아요. 아마 백시영 씨를 제외하면 태주 씨가 2번째….”
“태주는 후회하지 않나 봐. 그 시각에 보드레 패션쇼에 올인하기로 했대. 나도 솔직히 태주 편이고.”
“아…….”
꽉 쥐고 있던 김진수의 주먹에서 힘이 풀렸다.
그는 제법 실망스러운 표정이었다.
“이번에는 태주 씨 선택이 아쉽네요. 아벨 브랜드 행사만 한 번 참석해도 글로벌 인지도가 확 올라갈 텐데요.”
“혹시 또 모르지, 태주와 보드레가 서로가 윈윈할지.”
차용석이 마우스를 달칵거리며 말을 이었다.
“이번에 데스 게임 파티 씬에서 태주가 입은 옷들, 전부 보드레에서 협찬한 거잖아.”
“그 옷들 정말 잘 뽑혔더라고요. 태주 씨 옷 태가 훌륭한 것도 있겠지만, 정말 옷이 예뻤습니다.”
잠시 생각하던 차용석이 고개를 들었다.
“데스 게임, 내일 공개 되는 거 맞지?”
“네, 이제 하루 남았어요.”
“왜 이렇게 시간이 안 가냐, 미치겠네.”
차용석은 초조한 듯 손가락 깍지를 껴 딱딱 소리를 냈다.
“이게 다 청룡검신 때문이야. 티비만 틀면 그쪽 광고가 나오잖아!”
“대표님,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저희의 경쟁상대는 그런 지상파 드라마가 아닙니다. 그리고, 저희도 유튜브에서 난리입니다.”
김진수가 어깨를 으쓱였다.
“베일릭스에서도 하루가 멀다고 디데이 프로모션 해서 영상 풀고 있잖아요. 다들 드라마 빨리 보고 싶다고 난리입니다.”
“그래도 반응이 뜨거운 것 같아서 다행이야.”
“뜨겁다마다요. 완전 핫합니다. 그러니까 조금만 기다려 보세요. 원래 오래 기다린 선물을 받을 때, 그 기쁨이 배가 된 다잖습니까.”
그의 말에 차용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태주도 진득하니 스케줄 하고 있는데, 나도 내 일하면서 기다려야지. 그럼 일단은….”
기사를 보던 그는 한태주 이름으로 도배된 연예란을 발견했다.
“BTC에서 이거 녹화할 때면 데스 게임이 이미 베일릭스에서 공개된 이후겠군.”
“파리 패션위크 끝내고 런던으로 넘어가서 이행하는 스케줄이니까요.”
차용석이 기대되는 듯 손을 비볐다.
“태주가 좋은 분위기에서 녹화할 수 있게, 데스 게임 결과가 좋길 바라야겠다. 베일릭스 측 관계자들 말로는 내부에서 압도적으로 좋은 평을 받았다니까, 적어도 월드 랭킹 10위에는 들었으면 좋겠어.”
* * *
다음날.
파리에서 하룻밤을 자고 난 태주는 아침부터 노블 촬영팀과 동행했다.
그가 의상을 고르는 것부터 메이크업 받는 것까지 밀착 취재했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온 태주가 발코니에서 핸드폰으로 드라마를 보는 모습에 그들이 카메라를 들이댔다.
“그러고 보니 오늘 ‘데스 게임’ 공개일이었죠? 벌써 공개됐어요?”
스태프의 질문에 태주가 설명했다.
“오전 8시에 공개됐더라고요. 그래서 보고 있었어요.”
태주는 금세 핸드폰 속 ‘데스 게임’에 빠져들었다.
편집본 시사회에서 이미 1화를 보았지만, 플랫폼에 올라온 걸 확인하니 느낌이 새로웠다.
옆에서 스태프도 덩달아 같이 드라마를 몰입해서 보던 중.
입을 벌리면서까지 집중하던 그에게 태주가 슬쩍 물었다.
“재밌어요?”
끄덕.
촬영 스태프가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자 태주는 씩 웃었다.
그때, 방 안에서 박인우가 문을 열고 나왔다.
“뭐하냐? 아, 데스 게임 보는구나? 그거 지금 한국에서도 화제래. 그렇지만 지금은 패션쇼를 갈 시간이야, 알지?”
“알아.”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일어나는 태주.
살짝 긴장한 듯한 그에게 박인우가 물었다.
“긴장했어? 데스 게임 때문에?”
“아니, 오늘 패션쇼 때문에.”
“왜?”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겠다는 책임감이 들어. 이곳 파리의 패션위크에서 패션쇼를 연 국내 브랜드는 보드레가 유일하다며. 한국인으로서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어.”
마음을 다잡은 태주는 곧이어 일행들과 함께 패션쇼장으로 이동했다.
차에서 내린 태주는 주변을 빼곡하게 채운 수많은 사람을 마주했다.
“한태주다!”
파리로 파견 나온 수많은 한국 언론뿐만 아니라, 유럽, 미국의 카메라도 그를 주목하는 게 보였다.
눈이 부신 수많은 플래시가 그를 비추는 이때.
몸에 달라붙는 검은 양복을 멋스럽게 입고, 머리는 뒤로 넘긴 금욕적인 퇴폐미가 인상적인 태주가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플래시는 그가 지정된 자리에 앉을 때까지 그치지를 않았다.
태주에게 쏠리는 수많은 관심은 패션쇼가 시작됨에도 계속되었다.
파리 패션위크에 진출한 유일한 국내 브랜드, ‘보드레’.
여러 모델의 워킹을 태주는 진지하게 감상했다.
‘아무리 봐도 외국 명품에 떨어질 이유가 전혀 없는 브랜드인데.’
패션쇼를 감상하던 이중협도 그의 말에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멋지긴 멋져.]‘그렇죠?’
[네가 멋지다고.]이중협은 고개를 돌려 태주를 바라보았다.
[너 지금 아벨 쪽 거절하고 보드레 패션쇼에 온 거잖아. 그 소식이 기자들 사이에 돈 모양이더라. 한국의 톱스타가 아벨을 깠는데, 그가 선택한 ‘보드레’도 ‘아벨’ 못지않게 고급스러운 매력이 있다고.]‘사람들이 ‘보드레’ 매력을 알아줬다면 저야 고맙죠. 모델로서 그만한 찬사가 없으니까요.’
태주는 짐짓 흐뭇한 미소로 쇼를 계속해서 감상했다.
쇼에 집중한 그는 자신이 얼마나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지.
맨 앞줄에 앉은 그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사랑에 빠뜨렸는지.
그리고 백스테이지에 있던 ‘보드레’의 수석 디자이너가 고맙다는 눈길을 보내고 있다는 것도.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 * *
‘보드레’의 패션쇼가 성황리에 끝났다.
쇼장을 꽉꽉 들어찬 사람들은 여느 때보다도 많은 관심을 내비쳤다.
“솔직히 ‘보드레’가 옷 잘 만드는 건 알았지. 그런데 이렇게 고급스러운 명품인 줄은 오늘 새삼 깨달았네.”
“한태주가 오늘 입은 옷 말이야. 그것도 보드레 제품이지?”
“응. 솔직히 아벨에 비빌 수 있을 것 같아.”
한태주의 ‘보드레’ 패션쇼 참석은 여러모로 많은 의미가 있었다.
국내 브랜드 ‘보드레’를 세계적으로 알리고 더욱 유명해지게 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
한편, 태주는 여러 사람에게 인사 중이었다.
한국 인사들뿐만 아니라 외국 패션계 인사들도 그에게 온통 관심을 표한 가운데.
백스테이지에서 나온 한 명의 여자가 그의 손을 붙들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정말 고마워요, 한태주 씨. 덕분에 오늘 역대급 판매량을 기록했어요.”
그녀는 ‘보드레’의 수석 디자이너, 소연희.
한국에 있는 여동생 소원영과 공동 창립자였다.
60대의 그녀는 커트머리를 한 활기찬 여자였는데, 태주를 보는 눈길에 반짝이는 총기가 더해져 있었다.
“태주 씨 덕분에 제가 어깨 펴고 다닐 수 있겠어요.”
그녀는 태주의 귓가에 재빨리 속삭였다.
“세상에, 아벨을 거절하고 저희 쇼에 오시다니!”
“당연한 일이죠. 보드레의 모델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이었습니다.”
태주는 홀가분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쇼가 끝났음에도 사람들이 줄어들기는커녕,더욱 몰려들고 있었다.
그의 시선을 따라간 디자이너가 씩 웃었다.
“전부 태주 씨 소문을 듣고 온 사람들이에요. 지금 파리에 진정한 파리지앵이 나타났다고.”
디자이너는 마치 아들을 보듯 태주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이렇게 잘난 한태주 씨가 우리 브랜드 모델이라니, 정말 기뻐서 몸 둘 바를 모르겠어요!”
* * *
늦은 밤까지 패션쇼의 뒤풀이 파티에 참석한 후 숙소로 돌아온 태주.
여러 사람과 대화했던 탓에 매우 피곤했다.
다른 패션쇼의 뒤풀이 파티에서 넘어 온 사람들도 매우 많았다.
한태주가 나타났다는 소식에 그곳으로 몰려온 것이다.
이미 SNS에서는 보드레 패션쇼에 참석한 그리스 조각 각은 태주의 스틸샷이 유명했다.
쌍꺼풀 없는 서늘한 눈매와 따뜻한 입매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얼굴은 많은 이들의 시선을 빼앗았다.
여러 잔을 받아마신 박인우는 취해서 침대에서 곯아떨어졌다.
함께 온 로드매니저, 장진혁도 피곤했는지 그의 옆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몇 병을 마셨는데도 끄떡없던 태주는 목을 죄던 넥타이를 풀며 그에게 눈짓했다.
“진혁 씨, 피곤할 텐데 들어가서 자요.”
“아닙… 아닙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정말 괜찮아요.”
“……그럼 내일 일찍 뵙겠습니다. 좋은 밤 되세요.”
장진혁은 연신 미안해하며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홀로 남은 태주는 냉장고를 뒤져 맥주 한 캔을 꺼냈다.
한 모금을 마신 그는 발코니의 테이블에 앉아 캬, 시원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역시 와인보다는 맥주지. 소박하면서도 묵직한 이 맛.”
그는 야경 사진을 찍어 고모에게 전송했다.
나중에 태희와 함께 파리로 놀러 오자는 다정한 말과 함께.
그때, 핸드폰이 진동하며 울렸다.
화면에 뜨는 익숙한 이름에 태주는 괜히 긴장해서 전화를 받았다.
윤수안이었다.
그녀도 파리 패션위크에 참석 중인 걸 알았지만, 일정상 아직 만날 기회가 없었다.
수화기 너머 들리는 그녀의 속삭임은 무척이나 달콤했다.
-지금 밖으로 잠깐 나올래요?
“네?”
-내가 밥 한번 산다고 했잖아요, 저번에 만났을 때. 태주 씨 내일 런던으로 넘어가니까 밥 먹는 건 무리라, 지금 잠깐이라도 보고 싶어서요.
간절함이 섞인 따뜻한 목소리에 태주는 벌떡 일어났다.
그는 서둘러 호텔 방을 나섰다.
이성이 아닌 마음이 시키는 대로.
귀신 보는 배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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