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392
392화
네가 숨기고 있는 것 (7)
* * *
오후 10시.
한창 ABS 방송국에서 녹화가 진행되는 이때.
스튜디오 S에도 아직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다.
야근하는 직원들은 찌뿌둥한 몸을 이리저리 스트레칭하며 일하는 중이다.
그러나 그들의 눈빛만큼은 초롱초롱했다.
잠이 달아날 기사들을 낮에 충분히 본 덕분일까.
대표실에서도 두 남자가 늦은 시각임에도 눈을 반짝이고 있다.
그중 주인식이 눈에 불을 켜고 들여다보는 기사 하나.
그를 힐끗거리던 마 대표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오늘 무슨 날인가? 정치권 기사부터 연예계 기사까지 아주 큰 게 팡팡 터지네.”
“난 아직도 가슴이 벌렁거려, 우리 태주가 진짜 그 외국인 여자하고 연애하는 건 아닌지.”
“브리짓이 60이 다 되었지만 참 매력적인 여자긴 하지. 마지막으로 사귄 남자친구가 20대였다는 거 보니까.”
“그래도 태주는 아니지! 어디서 그런 마귀할멈이 우리 태주를 넘보려 해!”
잔뜩 흥분한 주인식 감독에게 마범수 대표가 킬킬거렸다.
“왜 이렇게 흥분했어, 주 감독. 자기가 태주 씨 아버지도 아니잖아. 그리고 브리짓 드하트한테 마귀할멈이라니, 그렇게 매혹적인 마귀할멈 봤어?”
“흥, 아무튼.”
주인식 감독이 죽다 살아났다는 듯 숨을 길게 내쉬었다.
“우리 태주는 아무한테나 못 줘.”
“뭔 소리야, 그게?”
“어렸을 때부터 얼마나 반듯하고 열심히 살아온 앤데. 아무나하고 붙여놓을 수 없다고.”
“아이고, 그러다가 태주 씨 상견례 하는 자리까지 따라가겠다, 주 감독.”
그 말에 주인식 감독이 멋쩍은 표정을 짓다가, 문뜩 생각난 듯 말했다.
“그런데 태주랑 브리짓이랑 둘이 만난 진짜 이유가 뭘까?”
“기사에서 말했잖아, 둘이 같은 AAA 소속이라 만난 것뿐이라고. 태주 씨가 사교성이 좋은 모양이야, 직접 찾아가서 인사한 것 보면.”
“흐음, 그런 건가.”
여전히 의심을 버리지 못한 주인식에게 마 대표가 말문을 돌렸다.
“그런데 주 감독, 오늘 오전에 났던 이중협 살인사건 기사 있잖아.”
“아, 태주 열애설에 묻혔던 그 기사?”
“솔직히 주 감독은…… 어떻게 생각해?”
마범수가 비밀스럽게 목소리를 한층 낮추었다.
“이중협이 촬영장 사고가 아니라는 거, 사실 7년 전에도 알음알음 나오던 말이었잖아.”
“차용석 대표 아니지, 그때는 매니저였지. 그이가 그렇게 주변을 캐고 다녔었잖아.”
주인식이 그때가 생각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중협 로드매니저였나, 그이가?”
“맞아. 가족이 없던 이중협의 시체를 제일 먼저 확인한 것도 차 대표였지. 사실 그래서 더욱 이해가 안 돼.”
고개를 흔들던 마범수의 눈길이 의심으로 깊어졌다.
“분명 그때 이중협의 시신을 확인했잖아. 당시에는 아무런 말이 없었고.”
“그런데 왜 인제 와서 사체가 토막으로 발견이 되었냐는 거지?”
“그렇지. 그래서 말인데 주 감독, 난 솔직히 여기까지도 생각해봤어.”
생각에 잠긴 마범수가 주인식에게 조심스레 자신의 의견을 전했다.
“아무래도 차 대표가 제일 의심스럽지 않아? 원래 가장 가까운 사람이 배신자인 법이잖아.”
“이 사람아, 지금 누굴 의심하는 거야? 차 대표는 태주 매니저이기 이전에 이중협의 매니저였어. 그것도 거의 가족, 아니 그 이상의 관계였다고.”
“그런데 이중협이 죽고 나서 땡 아니었나? 그 이후로 연예계 일을 관뒀다면서.”
“그냥 관둔 게 아니라, 그 사건이 의심스러워서 혼자서 조사하고 다닌 거래.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이야기인데, 자네만 모르고 있었네.”
혀를 끌끌 찬 주인식이 말을 이었다.
“그때도 이미 차 대표는 의심했었던 거야. 이중협이 촬영장 사고로 죽은 게 아니라, 분명 그 이면에 더욱 깊은 일이 연관된 거라고.”
* * *
ABS 방송국, ‘마스크 스타’ 녹화가 진행되는 경연장 내.
늦은 시각임에도 사람들의 눈은 한층 기대감에 달궈져 초롱초롱했다.
오늘 추석 특집으로 성사된 가왕전이 기대되는 건 물론, 패널 석에 특별히 초대된 스페셜 게스트, 브리짓 드하트 때문이기도 했다.
황금빛 드레스를 입고 어깨에 여우 목도리를 한 브리짓은 이곳에 있는 그 누구보다 빛나고 아름다웠다.
미스터 버터플라이가 무대를 하기 전.
엠씨는 오늘 참석한 패널들을 인터뷰하려 입을 드릉드릉 털었다.
“오늘 누가 이길 것 같으세요? ‘마스크 스타’의 터줏대감 김혁동 씨?”
“아, 이런 난감한 질문에 제가 어떻게 답합니까. 두 분 다 실력이 출중한 분들이라…… 글쎄요.”
김혁동이 난색 표한 걸 시작으로 다른 이들도 다들 고개를 저었다.
작곡가 출신, 가수 출신 등등 음악 계통에 몸담은 패널들은 더욱 신중했다.
이들을 보던 브리짓은 피식 미소를 짓더니, 자신이 먼저 마이크를 집어 들었다.
“저는 한태주 씨를 응원하고 있습니다. 그가 이길 것을 믿어 의심하지 않고요.”
의미심장하게 반짝이는 눈동자에 주변이 술렁거리는 이때.
엠씨는 건수를 잡았다며 반색했다.
“그 이유에 관해 물어봐도 괜찮을까요? 혹시, 한태주 씨와의 특별한 친분 때문인가요?”
열애설을 유도하는 엠씨의 말에 브리짓은 헛웃음을 지었다.
“특별한 친분까지는 없죠. 우리의 연결고리는 미국 소속사가 같다는 것, 그거뿐이니까요. 그리고 저는 개인적으로 미스터 버터플라이를 응원하지 않아서요.”
“그러고 보니, 브리짓 씨는 마스크 스타 시즌 1에 패널로 참석하신 적이 있으시죠. 그때 미스터 버터플라이는 어땠나요?”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질문에 브리짓이 상큼한 미소를 지었다.
“오만하고 자신감이 너무 넘쳐, 목이 뻣뻣했죠. 그런데 그건 다 그이의 실력이 뒤따라주기 때문이었어요.”
“그럼 오늘 태양왕과 미스터 버터플라이 간의 승부, 쉽지 않겠군요. 그럼, 여러분.”
무대 밑 스태프가 보낸 어서 진행하라는 신호를 읽은 엠씨는 서둘러 손을 들어 올렸다.
“이제 미스터 버터플라이의 무대를 맞이하겠습니다! 여러분, 큰 박수로 맞이해 주십시오!”
환했던 조명이 컴컴해진 순간.
넓은 무대에 핀포인트 조명이 켜지고, 서서히 거대한 나비가 그 위용을 드러냈다.
황금빛으로 온몸을 감싼 나비에게서 호소력 짙은 소절이 흘러나오자.
“Sunny day~ the day you left me~”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무대를 응시하던 사람들은 큐피트의 화살을 맞은 듯, 그대로 얼어버렸다.
인터뷰를 통해, 공개적으로 태양왕은 저를 이길 수 없다는 선언을 한 터라 미운털이 박혀 버렸던 미스터 버터플라이.
그러나 노래를 부르는 지금.
그를 보는 눈길은 노래에 집중한 사람들의 눈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에서도 유독 놀란 듯한 한 사람.
몸을 앞으로 빼고 눈을 찡그린 브리짓이었다.
얼마 전, 태주가 이 곡에 관해서 물어본 것을 똑똑히 기억하는 그녀였다.
“역시, 그런 거였나…….”
그녀의 입가에 재밌다는 미소가 자리 잡았다.
* * *
“I will rise~ from the deep gloomy ocean you left me~”
황금빛 나비가 무대를 종횡무진 누비며 노래를 부르는 지금.
한껏 노래에 빠져든 관중들은 입을 헤벌리며 정신을 못 차렸다.
그건 패널들도 마찬가지였다.
한국 가왕에 도전장을 던진 미스터 버터플라이의 무대를 그들은 누구보다 냉철하게 분석하리라, 다짐하고 이곳에 온 터.
그러나 막상 미스터 버터플라이의 무대를 보니, 그들은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파워풀한 톤의 목소리가 몸을 밧줄로 단단히 붙잡은 듯한 느낌에 마치 마법에 걸린 것 같아서.
“I will face a sunny day again!”
노래를 끝마치는 힘찬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누가 뭐랄 것 없는 세찬 박수 소리가 경연장을 가득 메웠다.
미스터 버터플라이는 무릎을 살짝 굽힌 채 모두에게 인사를 한 후.
이 감동이 채 가시기도 전, 재빨리 엠씨 쪽으로 다가갔다.
그가 엠씨에게 무어라 속삭이자, 그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 여러분. 아직 무대의 감동이 채 가시지도 않았지만. 미스터 버터플라이의 스케줄 관계로 서둘러 인터뷰를 진행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미스터 버터플라이 씨, 긴장하셨다든가, 뿌듯하시다든가 무대를 마친 소감이 어떠신가요?”
귀에 달린 인이어를 통해 통역을 전해받은 미스터 버터플라이가 어깨를 으쓱했다.
“긴장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제가 잘할 걸 알았으니까요.”
다소 오만해 보이는 대답에 이제는 관중들도 그러려니, 하는 눈치였다.
“원래 성격이 저런가 봐. 인터뷰할 때부터 저러더니.”
“자신감이 너무 넘치는 거지.”
그때, 패널 쪽에서 브리짓이 마이크를 집어 들었다.
“미스터 버터플라이, 예전에 우리 미국에서 만났을 때하고 성격이 많이 달라졌네요.”
[저 아줌마, 무언가 꿍꿍이가 있는 게 틀림없어.]“그때는 좀 부끄러워하기도 하고, 겸손했는데. 지금은 지나치게 자신감에 넘쳐서 거만한 느낌이에요. 무언가를 숨기고 싶어서 다른 인격을 연기하는 것 같기도 하고…….”
브리짓이 예리한 눈동자를 반짝였다.
“과연 당신이 숨기고 싶은 게 뭘까요? 저한테 하고 싶은 말 없어요, 미스터 버터플라이?”
그 말에 주변 사람들은 다시금 술렁거렸다.
미스터 버터플라이의 대단했던 무대에 그들이 미처 떠올리지 못했던 것.
“그러고 보니, 미스터 버터플라이가 한태주라는 말이 있었잖아? 발목 쪽에 흉터가 똑같다고.”
“오늘은 스타킹 색이 너무 진해서 보이지 않는데.”
“밑에서 보니까 다리 라인이 한태주 같기도 하고. 아, 진짜 미스터 버터플라이가 한태주인가? 그래서 안 들키려고 저렇게 오버하는 거고?”
나비 가면 속 태주의 얼굴이 당황스러움에 살짝 흔들리는 그때.
인이어를 통해 박 피디의 전언을 받은 엠씨가 씩 웃었다.
“시간이 없으므로, 미스터 버터플라이 씨에게 마지막 질문을 하겠습니다. 다음 무대는 태양왕 씨가 하게 되는데요. 혹시 그분과의 승부에서 아직도 본인이 이긴다고 확신하십니까?”
그 말에 태주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최고의 가수가 만든 최고의 곡으로 이곳에 있는 관중, 그리고 원작자를 만족시켰습니다. 이보다 더 완벽한 무대를 태양왕이 보여 주리라고는, 감히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 말에 누가 뭐랄 것 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미운털이 박혔던 미스터 버터플라이가 분위기를 제 쪽으로 이만큼 끌어올린 데는, 분명 유명한 선곡, 원곡을 뛰어넘는 재해석.
그리고 그를 뒷받침하는 뛰어난 노래 실력과 무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노래의 원작자인 브리짓 드하트가 이곳에 와 계시는데요. 브리짓 씨, 본인의 의견은 어떤가요?”
엠씨의 질문에 브리짓은 재밌다는 미소를 지었다.
“인정하기 싫지만, 저 말이 다 맞네요. 저보다도 더 잘 불렀어요, 미스터 버터플라이.”
그 말에 태주는 처음으로 허리를 굽혔다.
원작자이자, 자신과 만나 곡 해석을 하는 데 큰 도움을 준 그녀에게.
* * *
동시각, 조정실.
잔뜩 긴장한 채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박진주 피디가 초조한 듯 이를 까득거렸다.
“이거, 기세가 완전히 미스터 버터플라이 쪽으로 옮겨가 버렸는데?”
“무대를 잘하는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마법에 홀린 듯 사람들이 빠져버릴 줄은 몰랐습니다.”
“무엇보다 곡 선정을 정말 잘했어.”
박 피디가 냉철하게 분석했다.
“전세계 사람들이 다 아는 브리짓 드하트의 대히트곡을 선곡한 게, 지금 좋은 분위기의 주요 원인이야. 심지어 원곡보다 더 재해석을 잘했어.”
“원곡에서의 브리짓은 보이스 컬러에 콧소리가 섞여서 답답한 면이 없지 않아 있었다면, 미스터 버터플라이는 시원하게 뻗어가는 고음으로 청량한 맛을 잘 살렸어요.”
“아, 태주 씨는 왜 그런 곡을 고른 거야.”
박 피디가 초조한 듯 머리를 쓸어올렸다.
“태주 씨가 고른 곡은 시원한 고음도 없고, 그렇다고 사람들이 다 아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80년대에 잠깐 히트했던 곡이긴 하잖아요.”
“아는 사람만 알지, 대부분 모른단 말이야. 막말로 넌 그 노래 알았어?”
“……몰랐죠.”
“거봐. 이건 태주 씨가 완전한 레전드 무대를 만들지 않는 이상, 자칫하면 분위기 가라앉을 수도 있다고.”
어쩔 줄 모르던 박진주 피디는 서둘러 겉옷을 챙겼다.
“나 잠깐 태주 씨 대기실 좀 다녀올게. 아니, 내가 태주 씨 무대까지 안내할게.”
“선배님, 괜히 태주 씨 건드리지 마시죠. 안 그래도 지금 무대 직전이라 잔뜩 긴장하고 있을 텐데요.”
“아니야. 미스터 버터플라이가 이만큼 무대 분위기를 끌어 올렸는데, 태주 씨도 알고는 있어야 대비하지!”
달칵.
박 피디는 서둘러 조정실에서 나와 출연자 대기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직 태주가 나비 옷에서 태양왕의 옷으로 갈아입는 중이라는 것도 모르고.
귀신 보는 배우님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