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193
사생은 팬이 아니다
“뭔가 이상하지 않냐?”
예민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홍오란이 눈을 가늘게 뜨며 주위를 살폈다.
“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었구나. 요즘 자꾸 누가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서혼 형도 그래? 어젠 현관 도어락 커버도 열려 있던데. 내가 분명히 닫은 걸로 기억하거든?”
“…착각 아니고?”
“이건 착각이라고 넘어간다 쳐. 그럼 이 사진은 뭐라고 설명할래?”
홍오란이 내게 내민 휴대폰 화면엔 우리 멤버들의 사진이 있었다.
가끔 우리가 모르는 직찍이 돌아다니곤 해서 특이한 일은 아닌데?
사진을 살피다가 순간 눈이 찌푸려졌다. 사진 속 배경이 우리 숙소 앞이었던 탓이다.
“…오란 형, 우리 숙소 주소 털렸어?”
“일단 여러 사람한테 알려지진 않았어. 한 계정에서만 올라오고 있는 걸로 봐서는.”
“사생이네.”
사생은 연예인이 어딜 가든 집착적으로 따라다니며 사생활을 알아내려 드는 부류.
사생이 커다란 골칫거리라는 사실을 아이돌이 되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데뷔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연락처를 어떻게 알았는지 끊임없이 전화와 문자, 톡이 쏟아지기도 했다. 번호를 바꿔도 계속 상황이 반복돼서 이제는 아빠 명의로 폰을 개통해서 사용하고 있었다.
그 외엔 큰 문제가 없었는데….
우리 숙소로 언제든 찾아올 수 있다고 생각하니 현실적인 공포가 몰려왔다.
“차라리 귀신 짓이면 덜 무섭겠네.”
“초록 형이 무서운 것도 있어?”
“있지. 인간.”
“인간?”
싱긋 웃고는 고개를 끄덕이는 초록 형을 보면서 괜히 오한이 들었다.
도대체 인간에게서 뭘 보아 온 걸까.
“귀신이 안 보이기도 하지만, 보인다고 해도 나를 해칠 수 있겠어? 반면에, 사람이라면?”
예상되는 상황들은 얼마든지 우리가 미래에 맞닥뜨릴 수도 있는 일이다. 사람이 제일 무섭다는 초록 형의 말에 모두가 공감했다.
“일단 준현 형한테 이 일 전달할게. 아직 별일은 안 벌어졌어도 다들 몸조심해. 문단속도 잘하고, 낯선 사람이 접근하면 경계하고.”
“Yes, sir.”
“현관에 우리 호신봉이라도 놔둘까?”
서혼 형은 사생이 우리 숙소에 침입하면 때려잡기라도 할 생각…?
“조심, 또 조심하겠습니닷!”
“오란이는 그 계정 잘 살펴보고.”
“알았어.”
“좋아. 이원이는?”
“조심할게. 그런데 우리가 이미 만났을 수도 있을까?”
사생이 우리를 보기 위해 숙소 주변을 배회한다면 이미 마주쳤을 확률이 더 높지 않을까. 어쩌면 대화를 나눠봤을 수도 있다.
“가능성은 충분하지. 우리 레이더에 걸리지 않았다면 자연스럽게 행동했다는 얘기니까.”
“그 사람….”
서혼 형이 뭔가 짚이는 구석이 있다는 듯 입을 열었다.
“최근에 아침 조깅하다가 만난 사람이 있어. 근처에 이사 왔다는 젊은 여자분이었는데….”
거기까지는 이상한 점이 없는데? 서혼 형은 어디서 꺼림칙함을 느꼈던 걸까.
“묘하게 마음에 걸리더라. 연기가 필요한 타이밍이 아닌데 연기를 하는 게.”
“연기? 조깅하다 만난 사이에?”
“날 모르는 것처럼 학생이냐고 물어보더라. 거기까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어. 우리 얼굴을 모르는 분들은 있으니까. 그런데….”
대세 아이돌이 됐다고 해도 TV나 SNS에 크게 관심이 없는 사람은 못 알아볼 수 있다. 아이돌에 관심이 없으면 보통 그룹 멤버 얼굴 하나하나까지는 기억 못 하기도 하고 말이다.
“나를 아는 눈치더라고.”
“음. 서혼 형은 아역배우로 활동하기도 해서 모르기가 더 어렵지 않나?”
“그러게! ‘나를 평범한 사람으로 본 건 네가 처음이야.’ 컨셉이었다면 애초부터 실패야!”
“…그런 이유였을까? 나는 모르는 척하면서도 내가 누구랑 사는지, 어떻게 사는지 집요하게 묻더라. 거의 매일 마주치기도 했고.”
서혼 형과 같이 사는 누군가의 일거수일투족이 궁금했던 모양이다. 그 누군가는 테오라 멤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걸 다 받아주고 있었어?”
“뭔가 불편해서 인사만 하고 난 내 페이스대로 운동했어.”
“그럼 됐어.”
서혼 형 페이스는 철인삼종경기를 준비하는 체육인의 페이스와 유사하다. 그걸 따라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인상착의가 어땠는데.”
홍오란의 단어 선택은 범죄자를 추격하는 형사를 연상하게 했다.
“머리가 어깨까지 닿는 여자분이었어. 눈에 쌍꺼풀이 없었고 살짝 매부리코에 입가에 점이 있었어. 신발 사이즈는 240. 키는 165. 몸무게는….”
“아니, 형. 신발도 신었을 텐데 키를 cm 단위로 알아낸다고? 몸무게도?”
“그 정돈 보면 알겠던데. 다들 왜 그래?”
역시 신체 능력뿐만 아니라 눈썰미도 인간을 초월한 걸까.
다들 서혼 형 같은 눈썰미를 가졌다면 자도, 저울도 발명되지 않았을 거다.
“그럼 몽타주를 그려볼게. 그런 얼굴 가진 여자가 접근하면 경계해. 박하준이나 함이원은 도망치고.”
“나는 왜에!”
그럼 내가 언급된 건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는…?
몽타주라니. 오란은 진심이었고 본격적이었다.
“지금은 신고해도 우리가 명확하게 피해를 입은 일이 없으니 들어주지 않을 거야. 이런 주제로 언급돼서 우리에게 좋을 일 없기도 하고. 일단은 지켜보자.”
심증은 확실하지만, 증거는 없는 상황. 안타깝게도 우리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조심하는 것밖에 없었다.
* * *
준현 형에게 일련의 상황을 알렸더니 외출 금지 명령이 떨어졌다.
어차피 지금도 거의 숙소와 연습실, 방송국만을 쳇바퀴 돌 듯 오가고 있어서 생활이 크게 달라지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행선지와 예상 귀가 시간만 알리면 작업실에 자유롭게 오갈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럴 수 없었다.
보통은 매니저 형들, 가끔은 멤버들이 한 명씩 돌아가며 데려다주고 데리러 와줘야만 이동할 수 있었다.
사생이 왜 나쁜지 절절하게 체감했다. 일상에 위협뿐만 아니라 끔찍한 불편함을 주는 존재였다!
“이원, 오늘은 my turn.”
작업실에 들른 나를 데리러 온 멤버는 지온. 초록 형과 서혼 형, 박하까지 셋은 스케줄이 있었고, 오란은 따로 볼일이 있어서 아침부터 외출했다.
“쇼미더골드 출연하기로 했어?”
지온은 쇼미더골드 새 시즌에서 섭외 요청이 들어왔다고 해서 회사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생각해보겠다고 했어.”
“좋은 기회 아니야? 네가 쇼골에서 이름을 알리기도 했고, 래퍼들에겐 특별한 프로그램이기도 하고.”
“심사위원으로 나오라는 데도?”
“…애매한가?”
심사위원이 될 수 있는 기준은 뭘까? 나는 랩에 일가견이 있다면 심사할 자격이 있다고 보는데.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겠지.
독특한 노선을 탄 지온을 두고 ‘쇼미더골드에서 실력을 검증하면 상업적으로도 성공할 수 있다’라고 홍보할 수도 있을 터다.
쇼골이 배출한 아이돌 래퍼. 대중적인 성공을 거둔 래퍼.
그런 타이틀이라면 심사위원석 한 자리를 차지하기에 모자라지는 않아 보이는데.
선택은 지온이 내리겠지만, 놓치기 아쉬운 기회였다.
“난 네가 심사위원이 될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해.”
논란이 생길 수는 있겠지만, 지온이라면 거뜬히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역시 그렇지? 불만 있는 놈들이랑 싸워서 항복을 받아내는 게 내 스타일이긴 해.”
쇼미더골드는 콜로세움이 아닌데…. 지온이 보는 세상은 싸움과 경쟁으로 이루어진 냉혹한 곳인가? 완전히 아니라고 단언할 수 없다는 점이 슬프다.
“응원할게.”
“받아둘게.”
소소한 대화를 나누면서 숙소로 올라가는 계단에 발을 디디는데 귀에 현이의 날 선 울음소리가 잡혔다.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현이는 누구에게 의사를 표현할 때가 아니면 웬만하면 울지 않는 조용한 고양이다. 지금 숙소엔 아무도 없을 시간이고.
그럼 이 거친 울음소리는?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계단을 두 개씩 밟으며 뛰어 올라갔다. 문을 열려고 보니 도어락 커버가 열려 있었다.
팔에 소름이 돋았다.
우리 중 누가 마지막에 외출했든지 문단속을 허술하게 했을 리 없다. 요즘 얼마나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데. 두 번 세 번 확인하고 나서 외출하곤 한다.
“…문 열지 마, 이원.”
목소리를 한껏 낮춘 지온이 문이 열리지 않게 손으로 밀었다.
“하지만 안에 현이가…!”
숙소 안으로 섣불리 들어가면 안 된다는 건 알지만, 현이가 안에 혼자 있다.
혹시 내가 과민 반응하는 건 아닐까, 생각하자마자 안에서 하이톤의 목소리가 들여왔다.
“조용해! 조용하란 말이야! 너 때문에 들키겠어. 이놈의 고양이가…! 아악!”
누가 들어도 선명한 여자 목소리. 숙소 비밀번호를 아는 사람 중에 여자는 없다. 저 목소리의 주인은 무단 침입한 사람이란 결론만 나온다.
“얼른 연락해. 안에 있는 사람한테 들키지 않게. 내가 문 막고 있을 동안.”
현이가 걱정되지만, 고양이의 민첩성을 믿어보기로 했다. 살금살금 계단으로 향하면서 준현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손에 자꾸 쥐가 나려고 해서 쥐었다가 폈다를 반복했다.
[그래, 이원아.]“준현 형…. 숙소에 모르는 사람이 있어요.”
항상 차분하고 무게감 있게 행동하는 준현 형이 그렇게 흥분한 모습은 처음이었다.
준현 형은 쏜살같이 날아와 현관문을 막고 있던 우리를 발견했고 안에 있던 여자를 제압해 경찰에 신고했다. 무단주거침입 현행범이고 문 앞 CCTV에도 찍혔기 때문에 증거는 충분했다.
“내가 처리할 테니까 너희는 숙소에…. 아니다. 오늘은 숙소 말고 다른 곳에서 자는 게 좋겠군. 일단 시간 남는 매니저님 부를 테니까 회사에 가 있어라.”
사생이 숙소에 무슨 짓을 했을지 모른다. 몰카를 설치했을 수도 있어서 바로 숙소를 사용하긴 힘들 듯했다.
“네.”
대답하면서 현이를 품에 꼭 안았다. 그 여자를 제압했을 때 얼른 현이만 챙겨 데리고 나왔다. 현이도 불안했었는지 내 옷에 발톱을 박고 떨어지지 않아서 계속 안고 있어야 했다.
“다른 애들 스케줄 금방 끝날 거다. 일 처리하고서 회사로 갈 테니 그때까지 애들이랑 모여 있고.”
회사에서 지나가다가 자주 봤던 다른 팀 매니저님이 우리를 데리러 오셔서 회사로 향할 수 있었다.
“이게 다 무슨 일이야. 괜찮니? 사생 많이 보긴 했는데 집까지 침입한 건 또 처음이?”
“한국은 스토커 처벌 약하죠?”
“그, 그렇지.”
지온의 질문에 매니저님이 대신 부끄러워하면서 겨우 대답하셨다.
아마 스토킹이 성립되긴 어려울 것이다. 주거침입으로 처벌받게 될 텐데, 그마저도 집행유예가 나올 가능성이 십중팔구.
“…아무래도 숙소 옮겨야겠죠?”
“…그럴 거야. 주소가 노출됐으니까.”
왜 피해자인 우리가 도망치듯 떠나야 할까. 억울하지만 이게 현실.
테오라의 안전을 고려하면 최선의 대응은 아마 숙소를 옮기는 것일 테다.
“하루아침에 집을 잃어버렸네.”
숙소는 우리들의 집이나 마찬가지였으니 지온의 말대로였다. 둥지가 바람에 날아간 새의 심정으로 허탈하게 하늘을 올려다봤다.
“막막해….”
냐아….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무심하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