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270
크라운 오브 아이돌 (4)
1차 경연이 끝나고 현장 관객과 심사위원들의 심사평 촬영도 끝났다. 온라인 투표는 1차 경연이 방송되는 크오아 2회 분량이 방송되고 난 후에 3일간 진행되고, 투표 점수를 종합해 다음 회차에서 공개하게 된다.
2, 3차 경연은 1차 경연과 비슷한 방식으로 진행되지만, 파이널 경연 무대는 생방송으로 2시간 동안 진행될 예정이었다.
방송 시간이 11시 30분으로 정해진 데엔 파이널 경연이 생방송이라는 점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생방송을 하다가 사소한 실수가 나오거나 투표 집계가 지연되면 정해둔 방송 시간을 초과할 테고 이후에 방송할 프로그램의 스케줄이 줄줄이 꼬일 테니 말이다.
“앞으로 무대 세 번이라. 해볼 만하겠지?”
“결과를 봐야 확실히 감이 오겠지만, 현장 관객이랑 심사위원들 반응은 나쁘지 않아.”
국내, 국외를 가리지 않고 활동하는 프로들이다. 장르, 컨셉에 따라 취향 차이는 있을지언정 지적 사항이 잔뜩 나올 리가 없었다.
심사위원분들도 대형 팬덤을 거느린 아이돌을 강하게 깎아내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일부 팬들의 삐뚤어진 애정에서 비롯된 사건들 또한 이미 충분히 알려진 상태. 은연중에 움츠리게 되는 건 당연해 보였다.
그래도 심사위원의 본분을 다하려는 노력인지 균형 있는 심사평이 나왔다.
무대를 장악해야 하는데 주인공보다 무대 장치가 더 눈에 들어왔다던가, 가창력을 더 뽐낼 수 있는 편곡이었으면 좋았겠다는 식이었다.
조금 더 훌륭한 무대를 위한 날카로운 조언이기도 하고, 납득 가능한 수준이라 촬영장의 분위기는 아직까진 훈훈했다.
“무대 자체 완성도가 높다고 평가해주셨지만 조금 아쉬운 느낌이야. 임팩트가 약간 부족했던 것도 같고….”
서혼 형은 1차 경연을 촬영한 영상을 몇 번이고 돌려보면서 분석했다.
“다른 팀이랑 비교했을 때는 살짝 그런 인상을 줬을지도 모르지. 그래도 아쉬워할 필요는 없어. 우리는 흠 잡을 곳 없이 깔끔한 무대를 선보였으니까.”
초록 형을 비롯한 멤버들의 감상도 긍정적이었다. 무대를 망치진 않았으니 미리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
우리 무대만 놓고 보자면 만족스러웠으니까.
상대적으로 화려함과 웅장함이 부족했을까? 그렇지만 그런 건 테오라의 정체성과는 거리가 멀다.
“주제에 제일 적합한 무대를 보여준 팀은 우리야!”
과연 점수는 어떻게 나올까?
이제 막 1차 경연 무대를 마쳤을 뿐인데 앞으로 경연이 어떤 방식으로 치러지게 될지 감이 왔다. 크오아 제작진과 참가자들의 보이지 않게 눈치 싸움을 하면서 경연 무대의 퀄리티를 높이려고 아등바등하게 되지 않을까?
프로그램 출연자들은 악편의 희생양이 되지 않도록 요리조리 요령 좋게 빠져나가고 있었다. 역시나 살점을 물어뜯으려는 하이에나들이 도사리고 있는 연예계에서 살아남은 분들다웠다.
“지나간 무대를 걱정하는 대신 2차 경연 무대를 어떻게 꾸밀지나 고민하자.”
“무대 효과는 추가해도 좋을 것 같아! 넓은 무대를 우리가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백업 댄서들까지 들어가도 여유가 있는, 예상보다 훨씬 넓은 무대였다. 아이돌 데뷔 서바이벌에서 사용하기 위해 만든 무대일 테니 일부러 넓게 만든 것도 이해가 갔다.
“조명이랑 특수 효과로 눈가림은 할 수 있잖아! 이번엔 백업 댄서분들도 있구!”
“이렇게 넓은 무대는 오랜만인데 제대로 활용 못 하면 아깝지. 동선도 조금 수정해볼까.”
초록 형은 백업 댄서분들의 동선을 크게 바꾸지 않는 수준에서 넓은 무대를 활용할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했다.
2차 경연 무대에서 선보일 안무는 어렵지 않은 편이었지만 동선이 엄청나게 복잡했다. 우리 멤버들 여섯 명에 백업 댄서분들까지 총 열두 명의 동선을 유기적으로 조정하는 일은 쉽지 않을 텐데 초록 형은 대수롭지 않게 내일로 기한을 잡았다.
내일이면 무대 수정 방향이 정해질 것 같았다. 모두 같은 목표를 향해 달리고 있어선지 의견이 잘 맞아서 오랜 회의가 필요하진 않았다.
2차 경연의 주제는 ‘something new’. 우리 그룹은 이제껏 시도해보지 않은 컨셉을 골랐다.
테오라 정규 2집 앨범의 수록곡을 편곡했는데, 이 곡은 한 번도 팬들에게 무대로 보여준 적 없는 곡이기도 했다.
관객들과 시청자들이 새로움은 확실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해석이 어려운 곡은 아니지만, 노래를 아는 사람이 적을 터라 그 점이 걱정스럽긴 했다.
“혹시, 다른 그룹들은 2차 경연에서 무슨 곡 부르는지 알아?”
질문만 하면 대답을 척척 내놓는 초록 형이라 옅은 기대와 함께 슬쩍 물어봤다. 다른 멤버들도 흥미로운지 초록 형의 입에 눈길이 쏠렸다.
“이 남초록 님이 모를 리가 있나! 나를 아직도 몰라?”
“어떻게 알았어?”
우리는 라이벌의 입장이니 경연곡은 보안 사항일 텐데? 1차 경연곡은 그 팀을 대표하는 노래를 선정했을 테니 어느 정도 예상했다고 해도 2차 경연은 다르다.
‘something new’라는 주제는 해석하기 나름이라 선택할 수 있는 곡이 무궁무진했다. 각 그룹의 노래가 아니라 타 가수의 곡을 정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다들 입을 꾹 다물긴 하더라고. 그렇다고 못 알아내면 명탐정 남초록이 아니지. 연습실에서 흘러나오는 멜로디로 눈치챈 경우도 있고, 단서를 종합해서 추측한 곡도 있고. 그 외 기타 등등의 방법을 사용해서 알아냈지.”
의외로 상식적인 루트로 알아냈구나? 굳이 초록 형의 능력까지 쓸 필요도 없었던 모양이다.
“선배님들은 웬만한 컨셉은 전부 해보기도 해서 그런지 여자 아이돌 노래나 장르가 다른 곡을 선택했더라고.”
활동을 오래 해온 만큼 관객들에게 신선함을 주기 위해서는 파격적인 변화가 필요했을 거란 설명이 이어졌다. 유명 애니메이션 주제가를 사용한 팀도 있단다.
“애니 주제가? 편곡을 거치면 그럴듯하게 바꿀 수는 있겠지만, 과감하신데?”
이 경연에 참가하는 아이돌 팀 누구도 만만치 않았다. K팝의 미래는 밝다.
“무대가 어떻게 완성될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기대되긴 한다.”
“라이벌이 아니라 한 명의 팬으로서도 두 눈 부릅뜨고 봐야지! 헤헤!”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아이돌 노래만 틀면 자동으로 춤을 췄다는 박하는 가까이에서 선배님들의 무대를 볼 수 있다고 잔뜩 들떴다.
“이번 경연은 자신이 있다고 해야 하나? 삐끗 미끄러져도 2위는 가뿐하게 하지 않을까?”
“혼이 형이 장담하면 믿어버리게 된다구!”
“믿어봐. 실망 안 할걸?”
아무도 모르는 미래의 일을 확신하려면 얼마나 굳건한 믿음이 있어야 하는 걸까? 테오라 멤버인 서혼 형은 객관적인 시선으로 우리 무대를 평가하긴 어려울 텐데 말이다.
“컨셉 정해서 곡 고르고 편곡했을 때부터 감이 오더라. 계획된 대로 무대를 선보였을 때 관중들 기억에 어떻게 남을지 말이야.”
“어떻게 기억될 것 같은데?”
“비밀이야. 미리 말하면 안 이뤄질 것 같아서. 들으면 어이없어 할 것도 같고.”
“왜 말하다 마는데! 혼이 형, 원래 말을 꺼냈으면 끝까지 해야 하는 법이라구! 나 궁금증 풀릴 때까지 형한테 업혀서 안 떨어질 거야!”
무섭지도 않은 협박을 하면서 칭얼대는 박하 때문에 서혼 형은 쑥스러워하면서 비밀이라고 했던 답을 알려줬다. 조르면 다 들어주니까 자꾸 박하 버릇이 나빠지는 것 같은데….
“레전드 무대로 기억될 것 같은 예감이 들어.”
“워…, 이 말을 예언으로 만들어주고 싶어지는데?”
“말은 쉽지.”
홍오란은 손가락 각도까지 맞춰 칼군무를 추고 감탄할 정도로 노래를 잘 부른다고 해도 ‘레전드 무대’가 나올지 말지는 확실치 않다고 했다. 노력으로 나온다면 그게 ‘레전드’겠냐고.
“최선은 다하겠지만, 레전드? 그건 현실적으로 어렵지.”
냉정한 오란 다운 대꾸였다. 바람을 현실로 만들기 어렵다고 해도 도전해보겠지만 말이다.
세월이 흐른 후에도 우리 그룹의 레전드 무대로 남을 공연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예전 아이돌 그룹의 레전드 무대 영상을 본 적 있다. 화질이 그리 좋지 않았는데도 그 무대는 무언가 달랐다. 갑자기 잠재력이라도 터뜨린 것처럼 반짝반짝 빛나 보였다. 그런데 누구도 그 이유를 똑 부러지게 설명하진 못했다. 팬들이 입을 모아 레전드 무대였다고 하는 걸 보면 사람들이 받은 공통적인 느낌이 있긴 할 텐데도 말이다.
언어로 치환하지 못하는 그 무언가가. 좋지 못한 화질도 뚫고 전달되는 그 무언가.
미지의 ‘그 무언가’를 우리 무대에 담아 보여주려면 여러 가지 요소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굴러가야 한다.
한 치의 오차 없이 만들어진 완벽한 톱니바퀴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제멋대로 생긴 조각이 모여 만든 바퀴라고 해도 반드시 굴러가야만 한다는 뜻이다.
오히려 조금 완벽하지 않더라도 개성적인 매력이 있어야 사람들의 마음을 더 끌어당길 수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진인사대천명이라고 했어.”
“진인사…?”
“최선을 다한 후에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는 의미의 고사성어야. 지온아.”
“아. 입력했어.”
“어차피 최선을 다하고 나서 나머지는 운명이 결정할 테니 신경 끄자는 얘기. 운명이 우리 편이라면 레전드 무대가 나올 테고, 아니라면 다음 기회를 노리면 되고. 심플하지?”
“그러네! 심플해!”
멤버들과 나는 2차 경연 퀄리티를 높일 방안을 고민해보다가 연습실로 자리를 옮겨 땀을 흘렸다. 몸을 격하게 움직이니 복잡했던 머리가 가벼워졌다.
어차피 나는 내가 맡은 역할에만 충실하면 된다. 해답은 아주 간단했다.
* * *
일주일 후. 2차 경연이 펼쳐지는 날.
이번엔 세 번째로 무대에 서게 됐는데 한번 경연을 치러봤다고 무대에 올라가기 직전까지 멤버들의 움직임엔 여유가 있었다.
“의상이 기니까 혹시라도 걸려 넘어지거나 꼬이지 않게 조심하고.”
“옛썰!”
“리허설 할 때 점검했는데 바닥에 앉았다가 일어설 때만 조심하면 별문제 없을 것 같아.”
이번에 테오라가 입은 의상은 퓨전 한복이었다. 안에는 한복의 옷고름 같은 포인트만 섞은 수트를 입었고 그 위에 기다란 자줏빛 도포를 걸쳤다.
한복 천에는 전통 무늬가 어둡게 수놓아져 있었다. 은은하게 빛나는 실을 써서 옷자락이 펄럭거릴 때마다 수놓아진 무늬가 드러났다.
“예전에 사극 드라마에 특별 출연했던 거 생각난다.”
꽃미남 6인방으로 등장해서 런웨이를 걷듯이 저잣거리를 걷는 장면을 찍었었다. 그때 맞췄던 한복은 이번 경연과 컨셉이 맞지 않아서 가져오지 않았다.
“분위기는 그럴싸하지?”
“응응! 화랑처럼 보이기도 하구!”
박하의 비유가 와닿았다. 붉은색 아이라인으로 눈꼬리를 길게 빼고 섀도우로 음영을 강하게 넣었다. 귓불에 길게 매달린 귀걸이까지 합쳐지니 곱게 단장한 화랑이 이랬을까 싶었다.
화랑이 아니라 도깨비 컨셉이지만, 관객분들이나 시청자들이 보기엔 거기서 거기겠지.
테오라를 호명하는 목소리에 마지막으로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목 상태를 체크했다. 목 상태는 최근 들어 가장 좋았다.
“준비한 것들 전부 쏟아내고 와라.”
“두말하면 잔소리죠. 준현 형은 무대 아래에서 관객처럼 즐겨주세요.”
모니터링하느라 바쁘겠지만, 어쩔 수 없이 관객처럼 넋을 놓고 보게 된다면 좋겠다. 그러려면 우리가 잘해야겠지.
뚜벅뚜벅 걸어 불 꺼진 무대에 올랐을 때 MC님의 소개말이 마이크를 통해 울렸다.
“2차 경연 세 번째 무대는 무서운 기세로 성장하는 테오라가 준비했습니다. 정규 2집 수록곡을 편곡해 들려드린다고 하는데, 함께 기대해주시죠! 테오라의 ‘하현(下弦)’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