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 Finger RAW novel - Chapter 48
48. 한 잔의 피와 두 여인의 생명
세 사람이 이렇듯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발소리가 나더
니 봉죽이 목반을 들고 조용히 들어 왔다. 목반에는 맛있어 보이는
네 가지 채소류와 두 개의 큰 빈대떡, 그리고 더운 술이 든 주전자
가 놓여 있었다.
봉죽은 목반을 내려 놓았다.
“마도련님, 모두 시식해 보겠어요.”
마문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 수고해 보게.”
봉죽은 미소지으며 네 가지 채소류를 먹어 보고, 술을 한 잔 따
라 마셨다.
“마도련님, 안심하세요.”
마문비는 연방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젠 아가씨도 나가서 휴식을 하지.”
봉죽은 사마건을 힐끔 쳐다보고 문 밖으로 나갔다.
마문비는 술잔을 들고 나직이 말했다.
“사마형, 이 술에 독이 있는지 좀 보시오.”
사마건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건 나도 알 수 없소.”
마문비는 술잔을 놓고 상아 젓가락을 꺼내 술에 넣었다. 순간 젓
가락색은 변했다. 술이 묻은 부분은 짙은 자색이 되었다.
마문비는 냉소했다.
“속과 겉이 다른 악독한 계집이군.”
사마건은 재빨리 주전자를 살폈다.
“혹시 주전자에 무슨 장치가 되어 있는지도 모르오.”
주전자를 이리저리 살펴 보았으나 이상이 없었다.
마문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오. 분명히 이 술엔 독이 있는데 그 계집은 큰 잔으로 따
라 마셨소. 혹시 미리 해독제를 복용한 것이 아닐까요.”
사마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가능성도 있소.”
마문비가 제의했다.
“우리 그 계집을 찾아 물어 봅시다.”
사마건은 눈을 꼭 감고 심사숙고했다.
“만약 그 계집을 협박하여 우리를 돕게 한다면 오늘밤 약간의 보
복은 되는 셈이오.”
마문비가 물었다.
“어떻게 보복하지요?”
“수단을 가리지 않고 심목풍을 좀 괴롭혀야겠소.”
마문비는 그가 기학(奇學)을 지닌 줄 알고 있는지라 더 이상 묻
지 않았다.
그때 소영이 일어서며 입을 열었다.
“내가 그 계집을 찾아오겠소.”
사마건은 급이 일어섰다.
“소형에게 수고를 끼치다니…..”
소영은 빙그레 웃으며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봉죽을 데리고 들어왔다.
마문비는 술을 눈짓해 보이며 나직히 물었다.
“아가씨는 괜찮은가?”
봉죽은 고개를 끄덕였다.
“소비는 괜찮아요.”
마문비는 잠자코 생각해 보았다.
‘이 계집은 능청을 잘 떠는군. 만약 지금 이 자리에서 말하지 않
는다면 인정하지 않을 거야.’
그는 즉시 말을 꺼냈다.
“이 술엔 독이 들어 있다. 한데 아가씨는 독주를 마셨는데도 중
독된 것 같지 않군.”
“소비가 주방에서 손수 주채를 장만한 것인데 무슨 독이 있다는
거예요?”
마문비가 말했다.
“혹시 그 주채의 재료에 미리 독을 넣었는지도 모르지. 봉죽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마도련님은 증명해 본 뒤에 말씀하시는 거겠지만 소비는 중독된
것 같지 않아요.”
사마건이 끼어 들었다.
“만약 아가씨가 미리 해독제를 복용했다면 독주를 마셔도 상관
없을 거요.”
봉죽은 싱겁게 웃었다.
“그렇다면 소비의 입이 백 개라도 변명을 못하겠군요.”
사마건이 벌떡 일어섰다.
“좋소 내가 아가씨 앞에서 한 번 시험해 보겠소.”
그는 오른손을 뻗어 봉죽의 오른팔을 잡았다.
봉죽은 몸을 피하려다가 말고 돌연 부동자세를 취했다.
사마건은 그녀의 완맥요혈을 살폈다.
그는 힘을 써 다섯 손가락을 잡았다.
“백화산장엔 항상 권모술수가 있소. 아가씨와 인의도리(仁義道
理)를 논한다는 것은 혀만 아픈 일이지.”
그는 왼손으로 그녀의 천돌혈(天突穴)을 점했다.
봉죽은 반신이 마비되어 사마건의 손길을 피할 수 없었다.
사마건은 봉죽의 천돌혈을 점한 뒤에 또다시 뒤통수의 풍부혈
(風府穴)을 점하고 비로소 그녀의 완맥을 놓았다.
“아가씨는 내가 무슨 혈을 점했는지 알고 있소?”
봉죽은 하얗게 질린 채 냉랭하게 대꾸했다.
“천돌, 풍부, 모두 치명적인 요해대혈(要害大穴)이지요.”
사마건이 말했다.
“안심하오. 아가씨의 생명을 빼앗지는 않을 테니….”
소영은 사마건의 수법에 비록 영웅의 도가 없었지만 심목풍의 악
랄함을 생각하고, 또 당장 위험에 처해 있는지라 사마건이 독을 독
으로 대하는 수법을 탓할 수 없었다.
봉죽이 말했다.
“내 요혈을 점하여 나를 심문하려는 거군요?”
사마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가씨는 총명하오. 천돌, 풍부, 두 혈이 어떤 맥에 속하는 것
인지 알고 있겠지요?”
봉죽은 냉랭하게 응수했다.
“몰라요.”
사마건은 빙그레 웃으며,
“나에게 묻지….. 천돌은 임맥(任脈)에 속하고 풍부는 독맥(督
脈)에 속하오. 두 혈이 발작을 하면 아가씨는 몸을 움직이지 못하
오.”
봉죽의 안색이 변했다.
그녀는 분명히 놀라 두려워하고 있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마건은 히죽 웃었다.
“아가씨가 내 청을 들어 준다면 두 혈을 즉시 풀어 주겠소.”
봉죽이 물었다.
“무슨 청이에요?”
“간단하오. 몇 개의 작은 물건을 망화루 밑에 갖다 놓으면 되는
거요.”
봉죽은 고개를 흔들었다.
“안 돼요. 망화루 주변 오 장 이내는 출입이 금지된 구역이라 대
장주의 특명이 없으면 아무도 감히 접근할 수 없어요.”
“그래도 아가씨에게는 방법이 있을 거요.”
봉죽은 악을 썼다.
“나는 죽는 한이 있어도 그런 모험은 할 수 없어요.”
사마건은 마문비에게 시선을 돌렸다.
“백화산장의 규율은 확실히 매우 엄격하오.”
그는 다시 봉죽에게 고개를 돌리고 말을 이었다.
“만약 아가씨가 나와 협력을 한다면 나는 아가씨를 백화산장에서
구출하겠소.”
봉죽이 말했다.
“여러 장주가 우리 비녀들에게 퍽 선하게 대하니….”
그녀는 갑자기 언성을 낮추었다.
“당신들도 살아서 백화산장을 빠져 나가지 못할 텐데 어떻게 나
를 구출하지요?”
사마건은 껄껄 웃었다.
“아가씨는 어려서부터 백화산장에서 자라 심목풍 밑에서는 도마
위의 고기와 같소. 알지는 모르겠지만 세상은 넓기가 한이 없소.”
봉죽은 눈을 깜빡거렸다.
사마건은 계속 말했다.
“오늘 심목풍의 연회가 얼마나 치밀하게 계획되었는지 또한 참석
한 군호들이 몇 명이나 독충에 중독되었는지 아가씨는 잘 알 거요.
그러니 내 말을 잘 생각해 보오.”
봉죽은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효력이 빠른 독약이 있으면 주세요.”
마문비가 이상한 듯 물었다.
“효력이 바른 독약으로 무엇하려고?”
봉죽은 탄식했다.
“내가 당신들의 청을 받아들여 망화루에 침입한다면 십중팔구는
발각될 거예요. 그러면 나는 그 독약을 먹고 죽는 것이 차라리 체
포되어 본장의 엄격한 벌을 받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해요.”
사마건은 의미심장한 눈빛을 띠었다.
“좋소.”
그는 품 속에서 옥병을 꺼내 그 속에 든 청색의 단환을 쏟아 들
었다.
“이 단환은 먹는 즉시 죽으니 중요치 않을 때는 절대로 먹지 마
오.”
봉죽은 단환을 받았다.
“무엇을 갖다 놓으라는 거예요?”
사마건이 대답했다.
“몇 가지 작은 물건인데 아무데나 숨길 수 있어 발각되지 않을
거요.”
그는 품 속에서 철통과 흑색 합을 꺼내 그녀에게 주었다.
“철통의 나무마개를 빼고 망화루 부근에 아무렇게나 던지면 되
오.”
봉죽이 물었다.
“이 흑색 합도 뚜껑을 열어야 하나요?”
사마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뚜껑을 열어야 하오.”
봉죽은 고개를 쳐들었다.
“좋아요. 해 보겠어요.”
사마건이 주의를 시켰다.
“아가씨는 천돌과 풍부, 두 혈을 잊지 마오. 한 시진 정도 지나
면 발작하니 그 철통과 합을 던지고 빨리 와야 되오. 내가 아가씨
의 혈을 풀어 줄 테니.”
봉죽은 냉랭하게 대꾸했다.
“나는 죽음이 두려운 것도 아니고 협박에 굴복하는 것도 아니에
요.”
사마건이 말했다.
“좋은 소식을 기다리고 있겠소.”
봉죽은 쓴웃음을 지었다.
“만약 한 시진 안에 돌아오지 않는다면 망화루 밑에서 죽은 줄로
아세요.”
“아가씨는 일찍 죽을 상이 아니니 안심하고 어서 가오.”
봉죽은 몸을 돌려 몇 보 가다가 다시 돌아왔다.
“이 철통과 흑합 안에 무엇이 있는지 말해 줄 수 없어요?”
“이곳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사소한 것이지만 중원에서는 극히 희
한한 것이오.”
그는 잠시 중단했다가 계속했다.
“지금이 적기이니 어서 가오. 우리들은 앉아서 성공만을 기다리
지 않고 아가씨를 돕겠소.”
봉죽이 물었다.
“나를 어떻게 도와요?”
“만약 아가씨가 발각되어 쫓아오는 사람이 있으면 화수진으로 도
망치시오. 그럼 안전할 거요.”
봉죽은 천천히 밖으로 나갔다.
소영은 봉죽이 사라지자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사마형, 그녀가 시킨 대로 할 것이라고 믿소?”
사마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보아하니 믿어도 될 것 같소.”
마문비가 물었다.
“어떻게 아시오?”
“내가 관찰한 결과 그녀는 일쩍 죽을 팔자가 아니오. 오늘밤에
그녀는 무사할 거요.”
소영이 말했다.
“어쨌든 우리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겠다고 했으니 신용을 잃으면
안 되오.”
사마건이 맞장구쳤다.
“물론이오. 우리 세 사람은 두 패로 갈라져 한 사람이 이곳을 지
킵시다.”
마문비가 은근히 물었다.
“우선 말이 많은 것을 용서하시고, 도대체 그 철통과 흑합 안에
는 무엇이 들어 있소?”
사마건은 사실대로 틸어 놓았다.
“그것은 내가 동해의 산호도(珊瑚島)에서 무공을 연마할 때 얻은
두 가지 괴물이오. 심목풍이 악랄하게 사용했으니 나도 이 괴물로
심목풍을 괴롭혀 불안하게 하겠소.”
마문비가 말했다.
“사마형은 아직까지 그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 밝히지 않았소.”
“합 안에는 날 수 있는 지네가 들어 있고, 철통 안에는 괴상한
독을 지니고 있는 독사가 들어 있소. 미리 말하면 그 여비가 절대
로 갖다 놓으려 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에 말하지 않은 것이오.”
소영은 머뭇거리다가 물었다.
“한 마리 독사와 몇 마리의 지네로 망화루를 괴롭힐 수 있겠소?”
사마건이 대답했다.
“이 두 동물은 서로 상용하지 않고 만나기만 하면 악투를 하오.
독사는 별로 크지 않아 수 촌에 불과하지만 민첩하기 짝이 없고 기
독을 지니고 있소. 만약 그것에 물리면 내가 갖고 있는 해독제 이
외로는 해독할 수 없소. 몇 마리 날개 달린 지네도 멀리 날지는 못
하지만 퍽 영민하고 날아다닐 때 웅웅 소리를 내오. 설사 망화루에
있는 사람들을 해칠 수 없다 하더라도 그들이 신경을 혼란케 할 수
있소. 심목풍과 금화부인 사이를 벌어지게 할 수 있단 말이오. 심
목풍은 금화부인이 망화루에 방고한 줄로 알 거요.”
마문비가 맞장구쳤다.
“그럴 거요.”
“허나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지 효력이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요.”
마문비가 말했다.
“심목풍은 총명한 인물이니 혹 화수진에 매복을 두었을지도 모르
오.”
“매복뿐이겠소! 온 백화산장은 오행기진(五杏奇陣)이오. 뜰과 하
수도관을 서로 연결하여 대진을 형성하고 있소. 그런 대진도 결코
나를 곤경에 빠뜨리지는 못할 거요.”
소영이 끼어들었다.
“내가 알기로는 첩첩이 싸인 화수진 곳곳마다 수호인이 파견되어
있다고 하오. 지금 군호들이 와 있으니 방비는 더욱 엄중할 거요.”
사마건은 웃었다.
“수호인을 잡아 그들의 옷으로 바꿔 입으면 행동하기가 편할 거
요.”
소영이 말했다.
“모험이지만 우리는 그 비녀에게 신용을 잃어서는 안 되오.”
그는 마문비와 사마건을 번갈아 바라보며 계속 말했다.
“마형과 사마형이 가시오. 나는 이 집을 지키겠소.”
마문비는 내심 소영을 존경하고 있던 터라 웃으며 대꾸했다.
“소형이 가는 것이 좋겠소.”
사마건은 소영의 절기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의 대답을 듣지
도 않고 마문비에게 말했다.
“그럼 마형이 집을 지키시오.”
마문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분은 조심하시오. 충돌을 가급적이면 피하시오.”
“고맙소.”
그 말을 남기고 그는 곧 밖으로 나갔다.
소영도 그를 뒤따라 취죽헌을 떠났다.
“내 뒤를 따라 오시오.”
사마건은 잽싸게 화수진으로 들어 갔다.
소영은 그의 뒤를 따랐다.
잠시 후, 망화루 옆에 도달했다.
두 사람은 화수를 가로질렀으나 저지하는 사람은 없었다. 높이
솟아 있는 망화루에 군데군데 불이 켜져 있는 것으로 보아 분명히
아직 잠자리에 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사마건은 사방을 살피고 나직이 말했다.
“내 추측이 맞다면 그 비녀는 이 길로 돌아 올 것이오.”
순간 그림자 하나가 망화루에서 두 사람이 숨어 있는 숲 속을 향
해 오고 있었다.
소영이 재빨리 말했다.
“의젓이 나오고 있는데….. 그 비녀인지도 모르겠소.”
“그녀는 실수하지 않았을 거요.”
그림자는 느릿느릿 걸어 왔다. 조금도 당황하는 것 같지 않았다.
망화루는 갑자기 이층까지 불이 꺼졌다. 맨 윗층의 불만이 남아 있
었다. 소영은 불이 아직도 켜져 있는 윗층이 바로 심목풍의 숙소란
것을 알고 있었다. 심야에도 잠을 자지 않는 것을 보니 필시 오늘
밤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연구하는 모양이었다.
소영은 높이 솟아 있는 누를 바라보다가 갇혀 있는 부모 생각이
나 맥이 풀렸다.
사마건은 공력을 운기하여 잔뜩 경계하며 가까이 다가오는 그림
자를 주시하고 있었다. 연회석상에서 백화산장의 노비들과 격투를
해 본 결과 무공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림자는 두 사람이 숨어 있는 부근까지 왔다.
사마건이 자세히 보니 과연 봉죽이었다.
살며시 소영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전음술로 말했다.
“과연 그 비녀요. 버젓하게 걸어 나오는군.”
소영은 정신을 차렸다. 의심이 들어 속으로 생각했다.
‘이 망화루 밑은 방비가 이루 말할 수 없을만큼 엄중한데 비녀의
신분으로 저지받지 않고 자유자재로 출입할 수 있을까?’
봉죽은 천천히 화수진을 가로질러 취죽헌으로 향하고 있었다.
사마건이 나직이 말했다.
“저 비녀의 표정이 이상하오. 우리 미행을 합시다.”
그때 맨 윗층의 불이 갑자기 꺼졌다.
백화산장은 암흑에 휩싸였다.
두 사람은 봉죽을 뒤따라 취죽헌으로 갔다.
봉죽은 살며시 문을 열고 천천히 들어 갔다.
사마건은 재빨리 따라 들어 갔다.
마문비는 대청에 앉아서 기다리다가 봉죽이 들어 오는 것을 보고
벌떡 일어나 말을 건네려고 했다.
사마건은 급히 다가가 속삭였다.
“마형, 조심하오. 저 계집이 좀 수상하오.”
마문비도 이미 경계를 하고 운기를 한 터였다.
봉죽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의자에 앉았다.
그녀의 눈빛은 몹시 고통스러워하는 기색이 서려 있었다.
그녀는 처량한 어조로 말했다.
“소비는…..”
그녀는 오직 소비란 말만 하고 머리를 의자 뒤로 떨어뜨리고 죽
어 버렸다.
“봉아가씨!”
마문비는 오른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사마건은 재빨리 마문비의 손을 쳤다.
“그러지 마오.”
마문비는 깜짝 놀라 급히 이 보 물러서며 의자에 기대고 있는 시
체를 바라보았다.
시체는 점점 굳어졌다. 분명히 죽은 것이었다.
사마건은 고개를 흔들며 자책하듯이 중얼거렸다.
“내가 죽였소!”
“내가 미리 저지했어야 하는 건데…..”
“상대방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으니 우리도 사정을 볼 필요 없
소.”
바로 이때 문 밖에 가슴 부분에 금사로 수놓은 흑의를 입고 있는
아름다운 부인이 나타났다.
사마건이 오른손을 휘둘러 공격하려 했다. 그러자 소영이 급히
막았다.
부인이 엄숙한 표정으로 눈을 크게 뜨며 예리한 시선으로 세 사
람을 쏘아 보았다.
“당신들은 좋은 일을 하는군요.”
사마건과 마문비는 이 부인이 바로 금화부인이란 것을 알아채고
더욱 경계를 했다.
사마건은 시선을 돌려 봉죽의 시체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그대가 금화부인이오?”
금화부인은 냉랭하게 대꾸했다.
“그래요. 당신이 누구지요?”
사마건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동해신복(東海神卜) 사마건이오.”
“당신은?”
마문비는 미간을 찌푸렸다.
“마문비라 하오.”
금화부인은 호들갑을 떨었다.
“아! 예, 악, 상, 공, 네 성의 총타주이시군요.”
마문비는 대꾸했다.
“허명뿐이라 부끄럽소.”
금화부인은 시선을 서서히 돌려 소영을 주시했다.
“당신은?”
소영은 싱겁게 웃었다.
“마성(馬成)이오.”
금화부인은 엄숙한 표정에 냉소를 짓고 입을 열었다.
“흥, 코먹은 소리를 하지 그랬어요. 얼굴은 잘 위장되어 타인을
속일 수 있지만 목소리는 여전하군.”
그녀는 긴 치마를 끌고서 안으로 들어 왔다.
소영이 금화부인에게 물었다.
“내가 여기에 있는 줄을 어떻게 알았소?”
금화부인은 시선을 봉죽에게 돌리며 대답했다.
“저 계집이 인도한 것이지요!”
소영은 다그쳐 물었다.
“나와 관계가 있다는 것은 어떻게 알았소?”
“다른 사람으로서는 백화산장에서 엄격히 훈련된 비녀를 망화루
에 들어가게 하는 모험을 할 리 없어요.”
사마건은 내심 소영의 신분이 낮지 않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으나
여전히 그의 이름을 알 수는 없었다.
그는 즉시 말했다.
“저 계집에게 시킨 것은 나요. 이 형과는 아무 관계도 없소.”
금화부인은 품 속에서 붉은 빛의 작은 뱀을 천천히 꺼냈다.
“바로 이 작은 뱀. 또 이 몇 마리의 지네는 어서 거두는 것이 좋
겠소.”
그녀는 독사와 합을 동시에 던졌다.
사마건은 재빨리 합을 받았지만 독사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마문비는 독사가 사람을 물까봐 즉시 부채를 휘둘러 공격했다.
금화부인이 냉정히 말했다.
“무서워하지 말아요. 그 독사는 이미 죽었어요.”
마문비의 동작은 극히 빨라 금화부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독사
를 두 동강내었다. 선혈이 솟구쳤다.
사마건은 독물을 대하는 힘이 금화부인만 못하다는 것을 알고 합
을 받아든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소영은 금화부인에게 말을 건넸다.
“부인이 이곳을 찾아 왔으니 딴 사람도 찾아 오겠지요?”
금화부인이 웃었다.
“나는 방금 밖에다 독거미를 놓아 두었소. 딴 사람이 따라왔다가
는 죽고 말 거요.”
소영은 봉죽의 시체를 힐끗 쳐다보았다.
“부인이 그녀의 독사와 지네를 빼앗은 것을 보니 그녀도 부인이
죽였지요?”
금화부인은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그녀에게 그것을 빼앗았을 뿐 죽이지는 않았소.”
마문비가 다급히 물었다.
“그럼 누가 죽였소?”
금화부인은 사마건을 가리켰다.
“저 사람이 제일의 흉수요.”
사마건은 머뭇거리며 입을 열지 못했다.
마문비가 중간에 끼어들어 물었다.
“부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으니 좀 자세히 설명해 주시오.”
금화부인은 말했다.
“간단하오. 저 계집의 무공은 약하지 않으나 재치가 없소. 그녀
가 반격을 하지 않았더라면 나도 가만히 있었을 텐데 그녀는 다급
한 탓에 일 초를 반격하여 반역심을 드러내고 말았소. 그때 독사가
반쯤 기어나와 그녀의 손을 물었소.”
사마건과 마문비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금화부인은 미소지었다.
“저 계집은 독사에 물린 후 이상하게도 침묵을 지켰소. 이미 죽
을 각오가 되었는지 내가 독사와 지네를 빼앗자 즉시 몸을 돌려 망
화루를 떠났소. 그때 수호인이 출수하려 했으나 내가 저지했소.”
금화부인은 마문비와 사마건과 말할 때는 어조도 딱딱했고 표정
도 냉정했으나 소영과는 웃어 가며 몹시 부드럽게 이야기했다.
마문비는 사마건에게 시선을 돌렸다.
“사마형, 봉아가씨는 뱀의 독에 죽었소. 해독제가 있소?”
사마건은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보기에 그녀는 단지 사독(蛇毒)에 중독되어 죽은 것이 아
니오.”
금화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그녀가 망화루를 나올 때 밖에 매복되어 있던 고수의
일장을 얻어맞고 중상을 입었소. 중상과 사독이 동시에 발작하여
죽은 것이니 아무리 영단묘약이 있더라고 살려 낼 수는 없소.”
소영이 말했다.
“처음 수호인의 공격은 저지하고 왜 그 고수를 저지하여 그녀를
구하지 않았소?”
금화부인이 대답했다.
“그 고수가 밖이 캄캄한 곳에서 갑자기 공격하였기 때문에 나도
얼른 저지할 수가 없었소.”
소영이 물었다.
“그녀는 상처를 안고 이곳으로 곧장 왔소?”
금화부인이 말했다.
“저 계집은 살 가망이 없다는 것을 알고 이리로 온 거요.”
그녀는 잠시 말을 중단했다가 계속했다.
“당신들은 화수진에서 저지한 사람이 없어 발각되지 않은 줄로
알지만 당신들의 일거일동은 모두 감시되고 있었고 망화루 위로 보
고(報告)되었소.”
사마건이 물었다.
“부인이 이곳에 온 것도 감시의 눈을 피할 수 없겠군요?”
금화부인이 말했다.
“오늘밤, 심목풍은 연회에서 무슨 곤란을 당했는지 망화루에 돌
아 와서 침묵만 지키고 있소. 그는 진상을 모르고 있을 거고, 원래
음흉하고 잔인한지라 그것을 알기 전에는 절대로 발작하지 않을 거
요. 내가 백화산장에 온 뒤로 물론 이목은 피할 수 없지만 그들이
나를 미행하여 내 거동을 살필 수는 없소.”
마문비가 물었다.
“그가 진상을 모르고 있는 판국에 부인이 이곳에 왔으니 더욱 감
시하겠군요?”
금화부인이 말했다.
“그럼 당신들은 경거망동을…..”
그녀는 갑자기 말을 멈추었다.
“누구냐!”
순간 비명이 나더니 다시 조용해졌다.
금화부인은 냉소했다.
“누군지 잘 걸렸군.”
그녀는 문득 생각난 듯이 계속 말했다.
“심목풍은 오늘밤 틀림없이 당신들을 노릴 거요. 나는 여기서 오
래 있을 수 없고, 또 당신들을 돕지도 않겠소.”
아름다운 얼굴에 처량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는 몸을 홱 돌렸다.
“잘 해 보시오.”
소영은 이어 무슨 말인가 하려고 하다가 그만두었다.
금화부인은 번개같이 사라졌다.
소영은 봉죽의 시체를 바라보며 탄식했다.
“보아하니 그녀의 사주는 믿기 어렵소.”
사마건이 입을 열었다.
“나에게 하는 말이구려.”
소영은 침착하게 대꾸했다.
“사마형은 그녀가 일찍 죽을 사주가 아니라고 했는데 그녀는 독
사에 물려 죽었소.”
사마건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녀의 사주는 말대로 일찍 죽을 사주가 아니오.”
소영은 봉죽의 시신을 내려다 보며 말했다.
“이 아가씨가 우리를 위해 죽었으니 사마형이 가지고 있는 해독
제를 그녀에게 먹여 사독을 해독한 뒤에 중상을 치료할 방법을 강
구해야 하오. 이렇게 이 아가씨를 방치해 두자니 정말 마음이 괴롭
소.”
사마건은 봉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좋소!”
그는 품에서 옥병을 꺼내더니 세 알의 홍단환을 한 알은 자기가
먹고 두 알은 마문비와 소영에게 나누어 주었다.
소영과 마문비는 해독제를 먹었다.
사마건은 한동안 운기하며 혈도를 폐주(閉住)한 뒤로 비로소 봉
죽의 시체를 만졌다.
그녀의 얼굴이 새파란 것으로 보아 중독이 심한 것 같았다.
사마건은 옥병에서 다시 두 알을 꺼내 왼손으로 봉죽의 입을 벌
리고 넣었다.
봉죽은 이미 몸이 차가와졌고, 숨도 끊어진 터라 입에 약을 넣
어도 삼킬 수 없었다.
소영은 그녀의 가슴에 손을 대 보았다. 이미 심장은 멎어 있었
다. 그는 탄식했다.
“숨이 끊어졌고 맥박도 멎었으니 금화부인의 말대로 영단묘약이
라 할지라도 구할 수가 없을 것 같소.”
그런데 돌연 냉정한 말소리가 들려 왔다.
“어째서 구할 수 없소?”
세 사람은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흑의를 입은 한 괴인이 서 있
었다. 그의 얼굴은 마치 시체처럼 싸늘했다.
마문비는 놀라 생각했다.
‘저자의 경공은 실로 절묘하다. 조금도 소리가 나지 않았으니…
…..’
소영은 하마터면 독수약왕이라고 부를 뻔했다.
마문비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대는?”
그 사람은 냉랭하게 말했다.
“천하무림 사람들은 다 금화부인의 독물에 겁을 먹고 있지만 나
는 그렇지 않소.”
사마건은 재빨리 옥병을 거두었다.
“당신은 누구요?”
상대는 대답했다.
“나는 독수약왕이오. 저 계집을 살릴 수 있는데 어찌 살리지 못
한다는 거요?”
말은 사마건에게 하는 것이었지만 눈은 소영을 노려 보고 있었
다. 소영은 은연중에 가슴이 뜨끔하였다.
‘나의 가장을 간파했단 말인가?’
그는 즉시 눈빛을 흐리고 말없이 서 있었다.
사마건이 말했다.
“당신은 자신만만하구려.”
독수약왕이 말했다.
“내게 한 번 맡겨 보겠소?”
‘오래 전부터 이 사람의 얘기를 들어 오고 있었지. 의술에 정통
하지만 성미가 괴팍하여 자기 기분에 따라 사람을 살리고 죽인다는
데…. 또한 무공이 뛰어나 무림을 주름잡는 모양이고…. 이자가
봉죽을 살릴 수 있다니 한번 자극해 보자. 살리면 좋고, 그렇지 못
하면 할 수 없는 일이니까.’
마문비는 이런 생각이 들어 일부러 냉랭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그대의 의술이 정명하다 하더라도 이미 죽은 사람을 살릴 수는
없을 거요.”
독수약왕은 히죽 웃었다.
“만약 내가 살린다면 어떻게 하겠소?”
마문비는 속으로 아니꼬운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살리는데 있어 무슨 조건이 필요 있을까? 그래서 독수
(毒手)라는 호가 붙었군.’
그는 다급히 말했다.
“사람을 살리면 복을 받을 거요. 죽은 사람을 살릴 수만 있다면
어쨌든 살려야 할 게 아니겠소?”
독수약왕이 말했다.
“세상에는 죽어 가는 사람이 부지기수이니 내가 손을 여덟 개 가
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 많은 사람을 다 구할 수는 없소.”
“좋소. 조건을 말하시오. 어떻게 하면 살리겠소?”
독수약왕은 소영을 가리켰다.
“저 사람은 누구요?”
소영이 말이 없자 마문비가 대답했다.
“나를 수행하는 사람이오.”
독수약왕이 말했다.
“내가 이 계집을 살려내면 당신은 내 요구를 들어 주시오.”
소영은 독수약왕이 자기를 간파하지 못했음을 알았다.
마문비가 물었다.
“당신은 무엇을 바라오?”
독수약왕은 즉시 대답했다.
“저 하인의 피를…..”
마문비는 깜짝 놀랐다.
“당신은 하인의 선혈을 무엇에 쓰려고 하오?”
독수약왕은 갑자기 슬픈 표정을 지었다.
“다 죽어 가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요.”
‘사람을 구하는데 피가 무슨 필요가 있을까? 하나 이 독수약왕의
의술이 정통하다는 말은 절대로 헛소문이 아니니까…..’
마문비는 이렇듯 생각했다.
독수약왕은 봉죽을 바라보며 말했다.
“더 시간을 지체하면 나도 살리기 어렵소. 내 요구에 응할는지
어서 결정하시오.”
그가 냉정하고 오만하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인데
지금 퍽 부드럽게 말을 하는 것을 보니 분명히 그도 마음이 초조한
모양이었다.
“이 하인은 비록 무공을 배웠으나 선천적으로 약하니 내 피로 대
신하시오.”
독수약왕은 고개를 흔들었다.
“안 되오. 내가 천하에서 찾아 본 결과, 오직 두 사람의 선혈만
을 쓸 수 있을 뿐이오.”
마문비가 물었다.
“누구 누구요?”
독수약왕은 진지하게 말했다.
“한 사람은 백화산장의 셋째 장주 소영이고, 또 한 사람은 바로
저 하인이오. 청기(淸奇)하여 소영 못지 않지만 아쉽게도 내 마음
대로 할 수가 없소.”
마문비는 깜짝 놀랐다.
‘의학으로 사람을 알아 보는 것도 점괘에 못지 않게 정확하군.’
소영은 일부러 쉰 음성으로 물었다.
“내 피가 얼마나 필요하오?”
독수약왕은 탄식했다.
“만약 당신이 피를 준다면 비단 목숨을 건지는 것 뿐만 아니라
그녀로 하여금 건강을 되찾게 할 수 있소.”
마문비가 물었다.
“도대체 병인(病人)이 어떤 사람인데 그렇게 관심이 많소?”
독수약왕은 고개를 떨어뜨렸다.
“여러분을 속일 필요가 없으니 솔직히 말하리다. 바로 내 딸이
오.”
마문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독수약왕은 비록 악독하지만 딸에 대한 정만은 심후하
군.’
마문비는 혼자 중얼거렸다.
“저 사람은 비록 나의 수행인이지만 그런 생사의 문제는 내가 결
정할 수 없소.”
소영이 말했다.
“소인과 약왕과는 아무 우정도 없지만, 소인은 자비로운 마음으
로 피를 주겠소. 얼마나 필요하오?”
독수약왕은 탁상의 잔을 가리켰다.
“한 잔의 선혈과 내가 가지고 있는 영단으로 내 딸의 목숨을 한
달간 더 연장할 수 있소.”
소영은 승낙했다.
“좋소. 소인이 한 잔의 피를 주겠소. 우선 저 아가씨의 생명을
살려 내시오.”
독수약왕의 얼굴은 기쁨이 넘쳤다.
“어렵지 않소.”
그는 봉죽에게 다가가 오른손을 몇 번 움직였다. 이러저리 봉죽
의 몸을 더듬으면서 독수약왕은 봉죽의 가슴과 어깨에 은침을 여섯
개나 꽂는 것이 아닌가. 그 여섯 개의 은침은 봉죽의 육대 혈도를
서로 연결시킨 것으로 자극을 주니 멎었던 피가 갑자기 유통되어
심장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얼마 후에는 사마건이 넣어 준 해독제
를 삼키는 것이었다.
마문비는 봉죽이 꿈틀거리자 크게 놀랐다.
‘독수약왕의 명성은 과연 헛된 것이 아니구나.’
독수약왕은 예리한 눈초리로 봉죽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녀의 손발이 움직이자 그는 즉시 이곳저곳에 일지와 일장을 눌
렀다. 그 움직임이 어떻게 빠른지 마문비 등은 어디를 누르는 것인
지 알 수 없었다.
순간 봉죽은 길게 숨을 내뱉으며 눈을 떴다.
독수약왕은 즉시 손을 멈추고 이 보 뒤로 물러나더니 두 알의 단
환을 꺼내 마문비에게 주었다.
“이것을 그녀에게 먹이고 한 오, 육 시진 잠을 재우면 되오.”
마문비는 단환을 받았다.
잠시 후 봉죽은 눈동자를 굴리다가 독수약왕을 보더니 즉시 땅에
엎드려 절했다.
“살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독수약왕은 냉랭히 말했다.
“나에게 감사할 필요는 없소. 당신을 구한 사람에게 하시오.”
그는 소영을 가리켰다.
봉죽은 잠시 어리둥절하였으나 곧 소영의 손을 잡았다.
“살려 주어서 고맙습니다……”
그녀는 소영을 어떻게 불러야 좋을지 몰랐다.
소영은 그녀의 손을 맞잡고 부드럽게 말했다.
“아가씨, 감사할 필요 없소. 상처가 아직 완치되지 않았으니 어
서 방으로 들어가 조식하며 조용히 휴식하시오.”
봉죽은 시선을 마문비와 사마건에게 돌리고 어찌할 줄을 몰라했
다. 독수약왕이 냉랭하게 말했다.
“저분의 말이 맞소. 어서 들어가 조용히 조식하시오.”
마문비가 봉죽의 오른팔을 잡았다.
“내가 아가씨를 방에 데려다 줄 테니 갑시다.”
봉죽은 어리둥절하였지만 마문비가 이끄는 대로 와실(臥室)로 발
걸음을 옮겼다.
마문비는 그런 그녀를 자신의 방에서 쉬게 한 다음 문을 닫았다.
소영은 오른손으로 찻잔을 들고 있었고, 독수약왕은 그의 왼손을
잡고 있었다.
“잠깐!”
마문비가 소리쳤다.
독수약왕은 냉랭한 시선으로 마문비를 쳐다보았다.
“왜, 후회하오?”
마문비는 고개를 흔들었다.
“절대로 후회하는 것이 아니오. 다만 당신 대신 내가 피를 뽑겠
소.”
독수약왕은 눈을 치떴다.
“어떻게 하는 것인지 알고 있소?”
“가르쳐 주시오.”
독수약왕은 억지로 자제하면서 끝이 예리한 동관(銅管)을 건네
주었다.
“그의 왼쪽 팔의 주맥에 이것을 꽂고 내공으로 피를 뽑아야 하
오.”
마문비는 동관을 받아들었다.
“당신은 뒤로 물러나시오.”
마문비는 피를 뽑을 때 혹 그가 딴 짓을 할지도 몰라서 그렇게
말한 것이었다.
독수약왕은 순순히 두 발짝 뒤로 물러났다.
“어서 손을 쓰시오.”
마문비는 동관을 자세히 살펴 보고 무슨 독이 있을 것 같지 않자
소영의 왼팔 주맥에 찔렀다.
오른손으로 내공을 운용하여 소영의 등을 누르며 진기를 소영의
체내로 박입(迫入)하자 선혈이 솟아 나왔다.
잠시 후 잔이 가득찼다.
마문비는 동관을 빼 한 잔의 피와 함께 독수약왕에게 내밀었다.
“자, 받으시오.”
독수약황은 동관과 한 잔의 피를 받고 시선을 소영에게로 돌렸
다.
“후일에 만약 내가 그대를 구한다면 그대의 전신의 피를 차용하
겠소.”
소영이 대꾸했다.
“후일의 일은 후에 논합시다.”
“그 때는 차용 여부를 마음대로 결정하지 못할 거요.”
독수약왕은 그 말을 남기고 몸을 돌려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