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Spoon Life White Paper RAW novel - Chapter 152
152. 국빈 만찬이라고요?
“이건 이대로 진행하도록 해요.”
“알겠습니다.”
결재판을 건네받은 구청수 부장이 나가지 않고 그대로 서 있자 재성이 의아한 시선을 보냈다.
“나한테 뭐 할 말이라도 있습니까.”
“하하하. 그게.”
구청수 부장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직원들이 저희는 체육대회를 안 하냐고 성화입니다.”
“씨네박스는 원래 그런 거 안 하지 않았어요?”
“네. 그렇긴 합니다.”
머리를 갸웃거리던 재성은 이내 이유를 알아차리고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인터넷에 뜬 것 때문에 그러는 겁니까?”
“예. 제가 괜한 말씀을 드린 것 같습니다.”
“아니에요.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고 직원들이 원한다면 들어줘야죠.”
“그럼?!”
“사기 진작 차원에서 추진을 해보도록 하세요. 경품은 내가 준비하도록 하죠.”
“다들 아주 좋아할 겁니다.”
흔쾌히 이야기를 들어주자 구청수 부장은 반색하며 부사장실을 나갔다.
직원들 핑계를 대긴 했지만 본인부터 무척 좋아하는 기색이었다.
책상 위에 올려진 서류를 집어서 살펴보려고 할 때 핸드폰 진동 벨이 울렸다.
액정에 뜬 이름을 확인하고 전화를 받자 네오픽스 대표인 허인환의 목소리가 들렸다.
[허인환입니다.]몸을 의자 등받이에 기대면서 재성이 말했다.
“전화를 한 걸 보니까. 테라노트와 협상이 다 마무리된 모양이군요.”
[그렇습니다. 수익 배분 비율은 말씀하셨던 대로 5 : 5로 하고 올해 6월에 게임을 런칭하기로 이야기를 끝냈습니다.]재성은 책상 한쪽에 놓인 탁상 달력을 보며 말했다.
“두 달 정도밖에 여유가 없는데 괜찮겠어요?”
[그렇게 어려운 수정 작업이 아닌 데다가 기존 개발팀에 인력이 추가로 더 보충될 예정이라 큰 어려움은 없을 겁니다.]“그렇다면 다행이네요.”
[현지 사무소도 마침 테라노트가 입주해 있는 빌딩 한 층이 비어 있어서 거길 계약하고 다음 달 중으로 설치를 끝낼 생각입니다.]“이것저것 서로 협조할 일이 많을 텐데 가까이 있으면 좋겠죠.”
[하하하. 맞습니다.]목소리가 아주 밝은 것이 허인환의 기분을 대변해 주고 있었다.
사실 던전 워가 대박을 터트리고 있지만 그걸 제외하곤 이렇다 할 게임이 없다는 것이 네오픽스의 취약점이었다.
중국에서 성적이 어떻게 나올지는 두고 봐야 되겠으나 라인업이 넓어졌다는 것만으로도 네오픽스 입장에서는 아주 긍정적인 일이었다.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눈 뒤에 전화를 끊자 비서인 정효정이 안으로 들어왔다.
“부사장님. 방금 청와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청와대라고 했어요?”
“네.”
또 무슨 귀찮은 일을 시키려나 싶어 재성은 미간을 좁혔다.
“다음 주에 있을 영빈관 국빈 만찬에 참석해 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국빈 만찬이라고요?”
“미국 라출라 대통령 방한을 환영하는 국빈 만찬이 저녁에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릴 예정이라고 합니다.”
“아…….”
그동안 일이 바빠서 깜빡 잊고 있었는데 그러고 보니 다음 주에 라출라 대통령 방한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만찬에 참석하라니.
뜬금없게 느껴지기는 했다.
‘청와대 만찬이면 아무나 참석할 수 없는 자리인데……. 이거 또 괜한 구설수에 오르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
안 그래도 여러 가지 이유로 요즘 그의 이름이 심심치 않게 오르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청와대 국빈 만찬까지 참석한다면 이런저런 말들이 더욱 많아질 것이 불을 보듯 뻔했다.
‘그렇다고 청와대에서 직접 연락을 해왔는데 못 간다고 할 수도 없잖아.’
내심 입맛을 다시던 재성은 정효정의 말에 상념에서 깨어났다.
“오늘까지 참석 여부를 알려달라고 했는데 어떻게 할까요?”
“그날 잡혀 있는 일정이 있어요?”
“새로 개관하는 부산 해운대점을 둘러보시기로 되어 있습니다.”
“그럼 전날 미리 당겨서 갔다 오는 걸로 일정을 조절하도록 해요.”
“알겠습니다.”
정효정이 나가자 재성은 이내 국빈 만찬은 머릿속에서 지우고 다시 업무를 봤다.
* * *
마포 제일 그룹 본사 회장실.
소파에 앉은 박경수 회장은 둘째 아들과 최세환 제일 건설 신임 사장이 가져온 구조조정 계획안을 탁자 위에 내려놨다.
그러고는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뗐다.
“그러니까 효율을 높이기 위해 인력과 장비 20%를 줄이겠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구조조정으로 불필요한 군살을 줄인다면 연간 8백억이 넘는 고정비를 줄일 수 있을 겁니다.”
나란히 앉아 있는 재민이 얼른 말을 보탰다.
“단순히 비용을 아끼는 것뿐만 아니라 구조조정을 통해 그동안 비대해진 조직을 효율적으로 재조정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면 앞으로 장기화될 걸로 예상되는 건설 경기 침체에 보다 빠르고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변 여건이 달라진 만큼 조직을 재편할 필요성이 있다는 건 나도 공감해. 그런데 장비는 그렇다고 쳐도 한 번에 천여 명 가까이 되는 인원을 정리해고 했을 때의 부작용은?”
“정확하게 890명입니다.”
“어찌 됐건 말이야.”
계획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정리해고 대상이 더 늘어났다.
미리 이야기가 됐는지 최세환 사장은 가만히 있고 박재민이 계속 물음에 대답했다.
“지금처럼 직접 시공하는 현장을 줄이고 하도급 업체들을 관리 감독하는 데 집중한다면 오히려 더 효율적으로 공사를 진행할 수 있을 겁니다.”
“당연히 수익성은 좋아지겠지. 하지만 회사를 나가야 되는 직원들의 반발은 어떻게 할 거야?”
박경수 회장의 지적에 재민은 무심하게 대답했다.
“조금 시끄럽기는 하겠지만 대를 위해서 소를 희생시키는 건 당연한 일이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박경수 회장이 살짝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오랫동안 회사를 위해 일해온 직원들인데. 그리 막 대해서는 안 되는 법이야.”
“그렇다고 불필요한 인력을 계속 안고 갈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직원들을 인격체가 아니라 부속품처럼 생각하는 모습에 박경수 회장은 마뜩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어쨌든 건설 경기가 안 좋은 상황에서 구조조정으로 거둘 수 있는 효과는 분명했다.
팔짱을 낀 채 잠시 고심하던 박경수 회장은 이내 고개를 들어 최세환 사장에게 시선을 줬다.
“구조조정을 하게 된다면 누구한테 일을 맡길 생각인가?”
그러자 최세환 사장이 옆에 있는 박재민을 힐끗 쳐다보곤 대답했다.
“계획안을 처음 낸 박 상무가 끝까지 마무리를 짓도록 할까 합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구조조정을 잘 끝낸다면 큰 실적이 될 터였다.
“아까도 이야기했다시피 정리해고 대상이 될 직원들의 반발이 클 텐데 잘해낼 자신이 있느냐?”
“맡겨주신다면 소란 없이 처리해 내겠습니다.”
막내아들처럼 완전히 믿고 맡기기에는 어딘지 모르게 불안한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관급 공사 수주도 잘해냈고 이걸로 무슨 사고를 칠 것이 있겠나 싶기도 했다.
“최 사장.”
“말씀하십시오.”
“메가시티 분양 완료로 건설에 여유 자금이 좀 생겼지?”
“그렇습니다.”
거액의 계약금이 들어오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분양이 완료되면서 앞으로 중도금과 잔금이 계속 입금돼 공사비를 원활하게 조달할 수 있었다.
덕분에 막대한 공사비를 충당하느라 힘들었던 제일 건설은 부담을 덜 수 있게 됐다.
“3개월 치 월급을 위로금으로 지급한다고 되어 있는데 반년 치 연봉으로 늘리고 의료보험과 자녀 학자금 지원은 정리해고 후에도 일 년간 더 해주는 걸로 하게.”
“그러면 재정 부담이 작지 않을 텐데요.”
재민의 말에 박경수 회장이 인상을 썼다.
“그 정도 돈을 더 썼다고 건설이 휘청거릴 정도는 아니다. 그리고 이런 성의는 보여줘야지 회사를 나가는 직원들도 불만을 작게 가질 것 아니냐.”
“…….”
최세환 사장이 중간에서 눈치를 보다가 박경수 회장의 말을 받았다.
“맞는 말씀입니다.”
어차피 회사에서 내보낼 잉여 인력들한테 왜 그렇게까지 해줘야 하는지 재민은 납득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괜히 그런 말을 했다가는 박경수 회장의 노여움을 살 수 있었기에 꾹 눌러 참고 머리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다시 한번 당부하겠지만 가능한 큰 소란이 일지 않게 매끄럽게 일을 처리해야 할 거야.”
“예. 명심하겠습니다.”
잠시 뒤 이야기를 모두 끝낸 최세환 사장과 박재민 상무가 회장실을 나갔다.
몸을 뒤로 기댄 박경수 회장이 피곤한지 손가락으로 미간을 주무르고 있을 때 정태규 비서실장이 들어왔다.
“피곤하시면 일찍 들어가서 쉬시지요.”
“괜찮아.”
왼편 소파에 앉은 정태규 실장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박경수 회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청와대에서 다음 주에 있을 라출라 대통령 국빈 환영 만찬 초대장이 도착했습니다.”
“이번 만찬 규모가 꽤 크다고 했지.”
“네. 전경련 회장뿐만 아니라 10대 그룹 총수분들 전부가 초대됐습니다.”
이야기를 들으며 박경수 회장은 작게 머리를 끄덕였다.
해외 정상의 방한에도 급이 나누어져 있었다.
공식 방문과 실무, 개인 방문 등이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제일 높은 등급이 바로 국빈 방문이었다.
말 그대로 국가의 손님이란 의미였기에 모든 면에서 최고 대우가 이루어졌다.
국빈 만찬 역시 마찬가지여서 재계는 물론이고 정관계 모든 사회 지도층들이 다 참석하는 자리라고 할 수 있었다.
방한 일정이 확정됐을 때부터 만찬에 참석하게 될 거라는 걸 통보받았었기에 박경수 회장은 별다른 감흥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이어진 정태규 실장의 이야기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런데 막내 도련님도 이번 만찬에 함께 초대를 받았다고 합니다.”
“막내도?”
“예.”
박경수 회장은 의아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국빈 만찬은 아무나 참석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깨에 힘 좀 준다는 그룹 회장들도 재계 서열 10위 안에 들어가지 못하면 초대장 구경조차 하기 어려운 게 국빈 만찬이었다.
자신도 선대로부터 그룹 총수직을 물려받고 나서야 초대장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막내아들이 초대를 받았다니 의구심이 드는 건 당연했다.
“비서실을 통해서 알아봤더니 원래는 초대 명단에 없었는데 미국 측 요청으로 급히 추가했다고 합니다.”
“미국에서 요구했다고?”
“아무래도 막내 도련님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라출라 대통령이 따로 요청한 모양입니다.”
정태규 실장의 말에 박경수 회장이 수긍하듯 머리를 끄덕였다.
“하긴 취임식에 초청까지 받았었지. 얼마 전에는 청와대의 부탁을 받고 워싱턴까지 갔었고 말이야.”
“사실상 이번 방한의 1등 공신은 막내 도련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그렇지.”
대견해하던 박경수 회장은 이내 염려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정치인하고 너무 가깝게 지내면 좋기만 한 건 아닌데 조금 걱정스럽군.”
“지난번에 조찬범 의원과 관계도 깔끔하게 매듭짓는 걸 보면 혼자서도 앞가림을 잘하실 겁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럼 다행이고.”
이제는 언제 쳤는지 기억도 안 나는 사고 이후 확실히 달라진 막내아들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예전보다 더욱 신경이 쓰이고 애정도 갔다.
“혹시 또 모르니까 괜한 문제에 휩쓸리지 않게 자네가 잘 살펴보도록 해.”
“알겠습니다.”
“참. 첫째 사돈이 이번에 원내 대표 선거에 나간다고 그랬지?”
“예.”
첫째 며느리 장인선의 아버지인 장웅섭은 여당인 민한당 3선 국회의원이었다.
“사돈이 큰일을 하겠다는데 그냥 있을 수는 없지. 선거를 치르려면 돈이 필요할 테니까. 큰 걸로 다섯 장 정도 만들어서 조용하게 가져다주도록 해.”
“말씀대로 처리하겠습니다.”
“그럼 나가봐.”
한쪽 팔을 가볍게 내젓자 정태규 실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파에 몸을 깊숙이 파묻은 박경수 회장은 중얼거리듯 혼잣말을 내뱉었다.
“나도 이제 나이가 들었는지 몸이 예전 같지가 않군.”
그래서일까.
요즘 들어 부쩍 후계에 대해 생각이 많아진 박경수 회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