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vedigger of the Fallen Kingdom RAW novel - Chapter 110
제110화
연합군의 사기는 순식간에 하늘을 꿰뚫을 듯 치솟았다.
그것이 단 한 사람의 존재 때문이었다.
렌 아르젠.
고작 1년 전까지만 해도 아무도 관심조차 주지 않았던 그 인물이 짧은 시간 동안 이렇게 변해버린 것이다.
‘조금 어색한데.’
렌은 쏟아지는 함성과 울려 퍼지는 자신의 이름에 멋쩍게 웃었다.
1년 사이에 렌의 위상은 크게 달라져 있었다.
“성채로 향한다.”
카리나가 연합군에 명했다.
앞선 두 차례의 전투는 맛보기일 뿐이었다.
괴수들의 군세는 여전히 건재했고 타이란트는 눈을 버젓이 뜨고 연합군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군은 분기탱천한 기세로 전진했다. 그러자 북부 남쪽의 무너진 성벽이 나타났다.
“이곳이, 아인 바이에르…….”
카리나가 침음을 삼켰다.
그녀는 북부가 처음이 아니었다. 과거에 분명 북부에 가본 적이 있었고 그때나 지금이나 삭풍이 몰아치는 것은 똑같았으나, 성채의 모습은 완전히 달랐다.
그 거대하고 웅장함이 느껴지던 성채의 성벽은 사라지고 없었다.
고작 몇 달 사이, 유령같이 변한 성채의의 모습은 삭막한 느낌까지 든다.
성벽은 다 부서졌고 안쪽에 보이는 지붕과 창문은 모조리 깨어져 널브러진 모습이다.
그저 존재 자체만으로 보이던 광채나 화려함은 사라졌고 그저 신기루 같은 풍경만이 펼쳐져 있었다.
까득-
스테판이 이를 갈았다. 북부군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참담함이 그들의 마음을 할퀴어댔다.
휘이이이이-
어딘가에서 갸냘픈 새소리가 들려왔다. 망가진 성 내부에서 우울하고 위태로운 분위기가 흘러나왔다.
연합군은 그 분위기에 압도되어 쿵쿵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기 바빴다.
성채 내부의 거대한 첨탑 위로 타이란트가 올라섰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
놈이 괴성을 내지르며 자신의 가슴팍을 번갈아 때렸다.
그리고는 연합군을 정확히 바라보고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들어오라는 건가. 건방지군.”
“성채 내부에 놈들이 어떤 함정을 깔아놓았을지 모릅니다.”
“고작 괴수 따위…….”
말을 하려던 그녀가 입을 다물었다. 이제는 고작 괴수 따위라 말할 수 없었다. 놈들의 수준은 그들의 생각을 훨씬 상회했으니.
“어떻게 하면 좋겠나?”
“괴수 군단에 머리를 쓰는 놈이 있다고 합니다. 차라리 유인 방법을-.”
“아니요. 그냥 들어가죠. 시간을 끌어서 좋을 건 없어 보입니다.”
카리나를 보좌하던 연합군 참모의 말을 렌이 반대했다.
참모는 떨떠름했지만, 렌이라는 기사는 현재 연합군의 희망이었다.
그의 말을 무시할 순 없었다.
“왜 그리 생각하는가?”
“……이미 북부군은 놈들과 여러 번 대립한 적이 있습니다. 놈들은 모종의 방법으로 죽은 놈들을 살려내고 회복합니다. 내부에서 무슨 짓을 하고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시간을 주는 건 독입니다.”
“살려낸다고? 그게 가능한 일인가?”
“가능하네. 우리가 직접 보았으니.”
스테판이 렌의 말을 거들었다.
“다른 이들의 의견도 들어봐야겠군.”
카리나는 간부들을 불러 다음 작전을 논의했다. 그리고 그 결과로는 결국 바로 진입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그것이 쟌과 소렌, 데본이 적극적으로 렌의 의견에 동조했기 때문이었다. 북부군이나 브릴런트의 기사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럼 정비가 끝나는 대로 성채에 진입하는 걸로 하지. 놈들은 어차피 성벽을 끼고 싸울 생각은 없어 보이니.”
연합군은 다가올 전투를 대비해 몸을 예열했다. 북부의 강추위는 생각 이상으로 강렬했다.
북부군은 익숙한 듯 몸을 녹이고 호흡을 정돈했다. 옷에 붙은 눈들을 털어내고 곧 있을 전투를 위해 허기를 채웠다.
이제는 완전히 북부의 사람이 된 듯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금사자 기사단을 유심히 바라보던 데본이 슬금슬금 그들에게 다가갔다.
“저기, 그 가죽은 따뜻합니까?”
도미닉은 난데없이 말을 거는 데본의 모습을 의아하게 보았다.
생판 차갑게 생겨서 하는 짓은 쑥스러움 가득이다.
“예, 따뜻합니다만.”
“직접 가죽을 뜯어내서 만든 겁니까?”
“예.”
“저 나뭇가지는 얼마나 튼튼한 겁니까? 저대로 두면 눈이 쌓여 흔들리지는 않습니까? 그리고 이러한 것들은 북부에선 기본으로-.”
“저기요.”
“……왜 그럽니까?”
데본이 조금 뜨끔한 얼굴을 하고는 물었다.
도미닉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데본을 보았다.
바란 제국의 국경 지역 영주의 아들이자, 백마 기사단의 기사단장이라는 데본 비어맷츠.
이미 도미닉은 연합군의 전력을 어느 정도 파악한 상태였고 데본은 그중 중요 인물에 속해 있었다.
기사단장쯤 되는 인물이 왜 자신에게 말을 거나 했는데…….
‘렌 단장님 때문이었네.’
질문을 던지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저쪽에서 일을 하고 있는 렌 단장님에게로 시선이 돌아간다.
‘내 대답은 딱히 궁금하지도 않구만.’
그러니 대답을 듣기도 전에 다른 질문을 던지고 있지.
도미닉은 다짜고짜 저기 있는 렌을 불렀다.
“단장님!”
“어, 어? 아니, 갑자기 렌 경은 왜……?”
데본이 당황한 표정으로 어쩔 줄 몰라 했고 도미닉은 그런 데본의 모습은 무시했다.
“왜?”
렌이 굉장히 귀찮은 표정으로 다가왔다. 데본의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데본 경이 렌 단장님과 이야기하고 싶답니다.”
“무, 무, 무슨…, 소립니까!”
데본이 심각하게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
“뭐야? 아닌가 본데?”
도미닉이 별 이상한 사람 보듯 데본을 보았다.
“제가 잘못 들었나 봅니다.”
렌은 작게 혀를 차고는 데본에게 손을 건넸다.
이참에 이리 만난 김에 인사나 하자는 취지였다.
“북부 특수군 소속 금사자 기사단의 단장 렌 아르젠입니다.”
“데…본 비어맷츠. 백마 기사단이다.”
데본은 저도 모르게 렌을 하대하듯 말했고 곧 후회했다.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아, 예.”
렌은 인사가 끝났으니 손을 놓고 돌아섰다.
별생각은 없었다. 상대 기사들이 저리 행동하는 게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준비 잘하고 있어라. 여태 잘해도 마지막에 삐끗해서 죽으면 얼마나 억울하냐.”
“알겠습니다!”
도미닉이 경례하자 렌이 돌아갔다.
“안 가십니까?”
멍하니 그 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는 데본을 보던 도미닉이 혀를 차고는 몸을 돌렸다.
‘젠장! 이 멍청아! 검에 대해서라도 이야기 해봤어야지! 아오!’
데본은 속으로 자신을 채찍질하고 있었다.
* * *
연합군은 전열을 가다듬고 성채로 진입했다.
성벽 이곳저곳이 무너져 있어서 대단위 병사가 단번에 들어가기에 무리가 없었다.
애초에 남쪽 성벽은 북쪽 성벽만큼 공을 들여 만들어 놓은 것도 아니었다.
“진입하라! 괴수들을 모조리 베어 죽여라!”
“네임드의 목을 따는 자는 왕국에서 큰 포상을 내릴 것이다!”
“마법병단은 괴수들이 밀집한 곳을 집중해서 타격해라! 적진에 저격수가 있다! 활을 조심해라!”
“사제들은 최대한 뒤쪽에서 부상자들을 회복시키십시오! 일선으로 나가면 안 됩니다! 방패병의 그늘에 몸을 숨기십시오!”
전투가 시작되었다.
삭풍이 몰아치는 성채에서 병사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검과 창을 뽑아 들었다.
그들이 기합을 내지르며 괴수들의 살점을 베고 찔렀다. 격렬한 싸움이 일어났다.
눈이 얼어붙는 추위 속에서 병사들의 호흡이 가빠졌다. 그럼에도 전력을 다해 끝까지 싸웠다.
눈이 계속해서 내렸다, 옷에 눈이 덮일 때마다 얼어붙어 그들의 온기를 떨어뜨리고 움직임을 방해했다.
몸을 따뜻하게 보호할 방법은 없었다. 그저 끊임없이 몸을 움직여 체온을 높일 뿐.
“죽여라! 쉬지 마라!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도 집어삼켜라! 멈추는 순간 죽는다!”
스테판이 소리쳤다.
북부군에게 이러한 상황은 꽤나 익숙한 것이었다.
금사자 기사단과 아마란스 기사단이 미친 듯이 검을 휘둘렀다. 북부군과 함께 움직이며 백랑들의 전투력도 더 상승했다.
괴수의 머리를 짓밟고 목을 물어뜯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몇몇 백랑들은 오크들과의 힘 싸움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크르라라락!”
– 너로 부족하다! 네 아빠나 데려와라!
위니가 오크 전사의 머리통을 짓밟으며 으르렁거렸다.
“아빠는 무슨. 그냥 거기서 뒈져. 데려오지 마라.”
렌이 쓰러진 오크의 목을 찌르며 말했다.
‘쯧. 생각보다 괴수들의 저항이 거세다.’
괴수들은 그 거대한 몸집과 강력한 힘으로 병사들을 짓뭉갰다.
기사급 이상은 그나마 상황이 괜찮았다.
북부의 추위에 익숙하지 않은 병사들은 괴수들의 공세를 잘 버티지 못했다.
그럼에도 물릴 수는 없는 것은 그들이 그나마라도 괴수 군단의 일부를 막아주어 기사들이 활약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여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그림자 궁수가 연합군을 저격하기 시작했다.
“크허억!”
“전방 우측을 조심해라! 그림자 궁수다! 그림자에 숨어 놈이 활을 쏘아 보내고 있다!”
“방패병! 사제들을 지켜라!”
“마법사들은 실드를 전개해!”
그림자 궁수가 집요하게 핵심 인원들을 공략했다.
도대체 어디서 쏘는 것인지조차 육안으로 확인하기 힘들 정도의 먼 거리.
놈의 이동 속도도 빠른 탓에 저격 포인트를 찾아내면 금세 다른 곳으로 모습을 숨긴다.
뛰어난 저격수 하나가 전장의 분위기를 뒤바꿀 수 있다.
그림자 궁수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연합군에 혼란이 찾아왔다.
놈을 죽이려면 그만한 원거리 타격이 가능해야 하건만.
‘파도 파도 또 나오는구나.’
카리나가 눈살을 찌푸렸다.
타이란트, 검귀, 그림자 궁수.
놀람의 연속이었다. 괴수 군단의 저력이 이 정도일 줄이야. 맘만 먹으면 놈들이 북부를 벗어나 웬만한 작은 왕국 하나 무너뜨리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아 보였다.
‘정녕 나는 오만했구나.’
그림자 궁수의 존재는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검귀와 타이란트 때와 마찬가지로 놈의 능력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북부군이 보내준 전력을 믿지 못한 게 아니었다.
체감이 달랐다. 상급 상위에 이른 궁사라면 얼마든지 상대할 자신이 있었다. 근데 전장에서 저 정도의 궁사를 잡아내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나 사령관으로서 그녀는 단순히 그림자 궁수 하나에 집중할 수도 없었다. 마법병단을 컨트롤하고 전장 전체를 지휘해야 했으니.
‘내가 어머니만큼의 실력만 있었어도…….’
그림자 궁수는 절대 카리나를 공격하지 않았다. 놈은 집요하게 자신이 죽일 수 있는 인간들만 노렸다.
마법사들이 죽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미끼로 던져 그림자 궁수를 유인하면 어떻게든 한 방 먹일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건 그녀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그건 군주로서 용납할 수 없는 일. 별수 없구나. 벌써 이것을 드러낼 생각은 없었건만.’
그녀가 호흡을 가다듬고 천천히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녀의 눈동자가 좀 더 어두운 보라색으로 변색하며 숨겨두었던 힘을 꺼내 들려고 하는 그때였다.
쌔애애애애애액!!
귀청을 찢는 듯한 소름 돋는 파공음.
공간이 일렁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거대한 에너지를 품은 화살이 조금 전 그림자 궁수가 있던 건물을 강타했다.
콰아아아아아앙!!
건물이 반쯤 무너져 내렸다. 돌무더기가 비산하며 전장에 내리꽂혔다.
그녀가 다급히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보았다.
저 멀리, 성채 동쪽에 무너진 건물 위로 누군가 서 있었다.
‘렌 아르젠……?’
카리나가 놀라 두 눈을 부릅떴다. 렌 아르젠이 거대한 장궁을 들고 시위를 팽팽하게 당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궁술까지 할 줄 안다고?’
그녀가 이 이해 안 되는 상황을 정리할 틈도 없이 두 번째 화살이 쏘아졌다.
이번에는 건물의 뒤편. 조금 전 기습으로 부상을 입은 듯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그림자 궁수를 향했다.
콰아아아앙!!
조금 전과는 완전히 다른 기의 운용이었다. 화살에 강한 폭발력으로 광범위 타격을 주는 것이 아닌, 아주 좁은 범위에 확실한 위력을 집중시킨 공격.
경로를 방해하는 건물을 꿰뚫었지만, 이번엔 건물이 무너지기는커녕 멀쩡했다.
콰아앙!!
화살이 정확히 그림자가 궁수가 있는 곳에 박혔다. 어떻게 저 위치를 저 거리에서 맞춘 것인지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백이면 백 즉사였다.
먼지와 돌가루가 피어올라 시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허……. 지금 저 거리가 얼마나 되는 거지? 내가 제대로 보고 있는 게 맞는 건가?’
카리나는 차츰 제정신으로 돌아오며 렌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보이지도 않는 적을 저 거리에서 정확히 저격하고 뿐만 아니라 저 위력을 내보이는 게 말이 되는 건가?
그녀의 머릿속 렌에 대한 평가가 또 한 번 크게 비틀렸다.